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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글을 보는 눈, 무엇이 문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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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섭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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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말의 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라말(국어)이란 겨레가 살아가는 속에서 땀방울처럼 스며 나와 구슬로 맺힌 겨레말과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린 들온말(외래어)을 아울러 일컫는다. 곧, 겨레말과 들온말이 모두 다 나라말이다. 우리말 속에는 대충 예순 몇 나라의 말이 들온말로 뿌리내리고 있는데 '가마니, 구두, 냄비, 고구마, 입장, 정종, 세탁' 따위는 닙뽕(일본) 말에서, '사둔, 메주' 따위는 만주 말에서, '(대청)마루, 보라(색), 미수(가루), 꼭두(각시), 조랑말, 송골매' 따위는 몽골 말에서, '담배'는 포르투갈 말에서, '택시, 버스'는 잉글리시(영국 말)에서 들어온 말이다. 이 밖에 이런 저런 많은 한자말이 들온말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아비들(조상)이 수천 년 동안 한문을 써 왔다는 것과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열에 일고여덟이 한자말이라는 것을 내세워 한자말도 우리말이라고 우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에 한 줌도 안 되는 양반들이 한문으로 글자살이(문자 생활)를 해 오긴 했지만, 수천 년 동안 양반이나 상사람이나 한결같이 겨레말로 말살이(입말)를 해 왔다. 한문으로 글자살이를 하는 것과 한자말로 말글살이(언어 생활)를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우리가 정작 한자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부터이니 겨우 백 년 안팎이다. 우리말은 누구나 다 말소리만 듣고도 뜻을 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한자말에는 우리말 속에 녹아들어 말소리로 뜻을 알 수 있는 들온말도 있지만 글자를 보지 않고서는 뜻을 알 수 없는 말도 있는데, 이때 들온말을 뺀 나머지 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그것이 중궈(중국) 고전에 나온 말이든 닙뽕에서 들어온 말이든 우리 한아비가 쓰던 말이든 요즘 새로 짜깁기한 말이든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말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니 한자말이 우리말로 보이는 것이다.
2. 글자만 보이고 말은 안 보인다
한글만 쓸 것인가 한문 글자도 섞어 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십 년 넘게 입씨름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글살이를 갈고 닦고 펼치는 일과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하루바삐 풀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풀릴 낌새는 보이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오십 년이 더 지난다 해도 풀릴 것 같지 않다. 그 까닭은 우리 말글을 보는 눈길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정작 보아야 할 말 쪽은 보지 않고 글자만 보고 있으니 마치 하늘에 뜬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과 똑같다. 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에 앞서 어떤 말을 쓸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말을 쓸 것인가를 명토(지정)박으면 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는 저절로 풀리게 마련이다. 잉글리시(영어)를 나라말로 쓰겠다면 로마 글자를 써야 하고, 중궈 말(중국어)을 쓰겠다면 한문 글자를 쓰면 된다. 잉글리시도 아니고 중궈 말도 아닌 우리말을 쓴다면 한글로 쓸 수밖에 없다. 로마 글자나 한문 글자로는 우리 말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없고, 억지로 담는다 해도 처음 말소리가 그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란 사람의 생각과 뜻과 느낌을 담은 말소리이고 그 말소리를 담는 연모가 글자다. 글자는 말소리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끄집어내었을 때는 처음 담을 때와 똑같은 말소리가 나와야 한다. 우리 말소리를 어느 글자에 담을 것인지는 어느 말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어떤 말을 쓸 것인가는 제쳐놓고 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에 매달려 있으니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힘을 기울인다 해도 풀릴 턱이 없다.
3. 국어만 보이고 나라말은 안 보인다
'국어 사전, 국어 교육, 국어 교과서, 국어 사랑' 따위 '국어'만 보이고 '나라말'은 안 보인다. 한자말인 '국어'는 말소리만 듣고도 누구나 뜻을 알 수 있을 만큼 나날말(생활 용어)로 뿌리내린 말이므로 굳이 '나라말'로 바꿀 까닭이 없고 누가 뭐래도 고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왜놈 종살이 때 '국어 상용'에서 보듯이 '닙뽕 말'이란 뜻으로 받아들인 '조선 왜말(닙뽕 한자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말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훈민정음 서문'에서 '나랏말씀'이라 밝혀 놓았으니 굳이 '나라말'로 고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이름은 성질과 쓰임새를 나타내는 어떤 것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그 무리를 아우르는 벼리가 된다. '국어'라는 이름이 우리말의 벼리가 되면 벼리에 코가 꿴 그물은 한자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또래는 또래끼리 무리를 이루게 마련이다. '나라말'을 '국어'라 하면 '겨레말'은 우리 말살이에서 밀려나고 이로써 온갖 한자말이 우리말 안방을 차지하는 빌미가 된다. 국어만 보고 나라말을 보지 못하는 눈에는 한자말만 보이고 겨레말은 보이지 않는다. '국어'라는 한자말은 여느 한자말과 달리 엄청나게 큰 힘으로 겨레말을 벼랑으로 몰아낸다. '국어'를 버리고 '나라말'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말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4. 한자말만 보이고 겨레말은 안 보인다
한자말을 버리면 말글살이(언어 생활)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쓰고 싶어도 겨레말이 없기 때문이라 하는데 모르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찾아 보면 한자말을 대신할 겨레말이 얼마든지 있다. '국어 사전'에도 많이 실려 있고 입말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오천 년 동안 겨레말로 말살이를 해 온 우리 겨레다. 겨레말이 없을 까닭이 없다.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또렷이 보이지만 보고 싶지 않는 것은 눈앞에 갖다 대어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나날살이(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열에 여덟이 한자말이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한다. 한자말과 뜻이 같은 겨레말이 골고루 다 있건만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외로 돌리고 한쪽 눈을 감고 있으니 안 보이는 것이다. '부친, 가친, 엄친, 대인'은 눈에 확 띄는데 '아버지'는 안 보인다. '모친, 자친, 자당, 대부인, 훤당'은 잘 보이는데 안방에 계신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 사랑, 해, 바다'가 '인간과 인류, 총애와 사모, 태양과 금오, 해양과 대양'으로 보이는 것은 눈길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5. 한자말은 높아 보이고 겨레말은 낮아 보인다
나라 말글을 얕잡아 보고 헐뜯는 버릇은 어제오늘에 비롯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양반들과 벼슬아치들은 한문 글자를 '참글(진서)'이라 하고 한글을 '쌍스러운 말을 담는 글자(언문)'라 했다. 겨레말은 촌놈 무지렁이들이나 쓰는 천한 말(저급어)이고 문자(한문 글귀)야말로 양반이 써야 할 훌륭한 말(고급어)이라 했다. 예나 이제나 힘 센 나라에 빌붙어 눈치나 보는 무리들은 제 나라와 나라말을 얕잡아 보아 짓밟아 버리려 안간힘을 다 한다. '시집살이, 머슴살이, 피난살이, 곁방살이'처럼 겨레말인 '살이'는 천하고 좋지 못한 일에 쓰고, '문화 생활,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언어 생활'처럼 한자말인 '생활'은 아주 좋은 일에 쓴다고 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 같아도 흠이 되는 법이다. 내 것은 어쩐지 천하고 낮게 보이고 남의 것은 왠지 모르게 훌륭하고 높아 보이니 억지로라도 한자말만 가려서 쓰고 겨레말은 토씨만 쓴다. 사람과 인간을 한뜻말(동의어)로 쓴다. 하지만 사람은 천하고 낮은 말로 보이고 인간은 높고 훌륭한 말로 보인다. 이런 눈을 바로잡아야 한다.
6. 서울사람만 보이고 시골사람은 안 보인다
대중말(표준말)을 가리는 잣대는 '오늘날, 교양 있는 사람이 쓰는 서울말'이다. 흔히, 든사람(지식층)과 난사람(지도층)을 된사람(교양인)이라 하는데 된사람의 뜻매김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분들이야말로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거의 다 우리말 속에 한자말과 서양말을 섞어 쓰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남의 말투, 틀린 말투(외국 어법)를 자랑삼아 퍼뜨리는 사람들이다. 이분들이 쓰는 말씨만 바로잡아도 우리말이 훨씬 깨끗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말하고 있다. 대중말은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모든 겨레가 두루 알고 쓰는 우리말이라야 한다. 서울말도 그렇다. 이제 서울 토박이를 가려낼 수도 없거니와 서울말을 찾아낸다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가 써야 할 말이 서울말에 모두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사람이라고 바른 우리말만 쓰는 것도 아니다. 이 따위 잣대로 대중말을 마름질한다는 것은 우리말을 죽이는 짓이다.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이나 다 이 땅에서 숨쉬고 일하고 살아가는 우리 나라 사람이다. 대중말은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이나 '오늘날, 나라 안 모든 곳에서, 여러 사람이 두루 쓰는, 올바른 우리말'이라 해야 한다.
7. 겨레말은 사투리로 보이고 한자말은 대중말로 보인다.
걸핏하면 대중말을 쓰라고 한다. 하지만,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쓴다. 새로 만든《표준 국어 대사전》(국립 국어 연구원)에는 오십만 낱말이 실려 있지만 이 가운데서 대중말로 가려잡은 말은 기껏 만 낱말이 채 안 된다. 그것도 모두 겨레말이다. 한자말은 한 번도 대중말을 가려낸 적이 없으니 하고많은 한자말이 모조리 대중말로 올라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를 되찾은 뒤 곧 바로 일어난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과 그 뒤 오십 년 넘게 많은 분들이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하면서 잘못 쓰는 말이라고 찾아내 보인 온갖 쓰레기 말들이 버젓이 대중말로 실려 있다. 이러니 대중말을 가려 쓸 아무 잣대가 없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겨레말은 사투리로 보고 한자말은 대중말로 보는 눈을 나무라기도 어렵다. 이제라도 말모이 책을 펴놓고 첫 장, 첫 올림말부터 모든 한자말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나라말로 쓸 말과 버려야 할 말로 갈라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데는 프랑스에서 하고 있는 말글 정책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국제 프랑스 말 센터'(1967)에선 갈말(학술어), 솜씨말(기술 용어) 따위 '전문 낱말'과 맞춤법을 갈무리하고, '프랑스 말 낱말 연맹'(1980)에선 새말(신조어)을 만들어 내고, '프랑스 학술원'(1685)에선 들온말(외래어)과 말 다듬기, 틀린 말 바로 잡는 일을 맡아 한다. 우리 나라에 국립 국어 연구원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을 없애거나 쪼개서 우리말을 갈고 닦는 몇 가지 모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8. 잉글리시만 보이고 겨레말은 안 보인다
우리말은 겨레 얼(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보금자리요, 겨레의 바른 생각(민족 정론)이 피어나는 바탕이다. 겨레 줏대(민족 주체성)가 서 있는 자리요, 겨레 기운(민족 정기)이 자라는 텃밭이다. 나라말이란 국제화 시대엔 한문 글자를, 세계화 시대엔 로마 글자를 쓰고, 서쪽 바람이 불면 잉글리시를, 동쪽 바람이 불면 닙뽕 말을 써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마땅히 한국말을 나라말로 삼고 우리 글자인 한글로 글자살이를 해야 옳다. 잉글리시를 나라말로 삼아서도 안 되고 한문 글자를 섞어 써도 안 된다. 서양말을 나라말(공용어)로 하자는 것은, 삼베 치마 저고리를 입은 우리 엄마 대신에 젊고 돈 많은 서양 여자를 새어머니로 모시려는 것과 같다. 서양 여자라고 언제나 젊고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서양 여자가 늙으면 그때는 또 어느 나라 여자를 새어머니로 안방에 앉힐 것인가? 예나 이제나 제법 배웠다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뒤설레를 놓는다. 보통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눈 먼 망아지 요령 소리 듣고 따라 가듯 한다. 일찍이 중궈를 상전으로 섬길 때는 사람 이름, 땅 이름을 한자말로 바꾼 것도 배운 사람들이고 왜놈을 주인으로 모실 때 '국어 상용'과 성씨와 이름마저 왜놈을 따르라고 떠든 사람들도 모두 많이 든사람, 난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든사람, 난사람들이 나서서 서양말을 나라말로 쓰자 하고 이름도 서양말로 짓는다고 법석이다. 대학 총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서서 잉글리시를 나라말로 삼아야 한다고 하고, 대통령과 그에 버금간다는 사람들이 이름을 'JP, YS, DJ'로 고쳐 자랑삼아 쓰고, 손꼽히는 회사들도 세계화한답시고 많은 돈을 들여 'LG, SK, KT, KB' 따위로 이름을 고치니, 이에 뒤질세라 구멍가게마저 이름을 바꾼다고 법석이다. 앞으로 미국이 세계 제국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하다.
9. 서양말은 세계화로 보이고 겨레말 국수주의로 보인다
우리가 참으로 세계화하려면 우리말과 우리 글, 우리 역사와 우리 문화를 다른 나라에 알리고 가르치는 데서 비롯해야 한다. 잉글리시를 배워서 나라말로 쓸 것이 아니라 우리 말글을 온 누리 모든 나라에 가르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말과 글을 쓰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글자가 없는 나라에 한글을 나라 글자로 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도 아니다. 한국의 태권도가 온 세계에 널리 퍼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다. 프랑스에서는 6000명이 넘는 프랑스 말 선생을 120개가 넘는 다른 나라에 보내어 프랑스 말과 문화를 가르치고, 닙뽕에서도 해마다 많은 돈을 들여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학교 교사와 학생을 불러들여 닙뽕 말과 닙뽕 문화를 가르친다. 요즘에는 서양 여러 나라에도 '닙뽕 문화원'을 만들어 저희 문화를 알리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국제화, 세계화란 중궈 닮기, 닙뽕 본받기, 미국 흉내내기가 아니다. 우리말을 버리고 남의 말을 닮고 본받고 흉내내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종살이로 떨어지는 길이다. 우리말을 갈고 닦아 알뜰살뜰 갈무리하여 널리 온 누리에 펼치는 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화로 뛰어오르는 발판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느니라."-《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말이다.
10. 세계화만 보이고 한국화는 안 보인다
난사람, 든사람들은 한자말을 써야 똑똑한 사람이고 서양말을 모르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잇속에 밝은 장사꾼들이 한통속이 되어 풀무질을 하고, 정부에서도 덩달아 맞장구를 치니 겁에 질린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뒤질세라 젖먹이 코흘리개한테도 잉글리시를 가르치고, 한문 "고사 성어"를 외라고 다그친다. 쓸데가 있는 사람은 한문 글자나 한문(중국 옛글)도 배우고 잉글리시(영어)도 익혀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랍 말글도 배워야 하고 아프리카 두메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배우고 익힌 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연구할 때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릴 때 써야지 제 자랑을 하려고, 못 배운 사람들 기죽이려고 쓴다면 차라리 배우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 말글살이에 한문 글귀 한두 마디, 서양말 한두 마디 섞어 쓰는 것은 잘난 것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다. 속이 빈 사람이 하는 짓거리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폴란드, 인도네시아 같은 앞서고 뒤진 여러 나라에선 반드시 제 나라말을 제 나라글자로 쓰도록 하고 이 법을 어기면 무거운 벌을 준다. 우리 나라도 '한글 전용법'(법률 제6호)에 '모든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고 밝혀 두었지만 이 법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큰소리치고 대접을 받는다. '한글 전용법'을 없애자고 국회에 '청원'을 하고, 한글만 쓰기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헌법 소원'을 내기도 한다. 세계화만 보이고 한국화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남의 말을 공용어로 하고 여러 나라 글자를 말글살이에 섞어 쓰면,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를 아래윗물지게(분단) 하여 끝내 겨레가 둘로 나뉘고 만다. 이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한글 전용법은 우리 말글을 지키는 마지막 버팀목이고 겨레를 하나로 묶는 거멀못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도 '한글 전용법'에서 '다만, 얼마 동안 한자를 병용한다.'를 '우리 말글을 쓰지 않으면 벌을 준다.'고 고쳐야 한다. 법을 어기면 마땅히 벌을 주어야 한다. 세계화도 좋고 국제화도 좋다. 하지만 한국화가 먼저다.
마무리. 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사람은 말로써 살아간다. 말이나 글을 모르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우리 나라 안에서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우리말보다 더 종요로운 것은 없다. 말이란 삶이고 문화고 목숨이다. 마음과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이고 가슴과 가슴을 하나로 묶어 주는 거멀못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란 온 누리 모든 겨레가 저마다 다른 제 빛깔과 제 목소리를 내면서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지 똑 같은 얼굴, 똑 같은 목소리로 닮아 가는 것이 아니다. 남을 보기에 앞서 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 [ 한글새소식 2002년 2월호에 실은 글을 옮김] |
첫댓글 윗글에서 말씀하신, "세계화만 보이고 한국화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