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1:1-11절.260.370.358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고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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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1:1절에서 마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거두절미하고 단숨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다이나믹하게 그리고 직격탄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의 시작(時作)이란 말로 복음서를 한 마디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흐름은 물론이고 마가복음에 대한 간단한 해설이 필요한 줄 압니다. 마가복음은 간단명료하고 활발하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마가복음을 일컬어 청년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긴 해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쓰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이러한 기술방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와도 맞는 긴박감을 가져다줍니다.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기 위해서 오셨다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박하게 장면이 바뀌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며 주님을 향하여 한없는 사랑으로 봉사할 마음이 생기도록 합니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을 다른 복음서들 곧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요한복음보다 소홀히 다루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가복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복음서보다 많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연대가 제일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자료들은 다른 복음서에 다 있습니다.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은 불과 50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기사의 사건 자체를 아주 실감있고 산뜻하며 생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마가복음을 가리켜서 로마인을 위해서 기록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로마 사람뿐 아니라 각처(各處)에 있는 모든 기독교(基督敎)의 지도자(指導者)를 위해서 썼습니다.
그 이유는 마가는 로마 사람들이 쓰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고 아람말의 원어를 번역해서 유대인들의 풍속을 설명했는가 하면 구약도 인용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마가는 유대인이면서 로마식 이름을 갖고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베 홑이불을 벗어 버리고 도망한 소년의 이야기가 마가복음에서만 발견되므로 아마 그 소년이 마가 자신이라고 쉽게 생각하게 됩니다.
마가는 가정적으로는 유복했고 교육과 교양을 잘 받았을 뿐더러 당시로서는 상당한 재력가인 어머니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 것으로 봐서 베드로의 감화로 예수를 따르게 되고 헌신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마가를 데리고 다녔을 정도이니 그가 가진 정보의 내용과 지식은 아주 섬세했을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마가의 실수가 무엇이 있었길래 바울이 마가를 배척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국 나중에는 바울의 신임을 회복하고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옥살이를 감당했고, 또 베드로와 함께 긴 선교 여행을 같이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마가의 다채로운 경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기자가 되게 했습니다. 바울의 임종 전에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어 마가는 바울이 일하는데 유익하니 그를 데려오라고 특별 부탁을 할 정도였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베드로를 따라서 로마를 비롯해서 많은 여행 경험이 있었습니다. 들은 것도 많고 본 것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적 체험도 많았습니다. 그가 한 때 왜 바울의 눈에 들지 않을 정도의 실수를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실패가 변해서 승리가 되게 하고 결국 우리 주님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서 마가를 어떻게 하나님의 도구로 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복음의 증거자가 되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감사하며 감격합니다.
마가는 바울처럼 위대한 전도자도 아니고 베드로 같은 특별한 리더쉽을 가진 자도 아니고 단지 그들의 수행자 또는 조력자로서 있었을 뿐 아니라, 한 때는, 성격적 결함이었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몰라도 바울이 여행을 함께 갈 수 없다고 제외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경험과 그 모든 과정과 그 모든 실패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늘 설교를 하면서 성경에 나타난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모범을 삼는데 그치면 안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마가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도록 부름 받은 도구란 사실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참 부족합니다. 우리는 늘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와 연약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인자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인간의 속마음을 반영하듯 요즈음에는 공주병, 왕자 병이란 말이 있고 심지어 미지 왕이니 미지공이니 하는 신조어까지 유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2인자도 3인자도 4인자도 좋습니다.
아니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연약한 그릇, 부족한 인격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증거를 위해서 쓰임 받는다면 그보다 더 크고 그보다 더 놀라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마가 못지않게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유 천지에 모든 문명의 이기를 총동원해서 예수의 복음 곧 예수의 탄생, 예수의 기적, 예수의 죽음, 예수의 부활, 예수의 재림을 힘 있게 증거 하게 된 것만 해도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이렇게 좋은 시대, 이렇게 좋은 시절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일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삼아 달라는 성 프란시스의 기도처럼! 우리는 주여 나를 복음의 도구로! 은혜의 도구로!
봉사의 도구로! 사랑의 도구로! 전도의 도구로 일평생 동안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사실 마가복음에서 마가의 필치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바울에게서 듣고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에게 들은 것을 영화나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또는 목격자의 증언처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어떤 장면을 쓸 때 이름, 장소, 시간, 수효, 색채 등을 정확히 말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양 몸짓, 태도 분위기까지 너무도 확실히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푸른 풀위에”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베개를 베시고” “어린아이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 만큼 독특한 필치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탄생기사도 없고 요한복음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하나님 아들이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삶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사야가 일찍이 예언했던 여호와의 종을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장면의 변화가 신속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특히 마가는 예수님의 비유보다 예수님의 이적을, 특별히 섬세하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적이 있을 때마다 군중들의 반응을 “놀라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놀라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놀라움, 말씀의 놀라움 앞에 우리도 함께 놀라시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에 놀라고,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고,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에 놀라기를 소원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 놀라움에서 시작합니다. “다우마죠”란 헬라말의 놀라움! 그것은 신앙을 일으키는 동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한 번 놀라 자빠지는 역사, 하나님의 은혜에 한 번 놀라서 자빠지는 역사가 나타나야 일평생 동안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것 때문에 세상에 왔고, 그것 때문에 이적을 베푸시고, 그것 때문에 고난 받으시고, 그것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전기나 회고록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를 선포하는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21세기를 떻게 시작하시겠습니까? 무슨 각오로 시작하시렵니까?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복음을 위해서 요한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기 위해서 왔습니다. 옛날 왕의 행차전에 길을 닦는 역할을 요한은 자인했습니다. 성경은 요한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드러내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사역의 내용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외친 설교였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도 돌이켜 회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 모시는 방법, 왕이신 주님 모시고 사는 방법은 한 가지 즉, 날마다 회개하면서 주님께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결국 이 본문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라! 회개로 시작하라! 말씀으로 시작 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술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한 해를 화투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한 해를 헛된 망상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합시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겠고 회개의 설교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나 요한의 설교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둘은 모두가 회개의 설교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입니다. 한 주를 말씀으로 시작합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힘 있게 일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여러분의 가정에 직장에 사업장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