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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
자기 홀로 있어도 도리에 그릇된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뜻이다.
愼 : 삼갈 신(忄/10)
獨 : 홀로 독(犭/13)
출전 :
중용(中庸)의 제2장
대학(大學)의 전(傳) 제6장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함을 뜻하는 말이다. 신독(愼獨)의 개념은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한다. '대학'에서는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듯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니, 이것을 일러 자겸(自慊) 즉 스스로 만족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하여 신독은 자기 뜻을 성실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명하였다.
주희는 이 신독의 독(獨)의 의미에 대해 남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이 홀로 아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홀로 있을 때에 삼가 선악의 기미를 잘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중용(中庸)에서도 "숨겨진 것보다 더 드러남이 없으며 은미한 것보다 더 나타남이 없으니, 군자가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주자학을 받아들인 조선에서는 내면의 수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신독을 중시하였다. 신독은 조선조에 사림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신독은 마음이 발동할 때 홀로는 삼가는 것으로서 신독에 힘써야 성정이 올바르게 되고 호오(好惡)가 분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독은 개인의 수신뿐만 아니라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가 되기도 하여 국왕에게 자주 건의되었다.
예컨대 1516년(중종 11) 경연에서 유용근(柳庸謹)이나 기준(奇遵)은 한가하고 국왕이 고요한 때에 근독(謹獨)하는 공부에 힘써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발동하지 않았을 때 존양(存養)하고 발동하여서는 성찰(省察)을 지극하게 하라고 하였다(중종실록 11년 10월 13일).
또한 1537년(중종 32) 대사헌양연(梁淵) 역시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도 신독에 힘쓰면 마음이 올바르게 되고 호오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궁중이 엄숙해진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2년 12월 6일).
그리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보덕(輔德)정원(鄭源)은 성정의 대본과 달도는 천지를 제자리에 위치지우고 만물을 기를 수 있는데, 그 단서가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계구,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신독에 있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7년 11월 12일).
조선후기에도 이러한 신독 공부의 필요성이 자주 언급되었다. 특히 송시열은 현종에게 상소하여 국왕이 신독 공부에 힘써 천리를 밝히고 사욕을 없애야 천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고(현종개수실록 9년 11월 20일), 숙종에게도 신하를 대할 때 잡념을 없애고 엄숙하게 하며, 내전에서도 환관과 빈첩에게 그리할 것을 요청하였다(숙종실록 6년 10월 12일).
조선시대에 신독에 대해 가장 깊은 이해를 보인 왕은 정조이다. 정조는 신독 공부에서 선악의 기미를 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성의(誠意)는 '대학'의 큰 조목이고 신독(愼獨)은 '중용'의 가장 중요한 공부인데, 신독 두 글자는 아무리 미세한 일이라도 자신만 아는 것이니, 선악의 기미를 잘 살펴서 선은 함양하고 악념을 없애서 항상 경외하는 마음을 보존하여 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정조실록 3년 1월 23일).
신독(愼獨)
1. 신독(愼獨)의 출처
이 말은 두 군데에 나옵니다. 하나는, 중용과 천명의 천명 제2장과 대학의 전(傳) 제6장입니다. 앞의 책에는 '故君子愼其獨也'로 나오고, 뒤의 책에는 '故君子必愼其獨也'로 '必'자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두 책에 쓰인 글이 신기할 정도로 같은 이유는 두 책의 저자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독'의 원문은 '신기독(愼其獨)'입니다. 가운데의 其자는 앞 글에서는 道를 가리키고, 뒷 글에서는 명덕(明德)을 가리키는 대명사입니다. 이 道와 明德은 사실상 같은 뜻입니다. 즉, '군자신기독'이란 '군자는 그 것(道 또는 明德)에 관하여 신중합니다'라는 뜻입니다.
2. 누가 한말인가?
중용과 천명 그리고 대학은 모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B.C.483~402)의 저작품이라고 합니다. 이에 관하여는 중국의 곽기(郭沂)교수 논문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자사(子思)가 한 말입니다.
3. 뜻
지금까지 '신독'을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라고 해석하여 왔으며, 유가들의 가장 중요한 수양 방법으로 여겨왔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天, 즉 상제(上帝)와 귀신(鬼神)은 형상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나 또한 강림하여 항상 인간들을 낱낱이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 암실(暗室)이나 혼자 있을 때에도 계신공구(戒慎恐懼)하는 것이 바로 신독인 것이다"라고 '天· 귀신'과 관련하여 신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 과연 그것이 있는 것인가 의심하면서 아득히 알 수 없는 곳에다 버려 둔 까닭에 인주(人主)의 경외(敬畏)하는 공부와 학자의 신독의 의의가 모두 성실하지 못한 데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독의 공부는 귀신의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귀신의 덕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독의 개념을 이렇게 알아왔고 지금도 아주 중요한 철학의 범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독의 개념에 관하여 곽기교수는 다음과 같이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君子는 누가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왜 계신공구하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유가(儒家)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아수양(自我修養)과 자아실현(自我實現)을 강조합니다. 군자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변함없이 성심(誠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계신공구할 필요성이 조금도 없다는 말입니다. 솔성(率性)의 道는 노력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재되어 있기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찰(省察)이라는 과정도 불필요하고, 신독의 공부도 불필요합니다. 홀로 있을 때 계신공구해야 하는 사람은 군자의 수준에는 미달되나 소인(小人)중에서는 상급에 해당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둘째, 道는 비이은(費而隱)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도 모르는 부분이 있고,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천명 제4장 참조). 하물며 군자는 모르거나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道가 있고 또 들리지 않는 道도 있다는 말입니다. 군자는 이러한 道에 대하여도 겸허하게 계신공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군자가 道를 경외(敬畏)의 마음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는 표현입니다.
셋째, '獨'은 '혼자, 홀로'라는 뜻이 아니라 '오로지. 오직'이라는 부사의 뜻이라고 합니다. 道는 은미(隱微)한 것이기 때문에 小人은 알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으며, 오직 군자만이 알고 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곽기교수의 견해에 따라 '君子慎其獨也'를 '오직 군자만이 그 것(道 또는 明德)에 대하여 경외(敬畏)의 마음을 지닌다'라고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其'자의 의미가 아주 중요합니다.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다
신독(愼獨)은 한자공부를 한 사람이면 자주 보이는 말이다. 사서(四書)에 해당하는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나오기 때문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좌우명(座右銘)이 신독(愼獨)이었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신독(愼獨)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독(愼獨)에 반하는 말이다. 동양 고전에서 군자와 소인의 기준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학식과 덕행이 모범이 되어 높은 관직을 지내던 사람을 군자(君子)로 표현했으며 도량이 좁고 자기 이익만 알며 간사한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사서중 대학과 중용은 예기(禮記)의 한 편에서 따로 독립해 내 한권으로 만들 책들이다. 대학은 예기의 42편이고 중용은 31편에 해당한다.
대학 제6장 성의(誠意) 편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이 나온다.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며,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善)은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는데 이를 일러 스스로 겸손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자신이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君子必愼其獨也). 이어서 소인은 일없이 홀로 있을 때 좋지 못한 일을 해서 이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군자를 본 뒤에 부끄러운 듯이 자기의 잘못을 덮는다고 했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악행을 저지르는 소인배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함부로 남의 험담이나 그 사람의 약점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이럴 때 수양이 되어있는 사람은 맞장구를 치지 않고 조심하며 언행을 자제한다.
중용의 신독(愼獨)은 도가 잠시라도 나에게서 떠나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가 보지 않더라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더라도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숨어있는 곳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은미(隱微)한 데서 보다 자신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莫顯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고 했다.
대학은 증자(曾子)의 저술이며 중용은 공자의 손자 자사자(子思子)의 저술이다. 그러므로 2500년 이 된 지혜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예언같이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누가 보지 않아도 삼갈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이나 CCTV 기술이 발달하여 교통법규 위반이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임이 밝혀지는 일이 생기고 전에 잘못했던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자주 생기므로 예언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물론 신독(愼獨)이 유교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작금의 현실에 결부시켜 남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 전에 스스로 조심해야 된다는 단순한 의미나 처세(處世)적 가르침만은 아니다. 유교이념을 가치로 삼은 우리 조상들 에게는 평생을 수신(修身)하며 수기안인(修己安人)의 대의를 품었던 군자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신독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독의 가치가 폄하되는지 모른다.
신독(愼獨)의 진정함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모토로 삼은 대학의 기본자세이자 항상 수련해서 행해야 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퇴계 이황과 백범 김구 선생이 누가 보든 안보든 신중히 행동할 것을 수신(修身)의 기본자세로 여겨 자신을 절제하고 흐트러질 때 마다 신독(愼獨)의 자세로 돌아가자고 자신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성리학자들이나 중국의 유자(儒者)들이 수기안인을 위해 수준 높은 신독(愼獨)을 실천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았었다. 현대사회에서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볼 때마다 가관(可觀)이 아니다. 누가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했다가 나중에 나타나니 변명하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경우가 어쩌면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보인다.
미리 수련이 되어 있었다면 청문회를 해도 자랑스럽게 통과하겠지만 신독(愼獨)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자는 청문회가 두렵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낙마하는 경우가 생긴다. 누구든지 어려서부터 누가 보지 않더라도 신중하게 행동하고 언행을 삼간다면 아무리 비방을 하려해도 피해갈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한사람은 더욱 눈여겨 볼 대목이다.
신독(愼獨)
홀로 있음을 경계하라!
우리는 '혼자 집에 있어', '혼자 주말을 보내고 있어'라며 ‘혼자’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혼자라고 말할 때는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전제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혼자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 혼자일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공기와 접촉하고 있으며, 낮에는 태양빛을, 밤에는 달빛을 받고, 계절의 기운에 영향을 받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과 벽과 벽 사이를 기는 징그러운 벌레들, 방 한 켠 쌓여있는 책들, 심지어 그 위를 덮고 있는 먼지들과도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심지어 죽어서 몸이 해체되는 과정에서도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있다. 사실상 생(生)에서 혼자 존재하는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혼자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느끼는 걸까? 혼자라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
우리는 주로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공간에 따로 있을 때 혼자라고 인식한다. 공간의 분리는 나와 연결된 존재들을 내 눈 앞에서 사라지도록 만들어준다. 이 때문에 공간의 장벽은 우리에게 연결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닫힌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혜화 거리에서, 출퇴근 시간에 터질 것 같은 지하철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혼자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내 삶이 이들과 무관하다는 느낌 속에서, 아니면 스스로 허무하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감정 속에 빠져있을 때 그렇다. 생각과 감정은 다른 사람과 연결을 끊고, 우리가 여러 존재들 속에 있어도 혼자라고 인지하게 한다.
이처럼 공간적으로 분리가 됐든, 정서적으로 분리가 됐든 연결성을 감각하지 못할 때 우리는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착각이다. 실제로 우리는 기억을 통해 여러 시공간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당장 오늘 하루만 해도 사람들과 주고받은 언어,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로 사람들과 얽혀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과제를 하는 것도 공부하는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홀로 있을 때 삼간다'라는 구절의 '홀로'를 나는 이런 의미로 파악한다. 홀로 있음(獨)은 언제나 관계 속에 있지만 연결성을 망각하고 있는 상태이다.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과의 연결성을 망각하고 있는 것도 홀로 있음(獨)의 상태일 것이고, 지구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무관심하게 있는 것도 홀로 있음(獨)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이 세계의 연결성을 망각하거나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무감각한 상태가 바로 홀로 있음(獨)인 것이다.
그러면 신(愼)은 무엇일까? 신(愼)에는 삼가다는 뜻 외에도 근심하다, 두려워하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왜 홀로 있음(獨)의 상태를 근심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 만약 나의 먹기가 비인간 존재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는다면, 무절제하게 탐식하면서 비인간 존재들의 아픔에 기여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된다.
또 나의 소비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모른다면, 연결에 대한 이 무지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보기, 말하기, 생각하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보고, 말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 고립의 상태를 근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愼)을 홀로 있음에 대한 경계, 즉 연결성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홀로 있음(獨)의 상태는 개인의 의지로, 비장한 각오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자체가 비인간 존재들의 죽음과 전쟁의 참상을 은폐하고, 불편한 타자들의 삶을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복잡한 연결성을 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자극이 도처에 있다. 풍요로운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바로 그것이다. 내게는, 이 자극들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수행, 나와 세계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배우고 익히려는 작업이 신독(愼獨)이다.
리더와 신독(愼獨)
군자는 혼자 있을때에도 삼가고 조심한다(君子愼其獨也)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대학(大學에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군자(君子)는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고 조심한다(君子愼其獨也)라는 말입니다. '혼자 있을 때 잘하라'라는 뜻은 어찌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안 볼 때 잘한다'라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잘 드러나고 깊이 숨은 것이 잘 나타나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고(毋自欺),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스스로 겸손하여 거리낌이 없는 스스로 겸손함과 같은 맥락입니다.
고독 속에서 강한 자는 성장하지만, 나약한 사람은 시들어버린다. - 칼릴 지브랄
리더는 고독하다. 지위가 높아갈수록 고독은 더해진다. 그러기에 홀로 지내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고독 속에서 자신과 만나 자신이 선택하고, 실천하며,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의 무게를 감내하게 된다.
고난과 역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독의 시간은 사유의 시간, 자기 성찰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다. 고독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영감과 지혜와 통찰력을 얻게 되기 때문에, 리더는 고독을 통해 고요한 마음을 가꾸고, 깊어져,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게 된다.
리더는 항시 미래의 불확실과 직면하게 된다. 의사 결정에서도 최종 책임자가 리더이다. 때문에,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한 리더의 결단이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기도 한다. 결단이라는 말의 바탕에는 불확실이 깔려 있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확실해 보이는 일이라면 굳이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리더가 외롭게 가야 할 길이 있다.
오늘날처럼 변화가 격심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평소에 별일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결단의 순간에 내몰리게 된다. 국내 최고의 벤처기업인 미래 산업을 일군 정문술 사장은 "결실은 모든 사원과 나누지만, 어려움은 사장이 혼자 짊어진다"라고 리더의 고독을 설파한 바가 있다.
리더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혼자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말을 얹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확고하다면 물러서지 않는 결기로 그 길을 밀고 나가야 한다.
때로는 회사가 망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럴 때마다 리더는 주위로부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비웃음 거리가 되기도 한다. 오해 받고, 비난 받고, 비판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리더는 격심한 고독을 느낀다.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부서지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고독을 친구로 삼아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야당의 반대에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수북이 쌓으며 밤새 고민한 박정희, 한미 FTA 과정에서 지지층의 반발에 내몰린 노무현,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라고 생각한다'라며 선거가 끝난 뒤 잠이 잘 안 온다고 하였다.
참모들이 있지만, 궁극적 결정은 본인이 하고 모든 책임과 비난도 한 몸에 받는 이유에 서다. 리더는 자신과 싸워 스스로 이겨가는 자이다. 누구에게 잘못을 돌리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고독을 통해 깊어진 깊어짐으로 중심을 잡고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확고하게 원칙을 지켜간다면, 구성원들도 결국에는 그를 따르게 된다고 본다.
그러기에 리더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고독한 성주(城主)가 되어야 한다. 꽃 따라 나비 따라 흔들리지 않아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인지 옛 선비들은 홀로 있을 때 정성을 다하여 내면적 수양의 기반을 이 신독(愼獨)을 통해 확립해 갔다.
매 순간 고독한 결단과 마주치게 되는 리더의 숙명. 혼자 있는 때에 방심하고 몸을 함부로 가지면 남이 있는 때에도 그 습관이 나오게 되니, 옛 성현들은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 했다. 숨은 것과 나타난 것이 둘 이 아닌 까닭이니, 도(道)를 수행하는 선비나 리더가 먼저 닦아야 할 덕목이 바로 이 신독(愼獨)이 아닌가 한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리더'입니다. 우리가 리더일 진대 이 '리더와 신독(愼獨)'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면 리더로서의, 자격에 손 색이 없지 않을까요!
청렴, 신독(愼獨), 공직자의 바른 마음가짐
신독(愼獨)은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말한다. 조선시대성리학자인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도 신독(愼獨)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수신(修身)의 기본으로 실천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공직자의 기본덕목인 청렴과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렴은 단순히 부패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넘어서 직무수행 과정에서 정직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보다 과정으로서 청렴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를 실현키 위해 청렴교육과 윤리교육이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더불어 재산등록 및 공개제도, 이해충돌방지법, 청탁금지법, 부패신고제도와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등 제도적인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청렴관련 법령은 꾸준히 개정되고 때로는 새롭게 제정된다. 하지만 법령으로 수많은 사항을 모두 규제하기는 어렵다. 이에 청렴관련 교육과 개개인 마음가짐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청렴교육과 윤리교육을 통하여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청렴의식이 자연스럽게 체화(體化)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체화도 적극적인 의식변화가 수반되지 않을시 효용도는 낮아진다. 청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한 능동적인 의식변화를 가져올 때만이 순수한 의미의 청렴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옛 성현들의 삶의 지침이었던 신독(愼獨)이 현재에도 의미를 가지게 된다.
홀로 있을 때 더욱 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신독(愼獨)을 완벽하게 따를 수는 없겠지만 항상 마음에 품고 공무에 임한다면 청렴과 정직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무원의 기본 덕목은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면을 빌려 신독(愼獨)을 알리려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2023년도 제주특별자치도 종합청렴도는 2등급으로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올 한 해도 청렴도 평가가 높은 수준으로 나오길 기대해 보며 신독(愼獨)을 생각해 본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혼자 있을 때 더 조심하라
술에 취해 늦은 밤에 귀가하며 집이 보이는 골목에서 노상 방뇨를 했다. 대학 다닐 때다. 함박눈이 쏟아져 오줌 눈 자리는 바로 덮여 사라졌다. 술도 깬 듯 머릿속도 맑았다. 몇 발짝 떼서 집에 들어오는 동안 아무도 본 이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 계단을 오르다 눈 내리는 골목길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나를 보자 아버지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아버지 방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내 행동을 아버지가 평소처럼 그 자리에서 나무라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해 아버지 방을 내내 지켜봤다.
불안해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새벽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오줌 눈 자리에 가 봤지만, 눈이 너무 쌓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아버지가 방으로 불렀다. “어젯밤에 대여섯 발자국만 더 걸어오면 되는 집을 놔두고 골목에다 왜 오줌을 누었느냐?”고 물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술에 취해서라고 변명하자 아버지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너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오줌 누기 전에 주변을 살피는 걸 내가 모두 지켜봤다. 마신 술은 집까지 오는 동안에 네 알코올 분해력이면 다 깼을 것이다”라며 내 행동을 “술을 핑계 삼은 객기(客氣)다”라고 단정 지었다. 객기는 ‘객쩍게 부리는 혈기(血氣)나 용기’라고 정의한 아버지는 “손님이 주인집 일에 참견하듯 별로 귀담아들을 말이 없을 때나 쓰는 실없고 싱거운 짓이다”라고 나무랐다.
“그런 행동은 오만(傲慢)함에서 나온다”라며 “잘난 체하며 남을 낮추어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옹졸하다”라고 지적했다. “술이 아니라 어둠이 너의 헛된 용기를 부추겼다”라고 해석하며 “객기로 한 행동은 후회가 따르고, 용기로 한 행동은 자부심을 키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누군가는 지켜본다. 성현들 말씀으로는 ‘사지(四知)’라고 했다. 둘만의 비밀이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 남이 본다고 잘하고 안 본다고 멋대로 하는 건 치기어린 짓이다. 누가 지켜보기 때문에 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방자하게 군 네 행동에 스스로 가책을 느껴 다른 일을 망칠까 염려되어서 하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해라”라고 일렀다.
마무리 지으며 그날도 아버지가 인용한 고사성어가 ‘신독(愼獨)’이다. 자기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말이다. 대학(大學) 6장에 나온다.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惡臭) 미워하는 것과 같이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하여야 하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는 것[君子必愼其獨也]이다.” 아버지는 “소인은 한가로우면 악행을 저질러 못 하는 짓이 없다. 그러다가 군자를 대하면 겸연쩍어하며 자신의 악행을 숨기고 선행을 드러내려 애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마치 간과 폐를 들여다보듯 다 훤히 들여다보니, 그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네가 오줌 누기 전에 주변을 살핀 것은 그런 행동이 옳지 않은 악행임을 이미 안다는 거고 다행히도 눈이 덮어주었지만, 그것을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모두를 속일 수 없으므로 혼자 있을 때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주자(朱子)가 말한 “소인은 스스로는 악행을 하면서도 남에게는 선하다는 평가를 바라는 사람이고, 군자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그대로 홀로 있을 때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라는 말을 새기라고 한 번 더 일러줬다. “나는 몸이 불편해 언제나 신독했다. 내 걸음걸이는 남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하며 살았다. 나 자신을 돕고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신독이 답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첫 시간 수업을 놓쳐 허둥대며 집을 나서는 나를 불러 세운 아버지가 마당에 지팡이로 써서 다시 일러준 말이다. “‘삼갈 신(愼)’자는 ‘마음 심(心)’ 자와 ‘참 진(眞)’ 자가 결합한 말이다. 진(眞)은 제사 지낼 때 쓰는 큰 ‘솥 정(鼎)’ 자와 ‘수저’를 뜻하는 ‘비수 비(匕)’ 자를 합친 글자다. 조심스럽게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말은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경심(自警心)의 방법으로 신독 만한 게 없다. 신독에서 떳떳함이 나오기 때문이다.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주어야 할 참으로 소중한 인성이다.
혼자와 신독(愼獨)
인생에서 정말로 괴로운 단어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혼자'와 '신독(愼獨)'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라는 단어는 듣기만 하여도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철저히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은 혼자의 고통을 알 겁니다. 아니 잠깐만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아도 괴롭기 짝이 없을 겁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괴롭습니다.
한편 고전(古典)을 읽노라면 수없이 등장하는 어휘가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가라는 의미의 신독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인(聖人)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흐트러지는 스스로를 쉽게 발견합니다. 당연히 두려운 마음에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건 신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따돌림을 당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 있어서 나쁜 행동을 안하는 게 착한 일이라고 하기 어려울 겁니다.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고 신독은 아니겠죠. 실제로 나쁜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엄밀함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아니죠.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평상시 사람들 속에서의 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겁니다. 그것은 깨달음이나 지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겁을 먹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오히려 위험은 혼자 있을 때 일어납니다. 겉으로는 인(仁)인 척, 자(慈)인 척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죄를 짓고 있고, 어떤 순간에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신독의 문제는 괴로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신독을 어기는 것을 짜릿함이나 해방감으로 포장했을 겁니다. 신독을 어기는 마음을 자유로 여기고, 신독을 벗어난 마음을 용기라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신독을 어기지 않으면 실제로 죄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홀로 있을 때 마음속으로라도 죄를 짓지 않는다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를 것 같은 두려움이 무섭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내 가식(假飾)을 나의 모습이라고 말하며 삽니다. 가식을 줄이는 게 신독으로 다가가는 길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분명히 신독은 어렵지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홀로 있을 때 나를 지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을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두 가지 문제의 답은 통합니다.
바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홀로 있을 때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요? 나의 아슬아슬함을 지켜주는 모습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모습이기도 하고, 친구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가 믿는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진리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신독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외로움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라는 말은 '하나'라는 말과 통합니다. 하나니까 혼자이겠죠. 그런데 하나가 자기의 존재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낱'이 되고 맙니다. 한낱은 하나하나가 낱낱이 흩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외로움의 원인이 되고 두려움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가 다른 사람과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함께'가 됩니다. '함께'라는 말도 원래는 '한'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와 신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 愼(삼갈 신, 땅 이름 진)은 ❶형성문자로 慎(신)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세밀하다는 뜻을 가진 眞(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세밀히 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愼자는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愼자는 心(마음 심)자와 眞(참 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眞자는 신에게 바칠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참됨을 뜻하는 眞자에 心자가 결합한 愼자는 조심스럽게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삼가다'나 '근신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愼(신, 진)은 ①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②근신(謹愼)하다 ③두려워하다 ④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⑤따르다 ⑥삼감(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함) ⑦성(姓)의 하나 ⑧진실로, 참으로 ⑨부디, 제발, 그리고 ⓐ땅의 이름(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삼갈 각(恪), 원할 원(愿), 삼갈 비(毖), 삼갈 근(謹), 삼갈 욱(頊)이다. 용례로는 매우 조심스러움을 신중(愼重),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신독(愼獨), 신중하게 사려함을 신려(愼慮), 신중히 생각함을 신사(愼思), 상사를 당하여 예절을 중시함을 신종(愼終), 삼가고 조심함을 신계(愼戒), 신중하게 가려 뽑음을 신간(愼簡), 말을 삼감을 신구(愼口), 신중하고 면밀함을 신밀(愼密), 여색을 삼감을 신색(愼色), 신중히 다룸을 신석(愼惜), 조심하여 고름 또는 선택을 신중히 함을 신선(愼選), 조심하여 지킴을 신수(愼守), 말을 삼감을 신언(愼言),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음을 신기(愼機), 삼가서 침묵을 지킴을 묵신(愼默),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란 뜻으로 설날을 일컫는 말을 신일(愼日), 언행을 삼가고 조심함으로 과오나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들어앉아 행동을 삼감을 근신(謹愼), 힘써 삼감을 근신(勤愼), 삼가지 아니함이나 신중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불신(不愼), 겸손하게 삼감을 겸신(謙愼), 경계하여 삼감을 계신(戒愼), 공경하고 삼감을 경신(敬愼), 혼자서 스스로 근신하는 일을 독신(獨愼), 온화하고 신중함을 온신(溫愼), 두려워하고 삼감을 공신(恐愼), 성품이 질박하고 신중함을 질신(質愼), 어렵게 여기고 조심함을 난신(難愼), 몹시 두려워하고 언행을 삼감을 외신(畏愼), 양친의 상사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공경을 다한다는 말을 신종추원(愼終追遠), 일이 마지막에도 처음과 같이 신중을 기한다는 말을 신종여시(愼終如始), 처음 뿐만 아니라 끝맺음도 좋아야 한다는 말을 신종의령(愼終宜令),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이르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등에 쓰인다.
▶️ 獨(홀로 독)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蜀(촉, 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蜀(촉, 독)과 개(犬)는 모이면 싸우므로 한 마리씩 떼어 놓은 데서 홀로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獨자는 '홀로'나 '혼자',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獨자는 犬(개 견)자와 蜀(애벌레 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蜀자는 나비의 애벌레를 그린 것으로 '애벌레'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애벌레와 개의 조합이 왜 '홀로'나 '혼자'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의미가 명확히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獨자에 쓰인 蜀자는 단순히 '촉, 독' 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獨(독)은 (1)다른 말 위에 붙어서 혼자, 홀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3)독일(獨逸) 등의 뜻으로 ①홀로, 혼자 ②어찌 ③다만, 오직 ④장차(將次) ⑤어느 ⑥그 ⑦홀몸, 홀어미 ⑧외로운 사람 ⑨외발 사람, 월형(刖刑: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 ⑩외롭다 ⑪전단(專斷)하다(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하다), 독재(獨裁)하다 ⑫개가 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홑 단(單), 외로울 고(孤)이다. 용례로는 남의 힘을 입지 않고 홀로 섬을 독립(獨立), 다른 것과 견줄 것이 없을 만큼 특별하게 다름을 독특(獨特),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혼자서 모두 가지거나 누리는 것을 독점(獨占), 남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의 의견대로 결단함을 독단(獨斷), 모방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 힘으로 처음으로 생각해 내거나 만들어 냄을 독창(獨創),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믿고 객관성을 생각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일을 독선(獨善), 저 혼자 또는 자기의 한 몸을 독자(獨自), 혼자서 먹음 또는 이익을 독차지 함을 독식(獨食), 제 마음대로 쥐고 흔듦을 독천(獨擅), 외짝 다리나 하나 뿐인 다리를 독각(獨脚), 혼자서 거처하는 방을 독방(獨房), 혼자서 거처하는 방을 독실(獨室), 혼자서 노래함을 독창(獨唱), 혼자서 삶 또는 홀로 지냄을 독거(獨居),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 흔히 독자를 이름 또는 배우자가 없는 사람을 독신(獨身), 스승이 없이 또는 학교에 다니지 아니하고 혼자서 배움을 독학(獨學), 혼자서 추는 춤을 독무(獨舞), 단 하나 또는 단 한 사람을 단독(單獨), 오직 홀로를 유독(唯獨), 주위에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태를 고독(孤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독(愼獨),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것을 독자적(獨自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따로 자립하려고 하는 성향이나 성질을 독립성(獨立性),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생각해 내거나 처음으로 만들어 내는 모양을 독창적(獨創的), 남에게 의존하지 아니하고 따로 제 힘으로 해 나가는 모양을 독립적(獨立的), 절대 권력을 가지고 독재 정치를 하는 사람을 독재자(獨裁者), 혼자서 찍은 사진을 독사진(獨寫眞), 남이 따를 수 없을 만큼 홀로 뛰는 모양을 독보적(獨步的), 남을 배척하고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모양을 독점적(獨占的), 독자적으로 창조하거나 창안할 수 있는 재주나 능력을 독창력(獨創力),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는 뜻으로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독불장군(獨不將軍),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없이 혼자 지냄을 이르는 말을 독수공방(獨守空房), 홀로 푸르다는 뜻으로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 늘 변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독야청청(獨也靑靑),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총명을 일컫는 말을 독견지명(獨見之明), 외손뼉이 올랴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맞서는 이가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독장불명(獨掌不鳴), 혼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듯이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독양불생(獨陽不生),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멋대로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독단전행(獨斷專行),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서 다만 홀로 깨끗하고 정신이 맑음을 이르는 말을 독청독성(獨淸獨醒), 스승이 없이 혼자 배운 사람은 식견이 좁아 몹시 고루함을 이르는 말을 독학고루(獨學孤陋), 멀리 떨어진 낯선 고장에서 혼자 쓸슬히 지낸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천애고독(天涯孤獨), 아들이 없는 집안의 외딸을 일컫는 말을 무남독녀(無男獨女),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소신대로 나감을 이르는 말을 특립독행(特立獨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