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署 경찰관이 '감자바위' 유래 밝혀... 2003. 04. 11
|
|
"‘강원도 감자바위’의 내력을 아시나요."
강원도를 빗대‘감자바위’라는 속어로 불리게 된 시기와 유래에 대한 색다른 주장이 한 경찰관에 의해 제기돼 화제다.
춘천경찰서 경찰관의 주장에 따르면 강원도 감자바위란 과거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절 금강산 광산에서 주석을 채취해오던 영·호남 주민들에 의해 전해진 비속어라는 것.
그 경관에 따르면 강원도 감자바위의 내력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일제의 착취는 극에 달했고 전쟁에 소요되는 무기 생산을 위해 강원도 금강산 등지의 광산에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은 채 주석채굴에 열을 올렸다.
이 때문에 주석의 존재는 귀했고 생활이 궁핍했던 서민들에게는 주석채굴은 큰 매력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당시 날품팔이로 연명하던 일부 영·호남 주민들 중에는 강원도에 몰래 잠입, 주먹만한 주석을 채굴해 팔아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신들의 수입이 대폭 줄어들 것을 우려한 나머지 궁여지책으로‘강원도 금강산에 주석을 채취하러 간다’는 말 대신‘강원도에 감자를 캐러 간다’는 말로 바꿔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강원도 감자바위의 유래라는 주장이다.
이 경찰관은 “이같은 유래를 10여 년 전 자신의 고향이 경상도라고 언급한 80대 노신사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그 이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강원도 감자바위에 대한 것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어 관심을 갖고 각종 문헌을 뒤져보기도 하고 영·호남지역을 직접 찾아가 얻은 다양한 자료와 진술을 토대로 했다”고 밝혔다. < 이 00 기자 >
<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
감자바위
에스파냐 탐험가 피사로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을 탐험하다 페루사람들이 파파 (Papa)라고 부르는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속살이 노란 이 구근류를 정복지 약탈 운반선에 실었다.
항해 식량으로 먹어보았더니 아주 맛있었다.
에스파냐에 도착한 이 낯선 식물을 사람들은 파타타(Patata)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식물은 이탈리아를 거쳐 중유럽 북유럽으로 전파되며 포테이토(Potato)가 됐다.
서양에 감자가 전해진 루트이다.
한국에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감자는 1824∼25년에 명천의 김씨가 북쪽에서 가지고 왔다는 설과 청나라 사람이 인삼을 몰래 캐가려고 왔다가 떨어뜨리고 갔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832년 영국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가 한국에 와서 전라북도 해안에 체류한 일이 있었다.
그때 구츨라프라는 선교사가 마령서(馬鈴蕃), 즉 감자씨를 농민에게 나누어주고 재배법도 가르쳐 주었다.
재배법을 전수받은 농민의 아들 김창한이 1862년에 내놓은 원저보(圓藷譜)라는 책엔 그렇게 기록돼 있다.
청나라 사람이 인삼을 몰래 캐가려고 왔던 곳이 강원도였다면 모를까, 감자의 전래 기록대로라면 강원도가 '감자바위'가 된 내력이 영 이상하다.
이를 한 경찰공무원이 오랜 연구 끝에 "감자는 영호남 사람들이 쓰던 주석의 은어였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1920년 대 일제가 금강산 등지의 광산에서 주석 채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궁핍한 영호남 사람들이 몰래 감자크기만 한 주석 덩어리를 캐내 팔면서 남들이 따라 올까봐 "강원도에 감자 캐러 간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강원도 화전에서 감자 수확을 하던 부부가 날이 어두워 감자와 돌이 구분이 안 되자 "이건 감자" "이건 바위"하며 손으로 더듬어가며 골라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그 보다는 '주석론'이 좀 과학적이다. < 함 00 논설위원 >
<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첫댓글 아~~그랬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왜곡되었지요...
하긴... 머...
왜곡 날조된기 그것 뿐이겠어요... 역사 자체가 왜곡 날조 된 것을...
날더운데 감자 옥수수 넘 겁나요 캐기도 지치고 옥수수 특히 양파망 덮어쓰고 하는것
가슴에 얼음넣고 밭고랑 들어가도 어느새 ...땀범벅되지요 맛은 좋을것입니다 강원도 특산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