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이융의 말로, 계엄 내란의 귀결
연산군(燕山君) 이융(李㦕)은 임금으로서 무도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생모 윤씨(尹氏)가 성질이 모질고 질투하여 왕비 자리에서 폐위당한 것에 대한 반발로 그랬다고 하지만 그 무도함의 수준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장녹수(張綠水)에게 빠져 날로 방탕이 심해지고 또한 광포(狂暴)한 짓을 많이 하였다. 꾸준히 창의적으로 연구 개발하였기에 그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다.
그런데 그런 연산군 이융은 적어도 스스로 자신의 소행이 부도(不道)함을 알고 내심 부끄러워하기는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도리를 혼란시켜 자기와 같게 만들려고 하였다. 사대부가 부모 상을 당하면 그 기간을 단축케 하였으며, 효행(孝行)이 있는 사람을 남을 속이고 기이하다 하여 죽였고, 형제들을 핍박하여 그 첩을 서로 간범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스스로 자신의 말로가 어떠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날 저녁에 반정군이 궁성을 에워싸고 지키게 하여 밤이 3경, 곧 한밤중이 되었다. 연산군을 모시는 승지들이 변을 듣고 창황히 들어가 아뢰니, 연산군이 놀라 뛰어 나와 승지의 손을 잡고 턱이 떨려 말을 하지 못하였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져 일단 감금되었다.
반정을 주도한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예로부터 폐립(廢立)할 때 죄를 추궁한 일이 없었던 경우는 오직 창읍왕(昌邑王)뿐이었다. 지금은 모름지기 잘 처리하여야 한다. 마땅히 사람을 보내어 가서 고하기를, ‘인심이 모두 진성대군에게 돌아갔다. 사세가 이와 같으니, 정전(正殿)을 피하여 주고 옥새를 내놓으라.’ 하면, 반드시 이를 좇을 것이다" 하고, 드디어 승지와 내관(內官)을 창덕궁에 보내어 상황을 갖추 고하게 하였다. 이에 연산군은 "내 죄가 중대하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좋을 대로 하라" 하면서 곧 시녀(侍女)를 시켜 옥새를 내어다 주게 하였다.
연산군이 임금으로서 서슬이 퍼렇던 시절, 모든 관원들에게 “충(忠)” 자와 “성(誠)” 자를 새겨 관원들이 쓰는 사모(紗帽)의 앞뒤에 붙이게 하였으니 대개 충성을 바친다는 표시를 하게 한 것이다. 또 그가 놀러다니며 궁궐을 출입하는 행위를 보통 부르는 “행행(行幸)”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거동(擧動)”이라 부르게 하였다. 또 기생들을 뽑아 흥청(興淸)이라고 하여 그 수효를 1만 명을 채우려고 했었다. 연산군이 폐위당하여 교동(喬桐)으로 옮겨져 울타리 안에 거처하게 되자 백성들이 왕을 뒤쫓아 원망하여 이를 빗댄 노래를 지어 불렀다.
충성이란 사모요, 忠誠是詐謀
거동은 곧 교동일세. 擧動卽喬桐
일만 흥청 어디 두고 一萬興淸何處置
석양 하늘에 뉘를 좇아 가는고? 夕陽天末去誰從
두어라, 예 또한 가시의 집이니 已哉此亦娘婦家
밤 새우기에 아쉬움 없고 또 조용하기도 한걸. 無妨達曙且從容
대개 사모(紗帽)와 사모(詐謀), 거동(擧動)과 교동은 음이 서로 가깝고, 방언에 각시[婦]와 가시[荊棘]는 말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뜻을 빌어 노래한 것이다.
연산군의 말로는 이렇게 반정(反正)으로 귀결되었다. 지금 왕조도 아닌 민주공화국 대명 천지에 연산군만도 못한 자가 참으로 연산군도 하지 않았던 짓을 지절렀다. 친위 반정? 개념이 잘 성립되지도 않고, 역사상 유례가 별로 많지 않은 무도한 짓을 했다. 그러고서 제 관저에 틀어박혀 잡혀가지 않겠다고 연산군도 하지 않았던 비루하기 짝이 없는 추태를 부리며 버티고 있다.
게다가 가관인 것은 그를 두둔하고 비호하는 자들이 준동하고 있는 꼴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아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과 피해를 입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를 당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애꿎은 우리 민인들의 몫이다.
저 내란 혐의자의 혐의를 확인하여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 그를 따라 이익을 추구하고, 또 부화수행한 자들도 모두 색출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잔꾀를 부리며 얕은 계산을 하는 당국자들은 대의(大義)가 무엇인지 옳은 판단을 내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결행해야 한다. 아니면 종범(從犯)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양식을 갖춘 우리 민인들은 단순한 권력 교체를 넘어 이 참에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공의(公義)와 그 방안이 무엇인지 강구하여 이를 보완한 새 체제를 든든하게 세워야 한다. 그것으로 이 참담한 시행착오 속에서 거두는 의미있는 결실로 삼지 않는다면 이 시간, 이 비용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250112
모든 공감:
113회원님, 양승수, 김영해 및 외 110명
댓글 21개
공유 8회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