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발(覆鉢), 탑에 밥그릇 뒤엎다니? / 이희봉 교수
탑, 불법 씨앗 담은 진리의 그릇
인도 원어 ‘안다’의 일본식 번역이 ‘복발’
사리 묻은 곳에 대한 무례…오류 수정해야
1. 산치 스투파의 일본어 번역 그림.
위에서, 앞에서 본 그림. 오류의 원흉.
2. 탑 꼭대기의 복발. 남원 실상사 탑.
한국에서 탑 연구를 했다하는 책 첫머리에 반드시 들어가 는 그림이
바로 지금까지 본 산치 스투파의 도면이다.(그림1)
인도의 원전 영어권 도면을 근대학문 초기에 일본 학자 누군가가 한자로 번역해 넣은,
오류의 원흉 도면이다. 복발(覆鉢), 기단(基壇), 산개(傘蓋), 평두(平頭),
요도(繞道), 난순(欄栒), 간(竿) 등 쉽지 않은 한자어를
독자들은 일단 그림에서 숨은 글자 찾기를 해보기 바란다.
오류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1700년 전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뿌리 깊은 애초의 번역 오류다. 불교의 근본정신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또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자만 번역하여 생긴 결과다.
또 하나는 불과 백 년 전 일본인 선구 학자들이 잘못 이해한,
또 우리는 사용하지 않은 일본 투 한자어를 지금도 한국 탑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이제는 그만 청산해야 할 부끄러운 식민 잔재다.
앞으로 몇 회에 더 걸쳐 하나하나 짚어 볼 것이다.
인도 탑 스투파 모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둥그런 부분을 한자어 ‘복발(覆鉢)’이라 번역하였다.
뒤엎어 놓은 공양 발우의 뜻이다. 인도 원어는 ‘anda(안다)’로서 번역하면 ‘알’이다.
알은 ‘egg’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싹 ‘배아(胚芽, embryo)’이기도 하다.
둥그런 스투파 안에 묻은 부처님 진신 사리 알은 자궁 속에 심어진 수정란 씨앗과도 같다.
부처님의 알은 점차 깨어나 세상 만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스투파의 둥그런 부분 ‘안다’는 속에 묻은 사리 알에 대해 바깥 껍질 용기로서의 큰 알이다.
그러므로 안다는 바로 부처님 몸체와도 같다.
지금도 같은 인도에서 힌두 신전의 지성소를 ‘가르바-그리하’,
즉 ‘자궁-방’이라 부르는 것과도 근원적으로 같은 의미다.
삼국 신화에서 알이 깨어 태어나는 난생 설화와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한국 석탑의 꼭대기에 오랜 세월 상당수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반드시 둥그런 덩어리 안다를 작게 만들어 올려놓았었다.
(그림2) 어김없이 ‘복발’이라 칭한다.
세계 불교계에서 한중일 한자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명백한 오류 번역어다.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스투파의 둥그런 알이 본래 의미를 잘 모른 채
탑 꼭대기에 축소된 형태로 올라앉게 되었다.
공양 발우도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신성해야 할 부처님 몸체가 동아시아 한중일 탑에서는 기껏 밥그릇,
그것도 뒤엎어 놓는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오류의 기원은 1300년 전 당나라 현장법사의 인도 기행문 ‘대당서역기’에서 비롯된다.
그 후 탑 관련 중국 한자 번역 경전에서 모두 복발로 지칭하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제자가 석가모니께 공경하는 방법을 물으니,
가지고 있던 장삼을 반듯이 네모로 접은 위에 공양 밥그릇을 엎어놓으면
스투파가 된다고 가르쳐주었노라고 적혀있다.
현장의 그 기록은 사실상 성립할 수 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는 살아생전 기존 바라문교처럼 사물을,
또 제자들에게 사후 자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불교에서 스투파 숭배는 석가모니께서 돌아가신 한참 후에야 발생했는데
살아생전 자신을 숭배하도록 했다는 것은 명백히 후대에 꾸며낸 말이 된다.
복발 즉 밥그릇을 엎는다는 것은
‘판을 엎는다’ 또는 ‘밥상을 엎는다’는 것과 같은 대단히 불경스러운 행위다.
최근 불과 5년 전 남방 불교국 미얀마에서
승려들이 군사독재정권을 상대로 대대적 비폭력 데모 운동을 벌였었다.
바로 ‘복발행(覆鉢行)’이라 하여 공양 발우 뒤엎기로 항의 표시를 하였다.
구글 검색 한자어 ‘覆鉢’을 치면 그 사건이 바로 나온다.
또 원래 불교 경전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 보면 밥그릇 뒤엎기 ‘복발’은 징벌이다.
잘못을 저지른 재가불자로부터 음식 보시를 거부하고
그에게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구 스님들이 ‘복발갈마(覆鉢羯磨)’라는 회의를 거쳐 발우를 엎어버릴 것을 결의하는 것이다.
즉, 신성한 부처님 몸을 불경스럽게도 밥통같이 ‘밥통’으로
그것도 뒤엎어서 탑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오역에서 비롯된 잘못된 용어이므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의 탑에 대한
불교의 오랜 관행용어 ‘복발’은 오늘날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사리 알에서부터 깨어나 만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야 할
부처님 몸체의 상징은 밥그릇을 엎어놓음으로써 그만 차단되고 만다.
3. 알 모양을 모신 석굴 스투파. 인도 담나르 석굴.
사물을 묘사할 때 발우 엎어놓은 모양처럼 생겼다는
즉 ‘복발형’이라는 것은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곧바로 ‘복발’이라는 명사로 이름붙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산치 스투파는 꼭 우리의 바가지 엎어놓은 모양처럼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엎은 바가지’라 이름붙이면 안될 말이다.
인도의 평지 스투파는 돌이나 벽돌로 쌓아올려 만들었기 때문에
반구 바가지 형태이지만 다음 편에 나올 돌을 파서 만든
인도 석굴의 스투파는 명실상부 알처럼 공 모양으로 만들어 진다(그림3).
앞 그림에서 본 우리 석탑 꼭대기의 소위 복발의 형태도 밥그릇 엎은 모양의 반구
즉 복발 형태가 전혀 아니라 약간 납작하지만 공 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귀한 알을 꽃무늬 있는 띠로 감싸서 묶어 놓는다.
인도 스투파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탑보다는 오히려 스님의 부도에서 둥그런 모양을 그대로 계승한다.
통도사 금강계단이나 금산사 방등계단에서는 공 모양이 종 모양(石鐘)으로 바뀐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식으로
알의 추상 형태 공 모양을 익숙한 종 모양으로 변화시킨다.
동아시아 불교의 명백한 오류 명칭,
또 식민잔재 학문 오류 명칭 ‘복발’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원어 그대로 번역하여 우리말 ‘알’ 또는 ‘란(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외자라서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필자는 뜻이 보다 분명하게 ‘부처님 알’
또는 ‘불교에서의 알’의 뜻으로 ‘불란(佛卵)’으로 제안한다.
이미 관련 학회에서 몇 차례 학술발표를 한 바 있다.
이 ‘불란’용어는 처음에는 생소하여 부르기 어색할지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명확을 생명으로 하는 학술 분야 이를테면 미술사, 건축사 학계에서
명백한 번역 오류 ‘복발’을 관행이라고 해서 계속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구보다 불교계에서 수치스러운 오역된 용어를 바로잡아서
원래의 불교 부처님의 본질적 의미를 회복하도록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용어를 고친다는 것은 모든 탑 관련 모든 서적, 논문은 물론
전국 사찰의 탑 앞에 서있는 문화재 안내판을 전부 제대로 고친다는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사리를 왜 항아리에 담아 넣게 되었는가를
탑과 항아리와의 관계에서 알아보도록 한다.
2012. 02. 02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