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차이는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삶에서 하나님을 계산에 넣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예수님은 부자인데다 소출도 풍성한 한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의 한 가지 고민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한 비명이란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일 것이다 . 그는 많아진 재산에 대한 해결책도 쉽게 마련했다.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눅 12:18)
복에 겨운 사람이다. 이 사람을 보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집과 아무런 먹을 것이 없는 집의 분위기는 얼마나 다른가. 아마도 불공평한 세상이라며, 불평을 늘어놓았을 수도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모은 것이 아니라면 존중해야할 일이다.
부자의 최종 목표는 이것이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 많은 사람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완벽한 삶이 아닌가.
청년 세대에 욜로족과 파이어족이 있다고 한다. 욜로(YOLO)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삶을 추구한다. 즉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사람들을 말한다. 현재의 삶이 중심이다.
파이어(FIRE)는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을 빨리해 자발적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20대부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며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사람들이다. 수입의 70~80%를 넘는 액수를 저축하는 등 극단적 절약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 미래의 삶이 중심이다.
현재의 삶을 포기한 파이어족이든, 미래의 삶을 포기한 욜로족이든, 어느 한쪽을 희생할 수 밖에 없는 고민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이 부자는 그 어느쪽에도 해당이 안 된다. 현재도, 미래도 다 안정적이고 여유롭다. 물질로 인한 중압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완벽한 이상이라할만 하다. 많은 청소년들의 꿈이 건물주인 이유일 것이다.
단 한 가지, 그가 주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상기시키신다. 그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 부자는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빼놓고 계산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계산에 넣은 정탐꾼과 그렇지 않은 정탐꾼의 보고가 다르듯, 하나님을 계산에 넣은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은 같을 수 없다.
물질에 대한 부요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요가 관심이요 삶의 중심인 사람은 당당하고 힘이 있다. 물질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괜찮다. 기쁘고 즐겁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