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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구조}
사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승원(僧院)과 당(堂)입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당이라는 것은 불상을 봉안한 불당이나 법당 뿐만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과 강당 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당은 불상을 봉안하고 불교의 각종 행사를 봉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강당은 경과 율을 강설하고 연구하는 장소입니다.
사찰의 의미
우리들은 절이라고 하면 맑은 물이 흐르는 산 속 깊은 곳을 떠올리게 됩니다.
맑은 물소리와 어울려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고요히 잠자던 풍경을 흔들고 그 소리가 은은히 번져가면 도량석을 도시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산사를 깨우고….
이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절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보면 절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발걸음 닿는 가까이에 있는 도심속의 절을 찾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하고 앉으면 마음이 고요해 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절은 어떠한 곳일까. 절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곳이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법음을 듣는 곳입니다. 절은 범어로 비하라(vihara)라고 하고 비하라(毘訶羅)라고 음역하며,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주처(住處), 유행처(遊行處) 등으로 번역합니다.
인도에 있어서 최초의 절은 죽림정사(竹林精舍)라고 합니다. 죽림정사는 중인도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죽림정사에서 기거하며 수행과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했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절은 그 이전에서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성불하신 그리고 설법하시고, 열반을 보이신 4대 성지가 모두 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불교 교리에서 보면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고 그 진리를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보이셨던 분이고, 스스로 진리를 구현하신 분이기 때문에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합니다. 법신불은 온 세상에 불법이 두루 미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인 불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예경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하여 부처님을 형상화하여 일정한 장소에 봉안하고 그 곳에 찾아가 스님들로부터 부처님의 법을 들으며, 예불을 올리는데 그곳이 바로 절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 이전에 인도에는 우리가 절이라고 부르는 정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인도의 수행자들을 사문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시기 전부터 있었던 사문들은 정해진 곳에서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고행을 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부처님은 미혹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셨습니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위하여 최초의 설법을 하신 후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을 향하여 떠나셨습니다. 그 당시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은 부인 베데이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후, 부처님과 제자들이 거처할 곳을 짓기로 마음 먹고 왕사성 북쪽 교외에 있는 가란타 장자의 소유인 죽림(竹林)을 희사받아 그곳에 집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불교의 역사상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인 것입니다.
이 정사 중에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당시부터 이름난 곳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천축5정사(天竺五精舍)라고 하는데 기수급고독정사, 축령정사, 미후강정사, 죽림정사가 그것입니다.
또한 범어 상가라마(samgharama)라고도 하는데 승가람마(僧伽藍摩), 가람(伽藍)이라 음역하고, 중원(衆園)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정사(精舍)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중원이라는 말은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사부대중이(四部大衆)이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정사나 상가라마가 상가(僧伽)의 거주처이지만, 정사는 주로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신 곳을 말하고, 상가라마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그의 제자들만이 거처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절이나 사찰의 이름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인도에 있어서는 절이라고 하는 곳을 정사나 가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원(寺院)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도에서 정사나 가람(상가라마)이라고 불리던 것이 중국에 들어 오면서 사(寺)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자(漢字)의 사(寺)는 공공기관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寺)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이전에 관아에 붙여 쓰던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寺)로 불리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후한명제(後漢明帝) 연평(永平) 10년(67)에 인도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라는 두 스님이 흰말에다 장경(藏經, 경전)을 싣고 후한의 서울인 낙양(洛陽)에 왔다고 합니다. 그 때 후한에서는 두 스님이 외국인이므로 관례에 의해 외국인을 위한 외무부 소속 관아(官衙)인 홍려사(鴻廬寺)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두 스님이 계실 마땅한 곳이 없어 그대로 그곳에 머물도록 하면서 홍려사라는 이름을 두 스님이 타고 오신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 사찰의 효시라고 합니다.그 뒤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僧伽)들의 거처를 사(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원(院)이라는 말은 원래 주위에 둘러친 담을 말하는데 이것이 변하여 주원(周垣), 회랑(回廊)이 있는 건물을 의미했으며, 관사의 이름에도 쓰였다고 합니다. 당나라 시대에 칙명에 의하여 대자은사(大慈恩寺) 등에 번경원(번經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불교와 관련된 건물에 원(院)이라는 이름을 붙인 효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시대에는 날에서 세운 큰 사찰에 원호(院號)가 붙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寺)를 절사(寺)라고 읽는데 절은 오로지 불교의 가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절(寺)은 흔히 절에 가면 절(拜禮)을 많이 해야하므로 절(拜)이라고 한다고 하고, 일본이인 지은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오게 한 것으로, 2년 뒤에는 다시 진(晉)으로부터 아도(阿道)가 들어와 다음해 2월 나라에서는 성문사(省門寺, 또는 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있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가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신라에서는 제19대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모례는 원래 국어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털례의 집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털례의 집은 가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털례가 절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사(寺)를 일컫는 데라(寺)도 털례에서 변천된 것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사찰의 구조-전각/문/요사/탑
사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승원(僧院)과 당(堂)입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당이라는 것은 불상을 봉안한 불당이나 법당 뿐만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과 강당 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당은 불상을 봉안하고 불교의 각종 행사를 봉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강당은 경과 율을 강설하고 연구하는 장소입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사찰구조는 탑을 중심으로 건축물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건축물들의 이름은 그곳에 모셔진 부처님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사찰은 부처님의 존상을 봉안하고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며 모든 불자들의 수행과 전법의 중심이 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찰의 규모에 따라 사찰, 절 또는 암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나라 전통의 사찰 구조는 탑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거나 주요 건축물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그 각 전에 모셔진 불상에 따라 그 전(殿)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대웅전(大雄殿)․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은 선종(禪宗) 계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시는 본당(本堂)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큰 힘이 있어 사마(四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님의 덕호(德號)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한 분만 모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좌우에 협시(脇侍: 좌우에서 모시고 시중드는 보살)보살을 두고 있습니다. 협시보살을 함께 모시는 경우,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로 봉안하는 것이 우리 나라 사찰의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협시 보살은 부처님보다 격이 한층 낮은 분이기는 하지만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입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왼쪽에 있는 보살로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보살이라고 합니다. 지혜를 나타내는 여의주나 칼, 청연화를 들고 있으며 청사자를 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보현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로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상징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도우며 특히 중생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연꽃을 들고(연꽃 위에 경책을 얹기도 합니다) 흰 코끼리를 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기 때문에 탱화도 석가모니후불탱화를 봉안한다고 합니다. 탱화는 벽 같은 곳에 걸도록 하는 그림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그림에서 족자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애용되던 것이 탱화이며 전국의 사찰에서 이 탱화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후불탱화에는 좌우 협시보살로서 문수, 보현보살 또는 제화갈라, 미륵보살을 모시며 순서에 따라 10대 제자를 모두 배치하기도 합니다. 투타제일의 대가섭, 다문제일의 아난, 지혜제일의 사리불, 해공제일의 수보리, 설법제일의 부루나, 신통제일의 목건련, 천안제일의 아나율, 논의 제일의 가전연, 지계제일의 우바리,밀행제일의 라후라 등 10대 제자를 모두 조성하고 있는데, 가섭은 노인의 모습으로 흰 눈썹을 다서 길게 그리며, 아난과 라후라는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좌우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존상을 표현할 때는 불․보살의 몸은 금색이나 황색을 주로 사용하고 대범천왕, 사천왕, 8부금강, 8부중 등 기타 여러 존상들은 그 존상의 특성에 따라 피부색을 다양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손에 드는 지물이 없고 별다른 수인을 취하지 않는 경우에는 합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웅전(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법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대웅보전에는 대웅전과는 다르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삼존(三尊) 모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경우에는 그 부처님을 삼존불(三尊佛)이라고 합니다. 협시 보살과는 달리 세 분 부처님은 격의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똑같이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존불의 좌우에 다시 협시보살을 두어 불단(佛壇)을 장엄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세불(三世佛)을 모시는 대웅전도 있는데, 삼세불이란 현재.과거.미래 세계의 부처님을 말하며 이분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신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세계를 대표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왼쪽에 미래를 대표하는 미륵불(彌勒佛)을 오른쪽에는 과거를 대표하는 정광불(定光佛, 연등불이라고도 하는데 오랜 예날에 출현하여 석존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중생을 재도하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말합니다. )을 모시게 됩니다.
또한 대웅전에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신불이란 법신불(法身佛, 영원 불변의 진리를 몸으로 한 부처님), 보신불(報身佛, 오랜 수행의 과정을 거쳐 얻은 무궁무진한 공덕을 몸으로 한 부처님), 화신불(化身佛,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부처님의 몸)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따라 법신불로 비로자나불(昆盧庶那佛)을 모시고, 보신불로 노사나불(盧舍那佛)을 화신불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봉안하는 것이 대부분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삼신불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은 화엄사상을 중요시하는 사찰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찰에 따라 시대에 따라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에 모시는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같으나 좌우에 모시는 보살이나 부처님 등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영산전․ 팔상전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하여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또는 500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나누어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으로,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좌협시 미륵보살을 모시고, 우현시에 제화갈라보살(본래 정광불, 또는 연등불 여래라고 하며 아득한 과거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에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까지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마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전, 대광명전)
비로자나불(毘盧慈那佛)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대광명전이라고 합니다.
안에는 보통 비로자나불 뿐만 아니라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것이 보통인데 대웅전과는 달리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안치하고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엄전이나 '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 한 분만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현상 세계에 나타난 모든 부처님의 원래의 모습인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을 뜻하는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법신 즉 법을 몸으로 하는 광명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법신이란 빛깔이나 형상 등으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근본적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와 인생 삼라만상이 생성 소멸하는 것을 관장하고 우주와 인생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원리와 법칙을 불교에서는 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법을 몸으로 갖춘 부처님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부처님인 동시에 모든 부처님과 삼라만상의 근원인 부처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신인 비로자나불은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서 결가부좌하고 앉아 손으로 지권인[智拳印]을 나타내는 특색 있는 불상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무엇이든 기도하고 갈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셔서 모든 중생을 제도해 준다고 하며,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라는 하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삼신불(三身佛) 중의 한 분인데 삼신불이란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慈那佛)과 원만 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을 일컫는 것입니다. 법(法)은 영겁토록 변하지 않는 만유의 본체, 진리, 원리를 뜻하는 것이고, 신(身)은 쌓이고 모인 것이라는 뜻으로 법신(法身)이란 만유의 본체가 쌓이고 모인 것이므로 형상도 빛깔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불(理佛, 진리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불을 인격화하고 의인화하여 형상화 한 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상입니다.
노사나불을 보신(報身)이라고 하는데 보신이란 과보의 몸이라는 뜻으로 인(因)에 따라 어려운 수행을 견디고 정진한 노력의 결과로 얻은 유형의 불신으로서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에서 화신이라는 말은 응신(應身)이라고 하는데 이는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이를 제도하기 위해서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신불은 본래 다른 것이 아니고 삼신이 일신이고 일신이 삼신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불은 법신과 보신도 함께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에서 만 가지 법이 생기므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뒤에는 화엄[華嚴]의 세계를 그린 비로자나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아미타전(阿彌陀殿)
극락전의 중앙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는데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세계에서 늘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는 부처님이며 이를 상징하는 뜻으로 극락전을 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하고, 또 극락세계에서는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전 [無量壽殿]이라고도 합니다.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한없이 많은 국토를 지나서 한없이 먼 곳에 있는 나라인데 현재도 아미타불이 그곳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없고 오직 즐거움만이 넘쳐 흐른다고도 합니다. 극락세계의 집에는 7겹의 난간과 7겹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무 기둥이 있으며, 그 난간과 기둥은 방울과 금, 은, 유리, 수정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 되어 있고, 네 가지 보석 외에 산호, 노마, 호박을 더한 일곱 가지 보석으로 만든 연못이 있어 그 연못에는 여덟 가지 공덕을 구비한 물과 모래가 깔려 있다고 합니다.
또 하늘에서는 늘 음악이 은은히 들려 오고 땅은 황금색으로 아름다우며 밤과 낮으로 세 번씩 천상에서 향기로운 꽃이 떨어지고, 백조와 앵무새 공작 등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이며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게 되고 착한 일을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질병과 미움과 싸움과 배고픔과 춥고 더움이 없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은 불교인의 이상향입니다. 극락전은 바로 이러한 극락세계를 묘사한 전각이며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전각입니다. 극락세계가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은 보통 동향집이며 참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아득히 먼 옛날에 법장(法藏)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고 합니다. 법장보살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마흔 여덟 가지의 원을 세워 한없이 긴 세월동안 고된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원을 모두 이루어서 극락세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脇侍)보살을 모시는데 관세음보살(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보살이며 병들고 고통 받는 중생 앞에 나타나서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주는 자비의 화신인 보살입니다. 남쪽 바닷가 보타락가산이 처소라고 합니다.)과 대세지보살(지혜의 광명을 놓아 모든 중생을 비추어 삼도를 여의고 위 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로 발을 크게 디디면 3천대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는 큰 힘과 위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정수리에 보병을 얹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후불탱화로는 주로 극락정토를 잘 묘사한 극락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약사전(藥師殿)
약사 여래는 약왕[藥王] 약사유리광 여래[藥師琉璃光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르는데,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라고 합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곳이 바로 약사전(藥師殿)입니다. .
<약사경>에 의하면 그는 동방 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두루 고쳐 주고 중생을 재앙으로부터 구해 주며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보리를 얻게 하는 능력을 가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또 그는 과거 세상에서는 약왕[藥王]이란 이름의 보살이었는데,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보고 그것들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12 가지의 큰 원을 세워서 수많은 세월 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모두 이루어서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약사 여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면 옛 사람들이 괴롭히든 외적의 침입에서도 구제 받을 수 있고 극락 왕생도 이룰 수가 있다고 해서 약사 신앙은 넓고 넓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사 여래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에 널리 유행되었고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신봉불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사전(藥師殿)은 보통 동향으로 짓고 그 안에 약사여래를 모시며 협시불로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 약사 여래의 덕과 광명이 두루 밝다는 것을 밝히는 일을 하며 약사 래가 하는 일을 모두 돕고, 몸은 육색이며 붉은 연꽃 위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과 월광보살(月光菩薩, 약사 여래의 교화를 도우며 모든 중생의 고통을 안락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보살로 몸은 황색이며 왼손 위쪽에 반달형의 청연화를 가지고 있고, 무량 무수한 보살들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을 모시고 있습니다. 두 분 보살 외에도 방대한 약사여래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 궁비라(宮毘羅), 벌절라(伐折羅), 미기라(迷企羅), 안저라(安底羅), 알편라(알偏羅), 산저라(珊底羅), 인타라(因陀羅), 파이라(波吏羅) 마호라(摩虎羅), 진달라(眞達羅), 초두라(招杜羅), 비갈라(毘갈羅)의 열 두 분의 나한(羅漢)을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약사 여래는 이들 나한들의 도움으로 억만 중생의 소원을 모두 들어 주고 그 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약사전의 탱화를 잘 보면 이들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약사 여래상은 보통 선정인(禪定人)을 취한 수인(手印)위에 약함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후불탱화로는 약사 여래가 사는 정토를 그린 동방 약사여래유리광 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대웅전과 같이 닫집을 만들고 천장은 우물 정자형이며 주위에는 연꽃과 비천 등으로 아름답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용화전(龍華殿)․ 미륵전(彌肋殿)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사찰 당우 중의 하나로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미륵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미륵전이라고도 합니다.
용화전 안에는 현재 도솔천에서 설법하며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미륵보살 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하게 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미륵불은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처럼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나 미륵부처님의 서 있는 모습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불탱화로는 용화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는데 이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뒤 3차에 걸쳐 설법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내용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륵 보살은 인도의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부처님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에서 천인들에게 설법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보살이 성불을 하지 않는 네 가지 이유는 국토를 정화하고, 수호하며, 중생을 정화하고, 중생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즉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륵(Maitreya)이라는 말은 원래 친우(mitra)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마이트리아(Maitreya)는 자비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미륵 보살을 자씨 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합니다. 관세음 보살을 대비 보살(大悲菩薩)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륵신앙에는 경전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발전해 왔는데 하나는 ≪미륵상생경≫에 의한 상생신앙이고, 또 다른 하나는≪미륵하생경≫에 의한 하생신앙입니다. 상생신앙은 미륵부처님이 계신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신앙이고, 하생신앙은 미륵부처님이 하루 속히 이 땅에 나타나시기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미륵부처님은 아직은 부처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미륵보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륵전에는 미륵부처님과 협시보살로 법화림보살과 대묘길상보살 혹은 묘향보살과 법륜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천불전(千佛殿, 불조전)
천 분의 부처님을 모셔 놓은 전각을 천불전이라고 합니다.
천불에는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현재 천불을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탱화로 모실 때는 삼천불을 모두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불을 모시게 된 것은 다불사상(多佛思想)의 영향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천불전에는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위시하여 누지불까지 현겁천불을 모시며, 과거장엄겁천불, 현재 현겁천불, 미래 성수겁천불의 삼천불을 모시는 사찰도 있습니다.
원통전(관음전)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 당우 중의 하나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의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전일 경우에는 원통전이라고 합니다.
원통전이란 명칭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 원융통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기 때문에 그 권능과 구제의 측면을 강조하여 원통전이라 한 것입니다. 반면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에 대웅전이 있는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살을 모신 당우로 관음전이 많이 세워지는데 이는 관음이 모든 환란을 구제하는 보살일 뿐만 아니라 관음보살의 서원이 철두철미 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으로 중생을 돕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음전 내에는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은 관음상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나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 보관위에 11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십일면관음, 그 밖에 해수관음, 백의관음, 용수관음,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합니다.
후불탱화로는 양류관음도, 백의관음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등 모셔진 관음상의 모습에 따라 후불탱화를 봉안한다고 합니다. 또 관세음보살을 협시하고 있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은 조각상으로 봉안하기 어려우므로 거의 후불탱화로 봉안한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갖가지 고뇌를 가진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관(觀)하여 모두를 해탈케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이나 미래불인 미륵불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교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등 고난에 처해 있는 어떤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마음으로 부르면 고통을 피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명부전(冥府殿)․지장전(地藏殿)
관세음보살과 함께 중생구제의 큰 원력으로 많은 대중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혹은 명부전이라고 부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의 구세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그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10왕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육도윤회의 현실세계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도록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흔히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대원본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본래 보살의 모습으로 보관과 영락으로 장엄한 모습이었으나 ≪지장십륜경≫에 의하여 차츰 삭발을 한 사문의 모습으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문형의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깨뜨린다는 육환장(석장)과 장상명주라는 어둠을 밝히는 보주를 들고 있는데, 석장의 여섯 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하고, 육환장의 윗부분에는 화불을 모시기도 하는데 그 부처님은 지장원찬 23불의 첫 번째인각화정자재여래라고 합니다.
도명존자는 환혼기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설화에 나타난 도명존자는 중국의 양주에 있는 개원사의 스님으로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고 하고,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재수보살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지옥시왕 중 진관왕은 도산지옥에 살며 칼산에 떨어지는 형벌을 내리며, 초강왕은 화탕지옥에 살며 끓는 물에 담그는 형벌을 내리고, 송제왕은 한빙지옥에 살며 얼음 속에 묻는 형벌을 주고, 오관왕은 검수지옥에 살며 칼로 몸을 베는 벌을 내리고, 염라대왕은 발설지옥에 살면서 집게로 혀를 빼는 형벌을 내리고, 변성왕은 독사지옥에 살면서 독사로 몸을 감는 벌을 주고, 태산왕은 거해지옥에 살면서 톱으로 몸을 자르는 벌을 주고, 평등왕은 철상지옥에 살고 쇠판에 올리는 벌을 주며, 도시왕은 풍도지옥에 살면서 바람 길에 앉히는 벌을 주고, 전륜대왕은 흑암지옥에 있으면서 암흑 속에 가두는 형벌을 준다고 합니다.
응진전(應眞殿)․나한전(羅漢殿)
나한전은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모습을 재현하여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는 10대 제자 혹은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우리 나라의 응진전 가운데 500나한을 모신 곳으로는 경주 기림사의 나한전과 연천 은해사의 거조암, 전주 송광사의 나한전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 모두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협시보살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인 제화갈라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그 좌우로 8위씩 16나한을 모시거나 500나한을 모시는 것입니다.
'나한이란 인도의 예말 아르하트에서 온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 나한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응공, 무학, 응진이라고 합니다. 존경 받을 만한 분,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음에는 아라한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보통은 16나한을 모시지만 18나한을 모시는 경우도 있으며, 빈도라발라사, 가낙가벌차, 가낙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호라, 나가서가, 인게타, 벌나바사, 아시다, 주다반탁가를 16나한이라고 부릅니다.
나한은 부처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독특한 표정으로 자유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한은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수기를 받은 분들이고, 민간신앙에서는 나한에 대한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조사전(祖師殿), 국사전(國師殿)
조사전은 조사스님이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각 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 조사당, 국사전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삼성각(三聖閣, 칠성 독성 산신)
삼성각은 칠성과 독성(나반존자), 산신을 모셔 놓은 전각으로 세 분을 한 곳에 모셨을 때는 삼성각이라고 하고 나누어 모셨을 때는 독성각, 산신각, 칠성각이라고 합니다.
독성각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이 나반존자는 남인도의 마리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있는 성자이기 때문에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을 독성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반존자는 삼명(三明)과 자리이타의 두 가지 이익(二利)를 갖추고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남김없이 알고 있는 분으로 이 삼명의 능력으로 자리와 이타의 진리를 원만하게 이룬다고 합니다. 민간신앙에서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서 불멸 후 중생을 제도하도록 되어 있어 주세아라한이라고도 합니다.
산신각은 원래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으로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부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찰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일종의 외호신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칠성각(七星閣)은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칠성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북두각이라고도 하는데 칠성은 원래 도교신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중국에서 형성된 다음 우리 나라에 유입된 신이라 하며, 칠성을 주존으로 하는 치성광여래를 모시는데,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있습니다. 칠성탱화의 구도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는데 칠원성군만 그리는 경우와 치성광여래와 좌우의 협시보살과 칠원성군을 그리고 나서 칠성여래와 자미대재 태산노군(남극노인)을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삼태 6성, 28숙 등 수 많은 권속들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고, 칠원성군이나 칠성여래를 각각 1위씩 7폭으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독성각, 삼신각, 칠성각은 우리나라 초기 불교 전래시부터 사찰 속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라 조선시대 중기 무렵부터 사찰 속으로 정착한 재래 신앙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