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물 두 살에 중국집 종업원 생활을 끝냈다. 화교에게 착실하게 배운 요리 실력과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자신을 믿고 단돈 150만원으로 중국집을 시작했다. 이문동 <동해루>, 용산 <남문각>, 대흥동 <동해루>를 거쳐 82년 마포 <현래장>을 인수했다. 한국전쟁 이래로 화교 부부가 운영하던 집이었다. 남편이 타계하자 부인이 음식점을 처분한 것.
당시 <현래장> 인근에는 마포아파트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한동안 살던 고급아파트였다. 고급 요리와 자장면을 주문하는 아파트 주민이 많았다. 휴일에 여의도광장을 찾은 사람들도 마포대교를 건너 <현래장>을 찾았다. <현래장> 자장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주씨는 "당시엔 4대문 안의 자장면 맛과 다른 지역의 맛이 달랐는데, 우리는 채소를 많이 넣고 물을 적게 넣는 4대문 안 방식대로 자장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불을 지키는 것이지요." 주씨의 말이다. 예전에는 하루에 연탄을 100장 이상 썼는데, 잘 때도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인수할 당시 식탁 7개, 방 3개였던 <현래장>은 그동안 7차례 변신을 했다. 불어나는 손님을 맞기 위해 뒷집 한옥, 옆집 양복점과 인쇄소, 빈대떡 집 등을 속속 <현래장>으로 편입시켰다. 현재는 이 지역 재개발사업 때문에 불교방송국 지하로 자리를 옮겼다. 280평에 300석 규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