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저자 요한은?
유다교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묵시록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묵시록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문체와 신학이 요한복음서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셈족의 배경이나 교리의 유사성 측면에서는 요한복음서와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바는 누가 정확한 저자인가를 찾아내는 데 있지 않고, 요한으로 전해오는 저자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요한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트모스 섬에 갇힌 요한?
저자 요한은 자신의 처지를 요약적이면서도 섬세히 전해줍니다.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1,9) 저자 요한은 그리스도교를 믿었기 때문에 나아가 그의 복음 선포 활동 때문에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다는 증언으로 보아, 요한이 실제로 그 섬에 유배 와서 살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파트모스는 옛 항구도시 에페소로부터 남서쪽으로 100여 킬로 떨어진 섬인데 폭이 9킬로미터에 길이는 16킬로에 이릅니다. 이 섬은 옛 로마시대에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묵시록 수신인은?
묵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되어있습니다.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1,4) 요한은 그 일곱 교회 이름을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1,11) 성서에서 ‘일곱’은 충만함이나 완성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구원의 숫자입니다. 따라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어느 일정 지역의 몇몇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세상 모든 교회를 한데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묵시록 집필 목적은?
요한은 크게 세 가지 목적으로 묵시록을 집필합니다. 요한은 첫 번째로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옛 [유다교]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고자 합니다. 두 번째로 아직 유다교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유다교 신자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자 하는 의도로도 묵시록을 씁니다. 세 번째로 자신이 지금 누리는 엄청난 은총을 외교인들도 누리게 하고자 묵시록을 씁니다.
묵시록 저자 요한은?
묵시록 내용을 섬세히 분석해나가다 보면 저자가 구약의 지식을 바탕으로 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묵시록 처음부터 끝까지, 유다교 전승에 정통한 유다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요한이 히브리말 전통에 깊이 젖어있는 인물임이 특히 4-5장에서 두드러집니다. 요한 자신이 유다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나아가 그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도하고자 하는지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곧 구약전통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자유로이 신약시대에 걸맞은 모습으로, 그리스도께[그리스도교로] 나아가도록 인도하고자 하는지를 7,1-14에서 명확히 보게 됩니다.
십사만 사천 명(7,1-14)은?
요한은 이 상징적인 숫자를 통하여 엄청난 신학을 전해줍니다.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7,4) 요한은 보다 구체적으로 144,000명의 내용을 밝힙니다. “이렇게 인장을 받은 이들은 유다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르우벤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요셉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벤야민 지파에서도 만 이천 명이 인장을 받았습니다.”(7,5-8)
144,000의 의미는?
구약에서 7, 10, 12는 더불어 온전함, 완성에 이름, 충만함, 구원 등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12,000은 12[충만한 수]×1000[충만한 수 10×10×10] × 12[이스라엘 12지파]입니다. 누가 만일, 굳이 우리말 셈법으로 더 쉽게 설명하라고 졸라댄다면 ‘충만함×충만함×충만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법합니다. 그러니까 유다 지파로부터 벤야민 지파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12지파 모두가 각기 12,000명씩이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모두 다’에 이르기까지 제한 없이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이마에 인장을 받았다 함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합니다.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이 수많은 유다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다는 뜻입니다.[12지파×12,000명=144,000명이 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144,000명이란 곧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왜 유다 지파가 맨 앞에?
누구나 곧바로 떠올리게 되는 물음입니다. 루우벤이 맏형이니까 당연히 루우벤 지파로부터 열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참조: 탈출 1,2). 답은 간단합니다. 요한이 묵시록을 집필하던 시기는 이미 신약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심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움터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나오기로 약속된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당당히 유다지파가 으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민족들이 유다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창세 49,10)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묵시 5,5)
144,000명으로 상징되는 유다인들만?
구원에 이르게 됩니까? 결코 아닙니다. 유다 열두 지파에서 나온 144,000명에 뒤따라 나오는 구절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7,9ㄱ) 그들은 누구입니까? 요한이 이 질문에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답을 줍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7,9ㄴ) 한마디로 선민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는 누구나 다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보편 구원의지를 명시적으로 선포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부 이단들이 이 단락을 놓고 얼마나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를 직시하고 교우들에게 올바른 깨우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양이 시온 산위에?
요한은 어린양을 중심으로 모인 십사만 사천 명을 다음과 같이 그려줍니다.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14,1) 여기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선 동산을 가리킵니다. 이 시온 산은 메시아 왕국 또는 지상 메시아 왕국의 중심부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