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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2:1~7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차별하는 것은 범법 행위다2:8~13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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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겉모습으로 판단해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해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라도 범하면 율법 전체를 범하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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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5절
빈부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부’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세상 기준에서 주목받을 것 없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믿음의 부요함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가치를 뒤엎는 나라입니다. 차별은 성도인 우리가 저항해야 할 이 시대의 가치와 문화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6,7절
‘영광의 주’를 모시면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이중성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지만, 교회는 세상과 똑같이 ‘악한 기준’으로 서로 편을 나누고 차별대우하고 있습니다. 부의 한계를 알고(1장 10절), 가진 자들에게 당하고도 그들은 여전히 부자를 환대하고 가난한 자를 홀대합니다. 부자(강자)가 영광의 주(1절)를 조롱하는데도 교회가 부자들 편에서 약자를 괄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기모순일 뿐입니다. 천국에 약자를 소외시키는 자들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잠깐 있다 사라질 가치들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곳입니까, 아니면 욕망을 정화하고 해독하는 곳입니까?
8~11절
이웃 사랑을 ‘최고의 법’이라 부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나누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1절)과 사랑은 형제를 향한 차별 없는 섬김과 실천하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차별은 최고의 법을 어기는 중대한 범죄이며, 가난한 자를 천대하는 것은 율법 전체를 어기는 일입니다. 하나님 경외와 이웃 경시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12,13절
심판(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가난한 형제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긍휼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로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니 ‘차별’은 하나님의 차별(심판)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며, ‘긍휼’이 없이는 아무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재물과 세상의 약자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뵈올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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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3절)
❝긍휼을 입은 성도의 삶❞
❚ 긍휼의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외모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 바른 성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 차별을 멀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4절).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답게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하지 말 것(1절)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입은 옷이나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들을 판단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시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차별은 공동체를 서로 분리 시키고, 피차간에 시험에 들게 합니다. 사람의 외모에 근거해서 차별하는 것은 악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조건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믿음이 바탕되는 삶이어야 합니다(5~7절).
하나님은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믿음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상 주시며, 영적인 은사를 풍성하게 주셔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사회에서 천대받던 부류였습니다. 사회에서도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오히려 그들을 차별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멸시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모독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비록 나의 삶이 가난하다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만큼은 부유한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부유함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우상숭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이 바탕이 되는 삶을 통해 바른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은혜를 받은자의 삶이어야 합니다(8~13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어거니와.’(8절)... 율법대로 하면 구원을 얻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9절). 왜냐하면 율법 하나만 어겨도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10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로 자유를 얻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긍휼을 얻었음에도 다른 사람을 긍휼 없이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13절,새번역)...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핵심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살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행하여 흠이 없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함을 입어 영적인 자유함과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긍휼을 입었기 때문에 긍휼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다시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살아가므로 바른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기준이나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편애하는 삶이 아닌 그리스도의 판단 기준에 따라 살아갈 뿐만 아니라 긍휼의 은혜를 입은 자답게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실천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이기를(약 2: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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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말라(2:1∼7)
성도는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가진 것이 없는 약자라고 함부로 대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 기준에서는 가난하고 약해도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라고 업신여기고 그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영벌을 받습니다(마 25:31~46).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와 사회 안에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합니다.
교회에서조차 부유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회에서는 이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세상 기준에 의한 차별을 거부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누구든 편견과 선입견으로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고 있나요?
이웃을 사랑하라(2:8∼13)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마 22:37~40).
이는 하나님이 명하신 최고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멸시하고
차별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범법자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은 지켰으나 살인을 하면,
그 또한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율법 하나를 범하면 곧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므로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유의 율법, 곧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긍휼을 베풀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묵상 질문: 자유의 율법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이 처음 주신 율법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적용 질문: 모든 사람을 하나님 사랑으로 대하나요?
마음으로 차별하며 밀어냈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기준이나 외모로 은근히 사람들을 차별하고 편애했던 제 악함을 회개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삶의 자리마다 인정하고, 제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께 복종시키며,
말씀의 능력을 의지해 사랑의 법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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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야고보는 공동체 안에서 외적 조건으로 "차별하는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질타합니다. 그는 회당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의 현장을 그대로 묘사하며(2-3),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6). 야고보가 보기에 차별은 단지 여러 잘못된 태도 중 하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자신과 사도들이 직접 목격한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반대하는 믿음을 버리는 행위였습니다(1). 그렇기에 야고보는 차별이 아닌 이웃 사랑을 실천할 것을 권면합니다(8). 외적인 조건을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율법이 범법자로 정죄할 것이며(9), 이웃사랑을 저버리는 것은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10).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웃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자격 없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구주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면, 장차 하나님께서 우릴 차별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1. 우리 주님과 성경의 말씀을 본받아 차별하지 않는 믿음과, 긍휼을 실천하는 사랑을 살게 하소서.
2. 도박, 인터넷, 음란, 음주, 흡연에 중독된 이들이 주님을 만나 진리 안에서 참된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깨달아 정결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하소서.
세상은 나의 자랑이 더욱 돗보여야 함으로 모이기만 하면 서로 차별하고 정죄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세상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잘못된 관심과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만이라도 공평하고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모두가 구원받은 형제와 자매일 뿐, 차별은 없습니다.
세상은 가진 것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에 대한 사랑을 가진 자를 찾으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른 사람이 차별하는 모습에 대하여는 화를 내면서 실제 내 삶 속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돌아봅니다. 종과 자유가,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헬라인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 능력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나를 도와주옵소서. 우리을 아낌없이 사랑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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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건물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의 모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부릅니다. 에클레이사의 뜻은 불러 내었다라는 뜻으로, 세상의 죄악 속에서 성도를 불러 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죄악에서 벗어나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이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시고 이끄시는대로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일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계명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 22:40) 즉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교회의 머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내용
자신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행하기 위해서, 차별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은 차별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서 2: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가 이같은 교훈을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끼리 서로 차별을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모두 약속하신 나라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부유한 자에게만 하나님 나라를 주시거나 가난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하던지 가난하던지 상관 없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차별없이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가진 여부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의 성품을 따라, 우리도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명령 받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 나가야만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고, 야고보는 사랑의 계명을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가진 것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가진 것이나 교회 출석 기간, 교회 출석하는 가족의 수 등에 따라 차별하는 모습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함부로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따라 아무도 차별하지 말고 함부로 정죄하지도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을 따라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다른 성도들을 높여 주는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 나갑시다.
우리가 차별없는 사랑으로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 나갈 때, 주께서 우리 교회를 주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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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5-7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시지만, 부자여도 가난한 자에게 불의를 행하고 주의 아름다운 이름을 먹칠하는 일에 동조하는 자에게 관대하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가난한 자의 불의를 무조건 두둔하거나, 부자이기에 그를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사회적 조건과 상관없이 그분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 치우침 없는 은혜 안에서 우리가 주의 자녀가 되었음을 명심합시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그러하듯 그리스도인마저 받을 것을 기대하며 부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가난한 자들을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여겨 환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을 받은 자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해서는 안 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는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보다 썩어질 세상의 영광에 포박된 자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잠깐 있다 사라질 가치들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공동체입니까, 아니면 욕망을 정화하고 해독하는 공동체입니까?
8-11절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최고의 법으로 말하는 율법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아무리 다른 율법에 충실하더라도 차별함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율법조문을 따로 분리할 수 없듯 하나님과 이웃을 대하는 태도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차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외식일 뿐입니다.
12,13절 이웃을 이기적인 목적과 자의적인 기준으로 차별하는 태도는 긍휼 없는 비정한 태도요 욕망의 노예가 된 결과입니다. 진정으로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것이고, 하나님께도 긍휼을 덧입을 것입니다. 차별 없는 긍휼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의 율법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누구를 대하든 주의 형상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시선으로 환대해야 합니다. 재물과 세상의 약자들을 대하는 내 태도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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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합니다(1~4).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과 이웃을 구제하는 삶이 연결된 흐름이 2장에서도 이어집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1절)
야고보는 단지 “이웃을 도우라!” 명령하지 않고, 경건한 삶의 시작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기시킵니다.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는 사랑을 베푸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암시한 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라면 보이는 것을 기준 삼아 서로를 판단하고 비방하며 살지 않기를 충고합니다(4절).
그리스도를 통과하지 않고는 세상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받지 못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악에서 구원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의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의 장을 열어 갑니다(5~13).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삶을 논한 데 이어(1:27), 2장에서 야고보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이 삶의 구체적인 내용을 표현하고자 최고의 법인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기까지 합니다(8절).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외면하면서 높은 자를 좇는 삶을 가정을 파탄 내는 간음죄와, 생명을 죽이는 살인죄에 비하기도 합니다(11절).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이 언급되다가 이웃을 구제하는 삶이 다루어진 이유를 질문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한 답이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 죄인을 향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니 그분의 은혜를 후히 입는 자들 또한 이웃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입니다.
이렇듯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원동력이 되는 하나님의 자비, 그분의 은혜를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적용 ㅣ 말씀 안에 머물며 자신을 살펴봅시다.
1. 나를 거절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이웃에게 열린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부르심에 이끌리어 사랑의 장을 열어 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모든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분노와 시기, 미움과 정죄했던 마음을 회개합시다.
순간의 기쁨은 영원하고 참된 것이 아니다<내려놓음 365 묵상, 이용규>
내려놓기보다는 세우고 만들기를 원하고
나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성공이요, 높아짐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순간의 기쁨이요, 영원하고 참된 것이 아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2:11)
[남연화] [오후 5:01]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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