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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귀신, 영혼, 조상 그리고 나!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법사,天一)
아랫글 중에 호현님이 올려주신 성모천황 이야기가 내려져 오는 이야기고, 여기에 모두가 익히고 알아야 할 사안이라 생각되어 말미에 "장영훈의 낙동정맥을 찾아서" 글 중에 관련된 이야기 몇자를 더 첨언 한다.
우선 무당이나 제자라면, 지리산을 찾아 "무당의 최고"인 성모천황을 찾아 인사를 드리는데, 본인은 잘 모르는 지식으로 무턱대고 찾았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물론, 다른 일정이 있었기에 촉박한 시간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떠난 이유도 있슴이다. 지리산 법계사와 천황봉을 찾아 인사 후에 남해 보리암으로의 일정이 멀은 길이기에 후일을 기약하고 갔다가 다시 찾아 온 케이스다.
지금부터 안내를 해 드릴터이니, 잘,,참고하여 성모천황을 뵙고 소원성취 하기를 바란다.
지리산 중산리 매표소를 얼마 못가서 좌측엔 "빨치산 토벌 기념관"이 있고, 바로 위에 대형버스 주차장이 있는데,,거기서 우측 냇가를 건너 보면 건너는 다리가 보이면서 산쪽으로 쪼그마한 공원같은 곳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군에서 관리하는 "성모천황"상을 모셔놓은 곳 이다.
여기서는 초를 켤 수 있게 끔 자리를 마련 해 놓았으니, 준비를 해 가면은 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곳 지리산 주변에는 "성모천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절이나 기도터 굿당 등이 참 많다. 하니,, 잘 둘러보고 찾기를 바란다.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면 다시 대형버스 주차장 윗쪽길로 진행하면 바로 큰 안내 푯말이 나오고 그곳에서 찾아보면 "천황사"라는 절의 위치를 보게 된다. 그곳에 "성모천황"상이 모셔져 있다. 매표소 반대 길로,,한적한 숲길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언덕 길로 올라서면서 내리막을 치달아 올라가면 간판이 보인다. 차량이 그곳까지 올라가니,, 끌고 올라가면 된다.
전경과 대웅전 신축 현장 모습이다. 연못은 얼어붇은 모양이다.
임시 대웅전과 탱화다. 어느 탱화는 그림이 영~~그렇다. 어여,,,자리잡고 계시길 빌어 본다.
밖에서 본 외곽 모습과 성모천황의 여러 측면 모습이다. 세월의 풍파를 보는 듯 한 모습에 숙연함을 느껴 본다.
초를 켤 수가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파는 초를 구입하지 않으면 바로 꺼질 수 있다. 번거롭더라도 올라가기 전에 입구에서 초를 구입해서 올라가야 다시 내려 오지 않는다.
ㅎㅎㅎ. 인증샷 이다. 부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아랫글은 도움이 되고져 올린 글이다.
산은 인류사의 출발지였다. 올림푸스 산과 그리스 신화의 탄생, 히말라야 산맥과 불교의 법구경[히말라야의 지혜라고도 함], 태산과 중국황조의 봉선의식(封禪儀式) 등 하나같이 산과 관련되어 있었다. 산이 없던 이집트 사막에서는 산더미 같은 피라미드를 쌓고 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산악국가인 우리 나라에서의 산악숭배는 유별났다. 그러기에 입시철, 이사와 개업, 혼사와 득남, 심지어 올림픽 금메달에서 송사까지 툭하면 산에다 촛불 켜놓고 밤샘 기도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줄기와 뿌리가 되었던 것도 산악숭배 사상이다.
영남 유가(儒家)의 종조(宗祖)인 점필재 김종직도 의관을 정제하고서 지리산 산신에게 절을 했고, 불가(佛家)에도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이 있다.
선가(仙家)의 한 갈래였던 중국풍수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자 우리 특유의 산악풍수인 형국론(形局論)이 생겨나기도 했다. 산 모양이 올망졸망할 적에는 고즈넉한 물길의 흐름이 발음에 장단이 되어주었다.
전자가 억센 영남의 산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라면, 후자는 호남의 산수와 전라도의 질펀한 육자배기다. 영남 안에서도 낙동강 상류는 급류인 까닭에 경북 억양은 경남 보다 거칠지 않은가. 동편제, 서편제로 대별되는 호남의 판소리도 결국에는 산따라 물따라 한 가름이다. 평야지방[광주, 보성]의 간드러지는 흐름이 서편제다.
이렇듯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는 산이며 그 위에서 풍습의 꽃들을 활짝 피웠던 것이다. 양 산은 우리 것의 종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리산 종가에선 어떤 가풍이 전해지고 있을까. 할배산은 남기(男氣)가 넘치고 여기(女氣)가 흐를 때 할매산이 된다.
지명풀이로서도 그것은 드러난다. 태양의 빛인 백(白)자가 들어간 것은 할배산이다. 봉황(鳳凰)은 하늘(天)의 새로서 수컷은 봉(鳳)새라 한다. 태봉이나 봉길이면 남자이름이요 황숙이는 여자이름이듯, 천황(天凰), 천황(天皇), 천왕(天王)이란 유사한 발음은 모두가 할매산이다.
지리산에는 천왕봉이 있기에 할매산이며 삼신산 쌍계사[옛 지리산의 지명은 삼신산 중에서도 방장산이었다]라는 쌍계사 일주문 문패에서 보듯 이는 삼신할매 산임을 밝히고 있다.
백두산 지리산은 각각 단군할배와 삼신할매로서 이 땅의 조화를 보여준다. 우리 무속신앙에서 영험하다는 중국의 마고(麻姑)를 지리산에 입주시켰다. 원래 지리산엔 순진무구한 토박이 반야도사가 살고 있었다. 반야와 마고 사이에는 어찌된 판인지 딸만 여덟이나 생겼다. 게다가 여기(女氣)가 센 마고의 등살에 반야는 가출해버렸는데 아직도 무소식이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어린것들을 살리는 삼신할매의 탯줄이기도 하다. 지리산 여기의 치마폭에 오늘날 백무동(白武洞)이 있는데 옛날엔 백무동(百巫洞)이었다고 전한다. 지리산 여기로 두 지명을 검증하자면 둘 다 이 빠진 밥그릇 쯤 된다. 풍수소식상 올바른 표기는 백무(白巫)를 뜻한다.
예부터 정통 무당[女巫]은 할배산에,박수[男巫]는 할매산에 치성을 드려야 음양조화를 이루고 신이 내렸다. 오늘날에는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리 백(百)명의 무당[女巫]들이 백무(白巫)동 계곡을 뒤덮고 강신(降神) 굿판을 벌인다 하더라도 신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마고의 약만 올리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산악숭배에서 할매는 성모(聖母)다.
이런 연유에서 천왕봉에는 천여년 전부터 성모석상(聖母石像)이 서 있었다. 몰지각한 일부 종교집단이 자기들의 성모 명함과 같다고 하여 산 아래로 밀어버렸으니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격이다. 지리산 여기에는 왕조의 부흥을 기원했던 역사가 있다. 신라 왕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신 제단이 지리산에 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매년 봄 . 가을에 국고로 제사를 지냈고, 지리산 기상에 화랑정신을 함양시켰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기실 2천여년이 훨씬 넘은 선도성모는 꼬부랑[老]에 꼬부랑[姑]쯤 되는 노고(老姑)다. 노고의 제단(祭壇)이 있던 그곳이 오늘날 지리산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이것이 우리 국문학산의 걸작인 춘향전이다. |
첫댓글 성불하세요.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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