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가지 사랑의 언어
목 차
1. 결혼한 후에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2. 사랑의 그릇
3. 사랑에 빠진다?
4. 제1의 사랑의 언어-인정하는 말
5. 제2의 사랑의 언어-함께하는 시간
6. 제3의 사랑의 언어-선물
7.제4의 사랑의 언어-봉사
8. 제5의 사랑의 언어-육체적인 접촉
9.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방법
10. 사랑은 선택이다
11. 사랑은 변화를 가져온다
12. 미운 사람 사랑하기
13. 아이들과 사랑의 언어
14. 맺는 말
지은이 소개
게리 채프먼은 교회 교육은 물론, 활발하게 부부와 가정 생활에 관한 상담과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Toward a Growing Marriage, Hope for the Separated, Buiding Relationships 등이 있다.
1. 결혼한 후에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20년간 결혼 생활 상담을 한 후 나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사랑의 언어, 즉 사람들이 사랑을 구사하고 이해하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년기 발달에 있어서 모든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감정 패턴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들은 건전한 자존감을 발전시키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낮은 자존감을 발전시킨다. 어떤 아이들은 안전하다는 느낌 속에서 성장하나, 어떤 아이들은 불안한 감정 패턴 속에서 자란다. 어떤 아이들은 사랑받고, 풍족하고, 칭찬받으면서 성장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부족하고, 칭찬받지 못하면서 성장한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그들 부모나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표현했던 독특한 심리학적인 기질과 방법에 근거한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발달시킬 것이다. 그들은 제1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고 이해할 것이다. 나중에 제2의 언어도 배우긴 하겠지만 제1의 사랑의 언어가 그들에겐 언제나 가장 편리할 것이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발달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아이들이 엉성한 문법이나 미숙한 어휘를 배우는 것과 같이 어느 정도 왜곡될 것이다. 빈약한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훌륭하게 의사를 소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는 이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만 의사 소통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감성적 사랑에 미숙한 감각을 갖고 자란 아이들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며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긴 하나, 건전하고 사랑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남편과 아내는 거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제1의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나 배우자가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혼란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상대방에게는 외국어로 들리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사랑에 대해서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배우게 되면, 당신은 지속적인 사랑의 결혼 생활을 이끌어 가는 열쇠를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 결혼한 후에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제2의 사랑의 언어를 배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배우자가 우리의 모국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 우리 자신의 모국어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랑을 상대방이 느끼기를 원한다면 그 사랑을 상대방의 제1의 사랑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2.사랑의 그릇
심리학자들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욕구라고 단정해 왔다.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산도 오를 수 있고, 바다도 건널 수 있고, 사막도 횡단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같은 산도 오르지 못할 것이요, 바다도 건너지 못할 것이요, 사막도 횡단하지 못할 것이며, 역경은 인생을 곤경으로 빠뜨릴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사랑 없이 하는 인간의 모든 일들은 종국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랑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고전 13:13).
사랑이라는 단어가 과거나 현재에 인간 사회에 널리 쓰이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그 말이 가장 혼동되기 쉽게 사용되고 있다는 데도 또한 동의해야만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수천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나는 핫도그를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곧이어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수영, 스키, 사냥 등의 사랑하는 운동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음식, 자동차, 집 등의 물건들을 사랑하기도 하며 개, 고양이, 심지어 애완용 달팽이 등을 사랑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무, 잔디, 꽃, 날씨와 같은 자연을 사랑하기도 하며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아내, 남편, 친구와 같은 사람들도 사랑한다. 우리는 심지어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혼동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나는 이것을 했다.” 이 표현은 모든 종류의 행동에 사용된다. 한 사람이 간음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반면에 목사는 그것을 죄라 부른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남편을 둔 한 여인이 남편이 최근에 일으킨 문제를 수습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상호 의존 증세(codependency)라고 부른다. 부모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응석을 다 받아 준다. 그러나 가정 문제 전문가들은 그것을 무책임한 부모 노릇이라 한다. 그럼 사랑하는 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말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행동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 건강에 꼭 필요한 사랑의 종류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모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져야 하는 어떤 기본적인 감정의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의 욕구 가운데,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과 애정의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이들은 충분한 애정을 받음으로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반면 사랑이 결핍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뒤처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내면에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감정의 그릇’(emotional tank)이 있다. 아이가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아이는 정상적으로 발육하지만, 그 사랑의 그릇이 비었을 때 그 아이는 그릇 행하게 된다. 수많은 아이들의 탈선은 빈 ‘사랑의 그릇’(love tank)이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동기와 사춘기의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 로스 캠벨 박사의 이런 비유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도 그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 사무실에 찾아와 자녀들의 탈선을 상담했던 수많은 부부들을 생각했다. 그들 자녀들의 내면에 있는 빈 사랑의 그릇을 결코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결과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탈선은 그들이 받지 못한 사랑을 잘못 추구한 결과였다. 그들은 그릇된 장소에서 그리고 그릇된 방식으로 사랑을 찾고 있었다.
인간의 심연에는 누군가에 의해 친밀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결혼생활은 이러한
친밀함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감정적인 욕구가 단순히 아동기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장년기나 결혼 생활 속에서도 계속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그러한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기는 하나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하여,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제한적이고 일정 기간만 지속된다. “사랑에 빠지는” 최고의 경험을 한 후에도, 사랑에 대한 감정적인 욕구는 인간의 본성에 근간을 이루기에 다시 생기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기 전에도 우리는 사랑을 필요로 했으며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것을 계속 필요로 할 것이다.
배우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결혼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최근에 한 남성이 내게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집이나 차나 바닷가의 별장이나 그밖에 좋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그가 진정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는가? “나는 무엇보다도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라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이 인간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 어떤 부인이 “남편은 하루 종일 나를 무시하면서도 잠자리는 같이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것을 증오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부인은 성 관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감정적인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어떤 것이 있다. 고립화는 인간의 정신을 황폐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가두어 두는 것은 가장 잔인한 형벌로 간주된다. 인간의 심연에는 누군가에 의해 친밀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결혼 생활은 이러한 친밀함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남편과 아내를 “한 몸”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깊고 친밀한 방식으로 서로의 삶에 몰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 성경은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격려한다. 플라톤으로부터 팩(Peck)에 이르기까지 저술가들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랑이 이렇듯 중요하다 해도 그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나는 많은 부부들이 남모르게 겪는 고통을 들어 왔다. 내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나를 찾아온 이들도 있고, 자신의 행동 양식이나 배우자의 비행이 결혼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그저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지속시키고 싶지 않다고 내게 알리러 왔다. “행복하게 영원히 살자던” 그들의 꿈은 현실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나는 “우리의 사랑은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서로 친밀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 왔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내면에 깊은 상처를 가진 부부가 “감정적인 사랑의 그릇”이 바닥까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탈선이나 약속의 취소나 거친 말들이나 비판적인 생각들이 빈 사랑의 그릇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그 빈 그릇을 채울 방도를 찾을 수 있다면 결혼 생활은 다시 새로워질 수 있을까? 사랑의 그릇이 꽉 찬다면 부부들이 서로의 차이점을 의논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감정 상태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 그 그릇이 결혼 생활을 원활하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나는 오랫동안 일해 왔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식견을 얻게 된 것이다. 나의 이러한 여정은 이십 년간의 결혼 상담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쳐 수많은 부부들의 마음과 가슴으로 이어졌다. 시애틀에서 마이애미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부들이 그들의 은밀한 결혼 생활로 나를 안내하였으며 우리는 정말 솔직하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에 있는 예들은 모두 이러한 실제 삶의 편린들인 것이다.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은 내담자들의 비밀 보장을 위해 단지 이름과 장소만 변경시켰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을 넣어 적당한 레벨로 유지시켜 주어야 하듯 사랑의 그릇에도 충분하게 사랑을 채워 사랑의 레벨을 계속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결혼 생활에 빈 “사랑의 그릇”을 그대로 두고 지내는 것은 엔진 오일을 넣지 않고 자동차를 달리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은 위기에 빠진 수많은 결혼 생활을 구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끌어 줄 수 있다. 지금 당신의 결혼 생활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분명 나아질 수 있다.
주의사항 : 당신이 다섯 가지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로 구사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상대방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적인 사랑의 그릇이 찼을 때에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그러나 다섯 가지의 사랑의 언어를 검토하기 전에, 우리는 중요하면서도 혼란스러운 현상인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의 행복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만 한다.
3 사랑에 빠진다?
대부분의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통해 결혼을 한다. 우리는 “사랑을 일깨우는” 장치를 자극시킬 만한 외적인 특징이나 성격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 그러면 그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우리는 그 사람과 교제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같이 먹지만 우리의 관심은 음식에 있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질문을 한다. “내 속에 있는 이렇게 따뜻하고 자극적인 감정이 ‘실재하는’ 것인가?” 어떤 때는 첫번째 만남에서 자극적인 감정들을 잃어버린다. 잠깐 그 기분에 빠지지만 곧 그것이 사라지고 더 이상 햄버거를 같이 먹고 싶지 않다. 반면에 어떤 자극들은 이전보다 햄버거를 같이 먹은 이후에 더 가해진다.
우리는 “함께하는” 경험을 좀 더 만들어서 머지않아 “나는 사랑에 빠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아주 가까워진 단계에 도달한다. 점차적으로 이것이 “진정한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 감정이 상호간에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상대방에게 말한다. 만일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면 그 감정들은 약간 사라지거나 배로 노력하여 결국 그 사랑을 얻기도 한다. 상호간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결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절정에 이를 때 행복하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서로 매료된다.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첫번째 그 사람을 생각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천국의 대기실에서 노는 것과 같다. 손을 잡을 때, 서로의 피가 통하는 것 같다. 학교나 일터로 갈 필요가 없다면 영원히 키스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서로 포옹하는 것은 결혼과 황홀의 꿈을 자극시킨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꾼다‧‧‧‧ 우리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밖에 다른 것을 신뢰하긴 쉽지 않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이가 완전하다는 환상을 갖는다. 그의 어머니는 단점을 볼 수 있지만 그는 그렇지 못하다. 그의 친구들도 그녀의 단점을 볼 수 있지만 그가 묻지 않으면 알려 주지 않게 되며, 그는 그녀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이 순간에 느끼는 놀라운 감정을 영원히 가질 것이다. 우리 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 수 없다.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능가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상대방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의 사랑은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다. 결혼한 어떤 부부들은 그 감정이 사라진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을거야” 라고 추측한다.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다. 심리학자인 도로시 테노브 박사가 사랑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결혼한 부부들을 연구해 보니 정말 로맨틱한 사랑에 사로잡힌 기간은 평균 이 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만일 그것이 비밀리에 행해지는 사랑이라면 조금 더 지속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구름 위를 떠다니는 상태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눈이 열리면서 상대방의 결점을 본다. 상대방의 결점이 정말 눈에 거슬리게 됨을 깨닫는다. 그녀의 행동 방식이 짜증이 난다. 그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며 분을 내고 심지어는 거친 말이나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사랑에 빠졌을 때 간과하기 쉬운 아주 작은 것들이 태산이 되어 다가온다. 우리는 어머니의 당부를 기억하면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해 본다.
결혼 생활의 실제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머리카락은 세면대 위에 널려 있고 화장실 거울은 거품이 튀어 지저분하고 두루마리 화장지는 다 써 버렸고 변기 뚜껑을 올렸는지 내렸는지와 같은 것들로 온통 논쟁을 한다. 신발은 스스로 신장에 들어가 있지 않으며 옷은 옷걸이를 피하는 듯 내팽개쳐져 있고 양말은 빨래통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은 듯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일단 이러한 현장을 하번 보면 기분이 상해서 거친 말을 한다. 함께 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금방 적으로 변하며 결혼 생활은 전쟁터가 된다.
“사랑에 빠졌던”감정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아, 슬프도다! 노래 가사에 내 이름을 넣어 가며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불렀던 것은 환상이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나 자신의 배우자를 저주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배반당했다면 화낼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실제로” 사랑했단 말인가? 분명 그렇다. 문제는 잘못된 정보에 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황홀한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한다. 만일 사람이 황홀한 감정을 그대로 지속하고 산다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 감정의 여파가 사업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학교 등 사회 구석구석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것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무엇엔가 ”사로잡힌“ 상태라고 부른다. 사랑에 빠진 학생은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 내일 1812년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시험이 있다고 하지만 1812년도에 있었던 전쟁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신이 사랑에 빠질 때 모든 것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채프먼 박사님, 저는 제 직업에 흥미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나는 되물었다.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직장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온통 그녀 생각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의 행복감은 서로가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허상을 준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다고 느낀다. 모든 문제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를 몹시 연애하며 위해 준다고 느낀다.
한 젊은이가 자기 약혼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는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도 똑같이 자신에게 그렇게 느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가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그녀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해서 나를 결코 마음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항상 황홀하다. 우리가 생각하며 느끼는 것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실제의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날 때부터 우리 모두는 자기 중심적이다. 이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사랑에 빠진” 행복감은 단지 우리에게 환상만 줄 뿐이다. 점차로 서로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환상은 사라지고 각자의 욕망이나 감정이나 생각이나 행동이 강하게 표출된다. 그들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체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그들의 감정은 사랑이라는 넓은 바다에 잠시 섞여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현실이라는 파도가 그들을 갈라놓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서 잠시 주춤하더니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거나, 아니면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행복감 없이도 서로를 사랑하는 아주 힘든 작업을 배우기 시작한다.
첫째,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의지에 따른 행동이나 의식이 있는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은, 그것이 노력 없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 개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데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자신의 성장이나 상대방의 발전에 별 관심이 없다. 반면 별로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인생의 행복의 극치에 도달했으므로 단지 거기에 머물고 싶어한다. 확실히 사랑하는 여인은 완전하기에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녀가 완전한 채로 머물러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교미하려는 유전적이고 본능적인 요소이다. 그러한 결론에 우리가 동의하는가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졌다가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온 사람들은 그 경험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감정의 궤도로 그 경험이 자기를 인도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 능력을 마비시켜서 제정신이었을 때 하지 않았던 말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 사실 감정적으로 사로잡혀 있던 상태로부터 벗어나 보면 우리가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 의아해 한다. 감정의 파고가 내려와서 서로의 상이점들을 조명해 주는 실제 세상으로 돌아와 볼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왜 우리는 결혼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사랑에 한창 빠졌을 때는 적어도 중요한 것은 서로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허상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라고 할 때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선택 사항에 직면한다.
(1) 배우자와 함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2) 결혼 생활이라는 배로부터 뛰쳐나와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사랑에 빠진 경험이 일시적으로 고조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배우자와 더불어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도 본래 감정적이기는 하나 어떤 것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욕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본능이 아닌 이성과 선택에서 비롯된 사랑을 받는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사랑받을 만한 무엇인가를 보고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누군가에 의해 사랑받을 필요가 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에 빠진” 감정을 벗어나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성과 결단에 의한 사랑;
이 사랑이 바로 현인들이 우리에게 말한 사랑이다.
“사로잡힌”감정 아래서 하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일들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다. 우리는 정상적인 행동 양식을 벗어나는 본능의 힘에 의해 이리저리 밀려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선택을 하는 실제 삶으로 돌아왔을 때 친절하고 너그러운 것을 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사로잡힌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이라는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사로잡힌 감정은 단지 서론에 불과하다. 그 책의 본론은 이성과 결단에 의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바로 현인들이 우리에게 말한 사랑이다. 그것은 의지적인 사랑이다. 사랑이 선택이라면 “사랑에 빠진” 감정이 사라지고 현실 세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랑은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나는 당신과 결혼했으므로 당신의 관심사를 선택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그 결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배우자의 감정적인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서 그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안전함을 느낄 때, 당신의 배우자는 온 세상이 환하게 보이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그릇이 비어서 사랑받지 못하고 단지 이용당한다고 느낄 때 세상은 어두워 보이며 그는 결코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4. 제1의 사랑의 언어
인정하는 말
마크 트웨인이 “나는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두 달간은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크 트웨인의 말대로라면 일년에 여섯 번 칭찬을 받으면 일년 동안 사랑의 그릇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는 더많은 칭찬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은 격려하는 말을 쓰는 것이다. 칭찬하는 말이나 감사의 표현은 사랑을 잘 전달하는 힘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칭찬하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다면 결혼 생활에 어떠한 감정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 배우자로 하게 하기 위해 겉치레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칭찬을 들을 때 그 말에 보답하고 싶어서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한다.
격려하는 말
말로 칭찬하는 것은 당신이 배우자를 인정한다는 하나의 좋은 표현이 된다. 그것의 하나의 방언으로 격려하는 말이 있다. “격려하다”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는 불안정하게 느끼는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가 없으면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당신의 배우자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은 당신의 격려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배우자는 삶의 구석구석에 아직 계발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잠재력은 당신이 격려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배우자는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당신의 말은 당신의 배우자로 하여금 이런 일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당장 압력을 가하라는 말은 아니다. 당신의 배우자가 이미 갖고 있는 관심거리를 계발시키도록 격려하라는 것이다.
격려하는 데에는 배우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과
배우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배우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를 배워야만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전에 계발된 것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용기를 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배우자는 아주 중요한 모든 종류의 자극을 줄 수 있다. 물론 격려의 말을 하는 것이 당신에게 힘들 때도 있다. 만일 당신의 말투가 비판적이고 비난하는 것이라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되나, 나는 그것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온유한 말
사랑은 온유하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싶으면 온유한 말을 써야 한다. 온유한 말투로 해야 한다. 똑같은 문장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말투로 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오늘 설거지 해줘서 정말 기뻐”라고 딱딱거리며 말했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반면에 상처받고 고통스럽고 분노를 느끼게 하는 상황이라도 온유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사랑의 표현이다. “오늘 저녁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니 실망스럽고 기분이 안 좋아요”라고 솔직하고 부드럽게 말했다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냄으로써 남편과 친밀해지려는 것이다. 그녀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기 위해 의논할 기회를 찾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크고 거칠게 표현하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비난하고 정죄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의 표현이 그의 기분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그가 그 일에 대해 상하고 화난 마음을 표현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이 입장이 되어 보고 그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해 보며 그 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표현하라. 만일 당신이 잘못했다면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그렇지 않고 배우자가 당신의 동기를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을 온유하게 설명하라. 당신은 이미 발생한 일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여 당신의 생각을 입증하려고만 하지 말고 이해와 화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사랑이다.
우리가 좀 더 발전하는
결혼 생활을 원한다면
이런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
사랑은 실수를 기억하지 않는다.
사랑은 과거에 실수한 것을 끄집어 내지 않는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결혼 생활을 들여다보면 항상 좋고 바른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배우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말을 할 수도 있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고백하고 잘못했다고 시인해야 한다.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잘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내 실수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외에 배우자의 상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더 좋은 길은 없다. 배우자가 잘못한 것을 아주 고통스러워하며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가부간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용서해 줄 것인지 하는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만일 내가 잘잘못을 가려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원한다면 나 자신은 심판관이 되며 배우자는 죄인이 된다. 부부간의 친밀함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용서를 택하면 부부 사이의 친밀함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용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내면서 오늘의 새로운 날들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과거의 실수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는 과거로 끝내는 것이다. 과거의 실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오늘을 살아가기를 택할 수 있다. 용서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결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비를 베풀겠다는 선택이지 죄인에게서 죄를 들추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사랑의 표현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돌봐줄게요. 당신을 용서할게요. 나의 상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다시는 없을거예요. 이번 일에서 우리 둘 다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해요. 당신은 내 배우자이잖아요. 여기서부터 우리 잘해 봅시다.” 이러한 말들은 여러 가지의 다른 방언으로 표현되었긴 하나 인정하는 말들이다.
겸손한 말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서로 바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서로 사랑하고 싶으면 상대방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때 당신은 배우자의 가치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실 배우자가 당신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로 요구한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폭군으로 변한다. 당신의 배우자는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몹시 초라해짐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정중한 부탁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해 낸다. 반면에 무례한 요구는 그 가능성이 사라지게 한다.
여러 가지 방언
인정하는 말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언어 안에는 많은 방언이 있다. 앞에서 조금 언급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다. 많은 글들이 그러한 방언에 대해 쓰여졌다. 모든 방언들은 공통적으로 배우자를 인정하는 말을 사용한다.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심오한 욕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배우자를 인정해 주어라. 대중에게 칭찬을 받을 때, 그 영광을 아내와 나누라. 인정하는 말을 글로 써 보는 것도 좋다.
글은 두고두고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5. 제2의 사랑의 언어/
함께하는 시간
“함께하는 시간”이라 함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낼 때 당신은 TV 방송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지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서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라는 것이다. 둘만이 오붓하게 산보를 한다든지, 외식을 할 때도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한 가지 약으로 모든 질병을 고칠 수는 없다. 내가 빌과 베티 조를 상담했을 때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인정하는 말이 빌에게 뿐만 아니라 베티 조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리라 생각했다. 부부가 서로 인정하는 말을 주고받으면 사랑의 감정이 생겨 다시 서로 사랑할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빌에게는 그 말이 유효했다. 그는 아내에게 좀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칭찬해 주니 참 좋았다. 하지만 베티 조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정하는 말이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 제1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아내가 그를 칭찬해 줄 때 마치 아이처럼 무척 좋았다고 내게 말했다. 베티 조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아내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저 의미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지금 즐기는 것을 나도 온 마음을 다해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려 주었다. “그녀와 연주회에 함께 갈 때처럼 말입니까?”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리틀락에 서광이 비쳐옴을 느꼈다.
“빌, 그녀가 왜 항상 부정적이었는지 알고 싶으세요? 그녀의 사랑의 언어가 바로 ‘함께하는 시간’이거든요. 당신은 그녀의 사랑의 그릇이 텅 빌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당신이 구사하는 사랑의 언어에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직장이 당신의 시간을 모두 빼앗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요. 사실 그녀가 당신이 하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녀는 당신으로부터 어떤 사랑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오할 따름입니다. 빌, 이것이 바로 중요한 해답입니다. 베티 조를 위해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녀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연대감/
“함께하는 시간”은 바로 연대감(Togetherness)을 말한다. 그것은 단지 가까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방에 가까이 앉아 있다고 반드시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연대감이란 서로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부부는 서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연대감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가까운 거리에서 단지 함께 살 뿐이다. 그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집에 있긴 하나, 연대감 속에 함께 있지 않다. 아내에게 말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의 온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간이란 서로가 눈을 마주 바라보면서 매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같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둘이 함께하는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감정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활동은 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두 살 짜리 아이와 공굴리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놀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이 사이에 있는 감정이다.
/진정한 대화/
“인정하는 말”과 같이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랑의 언어에도 여러 방언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진정한 대화다. 진정한 대화는 두 사람이 그들의 경험이나 사상이나 감정이나 바람을 아무런 해석을 가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는 말을 의미한다. 배우자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이 문자 그대로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수반되지 않는 대화라는 말이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서로간의 대화는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음을 감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진정한 대화는 제1의 사랑의 언어와 아주 다르다. 인정하는 말은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진정한 대화는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17년간 결혼 생활을 한 43세의 패트릭이라는 남자를 만났었다. 내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채프먼 박사님, 저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라고 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결혼 생활을 17년간이나 하고 아내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참 어리석었습니다.”
“제 아내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게 말하곤 했어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처신하라는 말을 하곤 했지요. 그녀에게 항상 충고했어요. 문제에 잘 대처해야 된다고요. 다음날 아내는 일터에서 돌아와서 또 똑같은 문제를 제게 털어놓았어요. 내가 전날 그녀에게 가르쳐 준대로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같은 충고를 반복했지요. 그 문제를 풀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요. 다음날 아내는 또 같은 문제를 내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또 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그랬더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안 될거야’하는 것이었어요. 3,4일 지나자 나는 몹시 화가 났어요. 내 충고를 듣지 않으려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어요. 그녀는 자청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 같았거든요. 내 충고대로 따르기만 하면 문제를 풀 수 있는데 말이죠.”
“그 문제엔 상관하지 않고 저는 제 일에만 몰두했어요. 제가 이렇게 어리석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습니까?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내게 말할 때 그녀는 나의 충고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냥 동정해 주기만 원했는데요. 내가 들어줌으로써 관심을 보이면서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들을 단지 알아주기만 원할 뿐이었는데요. 내가 자기를 사랑하며 언제나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을 알기만 원한 것이었지요. 충고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해해 주기만 바랐지요. 그러나 저는 이해하는 대신 충고해 주기에만 급급했으니까요.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패트릭의 아내는 진정한 대화를 갈망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좌절감을 그가 진정으로 알아주기를 원했다. 패트릭은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 충고만 했다. 그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만 모색했다. 그녀의 울부짖는 절규는 듣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패트릭과 같다. 우리는 발생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훈련은 잘 받아 왔다. 우리는 결혼 생활이 완성해야 되는 과제나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관계라 함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듣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요구해 오면 충고는 할 수 있으나 결코 생색 내는 투로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당신의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거나 그 방언이 진정한
대화라면 더 잘 배워야 한다.
1. 배우자와 이야기할 때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키라.
이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막아 주며,
상대방이 충분히 관심을
받고 있음을 알게 한다.
2. 배우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하지 말라.
“함께하는 시간”은 누군가
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
시키는 시간임을 기억하라.
3. 상대방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라.
4.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의 깊게 보도록 하라.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부라릴 때,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때때로 입으로 하는 말과 다른 것을 몸짓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며 느끼고 있는지 분명하게 물어 보도록 하라.
5.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로막지 말라. 사람들은 평균 17초 정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통계 조사가 있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면 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당신을 비방하거나 아니면 아주 독설적으로 내 입장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목적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나 당신에게 과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배우기
진정한 대화는 공감을 가지고 듣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요구한다. 어떤 부인이 “제 남편이 말 좀 했으면 좋겠어요.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어요“라고 할 때 그녀는 긴밀한 관계를 진실로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감정적으로 좀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가까워지겠는가? 그녀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을 노출시켜야만 한다. 만일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고 그 방언이 ‘진정한 대화”라면 그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사랑의 그릇은 늘 비어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진정한 대화”라는
사랑의 언어를 배우려면,
당신이 집을 나선 후부터 갖게 되는
감정을 메모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탕으로 하여 결정을 내린다.
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감정이나 생각이나 바람을 갖게 되며 그것을 행위로 옮기게 된다. 그러한 과정의 표현을 우리는 소위 자기 현시라 일컫는다. 당신이 만일 진정한 대화라는 사랑의 방언을 배우려면 바로 그 길이 당신이 따라가야만 하는 배움의 길이다.
성격의 종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긴 하나,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성격의 영향을 받는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의 아주 기본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를 나는 “사해”형이라고 부른다. 이런 형의 성격은 매일 매일 많은 경험이나 감정이나 생각들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보관할 큰 그릇은 갖고 있으나 그것들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사해” 성격의 소유자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나요? 오늘밤 왜 아무 말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그는 분명히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정직한 대답이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 편안한 것이다. 그는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운전하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의 기분은 아주 좋다.
그 반대는 “시냇물”형이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으로 다 내보내서 눈과 귀에 단 일분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보든지 듣든지간에 그대로 말해 버린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때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라도 말해야 한다. 사해형은 시냇물형의 사람과 결혼하기가 쉽다. 그들은 데이트할 때 서로 끌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사해형의 사람인데 시냇물형의 사람과 교제한다면 아주 멋진 저녁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밤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까? 대화를 잘해 나갈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사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단지 고개만 끄덕이면서 “오, 음”과 같은 말만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나서, “참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며 귀가하면 된다.
반면에 당신이 시냇물형의 사람이라면 사해형의 사람과 교제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상대방이 잘 들어 주기에 3시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참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헤어질 수 있다.
사해 성격의 소유자는 말하는 것을 배우고, 시냇물 성격의 소유자는 듣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우리 모두는 성격의 영향을 받긴 하나 전적으로 지배당하진 않는다. 매일 일어난 일 중 약 3가지 정도를 생각해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를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이면 서로를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된다. 나는 그것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매일 과제”라고 부른다.
/함께하는 활동/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랑의 언어에는 그 방언으로, “함께하는 활동”이 있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세미나에서 “나는-할 때 배우자로부터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라는 질문을 부부들에게 했다. 8년간 결혼 생활을 한 29살의 남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할 때 아내로부터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대화를 더 많이 합니다. 그때는 다시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어요.” 제1의 사랑의 언어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거의 일률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이는 함께 무엇인가를 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전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그 목적은 “그가 나를 아껴 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하고 적극적으로 한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을 가장 큰 소리로 구사하는 것이다.
함께 정원을 가꾼다든지, 벼룩 시장을 간다든지, 골동품을 보러 다닌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함께 소풍을 간다든지, 오래 산보를 한다든지, 뜨거운 여름날에 함께 차를 닦는 것 등은 모두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 보려는 흥미나 관심에서 나온 것들이다. 함께하는 활동으로 얻게 되는 이득 중의 하나는 그 활동들이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추억 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식사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듯 우리의 결혼 생활을 위해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기쁨이며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배웠다는 바로 그 기쁨인 것이다.
/6제3의 사랑의 언어: 선물/
선물을 줄 때 우리는 반드시 그 사람을 생각한다. 선물 자체는 생각한다는 상징에 불과하다. 값이 얼마나 되느냐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생각만 품지 말고 그 생각을 선물로 줌으로써 선물은 사랑을 실제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뜨락에서 선물로 따온 꽃을 기억한다. 어머니 자신들이 꺾고 싶진 않은 꽃이지만 그 꽃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 이것은 선물을 주는 것이 사랑에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선물은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선물은 크기나 색깔이나 형태가 다양하다. 어떤 것은 비싸지만 어떤 것은 값없이 거저 얻은 것일 수도 있다. 선물을 받는 것이 제1의 사랑의 언어인 사람에게는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격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일터의 쓰레기통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워 가운데를 접어 가위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쓸 수도 있다. 선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용이 드는 것만은 아니다.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당신의 배우자가 지난 몇 년간 선물을 받으면서 몹시 기뻐했던 품목들을 기록하도록 하라. 만일 당신이 선물을 고르는 데 자신이 없으면 배우자의 취향을 잘 아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이 구입했거나 혹은 만들거나 찾아낸 선물을 배우자에게 주어라. 특별한 시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을 받는 것이라면, 당신이 어떤 것을 주든 그것이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만일 그녀가 이전에 당신이 준 선물에 대해 비판적이었거나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었다면 선물 받는 것이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선물과 돈/
만일 당신이 아주 적절하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돈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 개개인은 돈의 목적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에 그것을 쓰는 데 다양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쓰는 것에 익숙하다. 돈을 쓰면서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돈을 절약하여 저축하는 데 주력한다. 돈을 절약하여 현명하게 투자할 때 기뻐한다. 만일 당신이 쓰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배우자에게 선물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절약형이라면 돈을 써서 사랑을 표현한다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큰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구입하지 않는다. 왜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사야만 하는가? 하지만 당신도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돈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자아의 가치와 감정의 안정감을 사는 것과 같다. 돈을 다루는 식으로 당신은 당신의 감정적인 욕구를 다스리는 것이다.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 받는 것임을 알았다면 당신은 배우자를 위해 선물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투자해서 배우자의 사랑의 그릇이 꽉 차면 그는 가득 찬 사랑의 그릇으로 당신이 이해하는 사랑의 언어로 보답할 것이다. 부부의 감정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그 결혼 생활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배우자에게 투자하는 것을 꺼리지 말아라. 당신은 진정한 의미로 절약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바로 우량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물이 됨/
사람의 손에 쥐어주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자아의 선물 혹은 존재의 선물이라 부른다. 배우자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함께 있는 것이,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인 사람에게는 큰소리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일 수 있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을 받는 것이라면,
위기의 순간에 그와 함께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된다.
만일 배우자가 늘 가까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그것을 배우자에게 말로 표현해라. 내 마음을 읽고 알아서 해주리라 기대하지 말라. 배우자가 “오늘밤, 내일 혹은 오늘 오후 당신이 나와 함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라. 선물은 반드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며, 매주 한 번씩 줘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 가치가 금전적인 값어치를 수반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사랑이 깃들인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7 제4의 사랑의 언어: 봉사/
봉사라 함은, 배우자가 당신에게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녀를 도와줌으로써 그녀를 기쁘게 하고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들은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내는, 노력과 정력을 요구한다. 자발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면 정말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은 그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에게 종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지배하는 것이 일반 사회의 이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크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고 요약했다.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은
사랑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요구하는 것은 흘러 넘치는
사랑을 막아 버린다.
수백 쌍의 부부들은 배우자가 자기를 위해 하는 봉사로 사랑을 느끼기에 신발을 치우고,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설거지를 하고, 세차를 하고, 청소를 하고, 잔디를 깎는 것들은 제1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인 사람들에게는 큰 소리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같다.
첫째,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을 위해 하던 일을 결혼한 후에는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에 푹 빠진 힘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한다. 결혼한 후에는 “사랑에 빠지기” 전의 원래 우리의 모습으로 복귀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부모나, 자신의 성격이나, 사랑에 대한 개념이나, 감정이나, 욕구나, 욕망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하는 행동과 똑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사실은, 사랑은 선택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요구만 하면 아주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간다. 비판을 많이 하면 당신의 배우자는 내키진 않지만 당신의 뜻을 따를 수는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부탁할 수 있다. 즉, “차 좀 닦아주면 참 좋겠어요.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면 좋겠네요. 잔디를 깎아 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고 싶은 의지는 불러 일으킬 수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 배우자를 사랑할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배우자가 요청하는 것을 해야 우리의 사랑이 배우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세번째 진리는 성숙한 자만이
배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내 행동을 비판할 때 우리는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의 욕구가 있는 부분에 대해 배우자에게 가장 큰 소리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비판은
사랑을 가장 비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 비판을 좀 더 생산적인 방법
으로 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현관 깔개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인가?/
깔개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다. 그 위에 올라서서 신발을 문지르든지 발로 차든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도 없다. 당신은 그것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배우자를 물건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면 사랑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당신은 내 배우자이니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식으로 죄책감을 조성시키는 것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이것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 좋지 않을걸”이라고 겁을 주어 강제로 하게 하는 것도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현관 앞에 있는 깔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때로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용되기도 하나 사실 우리는 감정과 생각과 소망을 가진 피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을 하고 행동을 취한다. 우리 자신을 상대방이 이용하거나 조종하도록 허락하는 것도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사실 이것은 불성실한 행위이다. 상대방에게 비인간적인 습관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에 불과하다. 사랑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이 내게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거예요. 이러는 것이 당신이나 나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고정관념 극복하기/
“봉사”라는 사랑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을 기꺼이 깨는 것은 배우자에게 사랑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정관념을 고집한다고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에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배우자의 감정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데 아주 놀랄 만한 효과가 있다.
최근에 어떤 부인이 내게 찾아와 “채프먼 박사님, 제 친구 모두에게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권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라고 나는 물었다.
“그 세미나가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을 갑자기 변화시켰거든요.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바비는 한번도 저를 도운 적이 없었죠. 대학 졸업 후 두 사람 다 직장 생활을 했고 가정에서 하는 일은 늘 제 몫이었어요. 가정에서 나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생각조차 못했죠. 그런데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 그는 ‘여보, 오늘 저녁 내가 도울 게 좀 없을까?’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3년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가 무얼 어떻게 하는지 모르기에, 그가 도와줄 때마다 우스운 일들이 생겼지요. 그가 처음 빨래를 했을 때 보통 세제를 쓰는 대신 원액의 표백제를 썼어요. 파란 수건이 하얀 반점 투성이로 변했죠. 그가 설거지통에 있는 쓰레기 분쇄기를 처음 사용하고 나서 보니 계속 배수구에서 비누 거품이 나오는 거예요. 분쇄기를 끈 후 내가 손을 배수구에 집어넣어 비누 조각을 꺼낼 때까지 그는 왜 그랬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가 내 사랑의 언어를 계속 즐겨 구사하니 내 사랑의 그릇은 늘 꽉 차 있습니다. 이제 그는 집안 일에 익숙해져서 나를 잘 도와주고 있어요. 집안에서 항상 일만 할 필요가 없어지니 우리 부부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어요. 저도 그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그대로 따르니 그의 사랑의 그릇도 항상 가득 차 있답니다.”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물론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바비는 35년 동안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데 눈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배워 구사하기를 시작하면, 당신의 결혼 생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바비는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육체적 접촉이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동 발달 과정을 연구한 많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체적인 접촉을 전혀 갖지 않고 지낸 아이들보다는 안아 주거나 키스를 해 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한다. 손을 잡아 주거나, 키스를 하거나, 껴안고, 성 관계를 갖는 것 등은 배우자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어떤 이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인 접촉이 제1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육체적인 접촉이 없으면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육체적인 접촉을 할 때만 그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게 되어 배우자의 사랑을 흠뻑 느낀다.
“채프먼 박사님, 제 아내는 굉장한 요리사이고, 요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래서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저는 고기에다 감자 하나면 족하거든요. 요리하는 데 너무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주 간단한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녀는 몹시 기분이 상해서 자기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더군요. 왜 제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겠어요. 사실 나는 그녀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녀가 음식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그 밖에 다른 것도 할 수 있을텐데요”라고 했던 한 남자를 나는 기억한다. 분명히 “그 밖에 다른 것”이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것을 말한다.
그녀의 남편과 이야기하는 동안 그가 “그 밖에 다른 것”이라 한 것이 바로 성 관계임을 나는 알았다. 그의 아내가 성적으로 만족시켜 주면 그는 사랑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무슨 이유에선지 성 관계를 피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만 하니, 그는 사랑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도 맛있는 음식을 전혀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이 “사랑”이라고 정의한 것을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었다.
육체적인 접촉은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사랑하게도 하고 미워하게도 한다.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인 사람에게는 “미워해요” 혹은 “사랑해요”라는 표현보다 육체적인 접촉으로 표현하는 메시지가 훨씬 크게 들린다. 어떤 아이의 따귀를 한 대 때리는 것은 보통의 경우도 나쁜 것이지만 그 아이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인 경우는 아주 치명적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접촉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때나 접촉하려 들지 말라. 그녀의 사랑의 방언도 익히도록 해라. 어떤 접촉은 당신 배우자를 불편하게 하거나 귀찮게 한다. 그런 접촉을 계속하면 사랑을 정 반대로 표현하는 결과를 낳는다. 당신은 그녀의 욕구에 민감하지 못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거의 해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접촉을 배우자도 꼭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성 관계를 갖는 것이 당신의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라면 성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기술에 대해 배우자와 토의하는 것도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은연중에 하는 사랑의 행위는 시간이 적게 들긴 하나 많은 생각이 요구된다. 특별히 육체적인 접촉이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아니거나 “접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정”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함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따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사랑을 크게 표현할 수 있다. 방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배우자를 가볍게 잠깐 만질 수도 있다. 집을 나설 때나 집에 돌아와서 간단한 키스나 포옹으로 사랑을 크게 전달할 수도 있다. 새로운 방법을 자꾸 시도하면 배우자는 거기에 반응하여 그것이 좋은지 아니면 싫은지를 당신에게 표현할 것이다. 꼭 기억할 것은 그가 가진 사랑의 언어를 잘 파악하여 그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위기와 육체적인 접촉/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서로 몸을 붙들게 된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접촉으로 아주 강하게 사랑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때보다 위기의 순간에 사랑은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사건 자체를 변경시킬 수는 없지만 사랑을 받으면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 모든 결혼 생활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부모와의 사별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자동차 사고는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기도 하고 죽게도 한다. 질병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좌절감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당신이 배우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이라면 울고 있는 배우자를 껴안아 주는 것 이상 좋은 사랑의 표현은 없다. 이때 말로 하는 위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육체적인 접촉은 상당한 효과가 있다. 이런 위기의 순간은 바로 사랑을 표현하는 기회가 된다. 감미로운 사랑의 접촉은 그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렇게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결코 흘려 보내지 말라.
만일 당신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이라면 울고 있는 배우자를
껴안아 주는 것 이상 좋은 사랑의 표현은 없다.
육체적인 접촉을 제1의 사랑의 언어로 구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배우자가 먼저 자신들에게 육체적인 접촉을 시도해 주기를 갈망한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고, 등뒤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주고, 껴안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그 밖에 다른 모든 “사랑의 접촉”은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인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생명선과 같다.
9.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방법
배우자의 사랑의 그릇이 늘 가득 차 있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우선 당신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배우자나 자신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즉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서 성적인 욕망은 생리적인 것보다 감정에 좌우된다. 성적인 충동을 일으키는 생리적인 힘은 없다. 그 욕망은 바로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육체적으로 남편과 친밀해짐을 느낀다. 감정적인 긴밀함이 없으면 육체적인 욕망도 없다. 남성들은 평상시에도 생리적으로 성적인 욕망을 느끼기에 자동적으로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육체적인 접촉이라 생각한다. 만일 성 관계 이외의 다른 시간에는 육체적인 접촉을 좋아하지 않거나 성적이 자극이 없을 때는 육체적인 접촉이 그의 사랑의 언어라 할 수 없다. 성적인 욕망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아주 다르다. 성 관계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아주 중요할 수 있지만 성 관계만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아내는 그의 사랑의 언어를 잘 알아서 구사해야만 한다. 사실 아내가 그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잘 구사할 때 그의 사랑의 그릇은 꽉 찰 것이며 그 역시 아내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서 그녀의 사랑의 그릇도 꽉 차게 되고 그들의 성 관계는 저절로 채워지게 된다. 결혼 생활에서의 대부분의 성적인 문제점은 육체적인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데 있다.
당신의 제1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 언제 배우자가 당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당신은 위에 있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을 원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면 사랑의 언어의 부정적인 면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에게 아주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배우자의 비판이나 정죄하는 말이 당신에게 몹시 상처가 되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다. 당신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배우자에 의해 부정적으로 구사되면 그 누구보다도 당신은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무시할 뿐 아니라 그 언어를 칼로 삼아 당신의 심장을 난도질하기 때문이다. 만일 배우자가 어떤때 선물을 하지 않으므로 기분이 상했다면 바로 “선물”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가 된다. 배우자가 당신에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아서 상심이 된다면 “함께하는 시간”이 곧 당신의 사랑의 언어가 된다.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당신의 결혼 생활을 회상해 보면서 “나는 배우자에게 무엇을 가장 많이 요청했었나?”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가장 많이 요구했던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와 일치할 수 있다. 그런 요구들은 배우자에게 잔소리로 들릴 것이다. 사실은 그런 요구들이 바로 당신이 배우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현일 수 있다.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당신 자신이 배우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당신이 자주 배우자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이 결국 자신이 배우자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끊임없이 배우자에게 “봉사”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인정하는 말”이 당신에게 사랑을 불러 일으킨다면 당신은 그런 말을 배우자에게 자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배우자에게 나의 사랑을 어떻게 의식하면서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서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는 되지만 절대적이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라. 예를 들어,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하는 것을 자주 보고 자란 사람은 그의 아버지처럼 아내에게 좋은 선물을 주면서 사랑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선물”이 반드시 그의 사랑의 언어는 아니다. 그는 단지 아버지가 하던 것을 그대로 보고 하는 것뿐이다.
시간을 내서 당신이 생각하는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적어보도록 하라.
그리고 그 외 네 가지의
사랑의 언어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대로 한번 기록해 보라.
지금까지 나는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1. 배우자가 당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상처받는 것에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2. 당신이 배우자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사랑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일 수 있다.
3. 당신은 배우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사랑을 표현하는 당신의 방법이
바로 당신 자신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자기의 사랑의 언어를 잘 알 수 없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 첫째는 이미 오랫동안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배우자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기에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 본인도 확실히 모를 수 있다. 단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둘째는 너무 오랫동안 사랑의 그릇이 비어 있었기에 배우자가 어떻게 해주어야 사랑을 느끼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다. 위의 두 종류의 사람은 사랑에 빠졌던 경험으로 돌아가 “배우자의 어떤 면을 내가 좋아했나? 무엇 때문에 내가 그와 함께 있고 싶어했지?”라는 질문을 당신 자신에게 해보라. 이러한 기억들을 되살려보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당신 자신에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 상은 무엇인가? 정말 완벽한 배우자를 기대한다면 어떤 형의 사람일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배우자 상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데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내서 당신이 생각하는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적어 보도록 하라. 그리고 그 외 네 가지의 사랑의 언어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대로 한번 기록해 보라.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도 적어 보라. 또 다른 네 가지도 중요한 순서대로 열거하라. 배우자와 함께 앉아 서로 추측한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그런 후 각자 자신의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라.
10 사랑은 선택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미는 때에 어떻게 서로에게 사랑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사랑이 과거를 돌이켜 주지는 않지만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일단 우리가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하면, 과거의 갈등이나 실패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수천의 남성이나 여성들은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감정적인 욕구에 의해 결혼 관계 밖에서 사랑을 추구한다. 다행히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감정적인 욕구”와의 차이를 결혼 생활 초기에 발견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영화나 연속극이나 대중 잡지들이 둘 사이를 교묘히 엮고 있기에 우리의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 그러나 사실 그 차이는 아주 명백하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제3장에서 취급했는데, 그것은 바로 본능의 단계에 불과하다. 그것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며 평범한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생긴다. 그것은 단지 마음에 품었다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지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간은 아주 짧고(길어야 2년 정도), 캐나다 기러기들의 짝짓기와 똑같은 기능이 인간에게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사랑을 일시적으로 하게 한다. 누군가가 나를 보살피고 칭찬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제일로 우러러본다는 생각으로 감정이 부풀어올라 서로에게 기꺼이 시간과 정력을 쏟는다. 그 기간이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상관없이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우리의 사랑의 감정은 충족된다.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찼으니 이 세상도 정복할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의 그릇이 이렇게 가득 찬 상태로 살아본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도취감이다.
아내의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매일 선택해야만 한다. 만일 내가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 그것을 선택하여 구사하면 그녀의 내면의 감정적인 욕구가 충족되어 그녀는 나의 사랑에 만족할 것이다. 만일 그녀도 내게 똑같이 한다면 내 감정적인 욕구도 충족되어 우리 둘은 가득 찬 사랑의 그릇으로 살 것이다. 감정적으로 안정되니 결혼 생활은 계속 즐겁고 성숙해 가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 생활 이외에도 많은 일에 창의적인 힘을 기울이게 된다.
어떤 행위가 당신에게
아주 부자연스러울 때,
바로 그 때가 당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내고 그것이 내게 자연스럽든지 부자연스럽든지간에 그것을 구사해야 한다. 배우자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의 사랑의 언어를 힘써 구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의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서 답례로 그도 나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사랑의 그릇은 채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랑은 선택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두 당사자가 그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11 사랑은 변화를 가져온다
사랑만이 우리의 감정적인 욕구가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는 안정감에의 욕구, 자긍심에의 욕구 그리고 의미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사랑은 이 모든 욕구와 결부되어 있다.
내가 배우자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때 배우자가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자긍심은 배우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충족된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결국 나는 반드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부모는 나의 가치에 부정적이거나 미묘한 뜻을 전할 수도 있지만, 배우자는 성인으로서의 나를 알고 사랑한다. 그의 사랑이 나의 자긍심을 세워준다. 나는 의미 있는 존재다.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귀한 목적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믿고 싶지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까지는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배우자가 내게 사랑으로 시간과 정력과 노력을 기울이면 나는 의미 있는 존재라고 믿게 된다. 사랑이 없다면 아마 나는 존재 의미와 자긍심과 안정감을 찾으려고 평생을 소비할는지 모른다.
사랑을 경험할 때 그것은 이 모든 욕구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드디어 내 잠재 능력을 자유 자재로 발휘하게 된다. 자긍심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되었으므로 이제 내 욕구에 치중하기보다 외부로 관심을 더 많이 돌리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만일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면 서로간에 이질감은 증폭된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우리는 자긍심과 의미성을 위해 싸우게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결혼 생활은 천국이 아니라 전쟁터가 된다.
/지은이 소개/
게리 채프먼은 교회 교육은 물론, 활발하게 부부와 가정 생활에 관한 상담과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Toward a Growing Marriage, Hope for the Separated, Buiding Relationship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