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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없는 사람들
박 화 성
여보소 이 사람 어디를 가나
산 높고 물 깊어 길 험하다네
강서가 예서도 일천오백 리
나는 새라도 사흘 간다네.
에라 둥둥 내 사랑이야
너를 놓고는 내 못 살리라.
아니 가고 어이를 하리
정들인 고향이 날 몰아내데
땅 좋고 물 좋아 살기 좋대도
내 고향 안 잊혀 어이를 가리.
에라 둥둥 내사랑이야
너를 놓고는 내 못 살리라.
오삼룡이네 외에도 아홉 집 가족이 평안남도 강서(江西) 능으로 살러가게 됐다는 말이 돌면서부터 누구의 입에서인지 이런 노래가 흘러나와서 설움에 흐느끼고 있는 불암리(佛岩里) 이 작은 동리에 안개 퍼지듯이 좍 펴졌다.
작년 홍수 때문에 농사라고는 쌀알 몇 입밖에 건져보지 못한 각 면 각 동리 일백 호의 가족이 독차(專用汽車)를 타고 일제히 강서로 떠난다는 삼월 이십 이일이 가깝게 닥쳐올수록 이 노래는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더 자주, 그리고 더 익숙하게 불러졌다.
이들 열 집의 호주들은 몇 번이나 면사무소에 불려가고 면사무소에서도 거의 그 수효만큼이나 자주 조사를 나왔다.
삼월 스무날 저녁에는 오삼룡이와 제일 친한 강판옥이네 집에서 떠나는 열 친구를 위한 이 동네의 전별잔치가 있었다. 보내는 사람들의 각 집에서는 쌀이 적어서 떡은 못 하나마 다만 몇 줌씩이라도 모조리 걷어서 밥을 짓기로 하고 쌀은 일제히 형편 따라 부담한 후에 각각 간장, 기름, 나무, 김치, 나물(채소), 이런 것들을 분담해서 저녁 밥을 준비하고 주머니들을 다 털어 막걸리 몇 되를 받아왔다.
동네에서는 제일 크다는 강관옥의 집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과 마루에 사람들이 콩나물 서듯 들어앉았건만 자리가 좁아서 뜰 아래 까지 멍석을 펴고 앉게 하였다. 그리고 아직은 겨울 날씨라 하여 마당에다는 불을 피워서 더운 김이 나도록 하였다.
서로 권하느니 사양하느니 하는 와글와글 끓는 소리가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마당으로 또 마당에서 방으로 마루로 정답게 오고가고 김이 서리는 부엌 속에서 심부름을 하는 부인들의 오손도손하는 얘기 소리들이 계속하는 동안 그들의 위장은 웬만큼 부요하여졌다.
벼를 베어낸 논바닥처럼 허하고 쓸쓸하기 짝없는 이들의 뱃속에 틉틉한 막걸리 사발씩이나 들어가 놓으니 그들의 어둡던 가슴은 화촉의 신방같이 훈훈하고 밝아오는 게 봄날의 햇볕처럼 제법 따끈해졌다.
삼룡이 곁에 바싹 다가앉았던 판옥이가 벌떡 일어나서 다들 자기를 주목하라는 듯이 기침을 연방 크게 하였다. 과연 사람들은 판옥의 기침 군호에 고개들을 방으로 돌리고 쳐다보았다.
“허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 마당에다가는 불을 피우고 일 년 열두 달 다 가도록 못 먹어보는 쌀밥을 먹어보고 막걸리로 반주를 하고 온갖 성찬으로 안주를 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지껄이니 남 보기에는 무슨 즐거운 경사나 있는 것같이 보이겠소마는 사실인즉 우리 평생에는 처음 당해보는 슬프고 슬픈 불길한 날이오.”
“암 그렇다마다.”
여러 사람은 기도 소리 뒤에 부르는 ‘아멘’ 소리같이 일제히 말을 받았다.
“모레가 되면 우리 동리에서는 열 집 가족 사십 명이 산 채로 죽어서 나가는 날이오. 허 죽는 것이나 뭣이 다르오? 허…….”
판옥이의 목소리는 터지려는 울음 속에 잠겨버렸다. 귀 밝고 눈 여린 아낙네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부엌에서 새어나왔다.
방 안에서, 마루에서, 마당에서, 코를 불고 입을 불며 울음을 삼키는 대장부들의 억센 숨소리가 들렸다.
“우리 동리에서 무슨 어려운 일이 있든지 항상 대표로만 나가는 삼룡이, 어질고 착한 중권이, 재담 잘하는 옥곤이, 동네 편쌈은 도맡아놓고 대장 노릇하는 우리 관운장 상걸이.”
판옥의 이 말에 부엌 속에서는 가냘픈 웃음소리(그러나 눈물과 섞인)가 들려왔다.
“공자님같이 유식하고 덕이 많은 윤홍이, 장비같이 시원시원하고 힘 잘 쓰는 영대, 남의 일 잘 봐주는 태술이, 구변 좋은 창곤이, 그리고 나이 어려도 다 천연하고 똑똑한 인수, 종선이, 이렇게 열 사람이 쑥 빠져서 나가버리니 자네들 가버린 담에 우리 일은 다 누가 맡아서 해주고 누가 알어서 처단해주고 누구하고 의논해서 해가란 말인가?”
워낙 입담이 좋은 판옥에게 술이란 홍분제가 들어가고 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한다는 비분강개한 마음이 들어가 놓으니 조리 있게 나오는 말이 흐르는 물같이 술술 흘러나왔다.
“자네들은 살길 찾어서 간다고 가버리니 우리같이 이렇게야 서운할라던가? 자네들이 없어지면 우리 동네는 눈을 잃고 귀를 잃고 입을 잃고 힘을 잃고 덕을 잃고 왼갖 것을 다 잃어버린 산송장이 돼버릴 테니 자네들을 보내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너무도 야속하고 너무도 모지네 그려.”
판옥의 나중 말은 애원의 하소연이 되어 떠나려는 열 사람의 가슴을 긁어냈다.
“자네들이 다 멀쩡하게 살어 있을 때도 우리 동네는 압제를 받고, 욕을 당하고, 힘을 못 쓰고, 억울하고 원통하게만 살어왔거든. 자네들이 가버리고 나면 뼈 부러진 팔다리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허…… 어떻게 버티고…….”
말끝을 흐리더니 판옥이는 우후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펄썩주저앉았다. 떠나는 열 사람도, 보내는 사람들도 다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삼룡아! 읍에나 면에나 주재소에나 지주댁에나 너하고 나하고 대표로 댕기더니마는 너는 가고 나는 혼자 어쩌란 말이냐? 아이고 기막혀라, 우리 동네는 어째서 너희를 몰아내야만 한단 말이냐? 너희가 가면 우리 입에 그래 쌀밥이 들어갈 것이란 말이냐? 아니 가진 못한단 말이냐? 허 원통하다 원통해!”
판옥이는 방바닥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울음 섞인 넋두리를 하였다. 자리는 온통 울음판이 되었다.
구름이 쓱 지나가면서 둥글고 밝은 보름달을 이들에게 선사하였다. 달빛에 마당이 훤해지자 마당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고향의 달도 마지막이다!”
젊은 인수의 입에서 히스테릭 한 비명에 가까운 부르짖음이 나왔다. 무심한 달은 떡아기의 방싯거리는 웃음과 같이 잡티없는 옷음을 가득히 싣고 감나무 가지를 타고 넘었다.
삼룡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일어난다. 훤칠한 이마에 큰 키였다.
“허 그만들 울으십니다. 우리가 천리 타향에 간다 할지라도 마음만큼은 고향에 주고 가오. 마음만 서로 통하던 우리가 여기 없어도 우리들 있을 때같이 매사를 해가실 것이라고 생각하오. 여러분은 우리 없는 동안 고향을 잘 지키시고 고향을 잘 키워가시오. 멀지 않아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고향을 찾어올 것이오.”
“암! 오다마다, 안 와서 쓸 것이라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일어났다. 누가 부르는지 모르게 그들은 요즘의 유행 노래(이 동네에만 유행하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여보소 이 사람 어디를 가나
산 높고 물 깊어 길 험하다네 ,
강서가 예서도 일천오백 리
나는 새라도 사홀 간다네.
에라 둥둥 내 사랑이야
너를 놓고는 내 못 살리라.
“다음 것은 자네들만 하소.”
하고 판옥이가 노래 틈에 말을 끼웠다.
아니 가고 어이를 하리
정들인 고향이 날 몰아내데
땅 좋고 물 좋아 살기 좋대도
내 고향 안 잊혀 어이를 가리.
에라 둥둥 내 사랑이야.
너를 놓고는 내 못 살리라.
구름은 다시 달을 가린다. 이들의 울음 섞인 노래를 알아나 들은 듯이…….
삼월 이십이일 오전 열시! 학다리〔鶴橋〕 정거장은 일백 호의 가족 사백 명의 이민(移民)과 그들을 전송하는 이백오륙십 명의(정거장 생긴 이후 처음 되는) 굉장하게 많은 손님들을 가져보았다.
그들을 위하여 임시로 마련한 독차가 연기를 뿜고 돌아다니며 먼길 떠날 준비를 하다가 어서들 올라오란 듯이 꼬리를 공손하게 대령하고 서 있건만 독차를 타고 갈 손님들의 행장들이란 지저분하고도 허름하였다.
작고 퇴색한 검은 보에다가 터지도록 싸놓은 침구의 양 귀퉁이가 삐죽하게 나와서 남루한 몰골을 보이고 있고 참기름이나 피마자기름병인 듯한 맥주병 이 가뜩이나 작은 보자기에 염치없이 끼워 있었다. 물에 담갔다가 정하게 씻었으련만 그 보람도 없이 시꺼멓게 그을린 대석작(아마 그 속에는 사발, 접시, 이런 것들이 들어 있겠지) 위에와 옆에는 크고 작은 바가지를 엎어서 새끼로 동였고 거의 다 떨어진 부담 상자와 농짝들도 각각 수하믈(手荷物) 행세를 하느라고 면 이름과 성명을 적은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이러한 짐짝들이 짐차칸으로 실리고 실리는 동안 군중들의 떠드는 말소리들은 울음판으로 변하였다.
차 속에 가면서 먹을 밥 보퉁인 듯한 꾸러미들을 들고 아기들을 업고 서 있는 부인네들의 앞뒤에는 전송 나온 부인들이 한두 사람씩 붙어 있고 남자들은 좀 큰 아이들을 안고 또 무엇인가를 들고 차례차례 인사를 하며 돌아다녔다.
외할머니인 듯한 노인이 딸이 업고 있는 외손자에게 눈깔사탕의 봉지를 쥐어주며 소리를 내어 울고 남편의 친구인 듯한 사람들은 떠나는 어린애들에게 엿과 마메콩(왜콩)을 사서 들려주었다.
한편에서는 빚쟁이들이 떠나는 사람들의 행구를 붙잡아놓고 주고 가라는 최후의 호령들을 하였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들의 일행이 각각 빚쟁이들을 둘러싸고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역성을 하였다.
“허 그군 참 더럽다. 이 짐짝이 그렇게 욕심이 나거든 가지고 우리 대신 강서까지 가게, 누가 말리는가?”
하는 말쯤은 온순한 편이지만,
“죽으러가는 놈의 관 벗기는 놈은 저승에 가서 사자 노릇도 못 해 먹느니라.”
하는 욕설은 좀 과격한 편이었다.
그러나 빚쟁이 역시 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역성꾼들을 떠밀며,
“이놈들이 왜 이 모양이어? 밝은 세상 아래 뉘 돈을 먹고 달아나겠다고 웅! 어림없제, 안 돼, 안 돼, 이것은 두고 가야 한다.”
하고 눈을 부라리며 짐짝을 끌어당긴다.
“요놈이 마지막으로 우리 손때 맛을 보고 싶은 것이로구나. 전에는 우리가 느그 앞애서 목을 바치고 살었지마는 지금쯤 당해서는 죽으러 가는 놈에게 염치가 있을 리 없다. 남의 것 잘라먹는 도둑놈들은 배가 항아리만하게 더 잘 살더라, 이놈 안 놔? 에라 이놈!”
하고 그들은 주먹으로 빚쟁이의 등을 갈겼다.
각 면에서 나온 면장들과 주재소 순사부장들은 이날에 한해서만 떠드는 사람들에게 최후 발악을 허락해준 듯 좋은 말로,
“자아들 어서들 차례차례 타시오.”
하고 차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사람들이 차에 오르기 시작하자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그악스립게 크게 났다. 그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패들은 칠팔 세 되는 남녀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은 우르르 뛰어들어가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찻간을 둘러보았다.
“꼭 방 속 같다 웅? 선반도 있어야!”
하고 속삭이기까지 하면서…….
삼룡이와 판옥이는 술집에서 나왔다.
“너하고 나하고 술잔을 바꾸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날 테니 몸이나 잘 돌보아.”
판옥이는 삼룡의 손목을 접더니 소매를 잡아당겨 으슥한 데로 끌고 가서,
“이것은 우리 집 딸 몫으로 있는 흰 돼지를 판 것인데, 돈이야 얼마 될라는가마는 생사의 정에서 주고받는 표적으로 받어주게.”
하고 지전 한 장을 쥐어줬다.
“허 이거 무슨 짓인가? 오 원? 오 원이라니, 오 원을 가지고 자네네 일 년 거름값을 하지 않겠는가? 나야 이왕 가는 놈인데 돈이 당할 소린가? 자 어서 너두게, 내가 되려 자네 딸 혼인에 저고리 한 감도 못 떠주게 됐는데 시집 갈 밑천인 돼지를 뭣하러 팔었는가? 자 어서 너두게, 그런 망령난 소리 하지 말고…….”
삼룡이는 굳세게 거절하였다.
“하니 왜 이러기냐? 내가 아무리 사람값에는 못 가는 버러지같이 된 인생이다마는 사내자식이 그래 친구를 영이별하는 자리에서……허 안 될 말어어. 허 그 사람 참, 자 어서 들오라고 면장이 저기서 손짓하네, 얼른 받어.”
관옥이는 삼룡의 조끼 틈에 오 원 지폐를 넣었다.
남자들은 대개 송정리 정거장올 지나면서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무들끼리 얘기를 하였으나 아낙네들은 원망스러운 듯이 창밖을 내다보며 대전역에 닿을 때까지 눈물을 걷지 않았다.
독차로 가는 길인지라 정거장마다 정거할 필요가 없으며 기차는 쉬지 않고 줄곧 달리기만 하였다. 기차를 평생에 처음 타보는 부인들은 차멀미를 하여셔 자리에 꽉 엎드려 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황홀한 전등불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는 경성시가를 바라보며 그들은 경성을 지나서 다시 북으로 가는 것이었다.
“참 서울이란 넓고도 좋은 데로구나. 우리 생전에 서울 구경도 못 할 줄 알았더니 서울을 지내서 가는 데가 어디메냐?”
하는 삼룡이의 큰소리가 애조를 띠고 나오자 여러 사람의 가슴은 납덩이를 삼킨 듯이 뭉클하고 답답해졌다.
타향의 밤과 밤이 적막하게 이어져 있는 그 차고 쓸쓸한 어둠을 뚫고 이민을 실은 기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건만 그들은 가엾은 꿈은 남으로 남으로 뒷걸음을 쳤다. 아기들을 재우느라고 남녀가 번갈아서 눈을 좀 붙이노라면 귓가에서는 부모 친척과 동행 친지들의 통곡하는 소리가 그들의 흔들리는 꿈을 깨고 말았다.
창 밖에서는 어두움과 추움이 수레를 습격하고 한숨과 탄식의 소리가 가득한 찻간에서는 고향에 두고 온 환상들이 이들의 고달픈 머리를 뒤흔들었다.
한창 매운 바람이 귀를 갈기는 색벽 두시에 이들은 말루만 들어보던 평양 정거장에 내려서 또 다른 기차를 바꿔 타고 정작 강서를 향하여 떠났다.
그 이튿날 첫새벽에 기양(岐陽) 정거장에 내리니 짐자동차와 또 그렇게 짐자동차같이 커다랗게 생긴 자동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대가 되는지도 알 수 없으리만큼 수많은 자동차이건만 자동차마다에 사람이 첩놓이다시피 빽빽하게 들어앉아서 또 얼마를 산길로 달려갔다.
“아이고 인제는 우리를 갖다가 산 채로 산 속에다 묻어버릴란갑다. 인제 정말 우리는 죽고야 마는구나.'
하는 여인들의 두려움에 떠는 소리는 남자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여놓았다.
“옛날의 귀양살이도 못 보내는 놈은 몰아다가 때려 죽인다더니 인제 우리를 잡아다가 죽일라는가 보다. 아이고 우리는 무슨 죄로 고향에서도 못 죽고 천리타관 이름도 모르는 산 속에 와서 죽는단 말이냐!”
어떤 부인은 이런 넋두리를 하며 울었다.
“요망스럽게 울기는 왜 울어.”
삼룡이는 자기 아내를 꾸짖었으나 앞뒤 자동차에서 들려오는 여인들의 느껴 우는 을음소리에는 자기의 철석 같은 간장도 끊어지는 듯하여 그는 입을 다물고 한숨만 푹폭 내쉬었다.
얼마쯤 가노라니 이번에는 바다가 멀리 바라다 보인다. 자동차가 달릴수록 바다는 가깝게 닥쳐왔다.
“인제는 우리를 몰아다가 바닷 속에다가 처넣어 죽이랴나 보다.”
하는 말소리가 튀어나오자,
“정말로 인제 우리는 바닷귀신이 되어놓았네.”
하고 남자들도 청승맞은 한탄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죽을 때 죽더래도 미리 겁부터 내지 말고 맘들을 단단히 먹으시오.”
삼룡이가 기운차게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은 울음을 뚝 그쳤다.
삼룡이네 일행이 떠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들이 떠난 후에는 불암동에서 한때 유행하던 이민 노래(그들은 이민 노래라 하였다)가 차차로 없어져 버렸다.
판옥이는 삼룡이네 살던 집을 지나다닐 때마다 삼룡이를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삼룡이네가 데리고 있던 개를 관옥이가 맡아서 기르고 있는데 판옥이가 속상하다고 머리도 돌려보지 않고 그냥 지나다니는 옛 주인집을 검둥이는 지나다닐 때마다 들어가보고 나왔다.
지금 새로 들어 있는 집 주인의 말을 들으면 검둥이는 마당으로 쭈르르 들어와서 먼저 부엌문에서 기웃거려보고 다음 툇마루 밑에 서서 방안올 들여다본 후 대추나무 밑올 한바퀴 돌아서 나가는 것이라 하였다.
“미물의 짐생인 너도 옛주인을 못 잊어 그러하거든 삼룡이야 얼마나 고향 생각을 간절히 하고 있겠느냐?”
판옥이는 앞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강남 갔던 제비도 옛집 찾어 돌아오고 앞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했건만, 삼룡이네 대추나무에도 새싹이 파릇파릇 봄바람에 나부끼고 삼룡이네 배추밭에는 배추꽃이 피었건만 삼룡이는 어디 가 이런 줄을 모르는가?”
판옥이는 노래 부르듯이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갈아놓은 검은 논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금년에는 저 논에서 몇 말이나 얻어먹어보게 될랴는가?”
그는 다시 눈을 들어 흰구름이 유유하게 밀려가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판옥이 편지 받소.”
논둑길을 걸어오는 우편 배달부가 판옥이를 부르며 편지 한 장을 전했다. 판옥이는 발신인의 이름을 보면서 달리다시피 집으로 뛰어갔다.
“어디서 왔소? 아마 덕근 아배한테서 왔는감만, 저리도 좋아하게.”
마누라가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덕근 어메도 잘 있고 덕근이 남매도 잘 있다고 했소?”
그 역시 판옥이만큼 바쁜 모양이었다.
“허 그 여편네 무척 급했네, 읽어봐야 알지 안 읽어보고도 아는 재주가 있는가?”
판옥이는 빙 이 웃으며 떠듬떠듬 편지를 내려 읽어갔다. 한참만에야,
“그러면 그렇지, 우리같이 없는 놈이 어디 가면 별수 있을라고.”
하고 판옥이가 편지를 접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아이고 갑갑하구만. 원 얘기나 좀 시원스럽게 해주시오그려.”
마누라는 마루로 나와서 쪼그리고 앉으며 남편의 입을 쳐다보았다.
“당초에 모든 형편이 말 아니라네.”
“어째서 그럴까? 지어논 집에 논 스무 마지기씩 주고 소 한 마리씩 주고 왼통 농사기계 다 주고 그런다는디.”
“그 집이라는 것, 말이 아니래어. 방 한 칸 정제(부엌)한 칸에다가 양철뙈기만 얹어서 집이라고 만들어놓고 흉악한 초석자리 한 닢에 오십 전씩 깎드라고 안하는가?”
“저런!”
“그리고 장난감같이 생긴 삽 하나, 소시랑 하나, 괭이 하나, 호미 하나씩 주고 농장에서 본값보다도 비싸게 깎어버 리드라네그랴:”
“아갸……?”
“그것도 그렇고 왼갖 것을 다 그렇게 비싸게 감하는디 요새 안즉 땅이 덜 풀려서 일을 못 하니께 농장에서 주는 돈 십 원으로 한 달을 살어갈랴니께 죽겄다고 덕근어무니는 날마당 울고 있다고 안하는가?”
“저를 어짜까? 망할 놈의 곳도 있다. 여기는 봄도 한창인디 안즉 땅이 안 풀리다니. 아니 한 사람 앞에 일백 얼마씩 기부했다더니만 왜 그럴게라우?”
“흥 당구 삼 년에 음풍월이라더니 작년내――하도 이민 이민하고 기부 기부하는 덕에 우리 마누라까지 썩 유식해졌네.”
판옥이는 쓰디쓰게 웃었다.
“덕근어매가 불쌍해. 어째 울지 않겠소? 날마다 고향 생각나서 못 견딜 것인디. 그나저나 정부에서 보내는 것인께 아무 염려없이 잘살 것인디 물건값은 왜 그리 비싼고?”
“물건값이 비싼가 어디? 농장에서 되거리로 그렇게 비싸게 받어먹지.”
“좀도둑이라더니, 그 불쌍한 속에서 뭣을 남겨 먹을라고 그런 짓을 할까?”
“자네 같으면 다 성인 되게? 잔소리 그만 하고 어서 저녁밥이나 하
소.”
판옥이는 편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허 무슨 날이 이렇게 비만 와쌌는고 몰라. 고향에는 비가 안 와서 모를 못 내고 기우제를 지내고 물쌈이 나고 인심 이 뒤집혀져서 야단이라는데 여기는 쓰는 데 없이 비만 오거든.”
“글쎄 말이오, 이 비를 그리고 쫓아보낼 재주는 없을까? 비가 잘 오고 농사를 잘 지어야 하루바삐 우리도 고향으로 가버릴 텐디…… 아니 오늘 불암서 무슨 소식이 왔소?”
삼룡이 처가 감자를 깎으며 방으로 들어오는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응, 오늘 판옥이한테서 편지가 왔어. 그나저나 그렇게 가물어서 큰일 났네. 작년에는 홍수로 못 먹었으니 금년에나 농사들을 잘 지어야 할 것인디…….”
삼룡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담배 한 대를 담았다.
“아이고 갑갑헤라, 이놈의 곳은 어쩐 일로 마루를 못 맨든고 몰라. 마루를 놓다가 제 할미가 거꾸러졌는가 집집마다 다봐야 좋다는 집에도 마루가 없으니 참 흉한 놈의 곳이란게. 이 방구석에서 여름은 또 어떻게 날 것 인고?”
마누라는 방문을 탁 열어젖히며 중얼거렸다.
“어서 여름 전에 고향에 가버려야지, 아이고 지긋지긋합 이놈의 땅!”
“지금은 여름이 아니고 봄인가? 그만저만 욕도 하소. 우리가 없어서 여기까지 굴러왔지 땅이 무슨 죈가?”
“원 아무리 없어서 굴러왔더래도 사람이 살 만한 데라야지, 여기서는 못 살아, 그릇이라고 모도 기와그릇밖에 없고, 나무 한 단에 삼십 전을 주고 사도 밥 한 끼밖에 못 하니. 장이라고 십오 리나 이십오 리씩 걸어가서 살라고 보면 모도 여편네들 장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말소리도 못 알아듣겄고 비싸기는 똥싸게 비싸고 간장 된장이 어씨 맛이 없는지 원 음식을 해놓으면 무슨 맛이 있는가?”
“잘 나온다, 또?”
삼룡이는 마누라의 말 중간을 타고 들었다.
“이것 되지 못한 해변이라고 밭뙈기도 못 벌어먹으니께 왼갖 푸성가리까지 다 사먹 게 되니 어디 살겠소? 고향에서는 호박이니 풋고추니, 솔파, 마늘 그저 김치거리, 상추, 쑥갓 왼 동네 다 먹고도 남더니마는 여기서는 그런 것을 꼴 볼 수가 있는가?”
“고향에 암만 들어쌨으면 뭘 해? 다 그림의 떡이지, 고향이 좋으면 떠나왔을라던가?”
삼룡이는 가만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오면 참 잘살게 된다길래 왔지 이럴 줄 알었으면 오막살이남둥 뭔 지랄한다고 내어버리고 이리 굴러올까? 죽어도 고향에서 죽을 것인디 공연히 당신이 못 와서 발광을 하더니만…….”
“또 내 닺 나온다. 하구 많은 날 내 탓도 너무 하니까 듣기도 인제 싫증나네.”
“들어도 싸지 뭣. 사내가 잘났으면 처자를 데리고 이런 흉악한 데로 굴러왔을까? 그렇게 진정서를 총독부에 보내라고 해도 남 다 보내는 진정서를 왜 안 보내고그래? 그저 내가 여기서 고꾸라지는 것을 봐야…….”
하고 악을 바락 쓰는 바람에 낮잠 자던 덕근이 남매가 부스스 일어났다.
“미친 여편네 또 미친증 나오는가 부다.”
“왜 내가 미쳐? 세상에 물만 조금 좋아도 참고 살어갈 테여. 물이 그냥 소금 맛이니 어찌 살어. 밥을 하면 쌀에가 간이 피어서 밥이 넘지를 못하고 그냥 지글지글 지져내버린께는 이것은 밥도 죽도 아니고 익은밥도 선밥도 아니제? 빨래를 해서 널어놔도 그냥 간이 피어서 이틀씩 말려도 축축하게 그대로 있으니 이런 흉악한 데서 어찌 살어가는가 말이오, 응? 고향에를 못 가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죽어버리지 여기서는 안 살라우―.”
마누라는 독이 나서 얼굴이 새파래졌다.
“뒤어질라거든 뒤어져버리려믄.”
삼룡이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흥분한 판이니 공자님이란 별명을 듣는 윤홍이나 찾아가서 속 풀릴 얘기나 들어볼까 하고 삼룡이는 윤홍이가 살고 있는 농장회사 뒤편으로 나지막하게 모여 있는 새 동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동리까지 가차면 흙탕이 찰떡처럼 짓이겨 있는 논둑길을 걸어야 하고, 차진 흙이 고무신 운두를 넘어들 것을 생각하여서 그만두기로 하였다.
“가면 윤홍이만 만날 수 있어야지, 윤홍이 마누라 그 사팔뜨기 발악하는 꼴을 또 어떻게 보라고? 이 집에 가나 저 집에 가나 여편네들 못 살겠다고 들이대는 통에 그만 숨도 제법 크게 못 쉬겠으니…….”
가는비가 머리털 위에 방울방울 맺혀졌다가 그의 얼굴로 줄줄 흘러내리건만 삼룡이는 비를 닦을 생각도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비를 다 맞으며 집 앞 언덕에 서 있었다.
“귀한 비니 맞어나 두자. 여기는 흔한 비지만 내 고향에는 오죽이나 귀한 빗방울이냐? 아직도 이종을 못 하고 있다니.”
삼룡이는 고향에서 제일 큰 들인 학다리 들판을 생각해보았다.
“금년이나 농사를 잘 지어야 우리 동물들이 살아갈 톈데…… 하기야 잘 지으면 뭘 하냐? 잘 지으나 못 지으나 평생에 쌀밥 못 얻어보기는 매 일반이지……고향! 고향! 정 뗀 고향을 생각하면 뭣해?”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고향을 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감았다 뜨는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역시 가물가물하는 빗발 속에 후줄근하게 젖었다가 물이 홍건하게 괴어 있는 학다릿벌의 논이었다.
아니 지금 삼룡의 눈앞에 열려 있는 강서 농장의 박답이 고향의 옥토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바다를 막고 원을 쳐서 논을 이룬 이 농장은 볼품이야 학다릿벌만큼 넓고 크지마는 해기(海氣) 나고 간수가 피어서 파종을 두 번이나 했건만 반의 반도 못 건졌고 이종도 몇 번씩 했건만 뿌리 째 간물에 녹아져버렸다.
‘말이야 좋지, 논 스무 마지기씩? 흥 이따위 논이야 스무 섬지기면 뭣해? 우리 여편네 지랄하는 것도 저만 나무랄 수 없어. 말이야 다 옳은 말이지, 하나나 그른 말이야 있나? 집집마다 여편네들이 못 살겠다고 발광치는 것도 당연하지, 당연해.’
삼룡이가 농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섰을 때 그 마누라가 부엌 문에서 내다보며 소리 쳤다.
“덕근 아버지!”
삼룡이는 못 들은 체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덕근 아버지! 손님 오셨소.”
“뭐 손님? 누구 왔는가?”
삼룡이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보며 마주 소리쳤다.
“어서 와보시오그려. 봐야 알지 않소?”
마누라의 머리는 벌써 부엌문께서 사라졌다.
“손님이 어디 있어?”
방 안에 들어온 삼룡이는 눈을 굴리며 손님을 찾았다.
“아니 여보, 글쎄 빨래해서 말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고 일부러 비를 맞고 그러고 서 있소? 옷 먼저 벗으시오.”
“빗물인께 이대로 말리면 얼른 마루지 않겄는가? 간수도 안 필 테고…….”
“헤헤 참 대체 그렇겄소.”
마누라는 비로소 웃어보였다.
“그래서 손님 왔다고 거짓말했는가?”
“옜소. 감자나 자셔보시오.”
마누라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감자그릇을 방 안에 들여놨다.
“흐흥, 이놈들은 벌써 한 개씩 차지했구만, 자네도 들어와 먹소.”
조금 전에 씩둑깍둑 말다툼했던 그들은 감자 그릇 앞에서 썩 의좋게 도란거렸다.
강서 농장으로 옮겨온 이민들은 전부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진정서를 총독부에 보내고 날마다 회사에 가서 속히 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금년은 첫해니까 이렇지마는 내년은 논 벌기가 훨씬 나아갈 테니까 그대로 견뎌가며 살아보라.”
고 회사측에서는 달래보았으나, 그들이 필사적으로 덤비는 것에는 어쩔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실 농작물이 없는 터이라 그 많은 식구를 겨울 동안 먹여 살릴 일이 딱한 듯싶어서 이민들의 귀향을 주선하여주었다.
이리하여 팔월 중순에 그들은 꿈에까치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그의 고향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불암리에서 온 열 집 가족도 몰론 귀향하기로 작정하고 부인들은 모여만 앉으면 고향의 얘기로 꽃을 피우고 기뻐하였으나 삼룡이는,
“흥 자네가 가면 고향이라고 누가 자네를 그리 반갑게 맞어줄 줄 아는가?”
하고 빈정거렸다.
“아이고 참, 아모리 고향이 나쁘다 해도 여기보다는 낫지라우. 겨울에 여기서 살다가 죽느니보다는 진작 고향에라도 가서 붙어 살어보다가 굶어죽든지 말든지…….”
다른 부인들은 신이 나서 삼룡의 말대답을 하였다.
귀향한다는 새로운 희망에서 그들은 고생을 낙으로 삼고 밤과 낮을 맞고 보내며 어서 그날이 닥쳐오기만 슨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떠나기로 작정 한 사홀 전날 오삼룡이는 강판옥에게서 이러한 긴 편지를 받았다.
자네들 간 후로는 날마다 자네들 생각하기에 못 살아갈 것 같더니 그래도 자네들 대신으로 자네들 열 사람의 행세를 할 군들이 생겨서 우리는 재미있게 합심해서 잘 살아왔네. 그러나 진짜 배곯는 고생이야 누가 대신해줄 사람이 있던가? 만일 금년에 농사만 잘 지었더라면 우리는 세상없어도 자네들을 도로 불러오려고 했더니, 그랬더니 하늘이 무심하여 작년에는 홍수로 자네들을 몰아내고 금년에는 개벽 이래로 두 번도 없는 큰 가뭄이 우리들을 마저 죽여 고향에서 쫓아내네그려. 저번 편지에도 여기 소식을 말했거니와 그 후로 오늘까지 비 한 번 아니 와서 모판은 말러지고 겨우 이종했던 나락(벼)들도 다 죽고 말았다네. 우리 고향의 보배인 학다리 그 큰 들은 이종도 못 해보고 벌건 채로 그대로 자빠져 있네.
이러니 흙에다가만 목을 매고 살하가는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작년 홍수 때보다도 몇 백 곱이나 인심이 흉흉하고 온갖 병이 다 돌아다니네. 그래서 고향을 내버리고 타관으로 떠나가려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간다네.
삼룡이, 오늘도 우리 앞 동네 정골에서 이십 호 일백세 사람이 함경북도 고무산(古茂山)에 있는 시멘트 공장으로 떠나가는데 정말 눈에서 피가 떨어지데. 삼룡이, 나는, 이 강판옥이는 구월 초순에 함경북도 나진(羅津)이라는 땅으로 노동자 노릇을 하러가게 됐네. 우리 동네서는 옥곤이네 큰 형네하고 태술이네 삼촌 영전이네, 형돌이네, 그리고 강판옥이 합해서 다섯 집 스물여섯 사람이 죽어나가기로 했네. 인제는 우리 동네에 옛날 사람은 다 없어지고 다른 동네서 살러온 사람 밖에 없겠네그려.
삼룡이, 고향이 대체 무슨 쓸데 있는 것인가? 자네들 보내고 나서 뚝 끊어졌던 노래가 요새는 다시 살아나서 야단이네. 정답던 고향이건만 묵은 채로 자빠져 있는 논을 보면 인제는 그만 정이 뚝 떨어지고 어서 하루바삐 타관으로 가서 고향의 참혹한 꼴을 안 보고 싶네. 말을 들으니 자네들도 다시 고향에 오려고 생각한다네마는, 자네들이 왔자 누가 하나 반갑게 자네들을 맞아줄 사람이 없겠네.
삼룡이, 인제 우리는 정말 죽어서 저승에 가서나 만나보겠네. 자네나 내나 더욱 좋은 일만 하세. 좋은 일을 하면 극락에 간다고 않는가? 둘이 다 극락에를 못 가겠거든 차라리 똑같이 지옥에나 가세. 고향에서 쫓겨나는 우리 같은 놈들에게 남는 것이 악뿐일 텐데 어찌 좋은 일을 해보겠는가? 자네나 내나 몸만 성하면 혹시 어느 하늘 밑에서 또 모이게 될지 누가 알 것인가?
할 말은 태산같이 쌔고 쌨네마는 가슴이 답답하여 더 못 쓰겠네. 떠나기 전에 자네 답장 받아보도록 편지나 한 장 해주게.
편지를 읽은 삼룡의 입 이 씰룩씨룩 일그러지고 손이 벌벌 떨리더니만 굵은 눈물방울이 눈에서 뚝뜩 떨어져 내렸다.
그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잠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회사로 쫓아갔다. 그날 밤에 삼룡이는 판옥에게 이런 답장을 보냈다.
자네의 만지장서를 받고 나는 그냥 회사로 좇아가서 모레 떠나기로 한 귀향사건을 중지하고 말았네. 내가 가지 않기로 하니 동무들도 다 아니 가기로 했네.
자네는 고향을 떠나는 사람을 보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마는 우리는 죽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차고 무정한 고향을 박차버리고 나오는 영 웅이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네.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고향을 못 잊어하는 설움이 있겠는가? 어디든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곳을 우리의 고향으로 만드세.
너무 비감하여 말게. 맘을 든든히 먹고 두 팔을 단단히 갈아서 우리의 살아나갈 길을 뚫어보세.
우리는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니 고향을 떠날 때 뒤도 돌아보지 마세. 앞만 바라보고 호랑이같이 사납게 나가보세. 알아듣겠는가? 동무들에게 이 뜻을 말해주소. 다음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줄이네.
편지를 다 쓰고 난 삼룡의 손끝은 새로운 기운에 부르르 떨었다.
―1937년
2016년 12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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