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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1]
1968년, 이 사람은 훗날 에스프리와 노스페이스의 설립자가 되는 더그 톰킨스(Doug Tompkinsard)를 포함한 모두 4명의 친구들과 6개월간 남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북미에서 남미 리마까지 이동하면서 서쪽 해안에서는 서핑을, 칠레의 화산에선 스키를 타는 등 모험을 만끽하다가 결국 남미 파타고니아 산군의 피츠로이(3450m)를 등반하게 된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고산에 비교하자면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한 파타고니아의 벽들은 날씨의 변화가 극심하여 등정 성공률이 매우 낮은 곳이다. 또한 세상 끝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어서 일단 조난을 당한다면 구조의 손길 또한 미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취나드를 비롯한 5명의 클라이머들은 60일에 걸쳐 남극에서 불어오는 폭풍설을 피하고 짙은 안개, 저온, 화이트 스노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설동을 파고 벽에서 비박(Bivouac 일체의 침구 없이 예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잠을 자는 것)까지 감행해간 끝에 신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 과정은 마운틴 오브 스톰(Mountain of storms)이라는 다큐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의 모험 마니아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세계적인 암빙벽 전문장비회사를 차린다. 그는 누구일까?
[인물 2] 파타고니아라는 회사가 있다. 2007년 기준 매출액 2억 7천만 불, 전 세계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남미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역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회사의 모든 면소재 의류는 3년간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유기비료를 사용해 수확한 면인 100% 유기농면으로 제작되고 있다. 세계최초로 플라스틱 병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기도 했고 낡고 오래된 제품을 수집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에코서클'이란 친환경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아웃도어 의류 매출액 1위, 매출의 1%로 지구캠페인 실시. 이 회사는 여러 가지 환경 캠페인과 보호 운동을 벌여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기업이다. 이 회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인물 3] 그는 공부를 아주 못했다. 프랑스계 캐나다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정규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15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이 전부인 그는 미국의 국립공원이자 전 세계 암벽등반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인 요세미테와 엘캐피탄 등에서 본격적인 프로 등반가 생활을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초등을 비롯해 등반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암벽과 빙벽 장비로 성공할 수 있었다. 공부는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대장장이였던 탓에 타고난 손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당시인 1963~1965년도에는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쌍림동 대장간에서 손수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지키고 싶었던 듯 그가 중요한 합금 작업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장간 밖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한국의 인수봉에 바윗길 2개를 개척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국의 산악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윗길 들이 되었다.
인물1과 인물2와 인물3은 동일인이다. 그의 이름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
1938년 11월9일 카나다에서 태어난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파타고니아 사의 회장이지만 뛰어난 클라이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그가 바로 대한민국하고도 북한산 인수봉에 멋진 바윗길을 개척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본 취나드와 인수봉 취나드B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22편 인수봉 취나드 B길 / 국경 없는 알피니즘, 인수에서 꽃피우다>에서 이야기 했거니와 그가 취나드길을 개척하게 된 스토리는 이렇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이본 취나드는 어느 날 인수봉과 만나게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꾼인 선우중옥 씨를 찾아간다. 영어를 잘 못했던 선우중옥 씨는 이 미군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암벽등반을 같이 하겠다는 의사를 그럭저럭 읽게 되어 그를 데리고 인수봉으로 갔다.
선우중옥 씨는 취나드가 암벽의 초보자인줄 알고 인수봉 밑에서 자일 묶는 법부터 가르쳤고 취나드는 묵묵히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취나드가 누구인가? 이미 15세 때부터 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에 매진하던 미국의 정상급 클라이머였다. 함께 등반을 하면서 서로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바위꾼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강오 씨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바윗길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인수봉 귀바위 크랙코스'라고 불리던 취나드A와 취나드B길. 1963년 9월의 일이었다.
GI의 신분이던 이본 취나드는 그러나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본 취나드는 감방을 갈 각오로 상관의 책상 위에 가부좌로 앉아 등반할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결국 상사가 내린 결정은 보일러병으로 발령 내는 일이었다. 다음부터 취나드는 아침에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워놓고 하루 종일 등반을 하다가 돌아오는 일을 계속 했다고 한다. 20대였던 당시부터 그의 뚝심과 바위에 대한 열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본 취나드는 국내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인수봉엔 클라이머가 몇 명 보이지 않았고 기존의 코스로만 등반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바윗길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휴전이 된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그 때 장비가 부족하여 취나드는 미국에서 로프와 카라비너와 같은 등반장비를 붙여 와서 당시로서는 초장거리 크랙길인 취나드a길을 개척했다.
취나드와 같이 바윗길을 개척한 선우중옥 씨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본 취나드는 의리 또한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1964년 주한미군에서 제대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1971년 선우중옥 씨를 초대한다. 함께 일을 시작한 중옥 씨는 나중에 취나드 이큅먼트사의 공장장까지 역임을 하고 부인 선우영옥도 이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선우중옥 씨는 멀리 타국에서 온 바위꾼을 만나 인생이 바뀌게 된 셈이다. 그것도 멋지게.
등반 전부터 이본 취나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누던 등반팀은 인수봉 대슬랩에서 우측으로 돌아 인수 남동면의 취나드A, 벗길, 심우길로 진입하는 어프로치 등반을 한다. 짧은 어프로치 크랙 등반을 수월하게 끝내면 바로 그곳에서 인기 있는 세 개의 바윗길들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부터 벗길(5.10d), 취나드A(5.10b), 심우길(5.10a)이 그것이다.
개성 있는 세 개의 길들은 난이도로만 보았을 때 중상급인 벗길만 제외하면 웬만한 중급 클라이머라면가 선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럴까? 심우길 둘째 마디 트레버스 등반은 만만치 않은 힘과 밸런스가 필요하다. 벗길은 또 어떤가? 둘째 마디 작은 테라스를 넘어서는 구간은 벗길의 크럭스로 난이도가 5.10d가 나올 뿐 아니라 밸런스를 잡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추락시 발목골절 등의 사고가 우려되기 때문에 극도로 신중한 등반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발빠른 클라이머들은 왕왕 아침 일찍 이곳에 도착해 세 바윗길의 크럭스 구간을 모두 등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심우길이 오른쪽에서 그리고 벗길이 왼쪽에서 호위하듯 굵고 길다란 크랙을 차지하고 있는 취나드A는 어떨까? 취나드A는 전 루트가 크랙으로 이루어져있어 적지 않게 힘을 써야 하는 바윗길이다. 그래서 흔히 ‘노가다길’이라고 부른다. 노가다길이란 중노동을 하듯 힘든 등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바윗길들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 선등을 맡은 함기철 대장은 "취나드A가 노가다길로 불리는 것은 취나드와 선우중옥님과 같은 개척자들에게 대단한 실례"라고 지적한다.
“노가다길을 정확하게 선을 그어서 설명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높은 등급의 슬랩과 페이스 등반은 힘이 들더라도 깔끔하게 등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크랙등반의 경우 손끝에서 손목까지만, 발끝에서 발목까지만 이용하여 깔끔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는 힘이 많이 들어도 노가다길이 아닙니다"
함 대장은 또 "노가다길의 본래의 뜻은 최고등급의 클라이머라도 어쩔 수 없이 팔뚝, 어깨, 등 배, 허벅지, 무릎, 등을 써가며 올라야 하는 침니와 재밍을 할 수 없는 넓은 크랙들을 등반을 하고 나면 온몸에 흙먼지가 묻고 긁히기도 하고 옷도 상하고 바지에 구멍도 나고 땀범벅이 됩니다. 이 모습이 육체노동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노가다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클라이머들은 힘이 많이 드는 코스는 노가다로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취너드A 길은 크랙이 길고 넓은 크랙이 있어도 근지구력과 등반기술이 충분한 클라이머라면 깔끔하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등반을 마칠 수 있지만, 충분한 등급의 클라이머가 아닐 경우 등반도중 체력과 기술부족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면 온몸을 다 써서 등반을 하게 되고 노가다길 등반을 완료했을 때와 같은 결과가 된다"며 "찌질찌질 올라가기보다는 손과 발을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가면서 경쾌하게 멋지고 박력 있게 오를 수 있는 멋진 취너드 길을 노가다길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기자와 함 대장과는 벌써 다섯 번째 등반을 기록하고 있다. 인수봉 건양길, 고독길, 인수B길을 함께 등반했다. 그와의 등반이 조금 특별한 이유는 바윗길들의 유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20여 년 전 산악계의 풍경을 줄줄이 꿰고 있어 예전과 오늘의 등반을 바라볼 수 있는 스펙트럼이 생기기 때문이다.
- 이하 생략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key=201209191544363&c1=05&c2=02&nid=05&mode=sub_view
출처!
지난 주 등반 후 뒷풀이 자리에서
장기활 선배님께서 말씀해주신 취나드 길 그리고 취나드씨와 그 당시 인수봉을 함께 개척한 한국인 이야기가 생각나 찾아보았습니다.^^
암벽은 알아갈수록 인간냄새가 찐~~하게 나는!
첫댓글 파일 첨부가 움직이는 것밖에 안 되어서 부득이하게..^^;
잘보았습니다 .
이본 취나드씨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글 감사합니다 ^^
취나드 이큅먼트사 : 지금의 블랙다이아몬드로 상호 변경(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청악에서 1993년에 등반한 캐나다 에디스카벨 북벽도 취나드가 초등
어머!! 블다까지요!
@장기활 취나드씨는 정말 엄청난 분이네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691971
취나드는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경영철학이 담긴, "Let my people go surfing" 책을 펴내는데, 이 책은 전세계 경영자들의 추천도서, 베스트셀러가 됨. 파타고니아 미국 본사는 남부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있는데, 직원들에게 파도가 멋질때는 일하지 말고 서핑을 즐기러 나가라고 했다고 함. 파타고니아 한때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였음,
우앗!!!
출처 -원종민 블로그
앗!ㅎㅎ 쌤~ 보고싶습니다. 5.10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