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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방 카이사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뛰어났다. 370년 무렵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도 규칙』은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오늘날까지도 참고하며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교리와 설교에 탁월하여 '신학자'라고 불렸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세상을 떠낫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주교의 삶과 가르침으로
교회를 빛내셨으니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배우고
사랑으로 충실히 실천하게 하소서.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확연한 차이
비안코(BIANCO)는 1987년에 설립된 덴마크의 신발 브랜드입니다. 2019년 비안코는 ‘승강기’(The lift)라는 타이들의 짧은 공고를 선보였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두 남녀가 주인공입니다. 승강기에서 종종 마주치던 이들은 금세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머릿속으로는 결혼까지 상상합니다. 하지만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날까지 두 사람은 서로 망설이다 끝내 입을 열지 못합니다. 그리고 광고의 마지막 메시지가 뜹니다.
“Step out of your head(머릿속에서 걸어 나와라).”
사람 대부분은 ‘자존심’이라는 배에 타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면 나는 버틸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과감히 전진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망망대해에 가라앉고 있는 배 위에 서서 먼 곳만 바라보는 한 남자와 같습니다.
“엄마는 항상 이런 말을 했어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네가 어떤 것을 얻게 될지 결코 알 수 없거든.”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주인공의 말처럼 인생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맛이 없는 초콜릿이 걸릴 수 있고 맛있는 초콜릿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실패를 주저하다가는 맛있는 초콜릿을 결코 입에 넣어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하려면 자존심에 타지 말고 거인의 어깨 위에 타야 합니다.
야구선수 추신수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였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야구에 입문했습니다. 이대호와 부산 수영 초등학교 동기였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로 시작한 그는 매년 3할이 넘는 타격과 도루도 20~30개씩 하고 홈런도 두 자릿수를 넘기는 장타도 많이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를 메이저리그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포지션에 메이저리그 안타왕 스즈키 이치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구선수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한 달에 1,000달러(약 120만 원) 정도를 겨우 벌었던 그는 식비를 아껴 아들 기저귀를 사야 했습니다. 빵에 잼을 발라 먹는 게 식사의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마이너리그에서 7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근력 운동과 배팅 훈련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코치들을 찾아다니며 더 배울 것이 없나를 찾았습니다. 결국 팀을 옮기면서 메이저리그로 승격 했고 점차 주전 선수로 경기에 나서게 됩니다. 2013년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총 1억 3,000만 달러(약 1,600억 원)에 계약했고, 2018년에는 현역 메이저리거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52경기)을 세우며 한국인 타자로는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 올 스타 전에 출전하기도 합니다. 2020년 추신수의 연봉은 팀 내 최고액인 2,100만 달러(약 259억 원)이었습니다.
그가 메이저리그로 호출 받고 첫 게임에 들어섰을 때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아내가 그 경기를 TV로 봤다. 2회부턴가 3회부턴가 더그아웃 카메라에 내 모습이 잡혔다더라. 내가 장갑 끼고, 방망이 쥐고, 헬멧도 쓰고 감독 옆에 앉아 있었다. 감독이 누군가 대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준비된 상태로 눈에 띄도록.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5회 이전에는 대타 안 쓰지 않나. 그런데도 계속 그러고 있었다. 아내가 그거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추신수는 그날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는 기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은 운이 좋은 케이스가 맞다. 하지만 그 운을 잡으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갑 끼고, 헬멧 쓰고 감독 옆에 앉아 있었다. 기회는 1년 뒤, 어쩌면 10년 뒤에 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일 올 수도 있다. 기회가 눈에 띄게 올 수도 있고, 몰래 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나는 그 준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뒤에 누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엄청난 거인이십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누군가를 모시고 오려면 자신의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그 누군가를 믿으면 실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가 무릎밖에 안 차는 거인 손 위에서 육지를 찾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가라앉을 일이 없습니다.
중국의 역사에서 항우와 유방은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 시대의 라이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격돌은 약 8년 동안 지속되었고 처음에는 항우가 유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항우는 기원전 232년 초나라 명문가에서 태어나 키가 8척이 넘었고 힘은 커다란 쇠솥을 들어 올릴 정도였습니다. 가히 힘은 산을 뽑을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자기를 믿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몇 번이고 유방을 쳐야 한다고 간청했지만, 그는 주저하며 그 기회를 잃었습니다.
반면 유방은 결단에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본래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방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건달들과 어울리던 시정잡배 주정꾼이었습니다. 장년에 이르러서야 하급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유능한 부하들이 생겨났고 결국 빠른 결단력을 내려야 할 때 주저하지 않아 세력을 키워 한나라의 첫 재상이 됩니다. 유방은 항우와의 전투에서 연패 했지만 결국 해하 전투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사면초가에 이른 항우는 자결합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 살피고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나 성공하는 이들은 수많은 실패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존심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거인의 어깨에 타고 실패에도 두려움 없이 나아갑니다. 세례자 요한의 기개가 그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기대하지 맙시다. 거인에게 파견 받읍시다. 우리의 거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보다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가는 글을 쓸 때 쾅쾅 울리는 시끄러운 옛날 노래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 글이 잘 써져서 빗소리 ASMR을 듣는다는 분, 클래식을 듣는다는 분, 벌거벗은 채로 글을 쓴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거의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지만(주로 제 방입니다),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백색 소음이 있다는 카페를 이용하곤 합니다.
글 쓰는 것은 똑같은데 그 상황은 모두가 달랐습니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한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면 다르게 한 것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을 틀렸다고 하면서 자기 방식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까지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면서 획일화시키려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 ‘같은 일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안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결과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는 것과 남이 찾아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주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성장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고 할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고도 그러했습니다. 자기들과 달리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나가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닌, 엘리야의 모습으로 극기와 겸손의 삶을 산 것입니다.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바리사이들은 따지듯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라고 묻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답인 ‘나는 그리스도다.’라고 말했으면 편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낮춥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겸손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교만과 이기심으로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은 너무 짧아서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 있을 뿐.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순식간에 지나간다(마크 트웨인).
사진설명: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첫댓글 새해부터 365일 성경읽기 챌린지를 시작합니다!
어제 1월 1일 창세기 1-4장에 이어 오늘은 창세기 5-9장 읽었습니다.
제 마음에 머물렀던 오늘의 말씀은...
5장 24절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간결하고 너무나 깔끔해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