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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기도
1. 목회자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평신도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맡은 직분에 합당치 않습니다. 베르나르두스(중세 프랑스 수도사)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직분은 높은데 영혼은 비천한 것, 지위는 1등인데 삶은 꼴등인 것이야말로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훌륭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는 목회자는 주위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 신실한 목회는 매사에 남달리 기도하는 데 열심을 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목회자는 사역을 집중할 때마다 사역 중이건 아니건 하늘을 잘 겨냥한 화살처럼 자신의 거룩한 소원을 올려 보내며 간구합니다.
하늘 아래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가르침을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목회자일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는 독특한 유혹과 시험과 유별난 어려움과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능자에게 능력을 간구하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시121:1)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얼라인(Aleine)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원래 내가 잘 흔들리고 평정을 잃기 쉬운 편이지만, 늘 해 왔듯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둥지를 떠나 새처럼 안정이 안 되네. 나침반 바늘이 북극을 가리킬 때까지 요동하는 것처럼 말일세.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성도와 더불어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사26:9)라고 말할 수 있네. 내 마음은 자나 깨나 하나님께 있네. 그분을 찾는 것이 내 삶의 사명이자 기쁨이라네.”
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그러한 모습이 바로 여러분의 한결같은 삶의 방향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회자로서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크든 작든 목회 직분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고서 은밀한 기도 생활을 태만히 한다면 여러분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불행해집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책망받을 것이며 언젠가 수치와 욕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신인 여러분께 은혜의 보좌는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늘의 궁정에 친밀할수록 여러분은 맡은 소명을 더 잘 완수할 것입니다. 목회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은혜의 보좌에서의 친밀한 교제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회자가 준비 과정이라는 녹로를 도는 동안, 위대한 토기장이이신 그분께서 그릇을 빚으시는 방편입니다. 우리는 은밀한 기도를 통해 자라고 강건해지며 모든 것을 이기게 됩니다.
2. 기도는 능력 있는 설교의 비결이다
1) 설교를 준비할 때 기도해야 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기도는 가장 유능한 조력자입니다. 기도는 정신적 활동 면에서 머릿속에 온갖 설교의 소재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설교 주제를 선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우리 영을 고도로 집중시킴으로써 우리 마음의 눈을 씻겨 하나님의 빛 가운데 진리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설교 본문은 기도의 열쇠로 열지 않으면 그 보화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간구할 때 얼마나 놀랍게 책들이 열렸습니까! 은밀한 골방이야말로 최고의 공부방입니다. 기도는 그분께 직접 호소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본문의 핵심으로 스스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벌레가 껍질을 뚫고 단단한 열매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씀을 거룩하게 섭취함으로써 말씀 속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도는 묵중한 진리를 들어올릴 지렛대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다 보면 종종 어둠이 빛으로 바뀝니다. 거룩한 성소에서 끈기 있게 간구하다 보면 어느덧 베일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합니다. “주여, 더 많은 빛을!” 이것이 바로 말씀을 배우는 여러분이 설교를 준비할 때 해야 할 가장 적절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치 모세가 지팡이로 친 바위처럼 여러분 앞에 놓은 본문에서 신선한 생각의 시냇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캐내며 부지런히 기도의 망치질을 할 때, 새로운 보석 광맥이 눈앞에 놀랍게 펼쳐질 것입니다. 때로는 사방이 완전히 꽉 막힌 것 같다가도 갑자기 새로운 길이 탁 트일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간구로 매달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기도로써 말씀을 뚫는 지팡이로 쓰십시오. 그러면 생명수 샘이 말씀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
가장 탁월하고 경건한 분들도 기도를 설교 준비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맥체인 목사님에 대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주일에 성도들에게 뭔가 수고로 얻어 낸 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급한 이유가 아니면 사전에 많은 기도와 묵상을 하지 않고는 성도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성도들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회는 먼저 자신의 영혼을 성결하게 했던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사역은 변함없이 자기 영혼을 준비하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설교하는 동안에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설교를 전할 때 큰 도움을 줍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산에서 이제 막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만큼 설교하기에 안성맞춤인 경우가 없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과 씨름한 사람만큼 성도들에게 호소력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라인(Aleine) 목사님은 이런 평을 들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기도와 설교에 쏟았다. 그의 기도와 설교는 애정이 넘치고 거룩한 열심과 생명과 활력으로 가득해서 회중을 압도했다. 그는 회중을 감동시켜 가장 완악한 심령도 누그러뜨리고 위로하며 때로는 녹였다.” 그의 마음이 먼저 부활하신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로 의의 태양이신 그분의 뜨거운 햇살을 받지 않았다면 이처럼 거룩하게 심령을 녹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가식이 없고 애정으로 충만한, 참으로 감동적인 설교는 오직 기도에서 나옵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심만한 웅변술은 없으며, 십자가 아래 외에는 그 웅변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는 없습니다.
인간의 방식대로는 기도 때문에 말주변이 늘지는 않겠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기 때문에 말에 참된 능력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언변이라는 말의 참뜻이 아니겠습니까? 기도만이 여러분의 제물 위에 하늘의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께 열납되었음을 보여 줄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는 동안 기도의 응답으로 신선한 생각의 샘이 자주 터져 나오듯, 설교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의지하는 설교자라면 대개 자신의 가장 새롭고 탁월한 생각이 미리 생각해둔 것이 아니라, 천사의 날개를 타고 날아온 것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손길이 갑자기 가져다 준 뜻밖의 보화요, 몰약 산에서 떠내려 온 천국에 핀 꽃들의 씨앗입니다.
사도들이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할 때 불의 혀가 그들 위에 임했듯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스랍 천사의 능력이 임한 것처럼 되살아날 것입니다. 무겁게 질질 끌던 여러분의 병거에 불붙는 바퀴가 달리면서 하늘의 말들이 순식간에 여러분의 불 병거를 끌고 올라가 마침내 여러분은 엘리야처럼 불붙는 영감의 황홀경 속에 승천하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3) 설교 후에도 계속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설교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밤새 침상을 이리저리 뒤척인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시 강단으로 달려가 너무나 냉랭하게 내뱉은 말들을 다시 한 번 더 열정적으로 토해 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자백하고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성령께서 방해받으시지 않도록 열렬히 간구하지 않으면, 어디서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설교 후의 기도로 영혼의 위로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심지어 그들을 설복시켜 구원받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애통해하며 주님이 나서 주시길 간구할 수는 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이같이 결심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렘13:17). 때가 되면 울며 간구한 자는 기쁨으로 영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끈질긴 몸부림과 참된 열매 맺음 사이에는 산고와 출산의 관계, 눈물로 씨 뿌림과 기쁨으로 거둠의 관계와 같은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브레이너드의 일기에 이런 기록을 보면 그가 열매 맺은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4월 25일 주일. 오늘 아침 경건 생활에 2시간 정도를 할애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평소보다 더 몸부림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햇빛도 전혀 안 비췄는데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여러분, 기도의 사람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재능은 없어도 기도로 충만하다면 여러분은 재능 없이도 사역을 충분히 잘 감당할 것입니다. 뿌린 것들을 놓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러분은 그런 일을 기대할 자격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여러분의 심령에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설교를 마친 후에도 하나님의 참된 사역자라면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성도를 보십시오. 몸이 아픈 성도도 늘 있고, 영혼이 아픈 성도는 더 많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분도 있고, 찾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낙심한 분들도 많고, 침체됐거나 슬픔에 빠진 성도도 많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된 목자라면 그들을 위해 간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만이 여러분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과 열방이 다 여러분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에 강한 사람은 조국을 지키는 불의 성벽이요, 수호천사요, 방패일지도 모릅니다.
3. 기도는 목회 성공의 비결이다
기도를 소홀히 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관심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의 소명조차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습니다. 한 영혼의 가치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영원의 의미도 따져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단지 제사장 직분에 뒤따르는 떡고물이 탐나 강단을 선택한 삯꾼 목자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싶고 하나님의 칭찬에는 관심 없는 위선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은 흙을 깊이 갈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사람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많든 적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들만큼 기도에 소홀한 편은 아니라 해도 그것으로 위로를 삼아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중에 조셉 얼라인 목사님과 비교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의 부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건강할 때 항상 새벽 4시나 그 전에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대장장이나 다른 일꾼들이 일터로 가는 소리를 들으면 ‘이 부산한 소리만 들으면 나 자신이 참 부끄럽소. 내 주님이 저들의 주인보다 더 존귀함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괴로워하곤 했다. 4시부터 8시까지 기도와 경건한 묵상과 찬송을 했고 그 시간을 아주 즐거워했다. 또 가족들과 있을 때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매일 그렇게 했다.
우리가 간구를 게을리해서 놓친 복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기도로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살았더라면 바뀌어 있을 우리 모습과 비교할 때 지금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헛된 후회와 추측은 소용없지만 고쳐 보려는 진지한 결심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단지 더 기도해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목회 성공의 비결은 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4. 기도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는 비결이다
기도가 목회에 미치는 한 가지 큰 복은, 하나님에게서 온 이슬이며, ‘거룩하신 분의 기름 부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름 부음을 쉽게 표현하려면 얼마나 고민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교자도 그것이 있을 때를 알 수 있고 회중도 그것이 없을 때를 곧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설교는 기근이 들었을 때의 사마리아 땅, 그것이 가득한 설교는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사25:6)들로 연회가 벌어진 예루살렘에 각기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해 뜨는 곳에 진주처럼 영롱한 이슬방울이 풀잎마다 가득 맺혀 있을 때의 아침의 신선함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부음의 신비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남에게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5. 기도는 영적 충만의 비결이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 조용히 엎드려 보낸 시간이야말로 기운을 북돋우는 데 가장 좋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삼하7:18). 이렇게 거룩하게 앉아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햇빛을 받는 활짝 핀 꽃처럼, 이미지를 수용하는 감광판처럼 마음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6. 기도를 위한 특별 시간을 떼어 놓아야 한다
목회가 안정되면 따로 일정을 잡아 경건의 시간을 보내시길 진지하게 권합니다. 일상적인 기도로는 영혼에 신선함과 활력이 지속되지 않고 영적으로 침체된 느낌이 든다면 한 주나 가능하면 한 달이라도 혼자 지내십시오. 때때로 휴일도 있는데 걸구한 날을 자주 갖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은 시간을 내서 예루살렘 성지순례도 다녀온다는데, 천성에 가는, 덜 힘들고 훨씬 더 유익한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안 됩니까?
한때 프레스턴에서 목회했으며 유명한 책 『예수를 바라보라』를 쓴 아이작 암브로스(1604-1664) 는 가스탱에 있는 숲 속의 한 오두막에서 항상 매년 한 달씩 혼자 지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정기적으로 산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냈으니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된 것이 당연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소위 ‘피정(Retreats)’이라는 시간을 갖는 데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 때는 여러 사제가 잠시 일상에서 물러나 완벽한 정적 속에서 영혼에 열심을 불어넣기 위해 온 시간을 기도와 금식으로 보냅니다. 대적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가끔 정말로 영적인 형제들끼리 하루 이틀 정도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목회자들만 모이면 다른 일행과 섞여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경건과 기도의 시간도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동참한다면 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저희 타버나클 교회의 금식 기도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늘 문이 그 때처럼 활짝 열린 적이 없습니다. 심령이 하나님의 영광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습니다.
선원이 육지에 닿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듯 저도 우리가 특별한 경건의 달을 갖기를 고대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기도할 여유를 갖기 위해 공적인 사역을 잠시 접어 두더라도 교회에는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묵상이라는 황금의 강으로 항해를 떠나면 거룩한 감정과 고매한 사고라는 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옛날 제롬(345?-419? 라틴 교부이자 성서학자)이 하늘에서 부르심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른 급한 일들을 다 내려놓았을 때 했던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누구라도 선망할 만큼 많은 성도를 거느렸지만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약 성경을 번역해야 하므로 다른 설교자를 찾아보십시오. 저는 번역을 마쳐야 합니다. 광야로 가서 이 일을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원고를 가지고 멀리 떠나 기도하며 수고한 끝에 라틴어 불가타 역 성서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세상 끝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가장 탁월한 성경 번역본 중 하나입니다. 공부와 조용한 기도 생활이 결합해 그렇게 불멸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듯이 우리도 때때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낄 때 성도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홀로 영혼을 새롭게 하러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얻을 유익은 곧 분명해질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