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태양은 아직도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어 놓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제법 가을 냄새를
차곡차곡 실어다 놓습니다. 밤이면 낮은 합창의 풀벌레 소리도 그렇고, 한가위도 바짝 코앞이고...
시골의 들판도 노랗게 노랗게 정겨운 황금물결 출렁일 채비를 시작할 것입니다.
일터에서의 사소한 의견 대립으로 우울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루종일 웃음 사라진 제 표정에 마음이 쓰였던지 동료가 조심스레 문자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 넘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웃는 얼굴 어디 갔어요 주름살만 늘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분심으로 끙끙대느라 제 얼굴 표정이 어땠는지, 그로 인해 주변 분위기가 어떠할지 전혀 마음쓰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정이 좀 복잡했습니다.
‘그러게... 포카 페이스가 잘 안 되네... 분위기 흐려서 미안!’
대 놓고 말하기 뭣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휴대전화가 그날따라 차~암 고마웠습니다.
바로 날아온 회신 메시지.
‘뭐 그런 격식은...아자! 아자! 휴일 잘 지내고요 넘 보고 싶어 하지 말고요.ㅎㅎ’
‘그대도 잘 쉬고... 고마워...'
지금 생각하니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임에도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낸 못난 마음이 정말 밉습니다.
'너 왜 그랬어?' 하고 제 자신에게 탓도 해 보았습니다.
지혜롭게 매끄럽게 감정처리를 못하는 이 아둔함을 아, 진정 어찌하면 좋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저는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1965. 11. 4 김수영 /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잠시 마음 쉼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았습니다.
여름 더위에 모아둔 기가 바닥상태인가 봅니다.
더러워진 빨래를 깨끗이 빨아 훌훌 털어서 맑은 햇볕에 바짝 말리듯,
젖고 우울해진 마음도 깨끗이 빨아서 환한 가을 햇볕에 말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바닥난 '기' 충전하러 순례길 나섰습니다.
아자! 아자! 다시 시작입니다.
이 가을... 님들 모두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자 성당
대구시 동구 신천3동에 위치한 복자 성당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가) 그리고 이양등(베드로)등 3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각각 김해, 공주, 서울 태생인 세 순교자는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집과 전답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경상도의 교우촌으로 피난해 온 이들이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애환은 오늘날 후손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임을 기억한다면 순례자들은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울산 장대벌에서 한날 한시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이들의 시신은 처형 직후 형장 근처의 강둑 아래 구덩이 속에 묻혀 있다가 경주 산내면 진목정 앞산에 합장됐다. 그 후 1932년 5월 29일 감천리 묘지로 옮겨졌다가 1974년 10월 19일 비로소 대구 복자 성당 구내로 모셔져 오늘에 이른다.
감실 및 성인 유해 안치소
왼쪽부터 성 범주교 엥베르(엉덩이 뼈), 성 나신부 모방(두개골), 성 정신부 샤스탕(치아)
주님,
보고서야 믿으려는 얄팍한 제 마음을 경계하소서.
첫댓글 에공~ 부럽기만 하네요. 난 언제 순례길에 나설까? 환자들에게서 벗어나는 날은 언제쯤일까요? 옆지기는 20년은 더 일해라 하는데...ㅡㅡ;; 기적이 신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꽃이 참 좋네요.^^
늙어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겠지요? 근데 눈이 어두워지면 '칼잽이'는 쪼매 힘들겠당~~ ㅎㅎ 당근요, 기적이 신앙 보증수표는 아니지요... 좋은 주말요~~
고시랑님순례길에서 힘얻으셨지요순교성인들의 믿음을 보면 늘 작아지는 제자신을 봅니다.용기도 얻구요. 근데요,고시랑님 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한참 더살아온 저도 늘 작은일에 분하고 살아요. 막상 진짜분해야하는 일에는 몸사리고요. 여름이 고시랑님을 마니 지치게 했나보내요. 순례길에서 힘얻으셨으리라 믿고 향좋고 맛있는 커피한잔하시면서 기분 up시키세요.분위기 좋은 곳에서면 더 좋구요.홧팅 하
쌩유~~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하는 노래가사가 생각나서 혼자 ㅋㅋ 대고 있어요. 일교차 심한 요즈음, 감기 조심 하세용~~~
순례길을 떠나면 마음이 정화 되어질 것 같아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하게 되는 작은 인간임을 느끼게됩니다. 저도 가을에 순례길을 떠나야겠습니다. 행복한 가을 되세요
순례 다녀오시면 하늘바람 느낌... 나눔해 주실거죠 랄라 기대만땅
나도 메시지...휴일 잘 보내시고 충전하세요, 나 좀 보고싶어하고요~
답장 메시지... 늘 그립다, 그립다 합니다요~~ ㅎㅎ
고시랑님 그 맘에 햇살......한소쿠리 부어유^^............윽........너무 밝으셔서 고시랑님이 안보이신다~~~~~
님은 사람을 참 즐겁게 해 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네요. ^^ 그래서 가진 게 없어도 자꾸 뭔가를 주고 싶다는... 고마워용~~
아! 멋지다. 언제나 정감나는 글, 나도 아침 전철에서 비슷한 일 있었는데..., 읽으면서 웃었어요. 미안해요! 복된 하루! 순례 잘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아침 출근시간 전철... 넘 복잡하죠? 바깥 경치를 볼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서로 공감할 수 있어서 넘 행복하답니다. 건강 단단히 챙기시구요, 늘 고맙습니다.
덕분에 순례의 여정에 함께 합니다.가을이 성큼 다가 오고 있나요? 은총 기득한 주일 맞으시고요~ 한주간도 새롭게 아자, 다시 시작합시다!
아침 저녁은 가을... 한낮은 여름... 그래도 이렇게 볕이 따가워야 곡식이 과일이 튼실히 여물겠지요? 추석이 코앞인데 고국이 많이 그립지요?
이곳에도 제법 가을이 온것 같아요.주일 미사때에 저는 처음으로 중국 광주의 본당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시고 좋은 강론 말씀도 주셔서 꼭 고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요.그동안 수고해 주시고 저희 본당을 위해 예수님의 빛을 나눠주셨던 신부님께서는 고국의 성당으로 귀국하셨고요,오늘 김문수 디오니시오 본당 신부님께서 저희 심천 한인성당에 오십니다.새로 오시는 신부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시랑님,저희도 추석때에 한인성당에서 합동위령미사를 참례하고 좋은 특강시간도 갖을 계획입니다.맛있는 음식 나눔도 하고요.모든 분들께도 뜻 있는 추석되시길 기도합니다...
고마워유...덕분에 지도 바닥난 "기" 충전하고 갑니다....
지도 고마워유... 추석 준비 잘 하시구요...
고시랑님.. 짝은 분심으루 큰 휴식 취하셨네요... 맞아요...우리는 분심 찍구, 희망으루 턴~ 하는 스텝 아버지께서 갈쳐 주셨는데 깜빡 잊구 어정쩡하게 서 있었네요.. 감사해요..고시랑님~~ ^^*
희망으로 턴~~ 와... 표현 짱! 입니다요. ^^ 그 스텝, 빨랑 익혀야 나비처럼 춤춰야겠어요. 분심 찍고, 희망 턴...샤랄랄라~~
인간사 사람들 맴이 고기서 고기지요.천년도 하루 같이 사시는 하느님 눈으로 보실적에 작은 일에 목심을 거는 우리네 인생들이 얼마나 안스러우실까요. 우리는 그래도 돌아보며 뉘우칠 줄 안다면 주님은 그것에 희망을 거시겠죠? 님들의 댓글 읽으며 안부 전합니다. 추석 명절을 보낸 후는 한가위 달 만큼 큰 마음을 품어야 겠지요? 우리 모두 그것에 희망을 두어요. 명절 잘들 자내세요.
록은님도 사랑스런 손녀와 함께 행복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