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리이다(정바울)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5:8
오늘 설교를 통해 선지자가 누구인지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선지자란 유권적인 해석자다.
둘째, 선지자는 만병의 대의사라야 한다.
셋째로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국방이다.
이 설교를 통해 우리도 이 시대의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며 병든 자를 고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50. 여호와의 복병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역대하20:20-23
본문의 설교를 통해 여호사밧이 기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꼼짝 못하시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것을 통하여 나도 허공을 치는 기도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51. 참 이스라엘 사람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7-51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귀한 사람인데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하신 첫 마디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로, 찾으시는 사람은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 진실한 사람, 사기성이 없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둘째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에서 얻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참 이스라엘이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만 유대인 혈통을 받은 그런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변화를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 참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전에는 지렁이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받은 사람입니다.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지렁이같이 아무런 능력도 없었는데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 같이 큰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의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고 형식적으로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되지 말고 정말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담해 나갈 수 있는 신령한 사람, 능력의 사람, 그리고 지혜의 사람, 진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52.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예배 시간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데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의 뜻을 정확하게 이 설교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4장에 나오는 속죄제에 네 부류의 사람이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제사장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장로가 짐승을 잡아야 된다고 나옵니다. 회중이 죄를 지으면 제사장의 책임도 있지만 장로의 책임이 더 크다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봤을 때 장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빌라도는 제사장과 장로와 백성의 압력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고백은 바로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이 됩니다. 만약 유대인들의 장로들이나 제사장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죽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 장로격으로 유대인 장로들뿐만 아니라 유대인 제사장들까지 합해서 이 사람들과 같이 협의를 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답으로 예수님을 죽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이 한마디의 고백에는 이런 엄청난 뜻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이 고백은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