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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도와 얻은 경상북도 문경의 영신들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동 동쪽으로 ‘영강(潁江)’이라 부르는 큰 강이 흐른다. 그리고 영강 옆으로 ‘영신들’ 또는 ‘큰들’이라 부르는 평야가 있다. 옛날 최부자 집에 영신 도령이라고 하는 머슴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 용진못에 사는 암룡이 나타나 다른 암룡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용신도령은 돈달산에 올라 두 마리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한 마리 용을 죽인다. 다시 영신 도령의 꿈에 나타난 용진못 암룡이은 영신도령이 죽인 것은 다른 암룡이 아니라, 자신의 남편인 수룡이라고 한다. 그래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었기에,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해서 영신 도령은 큰 들판의 주인이 된다.
문경시 점촌2동에 소재하는 영신들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동(店村洞)은 문경시청이 소재해 있는 곳이다. 점촌은 예전에 그릇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1986년 점촌시가 되었지만, 1995년 문경군과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면서, 점촌동이라는 이름으로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점촌동 동쪽으로는 ‘영강(潁江)’이라 부르는 큰 강이 흐른다. 그리고 영강 옆으로 ‘영신들’ 또는 ‘큰들’이라 부르는 평야가 있는데, 영신들은 문경시의 앞들에 해당한다. 영신들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유래에 대해서 전해지고 있다.
문경의 최고 부자인 최부자 집
옛날 영신들 자리에 최부자 집이 있었다고 한다. 최부자 집에는 ‘영신 도령’이라 부르는 머슴이 한 명 살고 있었다. 영신 도령은 집이 너무 가난해서 최부자 집에 머슴살이하러 들어갔다. 최부자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서른 가깝게 되도록 결혼을 못 해 혼자 살고 있었다. 한편, 영신 도령이 머슴살이하는 최부자 집은 문경에서 최고가는 부자였다. 최부자의 농토(農土)가 얼마나 넓었던지 문경의 온 들판이 모두 최부자 집 땅이었다. 그래서 곡식을 넣고 보관하기 위해 궤를 짜는 목공소까지도 있었다. 최부자 집 목공소가 있던 곳을 ‘빈지모퉁이’라 부르다. 또한, 최부자가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아침마다 턱걸이했다는 ‘턱걸이바위’, 최부자 집 자녀들의 글 소리가 들리던 ‘서당터’ 등의 지명을 통해서도 최부자가 얼마나 부자였는가를 알 수 있다. 영신 도령도 가끔 최부자 집 자녀들의 글 읽는 소리에 빠져 넋을 잃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일 안 한다.”라고 최 부자에게 혼났다.
영신 도령 꿈에 나타난 용진못 암용
한편, 영신 도령에게는 사모하는 ‘복실’이라는 처녀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영신 도령은 “최부자 집의 땅 일부만 가지고 있어도 머슴살이를 그만하고, 복실이와 결혼해 오순도순 살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였다. 영신 도령은 한가한 시간이면 앉아서 졸았다. 밤낮없이 계속되는 최부자 집 머슴살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쇠같이 튼튼한 몸을 가진 영신 도령이지만, 최부자 집 머슴 일이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밤, 영신 도령이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 한 미녀가 앞에 나타나,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만약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당신의 소원 어떠한 것도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누구인지 영신 도령에게 말을 하였다. “저는 사람이 아니옵고 가까운 용진못에 사는 암용입니다. 제 남편인 수룡과 금실이 두터워 자녀도 여럿 있는데, 제 낭군님께서 갑자기 저를 멀리하고 다른 못의 암용에게 빠져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청하옵건대, 내일 새벽 점촌 뒷산인 돈달산(頓達山)에서 수룡과 암용이 놀고 있을 테니, 기회를 보아 암용을 처치해 주시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칼과 잿봉지를 영신도령 앞에 내려놓고 가면서, “실수 없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영신 도령은 놀라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칼과 잿봉지가 놓여 있었다.
암룡이 아닌 용진못 수룡을 죽인 영신 도령
꿈에서 깬 영신 도령은 너무 신기했다. 정신을 차린 영신 도령은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지만, 매일같이 나무를 하러 다니던 돈달산에 올라, 꿈에서 말한 두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두 마리 용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영신 도령은 그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꿈속에서 암룡을 죽이라고 했는데, 두 마리 중 어느 것이 암룡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영신 도령은 두 용 가운데 무턱대고 암용이라 여겨지는 용 한 마리의 목을 칼로 베었다. 영신 도령이 휘두른 칼에 떨어진 목이 다시 몸뚱이에 붙으려고 하였다, 이때 영신 도령이 재빨리 잿봉지를 꺼내어 용의 목에 뿌렸다. 그렇게 해서 용은 다시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다른 용은 놀라서 달아나 버렸다. 그날 밤 잠을 자고 있던 영신 도령 꿈에 전날 꿈에 나타났던 용진못 암용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울면서 “당신이 죽인 용은 내가 미워하는 암용이 아니라, 제 남편인 수룡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그렇게 될 바엔 부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제가 복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약속을 지키셨기에 소원을 들어주려고 합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신 도령은 “제가 큰 슬픔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제 소원을 말하라고 하시면, 제 소원은 최부자보다 더 많은 땅을 가지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큰 들의 주인이 된 영신 도령
영신 도령의 소원을 듣고 난 암용은 “문종이에 당신의 이름을 쓰고, 그 이름을 겨릅(껍질을 벗긴 삼대)에 달아 깃대를 여러 개 만드십시오. 삼밭 한 마지기 겨릅 가지고는 모자랄 것입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홍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뒷산에 올라가서 큰물을 피하십시오.”, “홍수가 그치면 지금 있는 들판은 큰물에 휩쓸려 모래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들판이 생길 테니 당신의 만든 깃대를 들판 주위에 꽂아 놓으면 들판 모두가 당신의 땅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암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이튿날, 어디선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방이 모두 물바다가 되었다. 돈달산도 물에 잠겨 ‘돈궤짝’ 한 개를 놓을 정도만 남았다. 그래서 ‘돈달뫼(山)’라는 지명이 생겼다. 그리고 돈달산 봉우리 하나가 물에 떠내려가다가 영강 한 가운데 멈춰서 ‘단봉(單峰)’ 또는 ‘땀봉’이 되었다. 홍수가 그친 후 기존에 있던 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들이 생겼다. 영신 도령은 암용이 얘기해 만들어 두었던 깃대를 들판 주위에 모두 세웠다. 그렇게 해서 모든 들판이 영신 도령의 땅이 되었다. 그 후 영신 도령은 복실에게 장가들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영신 도령의 이름을 따서 큰 들을 ‘영신들’ 또는 ‘영신평야’라 부르게 되었다. 「용을 도와 얻은 경상북도 문경의 영신들」은 영신들의 형성 배경에 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홍수설화와 연계에서 전승하고 있는 유래담인 것이다.
참고자료
단행본
문경문화원.우리고장 민속,경북 문경:1990.98-100.
지방문화원
문경문화원 GO
집필자
최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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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용을 도와 얻은 경상북도 문경의 영신들
한국의 지명 설화
잘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