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수행에서 나오는 신심이 대만불교의 '저력과 힘’
대승불교가 싹 튼 곳은 인도지만 그 꽃이 만개한 곳은 동아시아다.
약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는 대승불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몽골, 티베트, 일본, 베트남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오늘날에도
동아시아 각국에서 사상,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권의 불자비율을 비교해 보면
이 중 예외적인 국가가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이다.
그동안 불교신도가 3.9% 증가한 것에 비해 가톨릭 신자가
10년 만에 74.4%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기독교 인구의 가파른 증가가 확실시되고 있다.
스님의 청정함은 사회규범
그러나 대승불교 권 국가에서 기독교가 이렇게 단 시간에 급성장한 예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티베트는 90%가 불자이며,
일본도 1억200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불자이고,
베트남 80%, 몽골 97%가 불자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이중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유교적인 영향이 강한
대만도 불교인구가 60%가 넘으며, 현재 중국에서도
문화혁명 이후 쇠퇴했던 불교가 급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유독 불교인구가 적은 걸까.
민족적인 자존심이나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제식민지 이후 미군정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를 배경으로 수많은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한
기독교의 전도 영향 때문일까.
하지만 일본이나 대만 등도 미국의 지원과 영향을 받았지만
왜 서구의 종교는 성장하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한국불교 자체 내에서 그 원인이 있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대만불교, 특히 불광산사와 자제공덕회는
앞으로 한국불교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불광산사와 자제공덕회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배경은
성운 스님과 증엄 스님의 지도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지도력은 경전과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이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명쾌한 설법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먼저 모범을 보이는 대중을 이끄는 솔선수범의 정신,
중생과 세계로 향한 크나큰 원력과 대중과 사회에로의
회향 정신이 수백만 불자들을 ‘정법과 실천’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란 평가받고 있다.
성운 스님이 15개의 불학원을 설립하고 불광대장경,
현대불교 학술총서 등을 편찬한 것이나
증엄 스님이 ‘대애’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교리에 대해
법문하는 것도 불교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바로 서야
바른 실천도 나올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불교지도자들이 이러다보니 일반 스님들은 물론
불자들의 불교이해와 실천이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르다.
특히 대만 스님들은 고기와 술을 먹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착됐다.
어디에서건 채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200여 개 이상의 채식전문점이 운영되고 있으며,
간혹 음식점에서 스님이 육식을 하게 되면
곧바로 불자들이 이를 비판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일반화됐다는 게
대만 스님들의 말이다. 이는 곧 스님들이 스스로
위의와 행동을 절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대단히 존경 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대만불교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수행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님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고통과 재난을 구해주시듯이
만약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을 가진 500명이 각처에 흩어져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중생의 아픔을 구제한다면
이는 경전 속의 관세음보살님을 중생의 모습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자제공덕회 법사 증엄 스님이 회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불광산사 성운 스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대하신 부처님, 자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저로 하여금 중생들의 업장고난을 짊어지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세간 인생의 쓰고 맵고 차가운 맛을 받아들이도록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이어서 실천하도록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여래 세존의 가르침을 펼치고 복을 나누는 일을
대신하게 하옵소서.”
성운 스님은 매일 매일 하는 기도문이다.
‘아미타불’이 일상의 인사
대만 큰스님들의 이러한 불교관은 관세음보살에게 매달리던
불교를 ‘관세음보살처럼 살자’는 불교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불과 10년 만에 80만 명에 불과하던
신도수를 500만 명으로 끌어올렸으며
지금도 대만에서는 가장 성장하는 종교로 단연 불교가 손꼽힌다.
대만의 종교학자 양휘난이 이를 일컬어
‘불교의 르네상스’라고 말했듯이 그 어느 나라보다
현세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중국에서는 일대 혁명이라 일컬어진다.
이런 흐름은 수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불광산사처럼 참선, 염불, 사경, 절 등
다양한 수행법이 권장되고 있으며,
신도들 또한 그 중 하나씩 택해 수행하고 있지만
어느 수행이 수승하다는 차별은 없다.
특히 자제공덕회는 자제위원들 중 상당수가 법화경 간경 및
사경수행을 하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사는 것 자체를 수행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단박에 부처님이 되겠다는 의식보다 자비와 지혜를 갈고 닦으면서
부처님을 닮아가겠다는 것이며,
이런 까닭에 염불이나 절, 사경, 주력 수행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꼭 간화선을 해야겠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대만불교에서 경전이나 불서를 깨달음의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며, 오히려 중국이건 대만이건 합장하는 인사가
‘아미타불~’일 정도로 정토신앙이 보편화돼 있다.
불교 신행과 수행이 달라지다 보니 사찰 경영 또한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기복을 멀리 하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기복을 부추겨야
사찰재정이 넉넉해지는 모순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각종 ‘재’나 ‘기도비’ 명목으로서가 아니라
불교사상에 입각한 자발적인 보시를 철저히 지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규모 홍보관 및
상세한 안내책자 등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과 이에 대한
대중의 동참과 지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 불광산사나 자제공덕회의 홍보관은
그 치밀함과 방대함에 있어서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난 70여년의 출가생활 동안
‘기꺼이 원하여 하는 것’을 신조로 살아왔다.
누구든 나를 필요로 하면, 단지 불교를 널리 펼치기 위해서라면
나는 언제든지 ‘기꺼이 원하여’ 달려가곤 했다.
나는 누군가 무엇인가 일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먼저 ‘기꺼이 원하여’ 자기를 봉헌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싶다.
삶에 있어서 언제나 ‘기꺼이 원하여 하는’ 태도로
이상을 실현해 나갈 수만 있다면 고생이 되더라도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고 어려움이 있을 때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불심 이타행으로 연결
불교를 위해 중생을 위해 ‘기꺼이 원하여’ 달려왔다는 성운 스님.
불교가 자신을 넘어설 때 모든 경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신수(信受)’를 넘어 참다운 ‘봉행(奉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신심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리이해와 수행에서 나오는 해맑은 신심.
또 그러한 신심에 대해 스스로 당당하도록 하고
나아가 중생구제라는 이타행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만불교를 세계에 우뚝 서도록 한 근본적인 힘이었다.
이재형 기자
2007. 5. 9.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