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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반기〈시인동네〉신인문학상 _ 이리영, 김신혜
가방들 (외 4편)
이리영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가방을 들고 나왔다
내가 모르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므로
나는 고기를 썰고 당신과 입을 맞추고 저 햇빛 아래 빈 유모차를 끌고 고기를 씹고 인공호수에 물고기 밥을 뿌리고
어떤 가방은 끝내 열리지 않아 그런 날이면
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내가 아는 슬픔 또한 슬픔이 아니어서
붉은 손톱자국 부서진 피아노의 건반들 깃털만 가득한 새장 당신이 키우는 식물의 그늘을 지나
어느덧 커튼이 쳐진 거실에 당도하는 것이었다
푸른 수영장 텅 빈 바닥에 버려진 갈색 가방처럼
아무것도 좇지 않고 누구의 손도 마주 잡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당신만 아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므로
커튼 너머 저 햇빛 아래 아무도 울고 있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
나는 로즈메리 이파리를 씹고 검은 개의 목줄을 쥐고 언덕에 오르고 책을 읽고 당신의 두 손을 내 가슴에 가만히 얹고 모두가 떠나고
벽에 기댔다 기대고 나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누구든 기다리는 자세로
욕조에 물이 넘쳤다
가방들이 바닥과 함께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빈집
방에 아무도 없는데 밤새 누가 생긴 거 같다
지켜봤을까 눈을 떼지 않고
엄마가 나를 낳을 때처럼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엄마가 나간 문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식탁에는 한 끼 식사가 음각되어 있다
창가 죽은 화분에 햇볕이 먼지를 일으키며 쏟아지고 있다
벌어져 더 벌어지지 않는 칫솔로 이를 닦는 일
무용하게 카드를 뒤섞듯
거울 속에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족의 얼굴
한때 기르던 검은 개를 한참 만에 찾아낸
거실장 서랍은 늘 열려 있다
죽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기에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확신해야 한다
집에 몇 개의 문은 닫혀 있고 몇 개의 문은 숨어 있다
나는 나가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어디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피뢰침
피뢰침을 집에 두고 온 날이었어요 태어난 것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던 목소리가 떠올라 발끝이 멀고 흐렸던 날씨였지요 강둑은 멀지 않고
오래전 음악이 되겠다고 떠난 아버지는 내가 돌아서는 골목이다 낡은 전쟁 사진과 빈 악보를 보내왔어요 그는 바람대로 음악으로의 죽음을 관통하는 중일까요 어디든 투구를 쓴 무리들이 잘 뭉쳐진 먼지처럼 몰려 다녀요
방공호를 뚫는 낙뢰가 수시로 떨어지고 있어요 어떤 분쟁지역에서는 죽은 자들의 눈꺼풀만 뜯어먹는 개들이 살고, 자욱한 포화 속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야 아이들은 발만 자라나요
내 손은 작아지고 있어요 거대한 발바닥을 닦아주고 싶지만 할아버지는 자기가 죽창으로 찔러 죽인 빨치산을 죽을 때까지 욕했어요 강둑에 묻힌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서로를 엄호하며 강바닥에 다다르는
먼 훗날이라는 허구의 시간에도 하늘은 둘로 쪼개지고 비에 한 번도 젖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물의 흔적을 따라 걷겠지요 벼락 맞아 시커메진 나무들이 자꾸 내 등에 뿌리를 내려요
나는 이제 피뢰침을 그만 믿기로 했어요 이곳은 누구의 귓바퀴인가요 방향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만 흘러드는 강물 속에서 가냘픈 멜로디 하나가 떠올라요 나는 거기에 대고 참았던 숨을 내뱉어요
그에 관하여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그의 인상착의를 묻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를 모릅니다 하지만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유리창의 세계는 어떤 자연법칙을 생성하는 중입니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넘기다 툭 발치로 떨어진
그는 양손잡이면서 양손이 없습니다 어쩌면 손이 사라진 곳에서 오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나는 동시에 주저앉은 적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어느 훗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는 그의 내부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도 같습니다
새 한 마리가 유리창을 통과해 내게 날아옵니다
순식간에 어깨를 밀치고 등 뒤로 자취를 감추는
찻잔은 서서히 식고 유리창의 세계는 쉬지 않고 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누굽니까 그를 기다리는 나는 어디서 멈춰서야 할지 모르고
아무도 유리창을 깨지 않습니다
빈 찻잔과 양손만을 남긴 채
건조주의보
잘 알던 것들이 빠져나갑니다
모두가 범죄자인 이곳엔 창살은 없습니다
달아나면서 쫓는 훔치면서 뺏기는
나는 어떤 신호 체계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열쇠 다음은 나비, 목요일 다음은 모래 언덕입니다
나는 무엇의 다음이지만, 어떤의 다음은 아닙니다
유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나는 얽은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상에 빗살무늬를 새기며
가장 무거운 물이 고여 탄약이 되길
불가능한 답을 찾아 떠난 자들은
나침반 같은 고개를 가졌습니다
나는 믿음이 희박해진 교리를 거꾸로
베껴 적으며 내가 죽은 다음을 위해 조용히
모래에 불을 붙입니다
시커먼 가지에서 흘러내리는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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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영/ 1972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졸업.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학과 석사과정 수료. 2018년 하반기 〈시인동네〉 신인상 당선.
최선의 감옥 (외 4편)
김신혜
설원의 끝에는 북쪽이라 불리는 감옥이 있다
불에 타 죽은 개와 얼어 죽은 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다
열쇠 꾸러미를 허리춤에 달고 걷는 교도관과
보폭을 맞추는 죄수들
그것이 최악인 사람과
그것이 최선인 사람이 걸어간다
이미 죽은 사람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가정
어느 방향으로도 짖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절벽을 오른다
아무도 북쪽 끝까지 가보지 않았지만
동전을 던지고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깊은 웅덩이를 만든다
얼어 죽은 개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무덤 속을 비추면서
바닥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파리는 시들지 않고 죽어가는 개는 죽지 않는다
사과나무 위에 피어나는 사과나무들
씨앗이 싹틀 때 씨앗을 낚아채는 새의 발톱
그림자 하나로도
수백 개의 음표가 완성되고 있었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대며
눈 속을 걷는다
등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하나, 둘 기록하면서
어린이대공원
피에로가 아이들에게
풍선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있다
꼭지를 입에 물고
풍선이 터질 때까지 부는 아이들
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건
항상 아이들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풍성한 잔머리를 손질해준다
가위를 숨긴 채
뒷짐을 지고 있는 피에로를 바라보며
눈이 찢어지도록 웃는다
얘들아, 처음 입에 문 젖꼭지는
고무처럼 질기고
우리는 우유를 삼키며 비릿한 거짓말을 배웠지
늘어진 가슴을 내놓은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며
우리는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로 갑니다
버려진 오색 풍선들로 가득 찬 하늘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아름다워, 남자와 여자가 우산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로 포개질 때
아이들은 막대기로 그림자를 가르며
우르르 뛰어간다
빗물에 화장이 흘러내리고
피에로의 얼굴이 오색으로 젖을 때까지
투명한 덫
햇빛을 향해 찌푸리던 사형수가
눈을 감을 때 빛의 잔상과 싸우는 것처럼
목격자는 저렇게 많은 살육을 꾸미려고
부드러운 융단에 스크래치를 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입을 크게 벌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닥에 투명한 덫을 놓을 때
이미 발이 빠진 사람은
하얗게 사라진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며
덫에 걸리기 직전의 모습을 떠올린다
기쁠수록 혀를 내밀고 목줄을 당기는 강아지와
혀의 돌기만큼이나 촘촘한 인파 속에서
나는 헛도는 나사 하나를 움켜쥐고
가벼워진다
불 꺼진 방 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영혼의 윤곽들
교수대 위에 올라간 사내의 정수리 위에
빛 무리들이 우글거린다
곧 쏟아질 것 같다
원래 없었던 거라 생각하면
할머니는 죽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사진 옆에 오려 붙인다
벽에 붙은 전단지를 바라보며
실종된 아이들이 커버린 모습을 상상한다
철봉 위에는 뒤꿈치에 피를 흘리던 새가 머무른다
처음으로 신발을 구겨 신고 달리던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라진 부족의 운율을 맞추는
내 보폭을 셀 수 없어서
무릎은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죽은 사람을 사진에 오려 붙이는 습관
아픔은 이미 아픔의 한가운데 와 있다
웅덩이에 고인 물 위로 물이 넘친다
후, 하고 불면 물결이 희미한 흉터를 가르고 있었다
되돌아오는 마음은
멀리서 보면 꼭 손을 흔드는 것 같다
가라앉는 사람과 떠오르는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토마토 축제
천막을 찢으며 걷는다 추락하는 천사들 방금 전쟁이 끝났어 귓가에 타오르는 폭죽 이건 재앙에 가까운 거야 그렇지만 재앙은 아니야 어떤 형벌도 내리지 않지만 품에 있던 칼을 내려놓지 못해
음성을 들으면서 상점들은 날마다 간판을 바꾼다 어제는 과일가게였던 곳이 오늘은 무기점으로 바뀌었어 방금 축제가 시작됐고
웃을 때마다 단내가 난다 이 도시의 날씨를 바꾸기 힘들겠지만 한 번 이빨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너희들의 성전에도 훌리건들이 섞이겠지
붉은 것들을 벗겨내도 천사들의 굳은살은 진해지겠지 아스팔트 위에서 휘파람을 부는 이교도들 이 도시의 열대야를 만들고 있어
손에 쥐고 있던 토마토를 풀밭에 던지는 여자 지겨워, 중얼거리고는 쓰러진다 그는 맑은 날 자리에서 일어나 기관총을 쏠 거야 막 사람의 말을 배우고는 웃음을 터뜨릴지도 몰라
서로의 냄새를 알아채지 못하고
아직도 인파가 모여들고 있다고
검게 타버린 천사를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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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혜/ 1991년 서울 출생.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졸업. 2018년 하반기〈시인동네〉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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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최종심에 올라온 아홉 분의 작품을 미리 읽는 독후감은 아슬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아슬한 것은 그분들 모두 같은 학교 같은 반 학생들이 아닌가라는 의문점이다. 언어와 상상력의 높낮이, 체험과 클리셰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문학교실의 정경을 보았다. 시작과 결말의 텍스추어도 비슷하다는 느낌까지 도착했다. 소프트웨어적 기교는 풍성해졌지만 단단해야 할 하드웨어가 허술한 부분 역시 끔찍하게 닮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중에서도 개성을 뽐내는 작품이 당연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이리영, 김신혜, 윤경, 윤선 씨이다.
윤경 씨의 「마상청앵도」는 “봄은 텅텅 채워진 고백인가 봐요”라는 매혹적인 도입부를 소유한 가편이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소재를 얻어 그림과 현실, 그리고 언어와 그림 사이의 장력을 성글면서 촘촘한 묘사로 드러내었다. 따라서 시는 단정하다. 같이 동봉된 작품들이 고르지 않다는 단점 때문에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윤선 씨의 「수선화는 피었지만 난 쓸쓸해요」의 전반부가 보여주는 손바닥 위의 세계는 유니크하다. 수탉의 뭉클한 목덜미와 날뛰던 직벽의 바람과 오후의 주홍 햇볕을 같은 손바닥의 조브장한 넓이에 마음껏 얹을 수 있는 씨의 능란함이 수월해 보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서사는 사물을 소비하기만 하고 사물은 또한 언어를 인내하지 못하면서, 손바닥이란 놀라운 은유는 헝클어져버렸다. 이러한 지적은 다른 분의 응모작에서도 얼마든지 헹구어낼 수 있다.
이리영 씨에게서 시적 영리함을 먼저 읽었다.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가방을 들고 나왔다(「가방들」)”가“내가 모르는 슬픔(「가방들」)”으로 인용되는 발화가 돋보이고, “어떤 가방은 끝내 열리지 않아 그런 날이면/ 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내가 아는 슬픔 또한 슬픔이 아니(「가방들」)”라는 생동감이 뜻밖이다. 그러기에 “텅 빈 바닥에 버려진 갈색 가방처럼/ 아무것도 좇지 않고 누구의 손도 마주 잡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가방들」)”는 ‘가방들’이라는 공감각에 몰입할 수 있는 감정이 농염한 과일처럼 형성되었다.
김신혜의 「최선의 감옥」이 보여주는 설원이라는 극지의 관념은 쉽사리 표피의 ‘감옥’이 되기 쉽다. 김신혜는 관념이라는 어려움을 물질화하는 데 일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설원의 끝에는 북쪽이라 불리는 감옥이 있다”라는 구절을 보자면 “불에 타 죽은 개와 얼어 죽은 개”가 등장해도 그것은 아직 풍경이 아니다. 이 풍경이 최소한 살아 움직이려면 역시 죄수들, “그것이 최악인 사람”과 “그것이 최선인 사람”들의 보폭이 필ㅇ요악처럼 더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북쪽의 감옥을 배경으로(혹은 아우라로 선택된) 인간의 죄악에 대한 지도가 설원에 광범위하게 그려진다. 마치 설원이라는 생존의 불꽃을 파먹고 사는 벌레처럼 관념/설원은 점차 확장 심화되면서 ‘사과나무’와 ‘씨앗’이라는 생과 “등 뒤에서 죽어가는” 죽음이라는 공생의 관계가 불안하게 연결된다. 이후의 작업이 더 궁금해지리라.
윤경 씨의 「마상청앵도」가 마지막까지 아쉬웠지만, 다수결의 미덕에 따라 이리영 씨와 김신혜 씨를 추천하는 데 기꺼이 동의하였다. 문학이라는 영혼의 출발선에 도착한 두 분에게 축하를 드리며 문학이란 필생의 업이라는 염려 또한 덧붙인다.
⸺송재학(시인)
너무 더운 탓이었을까. 예심을 통과한 아홉 명의 작품 90편을 받아들었을 때 등줄기에 찬물을 맞을 때의 ‘놀람’이나 감추어져 있어 은은한 ‘아픔’ 같은 걸 맛보고 싶었다. 그건 각기 ‘참신함’과 ‘개성’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우리 삶의 우리가 모르는 무엇을 드러내는 일과 내 안의 내가 이기지 못하는 불화를 폭로할 때 거기서 발견하는 새로운 국면이야말로 우리에게 시원함을 선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리를 위해 신인이 필요하며 그리하여 신인에게는 늘 기대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어서 이 가라앉은 공기를 바꿔주기를 바라는 심정 말이다.
본심에 오른 투고작 중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윤경, 이리영, 김신혜, 윤선 4명이었다. 윤경과 윤선은 시선이 선명하고 시적 소재가 발랄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운용하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였으나 아쉽게도 편차가 있어 손을 놓게 했다. 이리영은 언어를 다루는 그만의 속도가 있고 발견하는 눈이 예리하였다. “집에 몇 개의 문은 닫혀 있고 몇 개의 문은 숨어 있다”며 「빈집」을 그리고 있는데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어디선가 나는 썩는 냄새“를 제시하는 발상이 미더웠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의 슬픔이나 당신만 아는 당신의 슬픔을 「가방」이라는 개별적이며 고립의 의미로 수렴하는 장치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김신혜는 대상과의 팽팽한 긴장을 자신의 조리개로 조절하는 힘이 있었다. 「최선의 감옥」에서 우리 안에 스스로 만든 감옥, 그것을 ‘북쪽’의 이미지와 교차시키면서 “아무도 북쪽 끝까지 가보지 않았지만” 그 불모의 어느 곳에 대해 “바닥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파리는 시들지 않고 죽어가는 개는 죽지 않는다”는 역설의 으ㅢ미로 그만의(혹은 우리의) 감옥을 그리고 있다. 또 다른 작품에서 “죽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사진 옆에 오려 붙”이는 할머니의 습관을 통해 삶과 죽음의의미를 평면으로 만들어버리는 점이 재미있었다. 할아버지의 삶/죽음 또한 ‘원래 없었던 거라’는 성찰은 깊은 것이다.
두 사람 사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각기 다른 개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두 사람 모두 신인으로 보내는 데 동의하였다. 전반적으로 아쉬웠다면 좀 더 절실해질 수 없을까, 절체절명의 자세가 되면 안 될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던 것의 주검을 밟았을 때의 ‘속절없음’처럼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서 나오는 그런 시를 기대하고 싶다. 당선된 분이나 아쉽게 밀려난 분들 모두 어디선가 놀라움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규리(시인)
⸺월간 《시인동네》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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