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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심판받는 예루살렘
1절
주님께서 내 귀에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성을 심판할 사람들아. 손에
무기들을 들고 가까이 오너라.
참고) 하나님의 계시나 명하심을 소리로서 듣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의아해 하실 분 들이 상당하게
그것보다 더 사실대로 표현한다면 대부분 좀 황당하지 않겠나 하실것입니다.
왜인가? 보편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사람처럼 존재로서 상상하는 어떤 상징성의 양태가 상식적으로 접근인식 할 수도 없음이고
성경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에스겔이라는 제사장에 허공에서 말씀을 한다는 자체가 일반인들이나 대부분 이게 이해가 아니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의 이러한 내용이 무신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 본다 하여도 황당한 일이기는 매 한가지 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기독교 성경말씀과 관계 없는 사람이 이 경전내용을 들으면 진짜 황당무인지경이
될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이 해당 하나님말씀을 듣고 이를 기록한 것은 당시 지금으로 부터 2,600 년 전에
기술하였고, 당시 이라크에 있었던 바빌로니아 대륙이 침몰하여 바다깊이 가라앉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고고학자에게 드러나고 있읍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나라를 다시 세운 것은 지금으로 부터 100 년도 아니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읍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아닙니까. 2,600 년동안 나라잃을 설음으로 방황하며 흩어져 살고 있었읍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이를 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겔의 기록에서 확연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까요, 조작하고 싶어도 아니되는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반증이 엄연하고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을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그런 경외감이 들지 않읍니까?
무엇이 이렇게 2,600 년에 일을 다 예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무엇인가 인과율을 말합니다.
또한 구태어 이러한 셩경말씀을 기록한 까닭을 무엇인가? 이것도 한 번 궁리 해 보아야 합니다.
예언을 기록하고 그 이치가 틀림없이 맞아지는 것을 증 하려고 기록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읍니다.메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있는가? 이렇게 물으신다면, 실제로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주 를 뵐때 하나님 여호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물론 말씀도 언어도 아닌 어떠한 메세지나 징조를 확인하는 절차 였으리라 일반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만.
여호아께서 가로되
모세야! 여호아 를 음성으로 듣거나 모습으로 본다고 한다면 이미 이 자는 삿된이가 되리니
여호아는 음성이나 모습으로는 절대 볼 수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것이 팩트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를 주고 받았을 까요?
주)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으면 이 성령으로 머무르는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확실이 믿는것은 무엇인가, 확실하게 성령을 보는 자 를 확실히 믿는다고 하는 것이지
보지 않고서는 확실한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봐야 합니다. 여호하는 모세의 마음에 늘 상주하기 때문에 교감이 가능한 필요 충분적인
결부성을 전제로 모세이고 여호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아 선)
깨어나면 보입니다. 보이면 믿습니다,온전하게 ...
그러므로 성령을 확실하게 보는 사람은 사물의 어떠한 짐작과 분위기 조짐등의 특이한 영적
기운을 형상화 하고 언어화 하는 말씀으로 직관화 할 수 있으며 이심전심으로 대화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하나로 나타나는 아우라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광명자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아우라는 소리를 동반하고 향기를 동반하며 맛을 동반하고 촉을 동반하며 뜻을 동반하는 오감의 원형둘레가
하나로 상징화 하여 드러내는 조짐의 소식을 직관하는자에게 오는 하나의 소식인 것입니다.
소리는 일정한 룰에 의하여 머무르고 돌아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며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때문입니다.
결국 에스겔이 인간화의 구조로 여호아의 선을 인격화로 감응해내는 것이며
체용이 자유자재 한 입장에서 가능한 성령의 만남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자는 이러한 전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처럼 이미 이스라엘 역사 적 배경과 함께 겪은 시대적 통찰을 함께하고 동시에
겪은 환경적 인과가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을 보고 통찰의 능력이 서 있는자 입니다.
여호아 께서는 같음으로 교감하기 때문에 선택받은 자 입니다,. O 적인 순결함이나 청정함.
그리고 계율을 지키면서 역사의 전도성으로 반연하는 하늘의 섭리를 다 이미 보고 아는자
라는 인연의 전제가 주어져야 하나님 성령과 대화가 가능하고 계시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라 함은 생명의 기원인 온 만상의 바다를 기원하는 소리를 다 듣고 다 말씀을 하는 창조주의
원인됨과 교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성령을 보는 것이기에 감과 응을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읍니다.
우리가 이렇게 궁리를 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숭배나 음행을 저지므로 또 타락하였다면
당시 당사자들만 죄를 주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2,600년동 당시 죄를 짖지 않는 후손들(평균 80 세 산다하여도
35대 후손들 까지 )이렇게 그 연좌제에 묶여 그 인과를 계속 겪어야 하는가 이 말입니다.
역사적 인과 인데.
아니 그렇다고 35 대의 후손들이 각기 무신죄가 졌는데? 노바닥 2,600년동안 나라도 잃은상태에서
큰 고통의 인과를 짊어져야 하는지를 상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헌법도 연좌제는 없읍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니 저의 성씨는 수안이씨 시조는 견웅 인데 제가 38 대 인데 (우리나라는 아주 자주 일찍 죽었던 가봐요.
교체 세대가 아주 빨리 이어지니까요. ) 견웅 할아버지가 1,200년 전에 지은 죄를 왜 내가 받아야 하는가
이 말입니다. 이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과 같읍니다. 이런거 가능하지 않읍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이해해야 할 것은 인도 힌드니즘의 신분별 고정화로 4 계급으로 늘 후손들이 고정적으로
척박한 환경의 연좌제를 인정하는 제도를 함께 종교적으로 비교 해 보아야 합니다.
육화입니다,(6 化)
피는 말입니다, 빛입니다, 빛은 파동이 있고 입자가 있읍니다.
파동과 입자는 빛이며 열이기도 합니다, 요즈음 과학적인 명칭으로 양자의 법칙이라고도 하지요.
양자의 법칙은 끌림의 법칙입니다, 빛은 당겨지고 당기며서 구룬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빛이라 하는데 생각을 하는것은 대부분 생각의 대상을 스스로 자기한테 끌어당기기
때문에 생각을 내는 구조 입니다.
생각만큼 끌어당겨 빛운동을 하는 현상으로 분화되고 집결되며 응어리지면서 고체화 되기도
기화도기도 액화 되기도 하는 삼분법의 음양구조인 물질계의 분자식 육각수의 원형을 깰 수가 없는
인과성을 우리는 궁리해보아야 합니다.
만물의 물질세계인 이 지구벌은 구조를 육각수의 구조라 합니다.
인간의 가족 형성관계로서 욱친관계를 육화 라 합니다, 죽은 자리에 또 나고 죽은자리에 또 나며 계속 육화라 여섯가지로
밀접한 생각의 아우라는 인연의 가장 가깝게 영향을 주고 받는 같은 가족 사회성품, 그리고 지형적 환경권의 터울인 민족으로
늘 시간적 장애요인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영원성을 유지 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을 욱화라 합니다.
마음작용만큼 우리는 왔다 갔다 원운동을 합니다. 가만히 들따 보면 그렇습니다.
이거 아니면 왜 하나님 믿읍니까? 무다히 2,600년전에 잘못한 특정한 사람들을 그때 죄를 주고 말일이지.
일사부재리로 법칙화 하고 다음부터는 아버지 어머니가 죄를 젔다고 후손에게 그 죄를 주지 덤탱이로 또 받아지녀야
하는가 이 말입니다. 조상은조상이고간에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여호아 하나님께서 당신 기분땅긴다고 ,감정있다고 내리 후손 35 대 까지 잡아도 주야 장창 계속 죄를 괜히 주는가
이 말입니다.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때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현상태에도 인과에 의하여 육화 의 육각수 (이스라엘 국기 상칭처럼)
처럼 같은 모탈 디엔에유전인자 인 피로서 서로 끌어당김으로 감응하며 그 자리에 또 나오고 가고 하면서 늘 굴러다닌다 이말입니다 이거아니면 왜 2,600년동안 아무 상관도 없는 역사적 사실을 짊어지고 연좌제로 연대보증 서야 합니까 이 말입니다.
]오! 같음을 행함이라... 오! 여호아 여! 하는 것을 말합니다. 2,600년전 생명이 시간 장애 없이 또 나오고 또 사라지고
또 다른 비슷한 모습으로 또 튀 나오고 한다는 이론 논리 없이는 불가능한 현상인 것입니다.
공평무사 하고 평등성지가 여호아의 뜻이고 역사 하심아닙니까?
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땅에서 바람이 일어 떨어진 열매 씨앗이 가면 어데까지 갈까요, 그 주변에 다시 새싹을
이루고 또 출현합니다. 이미 자연의 섭리는 이를 가르켜 주는 것이 땅의 소식이며 지수화풍 의 4 대 조화 아닙니까?
생각한 만큼 같음으로 생각과 집착의 전제성의 모탈을 스스로 빛으로 작용시켜 다시 와야 함을 여호아 선 의
만 생명성품들에게 행하는 성령의 아우라지는 광명이며 빛이고 진리인 것입니다.
깨어나면, 성령을 보면 이것을 보게된다 이 말입니다. 에스겔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여호아 선 의 권능에 의하여 반연하여 죄를 지은 만큼 3,000년의 3 위일체 로 굴러가며
죄를 다 갚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스겔이 이 기록을 하기전 3,000년 전 부터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로서 반연하여 O 으로 상계하려면 같음을 꺼꾸러 받아야 하는 것이니
3,000년 방랑자 인 것입니다, 모르지요 앞으로 400년을 더 고생하라고 예언하셨으니
이스라엘 국민들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아께서는 생명성품의 샘플링으로 이를 증하시고자
에스겔을 통하여 역사의 인과를 증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인과는 개별적인 죄지은 당사자의 팩트가 육화 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변화의 기원은 윤회라 하는 것이며 이는 모탈의 집착성 인간 생각문화에서 갇히는 육화의 형성구조가 아니면
만물의 질서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읍니다.
우리들은 이 여호아의 계시에 대하여 잘 이해해야 합니다.
개별적인 가족관계를 육화 라 하고 육친이라 이름합니다.
1,조부조모 , 2,부모, 3당사자와 , 4,배우자 , 5,형제자매 , 6자식자녀
이를 육친이라 합니다. 서로 입장바꾸어 인과의 인연을 반연하여 같음의 행위를 전도몽상하여
늘 굴러간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친관에 서로 잘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각박하게 생각하고 도리어 방해짓는 육친 덩어리 웬수라고 하면서
살아내고 서로 자기 높이에서 비교하면 비판 비난하며 무시하려고 합니다.
이게 업이라는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인과로서 2,600년간 반연하며 모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변화의 요인이 육화인것을
보고 육친관계의 화목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면 종교적 의미로서
빛은 진리요 생명이라는 주)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못하는 어리석음에 쌓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이락크 레바논 등 주변나라를 포함한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를 열었는데 지금으로 부터 5,000 년 전입니다.
2,400년 전 부터 죄를 지어서 현재 70 년 전 까지 나라잃을 이스라엘 백성 아닙니까?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이를 인과의 역사적 인과율의 公業(공업) 의 소이라고 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으로서 나라의 정치를 끌고나는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연대보증을 서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합니다.
제도가 엉망이면 몇천년 고생하는인자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의 신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하신 여호아의 에스겔을 통한 감응으로 시대의 인과성, 개별적인 육화의 의미를
함께 함축하여 증 한 것이 됩니다.
인과는 존재하고 상존하며 이 모탈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입니다, 공률을 행해야하는 시간적 권역을 벗어나
생명성품을 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혹한 본인이지만 O의 언저리를 보는 감흥이 있었으며 큰 충격을 경험하였으나 혹세무민 하는 전이가 될까바
숙연하게 침묵하는것도 있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문영은 수메르 인 들의 일어나 문명시대를 연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출발이므로 기록연대도 그대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기록은 맞다 입니다.
그러므로 예스겔의 아바타 현상과 아바타로 연결되는 주체자는 늘 계시는 것입니다. 서로 상존합니다,서로 교감하며
서로 감응해야 사물의 이치와 논리 인과가 되는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실감해야 합니다.
이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추후 미래 3,000 년 정도를 미리 예언하고 에스겔에 계시한 목적은
성령의 역사를 증하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행하신 것이라고 아니 이해할 수 없읍니다.
에스겔은 깨어난 자 라는 사실을 이해하시고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성령이 임한자로서 O 을 직접 인과율을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연결하여 겪어서 본 자이므로 메시아가 창조주의 메시아가 교감하고 감과 응을 서로 교환하며 타는 것입니다.
이를 직관이라 합니다.
이거 모르면 성경공부 다시 해야 합니다.
2절
그러자 북쪽을 향한 윗문 쪽에서 여섯사람이 나왔는데, 각 사람마다 손에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은 모시옷을 입고 옆구리에 글을 쓰는 도구를
차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와서 놋제단 곁에 섰다
참고) 여섯사람은 육화를 담당하는 여호아의 밑에서 보좌하는 사자입니다. 6화에서 여섯사람은
36 입니다, O 을 행하는 자 입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은 모시옷을 입었다 함인데 모시옷은 영가의 옷이고 백의를 말함이므로 넋을 관장하는
사자 입니다, 사자란 여호아의 명을 받고 행하는 자 를 의미합니다.
옆구리에 글을 쓰는 도구라 심장에 4 數 음금으로 결단을 행하는 빛으로 운명을 결정짓는 빛이
있읍니다.
심장 비장 (5 손풍)
8 족 8 턱 4 허리 1 입
4 옆구리 3 뺨 8 다리 7눈
토 1 꼬리 금 5 體
인체 내부에 있는 중요한 기관 심장과 비장에 빛의 신경오온이 연결된 부위를 그린 도해도인데
현무도 입니다, 비춘다는 의미이지요, 심장안에 4 옆구리가 있읍니다.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질렀나, 니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질렀지"
심판과 잘 잘못을 가리는 주홍글씨는 옆구리에 글을 쓰는 도구를 찬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들어와서 놋제단 곁에 섰다. 놋은 검사요 흔적을 보는 향로 라 빛운동은 소리도 지니지만
그 인과으 냄새도 함께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것을 반영하여 무기를 등고 응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놋제단에 향로 도 있고 그 인과를 다 보고 반영하는 시설을 놋 제단이라 합니다.
8장 11절을 보게되면
"그림들 앞에는 이스라엘 장로 칠십명이 서 있었는데. 사반의 아들 야아샤냐도 그들과
함게 서 있었다, (양면술을 쓰며 한편은 하나님 모시고 한편을 우상을 모시고 음행을 저지르는 자) 그들은모두 향로를 들고 있었고, (빛은 소리도 내지만 냄새인 향도 인과율 맡큼
내퍼하여 동시에 인과가 작용한다 입니다) 그 향의 (냄새의 인과가) 구름처럼 올라가고 있다
(어디로? 창공으로 .. 창공은 항상 O 운동을 하는 권능의 장소임으로 구름은 항시 냄새를
동반하고 인과를 다 지니므로 창공이 이를본다 하는것입니다, )
3절
그러자 지금까지 두 날개 달린 생물인 그룹들 위에 있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 모시옷을 입고 옆구리에 글쓰는
도구를 찬 사람을 불러
참고) 두 날개를 달린 생물이라 함은 바람을 안고 바람질을 하며 살아가는 상대세계인 육의(물질) 물질생명을 표상합니다. 바람에는 여호아께서 늘 운영하십니다, 역경에서는 이를 손풍이라 함인데 (巽 風) 성인게서 가르침을
행하시는데 심장과 비장 (비장은 바람으로 어깨에 연결됩니다) 인데 심장은 地 대 의 바탕이고, 비장은 풍대의
바탕으로 인체의 내부 중심부로서 바랄질 하며 심판의 집결지 가 되는 것입니다.
(날개를 지은 이상의 시를 한편 읽어보시는 것도 상징함은 늘 연결지어 허구를 노래 하고 있음을 볼 수도 있읍니다, 사람은 손으로 바람질을 부릅니다 )
4절
그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성을 두루 다니면서(바람을 타고) 성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더러운 일 때문에 한숨지으며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를 해 놓아라"
참고) 응징의 인과율을 벗어나는 인과를 지닌 백성입니다.
10장 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다
1절
내가 보니 두 날개 달린 생물인 그릅들이 머리 위로 창공이 있었고. 그 위로 청옥으로
된 보좌 같은 것이 보였다.
참고) 청옥은 빛입니다, 창공도 빛입니다,청정한 O 운동을 하는 자리 이며 空界 를 운영하는 삼위일체 자리입니다.
2절
하나님께서 모시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룹 밑 바퀴사이에 들어가서
생물들 사이에 있는 숯불을 두 손 가득 움켜쥐고 이 성 위에 뿌려라"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참고) 숯불은 자연하게 재가 됩니다, 죽음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불의 작난이니 이 역시 빛입니다.
구릅 밑 바퀴사이는 6 의 구룸은 항상 O 질을 굴려야 합니다, 성령은 그냥 상주하고 전체가 움직이지 않고
비추며 반영하시지만 물질계의 6 은 항상 움직이며 회전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잇음인데 이를 반만보는
육화하는 생명은 늘 나머지 반을 채워 O 운동을 하는 영인지라 6 의 행적에 대하여 나머지 6 의 돌이킴의
심판을 받고 행 해야 합니다, 이를 바퀴 사이에 ( 바퀴안에 영으로서) 들어가서 숯불을 뿌린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불의 세계이며 욕망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읍니다.
3절
그 사람이 들어갈 때 그룹들은 성전 남쪽에 서 있었고 구름이 안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고) 북문은 물을 상징하고 표상하며 생명의 기원을 의미하고 남쪽은 불이며 火 이니 빛을 이야기 합니다.
빛은 번창도 의미하지만 치열하기도 합니다,
구름이 안뜰을 가득 채운다 함은 향의 놋제단에서 피운 그 인과의 흔적이 구름처럼 널리 깔려 있었으니
이 인과를 모우는 자 들이 6 의 구릅으로 육을 행하는 사자 들입니다. 모든 것은 인과율 대로 행합니다.
모티브는 까닭과 연유를 항상 물고 다닌다 이러한 이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아 께서는 언제나 원칙에서 공평무사를 행하시지 감정으로 움직이는 분 은 절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인가 우리 양심에 항상 함께 꼐시고 머묽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5절
그룹들의 날개 치는 소리가 바깥뜰까지 들렸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았다.
참고) 바람은 항상 성인의 말씀이고 바람은 어디든지 안 미치는 곳이 없읍니다.
사람 손질은 바람 잘날이 없읍니다. 巽(손)은 바람인데 사람 손을 손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6절
주님께서 모시옷을 입은 사람에게 (O의 옷을 입은, 백의를 입은) 명령하셨다.
"바퀴 사이, 곧 두 날개 달린 생물인 그릅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오너라. 그러자
그 사람이 들어가 바퀴 옆에 섰다.
참고) O 을 행하는 사자가 인간의 바퀴굴림의 곁에서 주시하고 있읍니다.
7절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 손을 내밀고 불을 잡아 모시옷을 입은 사람에게 넘겨주었더니
그가 그것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참고) O 의 사자가 6 화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빵을 매긴다는 것입니다, 불방 매기면 생노병사 의
틀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는 숯을 겪어야 합니다. 산화제를 덤팽이로 보너스 로 준다 이 말입니다.
8절
그때 그룹들의 날개 아래로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다.
참고) 날개를 펴고 날개짓하면 여호아의 성령의 가르침이 일어나는 바람인데 그 아래에 사람 손이 보이니
사람을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9절
그룸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 각 그들 곁에 바퀴가 하나씩 있었고, 그 바퀴의 모양은 놋주석 같았다.
참고) 빛을 비추고 반영하는 허리 아래 주석을 향하는 곳에 같음으로 바퀴를 굴리는 것입니다.
10절
네 바퀴의 모양은 다 똑 같았는데 마치 바퀴 안에 다른 바퀴가 있는 것 같았다.
참고) 시계내부를 보면 일 시 분 초 4 바퀴가 작고 크고 의 차이는 있으나 서로 안에서 연결되어 네개가 동시에
둥그런 모습으로 기아가 연결되어 돌아갑니다. 인간의 불빵맞는 짖을 해서 생 노 병 사 의 네바뀌를 항상 굴려야 합니다. 모시옷은 짜서 입읍니다, 그물처럼 말이지요, 삼베도 그와 같읍니다.
11절
그룹들이 움직일 때에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오직 머리가 있는 쪽으로만 움직였다.
참고) 곧장 앞만보고 간다는것인데 빛의 직진운동입니다, 행위의 소산 허리 아래의 행동의 주위를 보지않고
머리쪽만 바라보고 곧장 앞만 가는 것이므로 좌우 상하 사방을 둘러 보지 않고 죽음으로만 치 닫는다는
의미입니다. . 현무에는 오른쪽 다리 발에는 척추 등을 보이고 있읍니다, 앞으로만 간다는뜻입니다.
이 자리는 간 山 이라 지독하에 높은 곳에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에 산신사상을 지닌 우리민족도
자만과 교만이 강한 역사적 이력을 쥐고 굴러가고 있읍니다.
12절
등과 손과 날개를 포함하여 그룹들의 온몸은 마치 네 바퀴에 눈이 가득 달려 있듯이
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고) 예루살롐 백성들이 바퀴를 굴리는 동안 그 바퀴에 전부 눈이 달려 있으니 다 보고 다 안다는
뜻입니다, 운동 선수 하나에 눈이 10개나 달린 십방의 심판 구릅이 선수 하나 감시하는 것과
같읍니다, 여호아 눈길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함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들어갈 때, 그룹들은 성전남쪽에 서 있었고. 북을 마주하는 곳은 남쪽입니다
북은 물이니 생명이고 육인데 남은 火 이고 불이며 빛입니다.
지남은 항상 남쪽을 가리킵니다, 물리적 당위성은 항상 자기장 전기장으로 이해 하고
궁리를 넓혀 나가야 합니다,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근거하여 벌어지는 심판입니다."
13절
누군가가 바퀴의 이름을 "도는 것이라 고 불렀다.
참고) 모순을 지닌 인간의 육의 생명들은 항상 돌지 않고 돌리지 않고 굴러가지 않으면
설 수가 없읍니다, 지구는 모순이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구 비중이 균형을 좌우로 잡지 못해
삐탁 하고 타원형입니다, 모순이므로 돌아가면서 원 운동을 해야합니다, 완벽하면 돌아가지 않읍니다.
늘 그자리에 처처가득하게 부동하며 고요합니다. - 여호아의 처소가 그러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멘
14절
그룹들은 각각 네 얼굴을 가졌는데 ,
첮째 얼굴은 두 날개 달린 생물인 그룹의 얼굴이었고,
둘째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였고
셋째 얼굴은 사자의 얼굴이였고
넷째 얼굴은 독수리의 얼굴이 었다.
참고) 백성의 속성은 이처럼 4 가지 얼굴의 성품을 다 지니고 있음인데 이를 짐승표라 이름하는데
하나님 휘하에 보좌하는 사자들은 백성들의 이러한 성품과 같음으로 행 하기 위하여 이 모습을
반영하여 나타나 육의 반을 같음으로 육의 행적을 지워 O 을 행하게 하는것입니다.
15절
그때 그룹들이 위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생물이었다.
16절
그릅들이 움직이자 바퀴들도 그 곁에서 함께 움직였고 그룹들이 땅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자 , 바퀴들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참고) 여호아의 성령과 백성들관의 인과의 결부성을 반영하는 불가피한 숙명적 고리를 말 합니다.
17절
그룹들이 멈추면 바퀴들도 멈췄고 그룹들이 올라가면 바퀴들도 올라갔다. 그것은 생물들의
영이 바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 여호아께서는 항상 같음을 행하심이니 공평무사하고 피조물 백성들은 6 을 행하고 이 행함의같음을
거꾸러 돌려 받아 O 을 행해양 합니다. 지금 이 광경을 에스겔이 보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에스겔의 11 장 부터 소개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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