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 02.
엄마는 마지막에 비명을 질렀다: 이젠 정말 죽을 것 같아요! 그러자 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엄마의 다리 사이에서 얼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다 보았으면서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한 아이가, 파랗게 질린 얼굴 하나가, 돌연 눈앞에 있었다. 분명 없었는데 분명 있었다. 의사는 곧 아이의 몸 모두를 꺼내어 세상으로 옮겨 놓았다. 엉덩이를 때리자 아이의 숨이 자지러지면서 터졌다. 간호원이 아이를 엄마 가슴에 안기니까 아이는 비로소 안심하고 고요해졌다. 탯줄이 잘렸다. 몸에 묻은 양수액들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간호원이 내게 아이를 건넸다. 첫 목욕은 아빠의 몫이라는 게 이곳의 풍습이다. 작은 욕조 안에 받아 놓은 따뜻한 물에 나는 세례를 주듯 아이를 살짝 담근다. 간호원이 아이를 받아서 익숙하게 목욕을 시킨다. 자궁의 흔적을 씻어내고 매끈해진 아이는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울면서 웃는다. 황달이 조금 있지만 모두 정상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축하합니다, 간호원이 웃으면서 아이의 손목에 본홍색 아이덴터티 밴드를 감아준다: Frau Kim. feminin. 3.1kg. 아이는 고요히 잠들어 있다. 엄마도 잠들었다. 나는 빈 분만실에서 아이의 작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생각들이 머리 속을 지나간다: 아이가 세상으로 왔다. 한 아이가 나의 아이가.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일까.
미역국을 끓인다. 소금을 조금만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군다. 뜨거운 국은 보온병에, 따뜻한 밥은 도시락에 담는다. 병원으로 간다. 요셉 크랑켄하우스 (Josep Krankenhaus) 앞에서 전차를 내린다. 입원실로 들어간다. 엄마는 환한 얼굴로 옆 침대의 여자와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엄마 옆에는 병원의 아침 식사가 놓여 있다. 수프. 검은 빵. 샐러드. 치즈. 버터 그리고 커피.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 이게 어제 분만을 한 임산부의 아침 식사라니... 나는 미역국을 조금 그릇에 담고 밥을 떠 놓는다. 그게 뭔가요? 라고 옆 여자가 묻는다. 미역국이라고, 우리는 아이를 낳으면 오랫동안 미역국을 먹는다고, 붓기를 제거하고 젖을 많이 나오게 하는 거라고, 엄마가 설명해 준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다지 신뢰가 안 가는 표정이다. 미역 냄새가 역겨운지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샤워실로 들어간다. 독일 여자들은 정말 튼튼한 것 같아. 저 여자는 아이를 낳고나서 금방 샤워를 했대. 오늘부터는 찬물로 하겠다나... 엄마가 혀를 찬다. 근데 너무 수고가 많으시네. 산후조리까지 하고... 형은 힘들겠지만 난 기분이 좋네요. 행복해요.
간호원이 아이를 데려다 준다. 강보에 싸인 아이. 눈을 꼭 감고 얼굴만 보이는 아이. 그래도 귀기우리면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냄새. 어쩌면 자궁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맡을 수 없는 어떤 냄새.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곧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냄새.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축복인지 몰라, 엉뚱한 생각을 한다. 여자는 태어나서 이 냄새를 잃어버려도 언젠가는 자궁 안이 또 이 냄새로 가득하게 될테니까. 아이를 들여다본다. 아침 양광이 가득한 침대 위에 아이는 한 줌의 햇빛처럼 뽀얗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뺨을 만져본다.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너무 따뜻하다. 그런데 어쩐지 낯설다. 또 엉뚱한 질문: 이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누굴까?
아이의 이름을 ‘이원’이라고 짓는다. 이로울 利 작은 동산 苑.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많이는 아니어도 그저 작은 동산만큼만 남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마음이 들어 있는 이름. 그런데 이 이름 속에는, 고백하자면, 아빠의 염원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많이 들어 있다. 도대체 살아오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남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왔다는 자괴감이 몰래 숨어 있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좀 미안하다. 벌써부터 아이에게 뭘 바라다니, 부담을 주다니, 대리만족을 투사하다니...
여기서는 일주일 안에 출생신고를 마쳐야 한다. 아이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꿔서 출생신고서에 적는다: Iwon, KIM. 프랑스 이름인가요? 이본느 킴, 한 번 이름을 발음하더니 접수를 받는 여자가 묻는다. 나는 웃으면서 전후사정을 설명해준다. 어쨌든 너무 이쁜 이름이네요. 여자가 따라 웃는다. 그러고 보면 이 아이는 앞으로 세 개의 이름을 갖게 된다. 하나는 아빠가 지은 이름. 또 하나는 지금 서울에서 할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이름. 그리고 불란서식 알파벳 이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중에 이 아이가 혹시 이름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갖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는 않을까? 세상에, 벌써 무슨 정체성... 엄마는 웃는다. 누가 공부하는 사람 아니랄까봐. 기저귀나 갈아줘요.
기저귀를 간다. 하얀 기저귀 위에 묻은 연노랑 작은 물질. 냄새가 난다. 젖 냄새가.
엄마와 아이가 잠들어 있다. 아침 햇빛이 하얀 침대 위에 가득하다. 또 냄새. 이번에는 젖 냄새만은 아닌 그 어떤 냄새. 갑자기 나도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눕고 싶어진다. 그러나 침대는 너무 좁고... 이상한 소외감.
퇴원을 한다. 강보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을 나간다. 세상으로 들어간다. 병원 현관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다. 계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전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세상. 성당의 첨탑이 보이고 수퍼마켓이 보이고 멀리 대학의 도서관이 보이는 세상. 매일 몸담아 살아가서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세상. 그러나 이제 이 아이가 내 품안에 안겨서 그 첫 발을 내 딛는 세상. 이제부터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이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 그 세상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긴 세월을 걸어서 막 도착한, 한 번도 발 디뎌본 적이 없는 어느 처녀지처럼 신비로워진다. 계단을 내려가서 병원의 앞마당으로 들어선다. 이월의 아침 양광이 가득하고 미풍이 분다. 부드러운 바람이 조금 차가워서 강보를 여미고 아이를 조금 더 당겨 품에 안는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을 감고 고이 잠들어 있는 아이. 따뜻한 아침 햇빛, 부드러운 바람, 품 안에 안긴 아이의 냄새와 가벼운 무게... 이 모든 것들을,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지금 여기의 경이를, 그러나 이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할 것이다. 아이가 첫 발을 내딛는 최초의 풍경을 내가 이 아이 대신 잊지 못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동안 그 기억은 아이와 나 사이에 또 하나의 탯줄로 이어질 것이다. 아이와 더불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나는 이 기억의 탯줄을 통해서 아이를 느끼고 말하고 이해하게 되리라. 이 탯줄의 이름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마당을 건너간다. 저만큼 주차장에서 K가 손을 흔든다. 자동차 문은 벌써 열려 있다...
2010. 10.
명하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다. U턴을 해서 노변에 차를 세운다. 안녕, 아빠. 명하는 인사를 던져놓고 차를 내린다. 핸드 브레이크를 풀려다가 대신 차창 밖을 바라본다.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그렇게 서두르더니 웬일인지 보폭이 느긋하다. 하늘은 높고 아침 햇빛은 눈부시다. 바람이 불고 공기는 맑다. 그 아침의 대기권 속에서 아이가 걸어간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희고 몸매가 꼿꼿한 잘 생긴 아이. 가슴이 뿌듯해진다. 교문이 가까울수록 아이들이 많아진다. 명하가 그 아이들 속으로 섞인다. 차츰 사라지다가 마침내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래, 저 많은 아이들 속에서, 저 많은 아이들과 더불어, 내 아이는 이제 미지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세상에서 아이는 무엇이 되고 누가 될까? 이름 모르는 저 많은 아이들은 또 무엇이 되고 누가 될까? 내 아이와 저 많은 누군가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어떤 생을 준비해 줄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을 간섭하게 될 세상에서 저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생을 만나고 살아가게 될까? 마음이 혼란해진다. 감정들이 종잡을 수 없이 뒤섞인다. 설레임, 두려움, 안타까움 그리고 또 이런저런...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앞의 세상을 바라본다. 맑고 깨끗한 늦가을의 아침 세상. 그 위로 또 하나의 세상이 겹쳐진다. 근심 걱정 불안이 없는 세상, 우리들은 만들지 못했던 먼 세상, 그러나 내 아이와 다른 많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서로가 그 무엇이 되면서, 만들어 갈 수도 있을 아주 가까운 세상, 그렇게 멀고도 가까운, 한 없이 아름다운 어떤 미지의 세상이 월요일 아침의 늦가을 풍경 위로 겹쳐진다. 핸드 브레이크를 푼다. 기어를 바꾼다. 그리고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내 아이가 벌써 그 곳에 가 있는 것처럼...
첫댓글 이제 인생은 빛 바래 가고 .
자식들 통해
넉넉한 아픔을 ...흐뭇한아픔을... 대견한아픔을,,, 엿보는 그런 모습입니다
아이를 떼어놓을 준비를 하면서..
조금은 힘든 엄마의 일상입니다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범죄만 늘어 가는 우리나라 현실을 !!!
아이들은 현명하게 잘 이겨 나가야 할텐데..집사님의 기도 에 하나님께서 잘 보살펴주시리라 믿습니다
곧 내가 경험해야 할 이야기.. 오랜 시간 너무도 바래왔던 이야기..
아름다운 생명의 탄생! 성장! 그리고 인생!! 그리고 우리들!!!
제 이름이 좋은 이름이었군요.... 이원에다가 기쁨까지 더한 이름 이.원.희. ㅋ 신비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 했습니다ㅎ
희 가 계집 희 아니었어요..이원 희를 풀이 하면 이원은 여자다 그런 뜻..
김진영선생님은 참으로 감정이 풍부하신 것 같아요. 글에서 애절함이 묻어 나오네요.
저는 처음 조율이를 손에 받아 보면서 너무 어색하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병원이 멀어 차에서 반쯤 나왔고, 아내를 먼저 들여보내고 나서 주차하고 얼른 따라 들어 갔는데 아이가 이미 나와 있더라구요. 병원장이기도 했던 의사가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해서 어떨결에 기도했는데..뭐라고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소통하며 조금씩 내가 '압바'가 되어감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1인칭 현실이 3인칭 소설 같습니다.."기억의 탯줄" 혹 인연이 아닐까요?..생명의 탯줄은 태어나면 끊어지지만, 기억의 탯줄은 죽음으로 끊어지는..이원, 제 어렸을때 별명 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제게도 새로운 탄생이었던 듯 합니다. 깊숙히 때가 박힌 배꼽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 것도 아이를 낳고부터 였습니다. ^^ 저도 가끔 '네가 어릴 때, 우리가 이토록 널 아끼고 사랑한 걸 네가 기억한다면 네가 더 행복할텐데...'라고 말하곤 한답니다. 그 기억은 부모인 우리들의 것이지요. ^^ 정말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네요.
일기가 이렇게 문학적일수 있다니요... 감동하며 잘 읽었습니다.
Danke Danke Danke !!!
종배씨는 대체 몇개국 언어를 하시는거에요?
집사님,뭐 이정도 가지고 놀라시긴요? 이정도는 코리아노,차이니쉬,쟤패니쒸,체주리쉬,도이취,영글리쉬,콩글리쉬,징글리쉬,천당리쉬인 방언까지 했으니 저도 세알리기 힘드네요ㅋ 어쩔땐 하면서도 무슨말 하는지도 모르고 기도도 해보았고요,,,, 알아듣는건 듣는사람쪽 문제지요 ㅠ
제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독일 쪽에서 밀수하시는 것 같은데요? ㅋㅋ
Bitte sehr! 아 나도 한마디.
아빠가 이런 글을 남겨주셔서 이원이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를 상상할 수 있어 행복한 아이인 것 같습니다.
공감해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