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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대 하 라 2014, 5, 25
요16: 25-33
우리는 지난주까지 성령에 대해서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역시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면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아버지께가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 주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을 알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이 말씀을 참으로 주목해야 할 말씀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실제로는 알지 못한 체 주를 그냥 믿는 믿음과,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섬기는 믿음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성령을 모르는 사람과, 그에 비하여 성령을 알고 그분과 교통하고 교제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사는 신앙은 바로 그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과 사도들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라고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한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실체를 알아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더라도 계속해서 추구해야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아주 은밀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찾지 아니하면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심으로 정결하고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주님을 마음을 다해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주림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런 것이 있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징조입니다.
25절에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주님의 이 말씀은 “내 말이 너희에게 난해하게 들리지만 때가 되면 나의 가르침이 너희들에게 더 이상 난해하지 않게 들릴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제자들의 무지 때문에 주님의 모든 말씀들이 난해하게 들렸고 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이르면 다시 말해서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밝히 깨달으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똑 같은 현상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빛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비유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주님의 모든 말씀은 세상의 어둠을 비추시는 빛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어둠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무지로 주의 말씀이 빛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시면 주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과 하나님 나라와 모든 것을 비추시는 빛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불신자들의 마음처럼 완전히 어둠에 묻혀 있지는 않지만 우리도 안개 속에 가리어져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을 통해서 주의 말씀의 빛으로 보게 되면 그 동안 가리어져 있던 것이 밝히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의 생명의 주요, 복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를 그분에게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복의 근원은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멸망과 파멸의 근원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은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26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버지께 중재하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직접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너희들의 기도를 직접 들어 주실 것인데 그 이유는 너희가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받고 있고 너희에게는 이미 내가 중재자로 있기 때문이다.” 하시는 뜻입니다.
주께서 우리들을 위한 속죄의 피와 주께서 드린 순종은 끝임 없이 우리를 위한 중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7절에 “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관계는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아버지 하나님과 실제적인 교통하고 교제하는 관계를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하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직접 기도드릴 수 있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친히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주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냥 믿는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안타깝게도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는 맹점이 확신을 갖는 믿음이 아니라 막연한 믿음이기 때문에 중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분명한 증거에 의해서 의심 없이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중생하여 구원 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 값으로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과거의 죄만 아니라 현재의 죄도 우리가 짓게 될 미래의 죄까지도 그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확신을 가지십시오.
주께 대한 구약성경의 기록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죄 값으로 자기 몸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세상에 오시고, 그분은 채찍에 맞으시고, 찔리고 상하시고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께서 모두 것을 이루신 것을 보고 우리의 죄도 완전히 용서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28절 “내가 아버지께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올라가노니.”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오셨는가를 생각하고 주께서 목적하신 바를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믿음을 갖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미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것과 그 이유와 목적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그분은 오셨고 그분이 세상에 오신 그 목적대로 믿는 자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오신 그 목적을 완전히 이루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성령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 즉 성화와 구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주님의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그 성령으로 믿는 자안에 거하시며 그로 하여금 거룩한 삶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다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인도하시는 것이 주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십니다.
29-30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주님의 많은 말씀을 들었어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 뜻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희가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할 것이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셨다가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라.”하시는 말씀이 그들에게는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제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노라.” 하시는 말씀만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왜 세상에 오셨다고 왜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시는지 어떻게 아버지께 올라가시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할 지라도 주께서 아버지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 가신다는 것만 알아듣고 낙심하고 있던 그들이 원기를 회복하고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0절의 제자들의 말을 살펴본다면 이 때까지 주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때에 그들은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지만 더욱 큰 확신을 주는 증거는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것” 즉 주님의 신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을 보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을 깨닫고 주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늘 확신을 얻기까지 노력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확신하는 믿음만이 여러분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주님과 3년 반 동안이나 함께 다녔지만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주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신적인 능력을 깨달으면서 주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증거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미 확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증거를 발견하면서 더욱 확신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다음 어떤 또 다른 증거로 확신을 하게 되고 그 위에 말씀을 깊이 보면서 확신하게 되고, 순종하면서 말씀을 경험하면서 또 확신을 갖게 되고, 또 내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면서 또 다른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확신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큰 기쁨을 얻고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믿음에 대해서 더 열정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님의 은밀한 역사로 언젠가 큰 확신을 갖는 날이 올 것이요, 그 때는 온 세상을 얻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3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은 그 믿음도 온전치 못하니 자만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위해서 다 도망해 버렸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텅 비어 있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평상시에는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확신하던 그 믿음이 어떤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기 전에는 우리의 결핍이 무엇인지 우리가 얼마나 완전한 신앙과 거리가 먼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서야 우리가 지금까지 완전한 것으로 상상했던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서 있다고 깨달을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완전한 믿음은 없습니다.
32절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각각 제 갈 곳으로 갈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지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다 버릴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사람 그리고 너희 자신도 믿지 말고 오직 나를 믿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가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너희들도 항상 너희와 함께 하는 나만을 미도 나를 의지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주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주를 의지하여 행하시고 주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확증을 경험으로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세상이 요동친다 해도 우리는 믿음을 지킬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넘어진다 해도,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상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33절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
내가 주의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말씀드리지요,
주의 말씀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심으로 내가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항상 함께 할 것임으로 너희는 모든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 해도 염려와 근심으로 무기력해 지지 말고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라 너희는 나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것인가?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아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그 만큼 더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받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환난을 당하게 된 근거와 이유를 알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환란을 주시는 그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고 어떤 축복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까지 알게 됩니다.
상황마다 주시는 주의 말씀을 순복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반드시 세상을 이기에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세상을 이기시는 능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평상시 주님을 의지해서 말씀에 순복해서 살지 않는 분들은 이란 환난과 고통을 당해서 모든 지혜와 능력이 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말씀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그에게 능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평소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며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시는 분들은 세상에 고통과 환난이 와도 크게 염려하지 않고 주를 의지하고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평상시 기도도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복하여 말씀을 이루시는 그 주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아는 이들은 주님이 그들의 지혜와 능력과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오,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