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봉평, 순메밀국수 / 이경교

[이정림]

겨울 봉평, 순메밀국수

이경교

살갗이 흰 자작나무 군락을 지나고, 고루포기산을 내려와 횡계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고루포기라니? 이름이 부풀어 깊어진 산, 생각이 많아 무거워진 산, 내가 고루고루 포개진 산이라고 우길 때, 노인은 골패기 산이란 뜻이라고 응수한다 이제 황태 두릅처럼 꼬인 길을 이어나가면 봉평, 체수 작은 노인이 나귀를 끌고 간다 어디선가 만났던 얼굴이다

저녁 햇살이 비추는 눈길, 밟을수록 다져지는 눈길, 이 눈길 되밟으며 내 세월도 저렇게 다져졌겠지 다져지며 다시 녹아내렸겠지

봉평에서 순메밀 국수를 말아 먹는다 아 참, 맛있다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나면, 내 인생 너무 무미했구나! 가야 할 길은 어둠 저편으로 길게 뻗어있다 눈발로 지워진 길은 다시 길을 내야만 하는 장년을 닮았다 자주자주 오마는 약속, 그러나 어려우리란 약속

어느 땐가 다시 돌아와 보면, 순메밀 국수 뒷맛은 사라진 뒤겠지? 내가 스쳐가는 이 눈길도 어두운 등 뒤에서 다시 지워지겠지? 봉평을 떠나며 봉평을 되돌아본다

내가 꼭 나귀를 끌고 가는 노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