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 망 좀 보거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늦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손에 든 것들을 자주 잃어버리곤 한다. 그때마다 적잖이 당황하고 허둥거리는 일들이 잦다. 일테면 핸드폰이나, 버스카드를 넣고 다니는 손지갑이나,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인데 그럴 때 마다 나는 이 시를 읽는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리며 사는가?
진정 내가 잃어버리고 당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며 '시가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김선우, 참 찰진 시인이다. 시가 요설이 되지 않고 관념의 나열이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와 세계의 건강함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위의 김선우 시가 그러하다. 파밭을 배경으로 한무더기의 똥을 통해 어머니와 주고받는 대지적 가치가 구체적이고 사물화된 언어로 구현됨으로서 유기적인 순환의 삶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를 말하고 있다. '양변기 위에서' 우리가 먹은 것들은 도무지 '거름'이 되지 못하고 도시화되고 문명화된 것들이 우리들에게서 자연, 순환, 대지, 생명이란 말들을 앗아가는 아침. 도대체 내 똥은 어디로 가나.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