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이조선말고,다른조선이,도있단말이냐???
영조가,김재로에게당부한말.(승정원일기중에서)
|
출처: 어풍대08블로그임다 원문보기 글쓴이: 어풍대08
조선 시대 가장 오랜 재위기간을 가진 영조는 극심한 당쟁을 겪었다. 임금이 되는 과정부터가 당쟁의 연속이었으니, 당쟁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임금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 스스로도 자신의 가장 큰 치적으로 탕평(蕩平)을 들었겠는가. 복잡한 저간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던 본래 시비(是非)를 다투던 당쟁이 즉위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충역(忠逆)으로 변질되었으며, 영조 4년에 일어난 반란[무신란]은 충역이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실재하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물론 반역은 반역으로 처단하면 되었지만, 그것의 출발이 당쟁이라는 점에서 충과 역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맞물면서 끊임없는 정쟁으로 치달았다. 영조의 탕평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 |
김재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상이
말씀하셨다. 경의 마음이 여전히 막힌 곳이 있어서 그러는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의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에 다른 일은 없었고 다만 교서 글귀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니, 의리상 피혐하지 말아야 한다. 경이 대사헌으로 있었을 때 시민당(時敏堂)에서 진달했던 말을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말하기를, ‘만약 명명백백하고 정정당당하다면 어찌 자신에게 관계되었다고 하여 혐의롭게 여기겠는가. ’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당파에게 난역의 종자가 있다는 교서를 내렸는데, 이것이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백세의 공론이 있을 뿐이다. 경 등이 충성입네 반역입네 하면서 비록 나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신축년**에 또한 반역이 없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조선 말고 또 다른 조선이 있다는 것인가? 우리 선왕의 골육이 몇이나 되는가? 다만 황형[경종]과 내가 있을 뿐이다. 군군신신의 도리가 황형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미 나를 신하로서 섬겼으니, 지나간
일일랑은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기에는 영조가 경종을 모해한 듯이 빗대어 쓴 글귀가 들어 있었다. 이 일로 노론의 많은 인물이 죽임을 당했다. 영조가 신축년을 언급한 것은 완전한 무고는 아니라는 뜻이며, 비록 자신에게 충절을 바쳐 죽었지만, 노론에게도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다. 語未畢。上曰, 予當下敎矣。卿心尙有所阻而然, 君君臣臣之義, 非不知也。其時無他事, 而只有敎文事, 則勿避嫌之義。卿之都憲時, 時敏堂所達, 尙今記有之矣。若明明正正, 豈以關係於予, 而爲嫌也? 諸黨俱有亂逆之敎, 予非容易言之也, 百世公議在焉耳。卿等, 曰忠曰逆, 雖曰爲予, 而辛丑年, 又豈不有逆乎? 朝鮮外, 又有朝鮮乎? 我聖考骨肉, 有幾? 只是皇兄與寡躬, 君君臣臣之道, 於皇兄何哉? 旣臣事於予, 則旣往之事, 竝皆棄之可也。 - 『승정원일기 영조 10년 7월 13일 引見記事』 | |
▶ 창덕궁 희정당 (昌德宮 熙政堂), 영조가 김재로 등 재신들을 인견하던 곳이다. |
|
|
여기,이조선말고,다른조선이,도있단말이냐???
영조가,김재로에게당부한말.(승정원일기중에서)
|
출처: 어풍대08블로그임다 원문보기 글쓴이: 어풍대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