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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 주일 저녁예배설교
장소: 성남순복음중앙교회(권동준 목사)
설교 제목: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다니엘 12:2~3
설교를 위한 묵상:
한평생 주님을 섬기고 살면서 교회를 위해 헌신한 우리들, 우리의 인생에서 수고한 이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한평생을 살면서 닳아지고 무너지고 쇠하여도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감동과 모범은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길이었고, 그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오고 오는 나그네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준 사람들이 모세와 엘리야다. 우리의 삶도 그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녀들과 후배들의 가슴에 남고, 그들의 하늘에도 영롱한 별빛이 되어 가장 힘들고 어두운 날에 그들의 길을 인도해 줄 것이다. 나는 이번 설교에서 우리 교우들과 같이 한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격려하고 싶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젊은 분들에게는 선배들의 족적을 따를 것을 권면하면서 그들도 후배들의 길을 인도해 주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삶을 꿈꾸도록 도전하고 싶다.
설교 개요:
1. 나의 마음 속에 빛나는 별
2. 닳아지고 무너져도
3. 변화산의 대화
4. 어떻게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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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마음 속에 빛나는 별
한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예배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성도라는 이름도 가졌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수님을 자랑하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청춘을 보냈고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신앙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며 우리의 정성을 다해 교회가 잘 되기를 빌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가정이 복을 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복을 주실 것을 믿고 그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이 어떤 것이 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헌신하고 믿음을 지킨 삶은 정말 헛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신자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까요? 앞으로 남은 생애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다니엘 12장 2절과 3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성경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2~3
이 본문은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부활 후에 영생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며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사용된 표현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히브리 평행법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시편 19편 1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데 그것을 반복해서 비슷한 다른 표현으로 보충하는 설명입니다.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는 일을 나타내는도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궁창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늘에 있는 일월성신이 조화롭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자기 손으로 지으신 오묘한 솜씨를 발견하는데, 그것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됩니다. 시인의 이중적인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혜 있는 사람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인데 그 의미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는 것입니다.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며 하늘의 영롱한 별과 같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제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분들이 생각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셨는데 그 중에 제가 시골에서 도시로 공부하러 갈 때에 저를 끝까지 지도해 주셨던 은사 목사님과 도시에서 저의 뒷바라지를 하시면서 신앙으로 인도해 주셨던 저의 이모님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모두 주님 곁으로 올라가셨지만 제 마음의 하늘에는 영롱한 별처럼 빛나고 계십니다.
오늘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누군가의 도움과 인도를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보면서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후배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면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삶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 닳아지고 무너져도
저의 이모님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아주머니셨습니다.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시면서 시골에서 올라온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그때 이모부님은 원양어선을 타러 가셨습니다. 그렇게 가정을 돌보시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0년 근속하여 표창장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모님은 제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후에도 계속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는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이모님은 화장품 판매의 일을 더 이상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는 저에게 의자 몇 개를 살 수 있도록 돈을 보내셨습니다. 그 돈은 이모님이 폐지나 장판 등을 수거하여 모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가정과 교회, 그리고 조카를 위해서 걷고 뛰면서 사시던 이모님의 육체는 닳아지고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이모님은 췌장암에 걸리셨고 고통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병문안을 위해 광주에 갔을 때 이모님은 꾸겨진 종이에 무엇인가 적어서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6:14 참고)
그리고 그 문구는 그대로 이모님의 묘비에 새겨졌습니다. 이모님의 삶과 유언은 저의 마음 속에도 궁창의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는 이유는 그렇게 우리의 조상들과 선배들이 진심을 다해 살면서 자손들과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 때마다 하나님이 그분들의 영혼을 궁창에 빛나는 별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은사 목사님은 완도군 신지도에서 사역하신 윤재완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은 섬마을에 오셔서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예배당을 동네 안으로 옮기기 위해서 수고하셨습니다. 시골 교회에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목사님은 바닷가에 나가셔서 자갈과 모래를 손수레에 실어 날으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바닷일을 하러 가고 오는 길에 목사님이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7년 동안 손수 예배당을 건축하시고 그 결과로 마침내 예배당은 마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헌당식도 갖지 못하시고 목포로 사역지를 옮기셨습니다.
목포에 있는 교회에 사역을 하러 가셨을 때 목사님은 뜻밖에도 교회에서 큰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교인들 중에 목사님을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일로 파킨스씨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저의 은사 목사님은 남해안의 섬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예배당을 짓다가 몸이 많이 상하셨는데, 교회의 사역 중에 병을 얻으셨습니다. 그렇게 몸이 닳아지고 무너져도 주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은 마지막까지 변치 않으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헌신과 고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제 마음의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오늘까지 제 길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아마 주님도 목사님의 별을 하늘에 달아 주셔서 영원토록 비치게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3. 변화산의 대화
오늘 설교를 준비하다가 문득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세 사람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었습니다. 그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다고 누가는 소개합니다(눅 9:31).
저는 기도 중에 그 세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장면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모세와 엘리야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분들입니다. 모세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낸 지도자입니다. 그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겠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2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던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자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습니다(민수기 12:3). 그렇게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이 닳아지고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을 벗어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엘리야도 온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을 때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아합 왕 앞에 섰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열왕기상 18:37
엘리야의 헌신과 용기에 힘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릇된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엘리야는 부패한 권력자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던져 그 백성들이 옳은 데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아마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것을 실천하시느라 여기까지 오셨군요.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는 거지요.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배척될 것입니다. 성전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고 거짓증인을 세워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내릴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따를 수 있는 가장 큰 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작은 순종도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을 보았고 구름 가운데서 들려온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베드로의 마음 속에 샛별처럼 밝게 빛났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아 늙어도 베드로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의 빛은 희미해지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교회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후서 1:19, 표준새번역성경
4. 어떻게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까?
저는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하여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마음속 하늘에서도 빛나며 우리의 길을 비추어 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둔 밤을 지나 곧 아침이 밝을 것을 기대하게 하는 샛별이 되어 우리를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몸은 닳아 낡아지고 여기저기 무너지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 가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었던 선배들의 신앙과 모범을 마음에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7절에는 이런 격려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히브리서 13:7, 표준새번역성경
우리가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주신 가족이나 친지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신 십자가의 길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그 마음가짐을 표현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우리에게도 사랑해야 할 자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랑하고 섬겨야 할 주님의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또한 교회를 섬기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 일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표시도 잘 나지 않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처럼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보입니다.’ 그 일은 사랑의 일이기에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도록 주님께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면 우리의 삶은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그렇게 하늘에 높이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부모나 스승의 삶을 보면서 우리 마음속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여기고 따랐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이미 누군가에게는 그들 마음 속 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끝까지 우리의 사람들과 우리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하늘의 새벽별이 되시듯이 우리들도 하늘을 수놓을 수많은 별들 중에 반짝이는 별이 될 것입니다. 그 별은 동시에 우리의 자녀들과 후배들의 마음속에 영롱하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 업적을 성취하는 시합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라서 끝까지 사랑하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우리의 본분과 임무에 최선을 다한 그 사람의 삶이 이 땅에서 마칠 때 하나님은 그 영혼을 받으시고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게 하셔서 우리가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시고 그들도 우리의 뒤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하늘에 빛난 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빛나고 영광스러운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한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가 이 여정을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샛별이신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기까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전진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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