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왕검
김성문
학창 시절 나는 단군왕검을 신화로만 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신화적인 인물로만 생각했다. 그동안 단군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전해진 역사서가 없었다. 그러던 중 『환단고기』를 접하게 되어 단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알 수 있었다. 단군왕검의 정치력을 보자.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딸이다. 웅씨왕은 요(堯) 임금이다. 『홍사한은』에는 단군의 어머니를 교웅(轎熊), 아내를 태원(太源)이라 하여 이름까지 등장한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70.5.2. 박달나무가 우거진 송화강 아사달에서 태어났고, 신인(神人)의 덕이 있어 모든 사람이 따랐다. 웅씨왕(배달국 18대 거불단 환웅으로 추정)이 단군왕검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14세부터 38세까지 대읍국(大邑國)에서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했다. 대읍국을 웅씨국 또는 배달국으로 보기도 한다.
웅씨왕이 전쟁에서 세상을 떠나자,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에 현재 하얼빈 완달산인 불함산(不咸山) 지역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송화강 아사달로 돌아왔다. 그는 선대의 환인과 환웅의 법도를 이어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류의 목표로 세웠다. 기원전 2333.10.3.에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백성 팔백 명과 함께 신단수 아래에서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냈다. 이에 백성들이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였으며, 하느님의 화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으니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아홉 환족(九桓族)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했다.
단군왕검은 ‘송화강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했다. 뒤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 한다. 다른 사서에는 아사달을 황해도 구월산이나 대동강의 평양으로 비정했으나 잘못인 것 같다. 단군왕검은 지금의 만주 하얼빈인 비서갑(非西岬)에 사는 하백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하백은 천하를 감독하는 수신(水神)으로 지구의 천혜(天惠)를 지키는 벼슬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고추모)의 어머니도 하백의 딸 유화로 기록되어 있다. 하백은 시대를 이어서 한 사람이 아니라는 추측이 된다.
단군왕검은 백성들의 참된 삶을 위해 여덟 가지 조칙을 내렸다. 첫째는 일심을 가져야 하느님을 뵐 수 있다. 둘째,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라. 셋째, 부모를 공경해야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다. 넷째, 남녀는 잘 조화하여 원망, 질투, 음행하지 마라. 다섯째,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면 집안과 나라가 번창한다. 여섯째, 서로 양보하고 도적질하지 않아야 나라와 집안이 번영한다. 일곱째, 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며 비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마라. 마지막으로 타고난 본성을 잘 간직하여 사특한 생각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지 마라. 또한 어명으로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했다. 신지(臣智)에게는 글자를 만들게 했다.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했다.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고, 우(尤)에게 병마를 담당하게 했다.
단군왕검 재위 50년, 기원전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히 살 수 없게 되자,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했다. 재위 51년에는 운사 배달신(倍達臣)에게 삼랑성(三郎城)을 건설하게 했다. 삼랑성은 현재 강화도 정족산성이다. 삼랑(三郎)이란 글자에서 볼 때 신라 화랑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마니산에 있는 천제단도 쌓았다. 지금의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이다. 참성단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천제단으로 우주의 주재자인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내온 한민족 고유의 천제성소(天祭聖所)다. 위쪽 제단은 네모나게, 아래쪽은 둥글게 쌓았다. 단군왕검 재위 67년, 기원전 2267년에 태자 부루(扶婁)를 절강성 회계산에 보내 순임금이 보낸 사공(司空)과 만나게 했다. 태자는 사공에게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했다. 또한 나라의 경계를 살펴 현재의 하북성과 산둥성 북부지역을 고조선에 귀속되게 했다. 두 주(州)를 순임금에게 감독하게 했다고 전한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의 전 영역을 전삼한(前三韓)인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으로 나누었다. 전삼한에는 각각 오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진한은 지금의 만주 지역전체가 강역이고 단군왕검 자신이 다스렸다. 마한은 한반도 전체와 대마도가 강역이다. 단군왕검은 마한의 초대 왕으로 웅백다(熊伯多)를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다. 번한은 지금의 황하, 장강, 산둥반도를 포함한 중국의 동부지역이 강역이다. 단군왕검은 번한의 초대 왕으로 치두남(蚩頭南)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다. 이 제도를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하고 전삼한(前三韓)이라 한다. 후삼한(後三韓)은 강역이 축소된 전라도의 마한, 경남의 변한, 경북의 진한을 말한다.
단군왕검 재위 93년, 기원전 2240년에 버드나무로 지은 궁궐에 머물었다. 또한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권장했고 백성을 사랑하고 후덕한 정치로 천하가 태평스러웠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15일 봉정(蓬亭)에서 세상을 떠나니 130세로 교외 십 리 되는 곳에 장사 지냈다. 모든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듯 슬퍼했고. 단기(檀旂)를 받들어 아침 저녁으로 경배했다.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민속 고유의 댕기 풍속은 단군왕검의 자손임을 표시하는 생생한 징표다.
고조선은 3왕조 시대가 있었다. 제1왕조는 송화강 아사달이 도읍이고, 단군왕검부터 제21세 소태 단군까지 1,048년간이다. 진한의 왕은 단군이라 하고, 마한과 번한은 부단군 체제다. 제2왕조는 백아산 아사달이 도읍이고, 제22세 색불루 단군부터 제43세 물리 단군까지 860년간이다. 이때 삼한 체제를 삼조선 체제로 바꾸고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이라 했다. 제3왕조는 장당경 아사달이 도읍이고, 제44세 구물 단군부터 제47세 고열가 단군까지 188년간이다. 이때 국호를 진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꾸었고 고조선은 47명의 단군으로 2,096년간 존속했다.
단군왕검은 나라를 열고 매년 10월 상달,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단군왕검의 덕화(德化)가 온 누리를 덮어 멀리 제주도까지 미쳤고, 성덕의 가르침은 점차로 위세를 얻어 멀리 퍼져나갔다니, 단군왕검의 정치력은 오늘날 우리의 본보기가 될 듯하다. 단군왕검은 훌륭한 정치가였다.
단군왕검 표준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