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지·섬 곡선 그리며 바다 포진
- 총길이 16㎞, 6시간 정도 소요
- 삼천포공원~정상~해안길 회귀
- 안쪽은 경사 급하고 바깥은 완만
- 정상엔 복원된 고려 원형봉수대
- 해질 무렵 걷는 실안노을길 장관
만물에는 짝이 있다. 양지와 음지, 남자와 여자 등등. 얽히고설킨 관계망의 기본 구조다.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을 뜻하는 지음(知音)도 그 하나다. 지음은 사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산과 바다 같은 사물에도 있다. 절경에는 그것을 잘 볼 수 있는 전망 명소가 있는 법. 통영 미륵산, 거제 망산 등 남도의 명산들과 다도해로 이름난 남해의 관계가 그렇다. 이 산들은 남해의 절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남해의 지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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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산 정상 아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천포항. 창선·삼천포대교로 이어진 육지와 섬의 굴곡이 비단을 펼친 듯 아름답다. |
명산이 수두룩한 남도에서 그런 곳이 어디 이들 산뿐이겠는가. 지난달 29일 찾은 경남 사천 각산(角山·416m) 역시 남해 전망의 명소다. 각산은 특히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색다른 전망을 선사한다. 총길이 3.4㎞의 창선·삼천포대교로 이어진 육지와 섬의 굴곡진 포진이 그것이다. 이 연륙의 포진은 삼천포항을 오른팔로 부드럽게 끌어안듯이 감싼다. 삼천포항의 왼쪽에도 남일대해수욕장과 사량도가 곡선을 그리며 바다와 몸을 맞대고 있다.
그 사이 삼천포항의 앞바다에는 수우도 두미도 신수도 코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각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들은 아득하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듯한 아련함을 동반하는 아득함. 그 아득함은 삼천포 앞바다의 빼어난 풍광을 완성하는 중요 요인이다. 아득해서 아름다운 풍경이다. 각산에 오른 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짙은 안개를 몰고 와 수평선과 가까운 섬들을 삼켜버려 아득함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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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포 앞바다에 설치된 죽방렴. 여기서 잡힌 멸치는 맛이 뛰어나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
이런 아득함에 길들여진 탓일까. 삼천포 출신의 박재삼(朴在森·1933~1997) 시인은 아득함을 운명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시 '아득하면 되리라'에서다.
'해와 달, 별까지의/거리 말인가/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사랑하는 사람과/나의 거리도/자로 재지 못할 바엔/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이것들이 다시/냉수사발 안에 떠서/어른어른 비쳐 오는/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이 시를 새긴 시비가 산행 출발지인 삼천포대교공원에 세워져 있다. 사랑의 밀도를 확인하려고 조바심치지 않는다. 해·달·별처럼 연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달관한 듯 표표하다.
시를 음미하며 산에 올랐다. 삼천포항을 서남 방향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각산은 안쪽이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바깥쪽은 완만한 편이다. 산의 서쪽 8부 능선에 돌로 쌓은 각산산성이 있다. 산성의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백제의 전성기 때 진주가 백제 영토였는데, 605년(무왕 6) 진주와 가까운 이곳에 축성했다고 한다.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1991, 1993, 1995년 세 차례 복원했다.
산행은 삼천포대교공원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모충사 입구로 내려와 해안길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16㎞로 6시간가량 걸린다.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100m쯤 가다 대방사 쪽으로 들어선다. 10분쯤 후 대방사 옆 삼거리에서 각산산성 쪽으로 오른다. 10분쯤 걷다 갈림길에서 같은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400m가량 가면 전망 정자에 이르고, 100m쯤 더 걸으면 산성이 나타난다. 산성을 지나 400m쯤 가파른 자드락길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왜구의 침입을 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설치한 원형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남해 금산 구정봉에서 올린 봉화를 창선 대방산을 통해 이어받아 사천 용현면과 곤양면으로 전한 봉수대라고 한다.
정상에서 200m가량 내려가면 삼거리다. 400m쯤 직진하면 송신탑이 나오고, 여기서 왼쪽 포장임도로 방향을 틀어 170m가량 가면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150m쯤 걷다 헬기장을 관통해 숲길로 접어든다. 300m가량 내려오다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한 차례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뒤 임도를 횡단해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세 차례 봉우리를 오르내린 뒤 임도를 만나 30m쯤 가다 숲길 산행을 지속한다. 두 차례 봉우리를 더 오르내리면 실안동과 송포동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이른다. 송포동 쪽으로 50m쯤 가면 나오는 임도에서 왼쪽으로 하산한다. 30분가량 걸으면 모충사 입구에 도달한다. 여기서부터 삼천포대교공원까지 1시간가량 해안에 조성된 '실안노을길'을 걷는다. 길은 명품이다. 해 질 무렵이면 금상첨화다. 이곳 석양은 우리나라 9대 일몰로 꼽힌다. 앞바다에는 죽방렴을 비롯한 볼거리도 많아 걷는 재미를 더한다.
◆주변 가볼만한 곳
- 별주부 전설 깃든 신비한 비토섬
- 한용운이 수도했던 다솔사, 코끼리바위 등 곳곳 사천팔경
서포면에 사천팔경의 하나인 비토섬(사진)이 있다. 월등도 토끼섬 거북섬 목섬 등이 모여 이뤄진 비토섬에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다. 갯벌은 생태 체험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비토섬 동쪽 해안에서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비롯한 화석과 건열, 우점문 등 각종 지질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향촌동 남일대해수욕장에 있는 코끼리바위도 사천팔경에 속한다. 코끼리가 코로 바닷물을 들이켜는 형상이다. 파랑의 침식작용에 의해 암석의 단단한 부분은 남고 약한 부분은 깎여나감으로써 형성된 해식아치(sea arch)다.
곤명면에 자리한 다솔사 역시 사천팔경의 하나다. 511년(신라 지증왕 12)에 지은 이 절 대웅전의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돼 이목을 끌었다. 일제강점기에 한용운이 수도했고, 김동리가 소설 '등신불'을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교통편
- 삼천포터미널서 20번 버스, 기념공원 하차 후 도보이동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삼천포행 시외버스를 탄다. 버스는 오전 6시부터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삼천포터미널 정류장에서 일반 20번 버스를 갈아탄다.
기념공원 정류장에서 내려 100m쯤 걸으면 산행 출발지인 삼천포대교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