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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의미 혹은 문자적 의미 (sensus historicus or literalism)란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
2. 교훈적인 의미(senus tropologicus)란 교훈과 도덕적 시정(the correction of morals)을 찾는 것.
3. 풍유적인 의미(sensus allegorical)란 문자적 의미 이상의 다른 의미를 설명하는 것.
4. 영적 의미(sesus anagoricus)란 신비적으로 혹은 공적으로(mystically or openly) 사용되는데,
듣는 자의 마음이 하늘의 것들(heavenly things)을 묵상함으로써 감동받고 훈계를 받는 것.
4중적 의미의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해석해 본다면 문자적(literal)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문자적 도시이며, 풍유적(allegorical) 의미로는 교회를 의미하며, 도덕적(tropological) 의미로는 인간의 영혼을 언급하며, 영적(anagogical)인 의미로는 하늘의 도성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하와는 교회를, 노아의 방주는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한다.
4중적 해석법을 도입할 경우, 이 문서에서 지적되는 성경에 관한 논란을 둘러싼 상당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비기독교 입장에서는 기독교 입맛에 맞춘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니냐는 합당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밑의 비판 단락 참고.
일단 문제는 이러한 사중적 해석법을 성경에 체계적이고 주체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이 기독교 교계에 정립되어 있냐는 것인데, 대체 성경의 어느 부분까지를 역사적으로 보며, 어느 부분까지를 교훈적 의미로, 또 어느 부분까지를 풍유적 의미 및 영적 의미로 보아야 할까? 그 기준이 사실상 정립되지 못한 점이 큰 문제다.
세계 기독교의 50~60%를 차지하는 가톨릭, 정교회 등의 보편교회는 거룩한 공교회(sancta ecclesia catholica)의 해석이 그 기준이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 통일되어 있으므로 해석에 있어서 일관된 견해를 유지할 수 있다. 보편교회에서는 성경의 해석에 관해서는 공교회가 독점적으로 그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일개 사제, 신학자, 평신도의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톨릭에는 교황청이나 주교회의가 아닌 개인 및 사조직이 편찬한 주석성경이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 것이거나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가 아울러서 편찬한 에큐메니컬 주석 성경[26]일 뿐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는 현재 지구상에 개신교 종파의 수는 대략 무려 2만여개에 달하는(...) 교파들이 있는데, 또한 각 종파마다 저마다 옳다고 내세우는 성경 해석법은 당연하게도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거룩한 공교회'의 해석은 대체 이 2만여개의 종파의 교회 중 어느 공교회의 해석을 말하는 것인가? 기독교 연합체인 WCC나 WEA에서는 각 기독교 종파를 아우르는 성경의 4중적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국내 외 어떤 기독교 연합체나 어떤 공의회라도 각 종파를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4중적 해석법의 기준을 제시한 적은 없다.
가까운 예로, 국내 기독교 메이저 교단 중 가장 보수적인 교단인 예수교 장로회와 가장 개혁적이라는 기독교 장로회 사이에는 성경 해석에 있어 차이가 많은 편인데, 특히 예수교 장로회 쪽에서는 위에서 언급된 문자적 해석을 주로 하며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반면, 기독교 장로회 쪽에서는 성서 비평을 통한 해석을 위주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지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장의 경우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교훈 상당수를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 하는 반면, 기장의 경우에는 사회 구원과 연결 지어 해석하며 여러 사회 운동과 접목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수 쪽인 예장 쪽에서는 기장의 이러한 성경 해석에 대해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하며, 심하면 이단이라는 언급도 심심찮게 하며 대단히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 이러한 개신교 교파 간의 차이를 기독교 연합체에서 통합하여 공통된 성경 해석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가 교리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에 가깝다. 애초에 개신교는 통제받지 않는 성서 자유해석이 원칙이기 때문.
개신교 내 종파들 간의 문제 뿐만 아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계의 성경에 대한 해석도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구약 인물들의 영이 지하로 내려 갔다는 구절에 대하여 가톨릭에서는 이를 연옥 교리에 대한 근거로 해석하지만, 개신교 계에서는 이런 해석들을 전면 부정하며 연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또한 복음서의 내용 중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는 구절에서도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이 구절을 베드로에 대한 교황권과 로마 교회의 수위권의 부여로 해석하지만 이 해석 역시 개신교 계에서는 전면 부정하고 있다. 물론 교회 일치 운동 등이 현대에 활발히 일어나는 점도 무시해선 안되지만, 교계의 교리적인 소통은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설사 가톨릭과 개신교, 개신교계의 모든 종파들을 아우르는 초교파적인 성경의 4중적 해석법에 대한 기준안이 적용되어 성경의 상당수 논란이 해결되었다고 봐도 여전히 역법/숫자 상의 상충 및 상호 모순, 이문 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이 많다. 애당초 야훼의 뜻과 개입으로 쓰여졌다는 성경이 집필되고 필사되던 시점에서조차 그러한 오류들이 산재했던 것이 현실인데, 몇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야, 기준을 세운다고 세워서 해석해 봐야 해석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지 않을래야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게다가 성경은 다 다른사람이 적었는데다가 소실된 부분도 약간씩 있기 때문에 더 특정한 해석을 하기가 애매해진다.
간단한 예로, 신약 성경에 산재하는 모순과 사본들 사이의 이문들의 문제는 4중적 해석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서만 해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교인들이 내용을 서너 번, 혹은 그 이상 원래의 내용을 바꾸었기 때문이며, 이외에도 교파 간의 갈등이나, 개인의 신학적 고찰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내용에 변경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필경사의 부주의[27]나, 오탈자 등의 문제로 인해 생기는 오류와 모순들과 이문들[28]문제들은 4중적 해석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