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세월호 추모 시화전
지겹다. 세월호에서 ‘세‘ 자만이라도 꺼내는 놈은,
오늘 저녁 술 사기다. 아들 딸 잃은 부모 심정이 오죽하랴.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하자.
정부기관 청사 중앙 홀에서 추모시화전을 열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23 까지 전시를 합니다.
다음 전시는 단원고등학교에서 열 계획입니다.
전시를 마치고 아픔이 아무를 때 쯤 이면 국가기록물 보관소에 보내집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위로는 커진다고 합니다. 주위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이제는 아무는 때입니다. 꽃도 보고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평안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지루할까봐 시와 그림을 사나흘 간격으로, 다섯 점씩 바꿔서 전시했습니다.
시화전 내내 적막이 있을 뿐, 잔기침도 소근 대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소리 죽인 한숨과 침묵이 고요처럼 흘렀습니다.
지나가는 발길을 잠시 멈추고, 서성이다 촉촉한 눈길로 뒤돌아보며 천천히 발길을 옮기는, 조용히 그렇지만 감동적인 전시회였습니다.
많이 감상해 주셔서 죄송합니다. 많이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호 사고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맹골수로에서, 304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습니다.
침몰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부러진 화살이여!
나이 열일곱, 피 끓는 청춘
와글댄다고 나무라지만
빨리 빨리 닦달에
뛰기 위해 엎드린 개구리
표범보다 잽싸게
다람쥐보다 빠르게
기차도 단숨에 올라타는데
누가 손발 꼭꼭 묶었습니까.
어린이 아주머니 할머니도
안고 들쳐 업고 손 잡아주고
누구 없냐고 핑 둘러보고
맨 나중에 나올 우리인데.
눈만 말똥말똥 뜨고
허공 만 바라보다가
한번 당겨 보지도 못하고
무참하게 부러진 화살입니다.
어디로든 튀지 않고는 못 배길
튀는 스프링인데
“가만있어”하는 어른들 말씀에
순종한 죄 뿐입니다.
수평이 안 맞았습니다.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이진성터는 시끌벅적한 장터였습니다.
제주도에서 해산물을 싣고 배가 당도하면, 때 맞춰 장이 서고, 주막은 손님맞이에 분주했습니다.
어느 초가집 화단에는, 멍이 숭숭 난 검붉은 돌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둘레석입니다.
어느 촌로
거룻배가 제주에서 올 때는, 가벼운 해산물을 싣고 옵니다. 그리고 기우뚱거리지 말라고 배 밑바닥에 무거운 돌멩이를 넣습니다.
돌아갈 때는 무거운 쌀가마니는 실고, 대신에 돌멩이는 내려놓고 갑니다.
속이 비면 채우고 속이 차면 내려놓고, 수평을 맞추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엄마의 독백
흐느낌 인가요.
하소연 인가요.
넋두리였지요.
창백한 노을
아련한 슬픔
긴긴 꿈이었나요.
울음이 터질 듯한
미소를 머금고
맥없이 불러보는
애달픈 아우성
내 새끼야.
어느 잠수사의 일기
수심 37m 바다 속에서, 동북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배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는 일이다.
오직 “생존자 한 명이라도 찾아야한다”는 일념으로. 하루에 5번을 잠수를 했다.
3번째 잠수할 때였다. 거센 급물살에 빨랫줄처럼 날리는 몸을 힘겹게 가누면서 사투를 벌이던 중이였다.
서치라이트를 켰지만 시계는 30~40㎝에 불과해서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도 잘 안 보일 정도였다.
더듬더듬 선체를 더듬어 30여분쯤 돌아다니다가, 몸이 선체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물 흐름이 잦아든 공간이었다. 살펴보니 승객들이 다니는 통로였다.
위쪽에 거꾸로 서있는 계단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몸을 안쪽으로 돌리자, 신발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다.
부유물을 밀쳐내자.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었다. 남학생 주검이 나온 것이다. 청바지 차림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번 구조작업에서 만난 첫 시신이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고인에 예의를 표했다.
수습 관행대로 시신을 밀어 배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길이 1m가량 되는 구명조끼 끈에 뭔가가 연결되어 있었다.
끈을 당기자 맨발 상태로 여학생 주검이 나왔다.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남녀 학생 시신이었다.
죽음이 닥쳐올 때 얼마나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을까.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은 것이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잠수 가능한 시간이 10여분밖에 남지 않았다.
연결된 끈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남학생을 먼저 배 밖으로 밀어낸 후에 여학생을 업고 나왔다.
왠 일일까? 시신은 물속에서 떠오르기 마련인데, 남학생의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시신을 물속에 놓아두고, 수면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료 잠수부도 어린 학생 시신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물속에서는 귀신이라는 잠수부지만, 이때 본 광경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가슴이 아프다면서 물속에서 만난 두 어린 학생 이야기를 했다.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으면 좋겠다. 명복을 빈다.
어머니의 편지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가가 지옥 갈께, 딸은 천국에 가.
정부합동분양소에서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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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Lhj_BtI_Hc?list=RD9nU8m0Npn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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