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에서 계속
계곡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산의 서쪽 사면에서 다시 동쪽사면으로 바람이 용틀임 하듯이 수시로 바뀌고 눈은 바람에 따라 속절없이 휘날렸다. 바람에 쓸리는 비도 일정한 대오를 형성하지만 눈도 큰 덩어리가 되어 휘몰아 친다.
봄기운을 머금은 듯했던 산과 계곡이 순식간에 하얀 세상으로 탈바꿈했다. 상원사를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눈은 시나브로 쌓여 갔다. 가지에 매달린 눈이 꽃으로 피어났다. 이렇게 습기를 머금은 눈이 그치고 날씨가 추워지면 눈꽃위에 상고대가 피어 오른다. 눈꽃은 눈이 가지에 쌓인 것이고 상고대는 가지에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서리가 되어 엉긴 것이다. 해가 뜨는 아침에 햇살을 맞받아 상고대가 반짝거리며 날릴 때 마음도 같이 떠서 날아간다.
먼저 올라간 우리일행은 상원사 주차장에서 가게 탁자에 앉아 월정사 주차장에서 사온 메밀막걸리로 목축임을 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몸이 차갑게 굳어졌다. 함께하는 점심식사는 언제나 푸근하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 나의 한을 풀기 위해 오삼불고기를 해 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설악산의 한을 풀었다.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강원도를 평하기를 ‘모두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이며 화전을 경작하며 논은 매우 적다. 지대가 높아 바람이 차갑고 땅이 메마르며 백성은 어리석다. 두메 마을이라 시내와 산이 기이하게 아름다워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이지만 대대로 살기에는 알맞지 않다.’ 라고 했다.
농업시대, 특히 벼농사가 주업인 시대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땅과 삶의 개념이 바뀌면서 강원도가 대대로 살기 좋은 땅이 되고 있다. 가난과 배고픔으로 떠밀리듯이 고향을 떠나야했던 서러운 세월을 꿋꿋하게 견디고 살아온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팍팍한 도시에 남겨진 사람들도 언제나 귀향을 꿈꾸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시대에 봉평의 이효석보다 춘천의 김유정이 더 강원도 적이라면 현재 춘천의 이외수보다 강릉의 이순원이 훨씬 더 강원도 적이다. 이순원의 소설은 은비령이 유명하지만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가 나에게 더욱 생각나게하는 소설이다. ‘해파리에 관한 명상’이라고 발표되었던 이 단편소설이 T.V 문학관으로 방영되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마지막 장면을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한쪽 발은 절고 한쪽 손은 뒤틀렸으며, 생각하는 수준이 3, 4학년 수준밖에 안되어 아이들에게 조차 해파리라고 놀림받는 아저씨의 순박하고, 끈덕지며, 반듯한 삶과 죽음은 우리 가슴에 남아 있던 그 무엇을 토해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토해낸 것이 한이고, 양심이고, 정의이며, 부끄러움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해파리 아저씨가 소장사를 따라 소를 몰며 넘나들었던 대관령이 지척이고 어쩌면 오대산 근처 마을까지 와서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소를 몰았를는지 모를 일이다. 서편제에서 오정해를 사랑하는 이복오빠로 나왔던 김규철의 해파리 아저씨 세일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대원군이 팔도 사람을 평할 때 강원도 사람을 암하노불(巖下老佛)이라고 했다고 했다. 바위밑에 있는 늙은 부처라는 뜻인데 택리지에서 평한대로 어리석다라고 평가한 것인지 흐트러지지 않고 일관된 끈기와 해탈에 경지에 이른 마음씨를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해파리에 관한 명상을 보고 해파리 아저씨에 대해 암하노불이 떠올려졌다.
눈발이 강해지고 계곡밖에서 안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쳐 앞길을 막아선다. 우산에 엉긴 눈을 수시로 털어내며 맞바람을 받으며 흐릿해진 산을 몽롱한상태로 눈세상을 본다. 발아래 밟히는 눈소리가 정겹다. 한겹두겹 쌓이기 시작한 눈이 나뭇가지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바람은 나뭇가지 쌓인 눈을 다시 날린다. 어떤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고 어떤 눈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인지 분간할 수 없다. 내려앉아 쌓인 눈으로 인해 소나무와 잣나무 가지가 우산처럼 휘어지며 늘어졌다. 느릅나무 가지에 눈이 더 엉기는 물질이 있는 지, 다른 나무들보다 더 많은 눈을 가지에 쌓았다.
비가 오다 눈으로 바뀌며 기온이 떨어질 때 나뭇가지는 눈을 온가지에 조금씩 붙이다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쓰러진다. 대표적인 나무가 소나무이다. 눈에 의해 쓰러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릴적 어느해 쩍쩍, 딱딱 부러지는 소나무 소리를 들으며 밤새 잠을 뒤척였는데 앞산 뒷산 그 많던 소나무들이 다 쓰러져 있었다. 이를 설해목이라 불렀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는 주로 뿌리채 뽑히지만 눈에 쓰러진 소나무는 중간부분이 잘려나간다. 잘려나가면서 생전 듣지도 못한 소리를 발산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눈으로 설해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눈을 뒤집어 쓴 전나무 잎과 가지가 흡사 부처님 손같다. 그래서 절입구에 전나무를 많이 심는 것일까? 못내 궁금했다.
바람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주차장에 닿았다. 산채밥집은 인심이 푸근해 좋았다. 산채밥집의 맛은 산채도 중요하지만 된장찌개의 맛이 좌우한다. 산채는 좋았지만 된장찌개는 마음에 차지않았다. 오대산 입구 모든 산채비빕밥 집이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진부에 있는 부일식당은 내게 특별했다. 심형진 형 말씀따라 입맛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고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원도 산채중 으뜸은 곰취이다. 곰취는 해발 700이상되는 산의 계곡가나 사면에서 잘 자라는데 특히 석회암지대에서 잘 자란다. 정선, 평창의 가리왕산, 청옥산, 백석산 등에 많다. 강원도 산채와 나물에 관한 이야기는 봄에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거나한 취기와 충만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에 빠졌다. 한시간이나 되었을까 버스가 이상한 곳을 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밀려 나란한 6번 국도로 버스가 나온 것 같았다. 길은 언제나 연결되고 이어진다. 그래서 길이다. 6번 국도는 인천에서 구리, 남양주, 양수리, 양평, 횡성, 봉평, 장평, 속사, 진부를 거쳐 강릉까지 이어진다.
밀리는 차속에서 나는 봄날을 생각했다. 어느 가수의 노래말처럼 그 추웠던 겨울은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오겠지. 오늘 다시 내 봄앓이가 시작되는 날이였던 것 같다. 햇볕 따뜻한 봄날, 초가집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노란 꽃다지와 하얀 냉이꽃의 하늘거림을 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눈물 짓던 그 봄날이 그리울 뿐이다. 올 봄은 거지같이 봄을 맞고 싶다.
- 끝 -
강원도 중부에 대해 조금 풀려고 했다가 길어졌습니다. 어울림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상태일 듯 싶고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에 싸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겠지요. 참으로 할 일 없는 사람의 넋두리가 때로는 약이 될 때가 있으니 널리 이해해 주시고 역시 마구 휘갈겨 썼으니 철자, 문법, 띄어쓰기 등이 정상이 아니겠지요. 이점 또한 양해를 구합니다.
첫댓글 엥 10편은 할 줄 알았는데 벌써 끝나면 안 되지...
빨리 다시 산으로 들어가서 좀 더 머물다 나와요.....
똥누다 말은 것 같으네 ㅎㅎㅎㅎ
길게 길게 쓰셔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으니 매우 길게 써 주세요....수고했습니다 다음을 또 기대합니다.
쓸 것을 조금 남겨야 다음에 써먹지요. 바닥 금방 드러납니다.
4편에 걸친 오대산 기행문을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무리 순간에는 뭔가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오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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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사람에 대한 철학이 분명했었거든요. 제일 좋은 사람은 돈주는 사람. 2번은 말로 할 수 없는 거시기 한 사람, 3번은 술 사주고 밥 사주는 사람, 4번은 밥만 사주는 사람, 5번은 열대지방에서 주로 나오는 검은 숭늉종류 사주는 요즘 철학이 좀 변했습니다. 그런 짓거리가 뭐팔리고, 비굴하고 그래서 다 끊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주(酒)에서는 해방되지 못했지요. 오해하시지 마시길 조크는 조크 일 뿐......
잘 읽었습니다. 중간에, 그때 그냥 눌러앉을걸...하던 얘기가 아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