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三身)의 공덕을 찬탄하라.
금오가(金烏家) 이것이 내가 이룩하고자 하는 금화불교 금화승의 두 번째 집단 구조를 상징하는 언어입니다. 즉 이 언어의 뜻은 부처 가족이란 말이 됩니다. 금오란 금까마귀라는 언어 황금빛나는 까마귀는 태양 즉 대일여래를 비유한 것으로 가장 위대하고 견줄 수 없고 위가 없는 광명장 여래불, 법신을 새로운 모습으로 이해를 돕고 우리에게 다가서 이익을 주는 밝은 태양으로 우리의 본성 자성 자리를 비유로 일컫는 언어적 표현으로 금화불교가 지향하는 최초 사회 화합 집단인 가족부터 함께 성불하게 하자는 부르짖음이지요. 그러나 서로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움이 주는 고단한 삶의 여정 피로감으로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표가 같아야 길이 같아진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몸 세포들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집단은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집단의 한 부분으로 화합하여 세상을 엮어감에 최초 집단의 목표가 되는 것이 사회집단의 목표가 되도록 할 때 우리가 사회 중심축이 된다는 사실을 통하여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도자 자유자재한 관자재보살로 세상을 연출하고 장엄하는 것입니다.
나는 금화불교 금오가를 축원하고 그 업적을 찬탄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위험한 구조가 화합의 요소에 스며드는 다른 목표점이 각자에게 주어질 때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함께 목표점이 같아도 업력 따라 안목이 다름으로 인한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 안목을 키워낼 것인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도반이라는 길에서 머물고 지닌 덕목 지켜내는 것이므로 전생, 금생, 내생으로 이어가며 함께 하는 일이란 사실을 서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라는 금오가의 화합이 지켜지게 됩니다. 여기에 따르는 언어가 환생 즉 윤회의 가치를 드높여 부처를 이루고 부처의 모임이 되게 하는 것이 금오가입니다.
금오가가 모일 때 금화불교가 성취되어 만상이 드러남이 원만보신 노사나불임을 알게 되고,
그 낱낱이 서로 자유자재하여 걸림 없음으로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로 자유자재함을 증명함이 되며,
이 모든 것 모양 없고 실체가 없는 하나로 둘이 될 수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본 지위를 떠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금화불교 금화승 금오가 이 위대한 목표가 승속을 떠나 법을 구하고 성취할 때 부처의 나라 극락정토가 나타나고 그 정토 위에 연화생의 지위에 머물고 있음도 확신할 것입니다.
금화불교 금화승 금오가라는 대원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계이며 다른 것 없습니다. 오직 대원력으로 나아갈 때 깊고 가늘게 숨결을 길들여 가야하고 모든 거칠게 타오르는 에너지는 밑에서 완전하게 정화되게 하여 거친 에너지가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해야 순수한 대원력의 에너지로 삼신이 화합으로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업적이 이 몸을 가짐으로 가능함을 증명할 때 삶의 여정은 자유자재하여 관찰자와 관자재가 하나 임을 증명함이 업적이 되고 장엄 국토로 빛나게 됩니다.
환생이라는 특별한 초대는 반드시 화합과 이해를 전제로 이끌어내야합니다. 그 과정이 사라지면 가장 큰 댓가로 자신과 그 금오가에 균열이 생긴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인지하여야 합니다.
삶의 여정에서 뜻을 세워 이룩함에 가장 힘든 것
첫 번째가 나를 다스리는 일이며,
두 번째가 가족 화합함이 되고,
세 번째로 사회 전반에 이르게 화합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의 삶 여정에서 과오들 조차를 나를 깨우치고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을 이끌어주는 금오가(金烏家), 최초의 집단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을 지닌 내가 두 번째 집단 금오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구조가 될 때 금오가는 그 기능을 지니게 됩니다. 금오가는 나를 이끌어주는 스승이 되고 나는 금오가를 지켜내어 굳건하게 함으로 지혜가 넘쳐흐르는 샘터가 될 것입니다. 금오가를 존중하고 존경할 때 나는 위대한 부처의 지위에서 존중 받게 됨을 확신하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류 와는 멀고 가까움으로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면 행위가 다른 까닭입니다. 다른 길에 서 있는 이를 내 곁에 두고자 하면 스스로 머무는 지위를 지켜내고 함께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능력이 없을 땐 원을 세우고 멀고 가까움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고 금오가를 지켜내는 일이 됩니다. 그럼으로 삼신(三身)을 바로보게 됨이니 어찌 다른 것으로 행위를 삼겠습니까?
이것이 금오가가 지닌 힘이며 공덕의 길이 됩니다. 금화불교 집집마다 부처가 노닐고 부처가 또다시 부처를 이룩할 때 온법계가 부처님 나라임을 증명하고 확신함으로 환생은 환생이 아닌 생사의 자유자재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6살부터 죽음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지금까지 여러 과오로 실패를 거쳐오며 수행이라는 이름 속에서 61년간 살펴본 일들을 통해 금화불교 금화승 금오가라는 대원력의 명호 내세워 대자대비 대희대사 사무량심 성취를 위한 명호로 글을 작성하는 까닭입니다.
모두 함께 존중과 배려의 지혜로움으로 금오가(金烏家)를 이루시어 지혜의 바다 지켜내고 반드시 부처를 증명하옵소서.
마하반야바라밀.
大智慧 金壽好 道用 性隱 現聖 光明藏 如來佛
대지혜 금수호 도용 성은 현성 광명장 여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