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해야 할 참상
임병식 rbs1144@daum.net
내가 태어난 고향마을은 분지형태로 소쿠리모양을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외워 싸여 외부와 소통하는 길은 한정되어 있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하겠지만 그 길은 저마다 크고 작은 고개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리고 동으로는 중매고개, 남으로는 목골, 서쪽으로는 고리태 고개, 북으로는 풍치고개가 있다. 이 고개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두루 이용하지만 당일치기로 돌아오는 때가 많다. 그렇지만 단 하나, 동편으로 나 있는 중매고개는 그렇지 않다.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누구를 기다리며 소식을 고대하는 고개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가 있다. 그쪽 방면에는 기차역이 있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어서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주로 그 고개를 넘어오기 때문이다. 마을 동쪽과 남쪽에는 각각 노거수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동구(洞口)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한데, 이곳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보면 해거름 녘에 동편 느티나무 아래서 서성이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제 때 일본 징용에 끌고 간 아들을 기다리는 발길이었다.
일본 패망 후 조선인들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행여 오나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자 그렇게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발걸음이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니 마을 분들은 안타까워하며 “어여, 들어가세요”채근을 하였다. 그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한식경을 서성이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그때서야 발길을 돌렸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 지도 80년이 넘었지만 일본이 조선인에게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면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이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면 인간의 탈을 쓰고서 저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도록 치가 떨린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에서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0만 5천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수많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민심이 들끓기 시작하자 그 분출구로 조선인을 겨냥했다. 그 와중에 조선인 6,611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당시 독립신문에 보도된 숫자이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방화하고 다닌다!”
얼토당토 않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그러면서 일본 자경단과 군경은 몰려다니며 조선인을 만나는 죽죽 살해했다. 칼로 찌르고 몽둥이 내려쳐서 죽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어린애도 가만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 있는 조선인 끌어내어 도륙했다. 참절비절한 비극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0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일본은 입을 닫고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들에게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뜬금없이 명단일부를 한국외교부에 전달한 것이다.
그 소식은 신문지상에 보도가 되었다. 반드시 풀어야할 의문인데 정부는 계획을 세워 철두철미하게 임해야 아지 않을까 한다. 귀국선 우키시마호에서의 몰살사건. 어찌 잊을 수 있는 일인가.
그 사건을 우리는 일본의 계획적 만행에 의해 벌어진 일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 근거는 목격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일본은 미군에게 핑계 대며 미군의 기뢰에 의한 침몰이라고 주장하나, 그걸 믿는 한국인은 없다. 폭발이 선실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닌 것이다.
왜 그들은 고의적으로 선실에 폭약을 장치하여 폭파를 시킨 것일까. 무엇을 감추고자 한 것일까. 일본당국은 수많은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을 부산항으로 돌려보내겠다며 나섰다. 그 말을 듣고 수많은 동포들이 우키시마호에 올랐다. 그날이 1945년 8월 22일, 배는 아오모리항을 출발했다. 한데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는 선수를 부산항이 아닌 교토 마이즈항으로 돌렸다. 그리고 난후 이틀 후 인 8월24일 배는 폭발로 침몰했다. 배에는 조선인 1만 2천명이 타고 있었는데 한 순간에 수장되고 말았다.
그동안 일본은 우리 측이 요구한 승선자 명단공개를 거부해왔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진상규명은 첫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나마 자진해서 보낸 명단이 도착했다니 다행이기는 하나, 어리둥절하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지금까지 과거사문제에 대해서 진정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애매한 표현으로 무슨 통석의 염이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느니 하면서 입 서비스에 그쳤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최근 국내 일부 인사들의 일본 찬양, 일본 편 들기는 도를 넘고 있다. 혹시라도 이들이 이런 문제까지도 바람을 잡으며 일본은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고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국의 유화정책과는 달리 일본의 태도는 거의 달라진 것이 없고, 현재도 터놓고 독도주변을 순찰하는 것은 물론,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기술하여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관동대지진은 몰론 수송선 우키사마호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오래전에 노거수 느티나무가 서있는 동구에 서서 아들을 마냥 기다리던 할머니 모습이 스친다. 돌아오지 않은 아들의 이름은 임0홍. 혹시 일본이 보내온 명단 속에 그 이름이 들어 있을까.
생사라도 확실히 밝혀진다면 살아생전 눈을 감지 못하고 아파하던 할머니도 조금은 위로를 받지 않을까.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노라니 새삼스럽게 처연한 생각이 들면서 중매고개를 한없이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2024)
첫댓글 왜놈들의 잔인무도한 짓거리는 참으로 세계 유례가 없는 만행이지 싶습니다.
얼토당토한 유언비어 한국민에 대한 잔혹한 참상은 잊을 수가 없군요.
중매고개의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임ㅇ 홍이라면 같은 종친이군요.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편을 든 놈들은 영원히 이 땅에서 몰아 내야 할 대상자라 생각됩니다.
잘못을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족속은 영원히 대적해야할 숙적이 분명합니다.
글에서 언급한 두 사건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악독하고 잔인한 만행이라니요.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을 찬양하고 굴종하는 인간들을 보면 역겹습니다.
호적을 파서 일본으로 내쫓아야 할 족속들이 아닌가 합니다.
일제의 만행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관동대지진 때의 천인공노할 만행이나 귀국선 침몰사고 등은 참으로 잊어서는 안 될 만행이지요 돌이켜보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독일의 나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묻고 집요하게 응징해왔지만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했지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책략이었지만 그렇게 면죄부를 받은 그들은 기고만장하여 아직도 반성하지 않으며 국내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그들의 후손이 득세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참회할 줄 모르는 일본은 반드시 준엄한 처벌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이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미국이 뒤에서 도와주니 한국을 우습게 보는 거지요.
관동대지진때는 폭발하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귀국선 폭침은
무엇을 덮고자 한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배에 타고있던 1만여조선인이 수장되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책임을 묻고 배상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