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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菩薩의 十種入菩提如海智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海智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入一切無量衆生界가是爲第一如海智요 入一切世界호대 而不起分別이是爲第二如海智요 知一切虛空界의 無量無礙하야普入十方一切差別世界網이是爲第三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善入法界하나니 所謂無礙入과不斷入과不常入과無量入과不生入과不滅入과一切入을悉了知故가是爲第四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於過去未來現在諸佛菩薩法師聲聞獨覺과及一切凡夫의所集善根에已集現集當集과三世諸佛이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已成今成當成한所有善根과三世諸佛이說法調伏一切衆生에已說今說當說한所有善根을於彼一切에 皆悉了知하야 深信隨喜하며 願樂修習하야 無有厭足이是爲第五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於念念中에入過去世不可說劫하야 於一劫中에或百億佛出世와 或千億佛出世와或百千億佛出世와 或無數와 或無量과或無邊과 或無等과 或不可數와或不可稱과或不可思와或不可量과或不可說과或不可說不可說로超過算數한諸佛世尊이出興于世와 及彼諸佛道場衆會의 聲聞菩薩이 說法調伏一切衆生과 壽命延促과 法住久近인 如是一切를 悉皆明見하나니 如一劫하야 一切諸劫도 皆亦如是하며 其無佛劫의所有衆生이 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種諸善根도 亦悉了知하며若有衆生이善根熟已하야는 於未來世에當得見佛도亦悉了知하야 如是觀察過去世不可說不可說劫호대 心無厭足이 是爲第六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入未來世하야 觀察分別一切諸劫의 無量無邊하야 知何劫有佛과何劫無佛과何劫에 有幾如來出世와一一如來의名號何等과住何世界와世界名何와度幾衆生과壽命幾時하야 如是觀察하야 盡未來際토록 皆悉了知하야 不可窮盡호대 而無厭足이是爲第七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 入現在世하야 觀察思惟하야 於念念中에 普見十方無邊品類의 不可說世界에 皆有諸佛이 於無上菩提에 已成今成當成하사 往詣道場하사 菩提樹下에 坐吉祥草하사 降伏魔軍하사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 從此起已에 入於城邑하며 昇天宮殿하사 說微妙法하야 轉大法輪하며 示現神通하야 調伏衆生하며 乃至付囑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하고 捨於壽命하사 入般涅槃하며 入涅槃已에 結集法藏하야 令久住世하고 莊嚴佛塔하야 種種供養하며 亦見彼世界所有衆生이値佛聞法하야 受持諷誦하고 憶念思惟하야 增長慧解하나니 如是觀察하야 普徧十方호대 而於佛法에無有錯謬니라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了知諸佛이 皆悉如夢호대 而能往詣一切佛所하야 恭敬供養하나니라 菩薩이 爾時에 不着自身하며 不着諸佛하며 不着世界하며 不着衆會하며 不着說法하며 不着劫數나 然이나 見佛聞法하며 觀察世界하며 入諸劫數하야 無有厭足이 是爲第八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 於不可說不可說劫의 一一劫中에 供養恭敬不可說不可說無量諸佛호대 示現自身이 歿此生彼하야 以出過三界一切供具로 而爲供養하고 幷及供養菩薩聲聞一切大衆하며 一一如來般涅槃後에 皆以無上供具로 供養舍利하고 及廣行惠施하야 滿足衆生하나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不可思議心과 不求報心과究竟心과饒益心으로 於不可說不可說劫에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로供養諸佛하고 饒益衆生하며 護持正法하야 開示演說이是爲第九如海智요 菩薩摩訶薩이 於一切佛所와 一切菩薩所와 一切法師所에 一向專求菩薩所說法과 菩薩所學法과 菩薩所敎法과 菩薩修行法과 菩薩淸淨法과 菩薩成熟法과 菩薩調伏法과 菩薩平等法과 菩薩出離法과 菩薩總持法하야 得此法已에 受持讀誦하고 分別解說호대 無有厭足하야 令無量衆生으로 於佛法中에 發一切智相應心하야 入眞實相하야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得不退轉하나니 菩薩이 如是於不可說不可說劫에 無有厭足이 是爲第十如海智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海智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無上大智慧海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한량없는 중생계에 들어가니, 이것이 첫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모든 세계에 들어가되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이 둘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모든 허공계가 한량없고 걸림 없음을 알고, 시방의 모든 차별한 세계 그물에 널리 들어가니, 이것이 셋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법계에 잘 들어가니, 이른바 걸림 없이 들어가며, 끊이지 않게 들어가며, 항상 하지 않게 들어가며, 한량없이 들어가며, 나지 않게 들어가며, 멸하지 않게 들어가니, 일체에 들어감을 다 아는 까닭이니라. 이것이 넷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법사와 성문과 독각과 일체 범부들이 모은 착한 뿌리로서 이미 모은 것과 지금 모으는 것과 장차 모을 것과,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미 이루었고 지금 이루고 장차 이룰 바 착한 뿌리와,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이 법을 말하여 일체 중생을 조복하되 이미 말한 것과 지금 말하는 것과 장차 말할 바의 착한 뿌리를, 저 모든 것을 다 알고 깊이 믿고 따라 기뻐하고 좋아하고 닦는 데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이 다섯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잠깐잠깐마다 지난 세상의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거든 한 겁 가운데 백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고, 천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고, 백천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며, 혹은 수없고, 한량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어 산수(算數)를 초과한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시는 것과, 저 모든 부처님의 도량에 모인 대중인 성문과 보살들이 법을 말하여 일체 중생을 조복함과 목숨이 길고 짧음과 교법이 오래 머물고 잠깐 머무는 등 이와 같은 것을 다 분명하게 보며, 한 겁에서와 같이 일체 모든 겁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이 없는 겁에 있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착한 뿌리를 심은 것도 다 알고, 어떤 중생은 착한 뿌리가 성숙하여 미래 세상에 부처님을 뵈옵게 될 것도 또한 다 알아서 이와 같이 지난 세상의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관찰하되 마음에 싫증이 없나니, 이것이 여섯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오는 세상에 들어가서 일체 모든 겁들이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찰하고 분별하되 어느 겁에는 부처님이 있고 어느 겁에는 부처님이 없으며, 어느 겁에는 몇 여래가 출현하는데 낱낱 여래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느 세계에 머물고, 그 세계의 이름은 무엇이고, 중생은 얼마나 제도하며, 목숨은 얼마인지, 이와 같이 관찰하기를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하여 모두 다 알아 끝나지 아니하되 만족하지 않나니, 이것이 일곱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지금 세상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생각하여 잠깐잠깐 동안에 시방의 그지없는 종류를 널리 보는데,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부처님들이 다 계시어서 위없는 보리를 이미 이루었고 지금 이루고 장차 이루느니라.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 아래에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아 마군을 항복받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며, 거기서 일어나서는 성읍에도 들어가고 천궁에도 올라가서 미묘한 법을 말하여 큰 법륜을 굴리고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조복하며,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을 부촉하고는 목숨을 버리고 반열반에 들며, 열반에 든 뒤에는 법장(法藏)을 결집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고 불탑을 장엄하여 갖가지로 공양하느니라.
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생각하여 지혜가 증장함을 보느니라. 이렇게 관찰함이 시방에 두루하되 부처님 법에 그릇됨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은 모든 부처님이 꿈과 같음을 알지마는 일체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공경하고 공양함이니라.
보살이 이때에 자신의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고, 법을 설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겁의 수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을 보고, 법을 듣고, 세계를 관찰하고, 모든 겁에 들어가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이 여덟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낱낱 겁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되, 자기의 몸이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서 태어남을 나타내 보여 세 세계에서보다 훌륭한 모든 공양거리로 공양하고, 아울러 보살과 성문과 모든 대중에게 공양하며, 낱낱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위없는 공양거리로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보시를 널리 행하여 중생을 만족케 하느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한 마음과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끝까지 이르는 마음과, 이익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바른 법을 보호하여 지니며, 열어 보여 연설하나니, 이것이 아홉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 처소와 모든 보살의 처소와 모든 법사의 처소에서 한결같이 오로지 보살이 말한 법과 보살이 배우는 법과 보살이 가르치는 법과 보살이 닦는 법과 보살의 청정한 법과 보살의 성숙한 법과 보살의 조복하는 법과 보살의 평등한 법과 보살의 벗어나는 법과 보살의 모두 지니는[總持] 법을 오로지 구하느니라.
이 법을 얻고는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연설하되 싫어함이 없으며,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서 일체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진실한 모양에 들어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하여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도 싫어함이 없나니, 이것이 열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 바다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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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입보리여해지(十種入菩提如海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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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나왔으니 이제 뭐가 나와야 되겠는가? 바다다.
십지품 법운지에 보면 그렇게 나온다.
‘바다 같은 마음, 산과 같은 마음, 마니주 같은 마음’
똑같이 나온다.
한번 패턴만 알아 버리면 다 알게 된다.
탁구 라켓을 잡을 줄 알면, 테니스 라켓도 잡을 줄 알게된다. 똑같다. 수제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칼국수도 만들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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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입아뇩다라삼먁삼보리여해지(有十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海智)하니: 열 가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바다나 산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사(卽事) 사(事)에 즉해 있는 것이다. 바다와 산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설명하는 표법(表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다와 같다는 것은 매우 깊고도 넓은 지혜를 뜻한다.
소위입일체무량중생계(所謂入一切無量衆生界)가 : 소위 일체 무량한 중생계에 들어가니
시위제일여해지(是爲第一如海智)요 : 이것이 제일 바다 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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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일체세계(入一切世界)호대 : 일체 세계에 들어가되
이불기분별(而不起分別)이 :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시위제이여래지(是爲第二如海智)요: 소위 제이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바다가 “니 낙동강에서 왔나? 절로 좀 빠져라. 니는 한강에서 왔나? 이리로 온나.” 이런 게 없잖은가. 바다에 들어가면 다 받아들이니까 분별심이 없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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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일체허공계(知一切虛空界)의 : 모든 허공계가
무량무애(無量無礙)하야 :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고
보입시방일체차별세계망(普入十方一切差別世界網)이 : 시방의 모든 차별한 세계 그물에 널리 들어가니
시위제삼여해지(是爲第三如海智)요 : 이것이 셋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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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선입법계(善入法界)하나니 : 법계에 잘 들어가나니 어떻게 들어가느냐?
소위무애입(所謂無礙入)과 : 이른바 걸림없이 들어가고
부단입(不斷入)과 : 끊이지 않고 들어가고
불상입(不常入)과 : 항상하지 않게 들어가고
무량입(無量入)과 : 한량없이 들어가고
불생입(不生入)과 : 나지 않게 들어가고
불멸입(不滅入)과 : 불멸입이라. 나지 않으니까 없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니까 부진이라, 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쭉 나오지 않는가. 멸하지 않게 들어가나니
일체입(一切入)을 : 일체 들어가는 것을
실요지고(悉了知故)가 : 다 아는 까닭이니라.
시위제사여해지(是爲第四如海智)요 : 이것이 네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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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과거미래현재제불보살법사성문독각(於過去未來現在諸佛菩薩法師聲聞獨覺)과 : 과거 미래 현재의 제불보살 법사 성문 독각과
급일체범부(及一切凡夫)의 : 일체 범부의
소집선근(所集善根)에 : 모은 바 선근으로써,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그 선근으로써
이집현집당집(已集現集當集)과 : 과거에 모으고 지금도 모으고 미래에 모으고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제불이
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 모으는
것이 삼세제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성금성당성(已成今成當成)한 : 이미 이루고 지금 이루고 미래에 이루는 모든
소유선근(所有善根)과 : 소유선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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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제불(三世諸佛)이 : 삼세제불이
설법조복일체중생(說法調伏一切衆生)에 : 일체중생을 조복시키되
이설금설당설(已說今說當說)한 : 이미 설하고 지금 설하고 앞으로 설할
소유선근(所有善根)을 : 선근이나
어피일체(於彼一切)에 : 그 모든 것에
개실요지(皆悉了知)하야 : 모두 다 알고
심신수희(深信隨喜)하며 : 깊이 믿고 따라서 기뻐하고
원락수습(願樂修習)하야 : 좋아하고 닦는 데
무유염족(無有厭足)이 : 조금도 염족하지 아니하는 것
시위제오여해지(是爲第五如海智)요 : 이것이 다섯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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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생각생각 가운데
입과거세불가설겁(入過去世不可說劫)하야 : 과거세 불가설겁에 들어가서
어일체중(於一劫中)에 : 어일체겁에
혹백억불출세(或百億佛出世)와 : 혹은 백억 부처님의 출세와
혹천억불출세(或千億佛出世)와 : 천억불출세와
혹백천억불출세(或百千億佛出世)와 : 백천억불출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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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무수(或無數)와 : 혹은 무수와
혹무량(或無量)과 : 혹은 무량과
혹무변(或無邊)과 : 혹무변과
혹무등(或無等)과 : 혹은 무등과
혹불가수(或不可數)와 :혹은 불가수와
혹불가칭(或不可稱)과 :혹은 불가칭과
혹불가사(或不可思)와 :혹은 불가사와
혹불가량(或不可量)과 :혹은 불가량과
혹불가설(或不可說)과 :혹은 불가설과
혹불가설불가설(或不可說不可說)로 : 혹은 불가설불가설로
초과산수(超過算數)한 : 헤아리는 숫자를 초과한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제불세존이 억수로 많은 부처님들께서
출흥우세(出興于世)와 : 세상에 출연하시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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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피제불도량중회(及彼諸佛道場衆會)의 :저 모든 부처님 도량 중회의
성문보살(聲聞菩薩)이: 성문과 보살들이
설법조복일체중생(說法調伏一切衆生)과 : 법을 설하여 일체중생을 조복함과
수명연촉(壽命延促)과 : 목숨이 길고 짧음과
법주구근(法住久近)인 : 교법이 오래되고 또 잠깐 되고 머무름과
여시일체(如是一切)를 : 이와 같은 일체를
실개명견(悉皆明見)하나니: 실개명견 하나니, 모두 다 명견하나니
여일겁(如一劫)하야: 한 겁에서와 같이
일체제겁(一切諸劫)도 : 일체제겁에서도
개역여시(皆亦如是)하며: 다 그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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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불겁(其無佛劫)의 : 부처님이 없는 겁에
소유중생(所有衆生)이 : 있는 중생들도
유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종제선근(種諸善根)도: 선근을 심는 것도
역실요지(亦悉了知)하며 : 다 알고
약유중생(若有衆生)이 : 어떤 중생이
선근숙이(善根熟已)하야는 : 선근이 푹 익어서
어미래세(於未來世)에 :미래세가 되도록
당득견불(當得見佛)도: 마땅히 부처님을 뵈옵게 되는 것도
역실요지(亦悉了知)하야: 다 알아서
여시관찰과거세불가설불가설겁(如是觀察過去世不可說不可說劫)호대 : 이와 같이 관찰한다. 과거세에 불가설 불가설 겁도록
심무염족(心無厭足)이 : 마음에 싫어함이 없는 것
시위제육여해지(是爲第六如海智)요 : 이것이 바로 여섯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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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입미래세(入未來世)하야 : 미래세에 들어가서
관찰분별일체제겁(觀察分別一切諸劫)의 :일체 제겁에
무량무변(無量無邊)하야 : 한량없고 무변함을 관찰하고 분별하되
지하겁유불(知何劫有佛)과 :어떤 겁에는 부처님들이 있고
하겁무불(何劫無佛)과 : 어떤 겁에는 부처님이 없고
하겁(何劫)에 : 어떤 겁에는
유기여래출세(有幾如來出世)와 : 몇몇 여래가 있었다.
일일여래(一一如來)의 : 낱낱 여래 여래마다
명호하등(名號何等)과 : 부처님의 명호가 이름이 무엇이고
주하세계(住何世界)와 : 어떤 세계에 머무르고
세계명하(世界名何)와 :세계의 이름이 무엇이고
도기중생(度幾衆生)과 : 얼마나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고
수명기시(壽命幾時)하야 :수명, 그 때가 얼마나 되고
여시관찰(如是觀察)하야 : 이와 같이 관찰해서
진미래제(盡未來際)토록 : 미래제가 다하도록
개실요지(皆悉了知)하야 : 모두 다 알아서
불가궁진(不可窮盡)호대 :다 궁진하지 못하되
이무염족(而無厭足)이 :만족하지 않나니
시위제칠여해지(是爲第七如海智)요:이것이 제 일곱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바다는 다 받아들인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물이 흘러들지만 싫어함이 없다. 이런 뜻하고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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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입현재세(入現在世)하야 : 현재세에 들어가서
관찰사유(觀察思惟)하야 : 관찰하고 사유하고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생각생각 가운데, 염념 중에
보견시방무변품류(普見十方無邊品類)의 : 시방의 그지 없는 종류들을 보는데
불가설세계(不可說世界)에 :불가설 세계에 말할 수 없는 세계의
개유제불(皆有諸佛)이 : 모든 부처님이 계셔서
어무상보리(於無上菩提)에 : 어무상 보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고
이성금성당성(已成今成當成)하사 : 과거 현재 미래 다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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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도량(往詣道場)하사 :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하(菩提樹下)에 : 보리수하에서
좌길상초(坐吉祥草)하사 : 길상초를 깔고는
항복마군(降伏魔軍)하사 : 마군을 항복 받고는
성아뇩다라샴먁삼보리(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 : 성불해서 정각을 이루어서
종차기이(從此起已)에: 거기에서 일어나서, 흔히 ‘입정수가(入定授加)요 기정출정설법(起定出定說法)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일어나서는 뭘 하겠는가? 법을 설할 것이다.
입정수가 선정에 들어가서는 신구의 삼업의 가피를 받게 되고, 거기에서 체력의 힘을 길러서 기정설법이라. 삼매에서 깨어나서는 법을 설해서 중생을 제도한다, 이 말씀이다.
입어성읍(入於城邑)하며 : 성읍에도 들어가고
승천궁전(昇天宮殿)하사 : 천궁에 올라간다.
일반 사람들한테도 가고 잘난 사람한테도 가고 못난 사람들한테도 다 가서
설미묘법(說微妙法)하야: 미묘법을 설하여서
전대법륜(轉大法輪)하며 :대법륜을 굴리시며
시현신통(示現神通)하야 : 꼭 말 안 듣는 사람들은 신통을 보여줘야 믿는다. 한방 보여줘야 믿기 때문에 신통을 시현해서
조복중생(調伏衆生)하며 : 중생을 조복시키고. 말해서 듣는 중생은 착한 중생이고 말 안 듣는 놈은 뚜드려 패야 된다. 부처님이 이렇게 해놨다.
‘아주 악한 중생들은 세력으로 꺾어 버려라’ 세력은 뭐가 있는가? 재력으로 ‘돈 많다고 자랑하면 더 돈 가지고 꺾어버려라’ 잘난 척하면 쫄딱 망하게 해 버려야 되고, 학력으로 자랑하면 더 뛰어난 학식으로 꺾어 버려야 된다.
인물 자랑하면 더 좋은 인물 갖다 붙여 버려야 되고, 세력으로 권력이 있으면 더 높은 사람 갖다 붙여버린다.
아주 뻑센 중생들은 그렇게 하고, 아주 부드럽고 유약한 중생들은 세력으로 해버리면 사람이 죽어 버릴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살살 달래서 법력으로 설해라’ 라고 화엄경에 나온다.
세력과 법력.
세상에서 좋아하는 힘 가지고 다스려야 될 것은 그렇게 해서 다스린다. 시현신통이 그것이다. 뻑센 중생들을 조복시키고
내지부촉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乃至付囑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하고 : 내지는 부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한다.
육조스님이 금강경을 해석할 때는 ‘선부촉제보살(善付囑諸菩薩) 선호념제보살(善護念諸菩薩) 할 때, 선부촉은 힘이 좀 딸리는 보살은 부촉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힘이 좀 남아돌고 혼자 잘 걸어가면 옆에서 잘 지켜본다. 선호념제보살이다’ 육조스님은 그렇게 해석을 하셨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또 제 기억력이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게 맞을 것이다.
사어수명(捨於壽命)하사 :목숨을 버리고
입반열반(入般涅槃)하며 :입반열반이라. 반자란 말은 들어간다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는 구경이라는 뜻이다.
구경열반. 입열반, 입반열반이라고 해 놓았다.
대반열반이라고 하면 크게 들어갔다는 뜻이다.
뒤의 열반도 인도말인데 반자도 산스크리트어 인도말이다. ‘완벽하다. 들어가다’ 는 뜻이다.
들어간 것은 완벽하다.
그래서 열반에 든 것을 흔히 뭐라고 하는가?
입적(入寂) 원만하다 해서 원적(圓寂) 그렇게 한문으로 번역하면 입적, 원적, 인도말로 하면 반열반 대반열반 이렇게 번역을 한다.
입열반이(入涅槃已)에 :열반에 든 뒤에는
결집법장(結集法藏)하야 : 법장을 결집해서
영구주세(令久住世)하고 :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고는
장엄불탑(莊嚴佛塔)하야 : 불탑을 장엄해서
종종공양(種種供養)하며 : 갖가지로 공양하며
*
역견피세계소유중생(亦見彼世界所有衆生)이 :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치불문법(値佛聞法)하야 : 모두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듣고는
수지풍송(受持諷誦)하고: 그 경전을 다 읽고 외우고
억념사유(憶念思惟)하야: 기억하고 생각해서
증장혜해(增長慧解)하나니: 지혜가 증장케 됨을 보느니라
여시관찰(如是觀察)하야:이와 같이 관찰해서
보변시방(普徧十方)호대 : 시방을 두루하되
이어불법(而於佛法)에 : 부처님 법에
무유착류(無有錯謬)니라 : 그릇됨이 없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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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그 뒤에는 줄을 그어야 하겠다.
요지제불(了知諸佛)이 : 요지제불이
개실여몽(皆悉如夢)호대 : 개실여몽이이라.
오늘 다른 것은 다 까먹어도 이 여덟 자는 기억하는 것이 낫겠다. ‘요지제불이 개실여몽이라’ 모든 부처님도 꿈과 같음을 알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면 망발에 가까운 경문이다. 부처님을 개실여몽이라.
세주묘엄품에 보면 이렇게 해 놓았다.
선근을 심되, 어디까지 심어야 되느냐? 몽중선근이라. 꿈속에서도 선근을 심어라.
장난을 쳐도 농담을 해도 전부 다 뼈있는 농담을 하고 ‘항상 불법 속에서 살아야 된다’ 이렇게 해 놓았다.
이능왕예일체불소(而能往詣一切佛所)하야 :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공경공양(恭敬供養)하나니라 :공경하고 공양함이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부처님도 본래 없는 줄을 안다.
그러나 호랑이가 없는 줄 알지만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호랑이 온다, 호랑이 온다’라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당신은 다 알았다하더라도 중생이 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저 혼자 꿈을 꿔도 꿈속에서도 선근을 심는다. 눈을 뜨고도 버릇처럼 선근을 심고 보여주기도 하고 안 보여주기도 한다. 내외명철이라.
*
보살(菩薩)이: 보살이
이시(爾時)에 : 이때에
불착자신(不着自身)하며 : 자기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착제불(不着諸佛)하며 : 부처님께도 집착하지 않으며
불착세계(不着世界)하며 :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착중회(不着衆會)하며 : 불착중회다.
우리 역시 이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경전연구회에 나와서 공부한다는 것이다.
불착설법(不着說法)하며 : 말하는 법에도 집착하지 않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모르고 졸든지 말든지 설법한다는 것이다.
불착겁수(不着劫數)나 : 시간이 몇 년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어릴 때 공부하다 보면 며칠 공부하다 보면 한 보름 지나 있고, 일주일 지나 있는 것은 예삿일이다. 좌복에 있다가 눈 뜨니까 아침 되어 있고, 고개 드니까 저녁해가 저물어 있다. 요새는 그렇게 하다간 죽어버릴 것 같다.
연(然)이나 : 그러나
견불문법(見佛聞法)하며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관찰세계(觀察世界)하며 : 세계를 관찰하고
입제겁수(入諸劫數)하야 : 모든 겁수에 들어가서도
무유염족(無有厭足)이 : 염족함이 없다.
아직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
아침 8시만 되면 계속 법문하시는 어른스님이 계신다. 시간이 가는지 내가 가는지 모르고 가는 것이다.
시위제팔여해지(是爲第八如海智)요: 이것에 제 여덟 번째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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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불가설불가설겁(於不可說不可說劫)의: 불가설 불가설 겁에
일일겁중(一一劫中)에 : 낱낱 겁 가운데
공양공경불가설불가설무량제불(供養恭敬不可說不可說無量諸佛)호대 :불가설 불가설 무량제불에게 공양 공경하되
시현자신(示現自身)이: 자기의 몸이
몰차생피(歿此生彼)하야 : 여기서 죽고 저기서 태어나서
이출과삼계일체공구(以出過三界一切供具)로 : 삼계를 출가하는, 벗어나는 모든 공양거리로써
이위공양(而爲供養)하고 : 공양을 올린다.
병급공양보살성문일체대중(幷及供養菩薩聲聞一切大衆)하며: 또 아울러서 누구에게 공양하느냐? 병급(幷及) 공양하느냐? 보살 성문 일체대중에게도 공양하고
일일여래반열반후(一一如來般涅槃後)에: 낱낱 여래께서 반열반후에 열반에, 구경열반 후에라도
개이무상공구(皆以無上供具)로 : 위없는 공양거리로써
공양사리(供養舍利)하고 : 사리에도 공양을 하고
급광행혜시(及廣行惠施)하야 :그러니까 뭐라고 하는가? 자기 집사람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인사한다더니, 부처님이 좋으면 부처님 계셨던 발자국 보고도 인사를 한다. 다 그렇다.
이름만 들어도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라.
만족중생(滿足衆生)하나니라: 만족중생케 하나니라.
결론은 중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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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이불가사의심(以不可思議心)과 : 불가사의한 마음과
불구보심(不求報心)과 :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구경심(究竟心)과 :끝까지 이르는 마음과
요익심(饒益心)으로:넉넉한 이익을 주려고 하는 마음과
어불가설불가설겁(於不可說不可說劫)에 : 불가설 불가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 까닭으로, 여기 나온 ‘위고(爲故)’나 이무소득고할 때 ‘이고(以故)’는 ‘뭐뭐 때문이다’ 하는 관용어구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한 까닭으로
공양제불(供養諸佛)하고 :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요익중생(饒益衆生)하며 : 중생을 요익하게 하고
호지정법(護持正法)하야 : 정법을 호지하고
개시연설(開示演說)이 : 개시하여 열어 보이고 법을 연설하나니
시위제구여해지(是爲第九如海智)요 :이와 같은 것이 제 아홉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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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어일체불소(於一切佛所)와 : 일체 불소와
일체보살소(一切菩薩所)와 : 일체 보살의 처소와
일체법사소(一切法師所)에 :일체 법사의 처소와
일향전구보살소설법(一向專求菩薩所說法)과 :이것을 한결같이 오로지 구한다, 보살의 소설법. 보살이 말한 법과
보살소학법(菩薩所學法)과 :보살의 소학법 배울만한 법과
보살소교법(菩薩所敎法)과 : 보살이 가르치는 법과
보살수행법(菩薩修行法)과 : 보살의 수행법과
보살청정법(菩薩淸淨法)과 : 보살의 청정법과, 부처님이 계시든 보살이 계시든 선지식이 계시든 부처님이 계시든 오직 보살행을 한다 이 말씀이다.
보살성숙법(菩薩成熟法)과 : 보살의 성숙법과
보살조복법(菩薩調伏法)과 :보살의 조복시키는 법과
보살평등법(菩薩平等法)과 :보살의 평등한 법과
보살출리법(菩薩出離法)과 : 보살의 땟구정물로부터 벗어나는 법과
보살총지법(菩薩總持法)하야 : 보살의 모두 받아 지녀 명심해서 수행하는 법을 진심으로 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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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차법이(得此法已)에 : 이와 같은 법을 다 얻고는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그걸 딱 명심해서 수지하고 독송하고
분별해설(分別解說)호대 : 분별해서 지혜롭게 분별해설한다. 법화경에는 오종법사가 나온다. 수지 독송 여기에 서사는 빠졌지만, 분별해설하되
무유염족(無有厭足)하야: 스스로 공부하고 남을 공부시키는 이런 것에 대해서 싫어함이 없고
영무량중생(令無量衆生)으로 : 모든 한량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또 중생들이 나왔다. 이세간품은 자기를 위한다기보다 중생을 위한 경이다, 화엄경은 그렇게 볼 수가 있다.
어불법중(於佛法中)에 : 불법 가운데에, 자기 배부르다고 그 음식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뭐하려고 니 배부른데 밥하나?’ 이러면 ‘먹을 사람 많다’고 하는 것이다.
‘화엄경 그만큼 했으면 됐지 뭐하려고 또 화엄경 계속하노? 한 10년 안 했나?’‘또 계속해야지 뭐’ 하는 것이다.
무량 중생이 있는 까닭으로
발일체지상응심(發一切智相應心)하야 : 일체 지혜가 서로
상응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입진실상(入眞實相)하야 : 진실한 모양에 들어가서, 진실한 모양은 없다. 일상은 무상이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한 모양은 정말로 없다. 그다음에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가 바로 진실상이다, 진여상이다, 여래상이다,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득불퇴전(得不退轉)하나니 : 불퇴전을 얻나니
보살(菩薩)이: 보살이
여시어불가설불가설겁(如是於不可說不可說劫)에: 이와같이 불가설 불가설 겁에
무유염족(無有厭足)이: 무유염족이
시위제십여해지(是爲第十如海智)니라: 이것이 제 열 번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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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십종입아뇩다라삼먁삼보리여해지(十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海智)니: 열 가지 십종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제불무상대지혜해(則得一切諸佛無上大智慧海)니라 : 즉득 그 자리에서 바로 일체 제불의 위없는 큰 지혜바다를 얻게되느니라.
이렇게 해서 십행 수행자가 해야 될 대목들은 마쳤다.
다음 달에는 십회향을 하는데 ‘만약에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무른다’ 요 말씀은 딱 줄여서 범행품 제일 뒤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슨 구절인가?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다.
변성(便成)이라는 말이 곧 즉(卽), 곧 변(便)자 성(成)은 이룬다. 이룰 성자는 즉득이나 즉획이나 같다.
초살심시변정각이 만약에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한다면 약제보살(若諸菩薩)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즉득일체제불무상대지혜해니라.
*
11월 23일 날 되게 바쁘시면 할 수 없지만, 어른스님의 필생의 업적을 다같이 회향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 오셔서 책도 전부다 한보따리씩 받아가시면 좋겠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화중연화 봉정식 스케치 - 불식(不識)
11월 23일 무비스님 전집 봉정식 아침, 화엄전에 올라가니 큰방에 스님들이 집중해서 한 곳을 보고 계셨다.
큰스님이 정중앙에 늘 앉는 자리에서 보고 계셨고, 왼편과 오른편에는 범어사 정여 방장스님과 주지 정오스님과 또 도반스님과 제자스님들이 앉거나 서 계셨다.
오른쪽 마지막 탁자에서 설정스님이 글씨를 쓰고 계셨다.
마침 감인대(堪忍待)가 완성되어 모두에게 선보이는 순간에 방에 들어갔다.
“지혜월 이거는 누가 손 못 대게 관리 잘해라.”
큰스님이 말씀하셔서 모두가 웃으셨다.
“원창스님, 이 좋은 종이를 가지고 있었어?”
하고 큰스님이 설정스님 곁에서 글씨 시중을 드시던 율원장스님을 부르셨다.
율원장스님은 인경을 하려고 두툼한 종이를 구해놓고 계셨다고 했다.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좋은 종이라고 했다.
“낙관이 없지만 이심전심으로 손으로 찍으면 됩니다.”
하고 범어사 정오 주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언제 또 한 번 낙관 찍으러 오시라고 청하지 뭐.”
하고 큰스님이 여유있게 말씀하셨다.
“설정화상 이렇게 좋은 종이 처음 보지? 신심 나겠네?”
하고 글씨를 쓰는 도반스님께 또 말을 거셨다.
“글쎄, 홀연히 붓이 먼저 가네.”
글씨 쓰는 손을 멈추지 않고 설정스님이 말씀하셨다.
“각전”
하고 큰스님이 제자스님을 부르셨다.
“오늘 행사 퍼포먼스는 여기서 다 한다.”
인사를 하러 들어온 보살님들이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을 큰스님이 보고 챙기셨다.
“얼른 들어와요. 들어와서 이것도 보고 절도 하고. 이걸 봐야 돼.이건 천재일우야.”
자초지종을 여쭈니 오늘 사회를 맡으신 명심회 정만스님께서 방명록을 작성하자는 안을 내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문방사우가 들여지고 그중에 벼루와 먹은 먹물과 접시로 대신해서 설정스님이 모필글씨를 쓰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스님도 방 한쪽에 입식으로 항상 글씨 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놔. 평소에는 연습도 하고 손님이 오면 글씨도 써주고.”
하고 큰스님이 방장스님에게 제안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직접 쓰는 것을 보여주면서 글씨나 그림을 주면 더 좋아할 거예요.”
정만스님도 말씀을 보태셨다.
2018년 4월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봉정법회>에서도 큰스님은 팜플릿에 함께 넣을 설정스님의 글씨가 늦어져서 여러 번 글씨가 도착했는지 확인하며 기다리셨다. 설정스님 글씨가 프린트 된 종이 한 장이 동봉되어야 팜플릿의 가치가 완성된다고 하셨었다.
그때도 설정스님은 총무원장으로서 직접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81권 봉정법회>를 주관해 주셨지만, 너무 바쁘셔서 잠깐만 환담하실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바쁠 것 하나 없으신 듯이, 여유있게 직접 현장에서 글씨를 써주시며 거기 모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셨다. 가장 많이 기뻐하신 분은 큰스님이셨다.
“내한테 할 이야기 많네. 이 화상이. 하하하”
큰스님이 붓끝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웃으셨다.
설정스님이 쓰자마자 큰스님이 알아보신 글자들을 읽어내지 못하고 궁금해하는 보살들을 위해 용학스님이 통역을 해주셨다.
“처염상정, 혜명화, 처염상정이 화중연화다.”
그 친절함에 기대서 요즘 계속해서 보이는 큰스님 뒤편에 걸린 족자 속 글자 두 글자를 여쭤보았다.
“몰라.” 하셨다. 답을 알려주시지 않아서 한 번 더 여쭤보는데
“멋있어?”
또다시 설정스님의 글씨를 보면서 큰스님이 좌중에게 물으셨다. 이미 정답을 다 기대하고 빙그레 웃으며 물으셨다.
“너무 멋있어요.”
“먹 향기가 좋구만, 종이 좋고.”
큰스님이 자꾸만 설정스님께 말을 시키셨다.
여래성 보살님이 옆으로 오셔서 “불식(不識)이예요.” 라고 족자 글씨에 대해 귀띔해 주셨다. 몰라, 라고 친절하게 용학스님이 알려주셨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온 방 안에 묵향이 갈수록 진해졌다.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그 속에 햇빛처럼 스며들었다.
*
그 아침, 마당에서는 기역자로 간이 다회가 펼쳐졌고, 대성암 도감이신 성공스님은 머리에 수건을 접어 올려놓고 그 한가운데, 봉사하시는 분들 가운데 앉아계셨다. 이번 팽주는 거사님이셨다.
아침에 마당에 나오신 큰스님께서 “무슨 다회인고?” 하고 물으셨다는데 “화엄다회입니다.” 라고 거사님이 답하셨다고 스님들이 알려주셨다.
이 한 말씀으로 거사님은 점수를 단단히 따신 모양이다.
“앞으로도 행사 있으면 화엄다회 하이소.”
하고 용학스님이 거사님에게 말씀하셨다.
이번 다회에서는 마당에서 준비한 차를 작은 찻쟁반에 다과와 함께 1인분씩 내어서 손님이 오실 때마다 화엄전 안으로 들고 가는 형식으로 차리셨다.
모두 예상하고 동선을 짜신 모양이었다.
봉사해주시는 보살님들이 한결같이 움직이기 편한 복장들을 하고 계셨다.
이번 달 인사를 왔을 때, 큰스님께서 “봉정식날 사진을 많이 찍어라. 염화실지에 조금씩 실어라.” 하고 주문하셨었다.
다과 중에 짭짤한 김에 싼 흰떡이 인기가 좋았다.
*
다음날 마니주 보살님이 행사 사진 댓글로 “어제 범어사는 아마도 창건이래 그만큼 많은 대중이 모였던 일이 없었을 거예요”라고 쓰셨다.
이날 내빈으로는 큰스님의 도반스님들과 제자스님들과 또 성파 종정스님이 오셨다.
종정스님은 행사 시간에 맞춰 보제루에 직접 오셔서 큰스님이 깜짝 놀라시며 반가와 하셨다.
그런 모습들이 BTN의 쇼츠로도 유튜브에 올려졌다.
종정스님 방문은 용학스님이 준비하신 깜짝 이벤트였다고, 큰스님께도 비밀이었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다.
보제루 앞에서 대웅전까지의 큰절마당에는 청중이 가득했다. 날씨는 오후까지도 따뜻하고 맑았다. 그 야단법석에 계속해서 앉아계시던 보살님들이 법회 동안 하늘에는 특별한 구름들이 여러 번 멋지게 모양을 바꿔 나타났었다고 전해주셨다.
부처님께서는 맑은 날씨와 멋진 구름과 청중의 마음속에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한마음을 보내주신 모양이었다.
법회의 구성 하나하나, 입장할 때 틀으셨던 음악, 남성중창단의 노래, 범어사 합창단의 노래, 축사해 주신 모든 대덕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진실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임무대로 혹은 청중으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오직 소중한 한 사람을 위해 정성껏 움직이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고 마음으로도 느껴졌다.
“꼭 선물들 챙겨가세요.”
하고 큰스님이 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부하셨다.
이날의 짧은 법문 말씀도 “그 다이아몬드를 다 가져가라”는 말씀이었다.
100페센트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순간을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경험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사회에서는 그런 기대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경전에서는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경전의 말씀같은 그 순간을 함께 겪었다.
그래서 걱정이 없었고, 어깨가 펴졌고, 기뻤고, 만족했고, 그러한 고귀한 순간을 만들어 주신 스승께 할 수 있는 모든 마음과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어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그 비밀이 큰스님께서 차곡히 쌓아놓으신 25권의 화중연화(火中蓮華) 전집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진짜 부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부자인 우리는 티없고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아름답고 맑고 보송하고 윤택했다.
부유함이 우리 모두의 마음 빗장을 풀리게 했다.
벌써 몇 번이나 큰스님과 함께 겪은 그 익숙한 아름답고 편안하고 좋은 느낌이 이날은 왜인지 더욱 극대화되었다.
*
기념사진까지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 오후 해거름에 다시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화엄전 마당에 모였다.
마당에서 용학스님이 오늘 행사가 어땠느냐고 물으셨다.
“성공 오브 성공입니다.”
용학스님이 여전히 봉사자들과 함께 마당 한 켠에 서 계신 대성스님을 찾으셨다.
“대성스님 호는 이제부터 완전입니다.”
하고 부산사투리 억양으로 말씀하셨다.
“완전 성공.”
*
큰스님께 인사드리고 서울 보살님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용학스님이 패엽실에서 잠깐 보자고 모두를 이끌고 가셨다.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혜명화, 오늘 법회도 이제 사라졌다. 만다라화 같지요?”
벌써 조용해진 패엽실 내려가는 길목에서 용학스님이 말씀하셨다.
이왕에 사라질 만다라화라면 잘 기억이 되도록 조금 더 오래오래 지켜보고 나서 지우고 싶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하루였다.
기억의 느낌은 이날의 날씨처럼 가볍고 보송하고 따스했다. 겨우내 따스할 것 같았다.
무비큰스님 평생의 공부 노트
세상에 다시 회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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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밤잠을 잊고 글을 올리셨네요. 참으로 오래 기억될 하루가 이미 과거라는 의미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 _()()()_
처염상정이 화중연화다...”만다라화 장엄되던 날, 세상이 횐희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장엄되던 날, 그 순간이 각인 되던 날,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