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가을이다. 그런데 가을에는 말만 살이 찔까?, 가을볕에 곡식이 익어가고, 온갖 가을 과일들이 풍성해지듯, 우리내 몸도 지난 여름 더위를 격어 온 가을 날씨에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상성을 갖고 있기에 식욕이 올라가고 살이 찐다. 선선해진 날씨만큼 몸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내야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원인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하며, 피하지방이 더 많아지면 추워지는 날씨로 인한 에너지 손실이 줄어들기에 피하지방 축적을 위해서라도 살이 찐다. 또한 기온이 내려가니 점차로 써늘해지는 날씨는 혈액순환을 원활히 도와 위장 운동이 활발하게 되며, 소화가 빨라지니 허기를 더 쉽게 느끼고, 포만감이 빨리 사라지므로 자꾸만 간식을 찾게 된다.
그런데,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라는 ‘천고마비(天高馬肥)’, 즉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라고 우리에게는 계절은 알리는 낭만적인 표현으로 이 시절이면 즐겨 쓰이지만, 이 고사성어를 처음 써온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상당히 공포적이고 부정적인 사실이 있다. 중국 전한(漢) 시대, 명확한 시간과 계절을 알려주는 시계와 달력이 없던 시절, 중국 북방의 흉노는 하늘이 평소보다 높아 보이고,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난 풀을 뜯어 먹었던 말들이 살이 찌면, 이 시기가 바로 맹추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았다. 이때의 북쪽 흉노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침범해 사람과 가축을 살육하고, 수확해 놓은 풍부한 농작물과 물자를 빼앗고, 토지와 가옥을 무차별로 짓밟아버렸으니, 진정으로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 흉노의 세력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수도인 낙양 근처까지 매년 침탈당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천고마비’는 공포의 고사성어로 ‘경계경보’ 수준이었으므로 오늘날의 중국인들도 그리 즐겨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본격적으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와 열대야로 식욕마저 떨어졌던 지난 여름과는 달리 선선한 날씨로 신체의 오감이 제 기능을 되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기에 최적화된 계절이다. 마음 같아선 맛집을 찾아 근교로 여행을 떠나면 좋겠지만, 그러나, 시대는 지나친 음식물의 섭취에서 오는 육체의 비만 억제가 절실한 시대이다. 신문과 방송 매체에서는 연일 ‘살과의 전쟁, 어떻게 하면 비만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가 대부분의 논쟁거리이다. 물론 기본적인 체력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가을에 풍성한 먹을거리로 식욕이 넘치더라도, 부디 비만에서의 탈출과 살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고대 중국인들은 흉노의 침탈 ‘경계경보’라고 했듯이, 우리 내의 ‘천고마비’도 비만에서의 탈출, 살과의 전쟁을 위한 ‘경계경보’로 바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이 찐다는 가을이다.
♦윤장원♦
호는 유천(裕泉), 박사, 시인, 수필가, 한시시인
전)FAO-CGIAR-ICRISAT 국제작물연구소, 수석연구원
현) BENGUET STATE UNIVERSITY,
Lifetime Achievement Professor (종신석좌교수)
현)농사협(RSDC), 농촌개발본부장
현)정부 공적원조(ODA) 전문가 개발도상국가에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