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14일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쓴 말레이시아 남자가 일본항공 여객기에서 내렸다. 사내의 이름은 웡켕량. 빛바랜 청바지와 하늘색 점퍼에 하얀 이구아나 머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공항엔 특수수사대 반장 조지 모리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수사대는 미국 어류 및 야생동식물관리국 소속으로 수사관 다섯 명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앤슨(야생동물 암거래상과 단속반은 웡켕량을 앤슨이라고 부름)은 멕시코 경찰에 체포되어 수갑을 찬 채 끌려갔고 멕시코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 ‘레클루소리오 노르테’에 수감되었다.
사내는 바로 세계적인 수배대상인 멸종위기 동물 암거래상. 이런 거물을 체포했으니 수사반으로서는 혁혁한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호주, 캐나다, 멕시코, 뉴질랜드, 미국의 관계당국이 5년에 걸쳐 비밀리에 공조수사를 펼친 끝에 거둔 쾌거였다.
앤슨은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고 2년 가까이 버텼다. 그러다 결국 감형을 조건으로 유죄합의서에 서명했다. 최대 250년의 징역과 1250만 달러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를 시인한 것이다. 2001년 6월 7일 미국 지방법원에서 앤슨은 징역 71개월(이미 복역한 34개월 포함)에 벌금 6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출소 후 3년 동안은 미국에서 절대 동물을 팔 수 없다는 조건도 덧붙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체포 직후 앤슨의 아내는 동업자 체아빙시와 함께 ‘CBS 야생동물’이라는 회사를 차려 앤슨이 복역하고 있는 동안 미국에 야생동물을 수출했다. 원래 앤슨이 운영하던 ‘숭가이루사 야생동물’도 계속 야생동물을 미국에 수출했다. 이제 복역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앤슨은 새로운 야생동물 사업에 착수했다. 대담하게도 동물원을 차리려는 것이다.
기는 법 위에 나는 밀매
합법이든 불법이든 지구상에서 거래되지 않는 야생동식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생동식물은 장식이나 애완용으로 팔리는 것은 물론 고기, 모피, 가죽을 얻기 위해서, 또는 향수나 약품의 성분으로 가공하기 위해 거래된다. 중국, 미국, 유럽, 일본은 동남아시아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으로부터 해마다 수십억 달러 상당의 야생동식물을 사들이고 있으며 이처럼 엄청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공원과 야생에 서식하는 야생동식물들을 마구 포획하고 있다.
대개 가난한 사냥꾼이나 농민이 동물을 잡아 현지 거래상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거래가 시작된다. 현지 거래상은 이런 동물을 유통망에 내놓는데 앤슨 같은 거래상은 사냥꾼을 관광객으로 위장시켜 현장에서 잡아오기도 한다. 가격은 미술품 경매와 비슷한 방식으로 결정된다. 즉 희귀할수록 값이 올라간다.
야생동물 암시장 규모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엄청나게 수지맞는 장사라는 건 틀림없다. 암거래상은 불법 야생동물을 허가받은 화물 속에 숨겨 적발을 피하고 단속반과 세관직원에게 뇌물을 건네거나 화물서류를 위조해 단속을 피한다. 적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걸린다 해도 주차위반 정도의 벌금만 내면 그만이다.
첫댓글 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가슴이 아프네요.
가슴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