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어제 퇴근길에 가슴이 철렁했다
국도 깊섶에 자란 풀들을 작업인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베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아이고...벌초날이 또 몇일남지 않았어..
생각만해도 일년동안 가슴에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라고 애기하고 싶다
아니 평생동안 어차피 지고 있는 마음의 짐이다
우리 집안은 음력으로 7월 마지막 일요일날이 벌초하는 날이다
그러고 보니 양력으로 올해 9월1일 이다
우리가문은 촌동네 면지역에선 두번째로 큰 집안이라서
4촌6촌만 집합해도 100여명이 휠씬 넘는다
인원이 많은만큼 또한 고인이된 조상님이 많아서
벌초도 일년중에 대대적으로 대작전을 펼치는 날이다
보통 사태골, 안기부골,큰골,산성,개뿔띠 등등 산골짜기 이름도
나는 아직 희미하고 많은 조상묘소도 내나이 중년이라도
갈때마다 헷갈린다
그래서 보통 여러팀으로 조를 짜서 작전을 개시한다
요즈음 보통 이틀 정도 작업을 하는데 숙모님이랑 형수되시는
분들은 산골에서 잡은걸로 추어탕을 얼큰하게 끓이는데
야단 법석이고 온동네가 예초기 소리로 시껄벅적하다
그런데 벌초때만 되면 이른바 사회에서 출세한 친척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몇몇 친척들중엔 s그룹 감사실장등등 직함만 밝혀도 다 아는
인물들이다
못난 자식 효자질 한다고 옛 말이 버릴것 하나도 없다
벌초때마다 못오면 돈이라도 대신 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상묘소 찾아 하루 보듬어 보살피는게 돈으로 치부하여 가린다면
그또한 자손됨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을 타고 하루종일 걷고 작업 하던것을 무지 싫어했던 벌초..
내가 산악회 활동한 이후로는
등산도 할겸 우리 마을에서 제일 높은 형제봉이 있는
산성에 계시는 울 할아버지 묘소는 내가 자청해서 몇해동안 갔다
울 할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이 요놈 할배라고 불렀다
옛날에 범이 자주 나타나서 요놈하고 야단치면 물러 갔다고 해서
붙여진 닉네임이란다.
올해도 또 가리라....
낫한자루와 포.과일,떡.막걸리.에프킬라.카메라를 넣은 베낭 질끈 동여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