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사는 삶 (잠 12:26-28)
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27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이 시간에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제목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시원하게, 밤에는 불로서 밝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과 성령입니다.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요16:13에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으로도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마치 물과 같아서 일정한 법칙 속에 흐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흘러넘쳐야 하는데 이 법칙을 위반하면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령의 흐름 속에 살아갈까요?
1. 복음의 기초가 잘 놓여야 합니다.
26절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잠언에 의인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 의인은 어떤 의인일까요? 살펴보면 인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소경이 아닙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는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의인은 또 어떤 의인인가? 악인과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미혹하는 악인입니다. 남도 미혹하지만 자기도 미혹 당합니다. 미혹이란 속임과 비 진리를 가리킵니다. 여기 의인은 그렇지 않는 의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의인은 다름 아닌 진실과 진리에 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아무 데나 흐르지 않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사람에게 흐릅니다. 예수 안에서 흐르고, 예수의 복음의 진리 안에서 흐르고, 성경 말씀 안에서 흐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보혈의 칭의로서 의롭고, 십자가의 성결로서 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그 심령에 강물처럼 흘러넘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악령이 틈타 늘 시험에 넘어지고 신령한 사역을 할 수 없다면 항상 기초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가 예수를 나의 유일의 구주로 믿고 있는가? 요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믿어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타 종교에도 신비가 있는데 그것은 100% 악령입니다. 개인을 신봉하는 이단에도 은사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것도 악령의 역사입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이적을 행했듯 이방 세계에 신비한 마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십니다. 다른 종교에도 우리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마음 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은 내 심령이 세속과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과 짝하면 악령에 속한 영이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거룩한 자ㅣ와 함께 하십니다. 사57:15에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그러므로 세상과 온전히 분리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사랑의 사람인가? 예수님처럼 낮아진 섬김의 사람인가? 성령님처럼 열심의 사람인가? 이 기본에 늘 충실하셔야 순수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초가 잘 놓여야 합니다.
2. 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27절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7절이 강조하려는 내용은 부지런함입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하나님 섬기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예배할 때 성령이 흐릅니다. 찬송할 때 성령이 흐릅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여기 “사냥하다.”라는 말의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잡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눈앞에 나타난 짐승도 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잡아야 하는데 게을러서 잡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은혜 생활하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 은혜를 주입시켜 주는 것 아닙니다. 타인이 은혜를 주입한다면 과연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그래서 히6:11-12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각자가 부지런하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 “사냥하다.”라는 말에는 ‘굽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게으른 자는 눈앞에 나타난 짐승도 잡지 않을 뿐 아니라 잡아놓은 사냥물도 요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잠26:15에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르면 요리해 놓은 것을 스스로 먹으려 조차도 않습니다.
신앙에 적용해 보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놓으신 은혜에 등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은혜의 자리만큼은 등한히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려고 교회를 통해서 온갖 준비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무관심하다면 그건 하나님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밥을 떠먹여줘도 입을 벌리지 않으면 그건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6:1-2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면서 얼마나 너희들을 위해 수고하며 고난 받았는지 아느냐고 말씀합니다.
갈5:16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어떻게 성령을 따라 삽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자동으로 성령으로 살게 됩니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동으로 성령으로 살아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열심히 경외하여 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합니다.
28절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여기 생명과 사망이라는 두 구도가 나타납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런 구도입니다. 살려면 잘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공의로운 길에는 해가 없습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지만 그 길을 떠나면 사망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30:15-18에 모세는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흐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불신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절되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음에도 가나안을 향해 쳐들어가다 큰 봉변을 당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말립니까?(민14:42). 그러나 그들이 만류를 거절하고 올라갔다가 크게 참패를 당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오다가 인도하던 별을 잃습니다. 왜 잃었을까요? 왕을 떠나자 다시 별의 인도를 받는 것을 볼 때(마2:9), 헤롯 궁에 자문을 구하려고 생각하다 잃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가라 해서 가면 복이 되지만 가지 말라 하시는데 가면 해가 됩니다. 아기 예수님을 보세요. 심지어 애굽이라도 하나님이 가라 하실 때 가면 피난처가 되지만 가지 말라하실 때는 가면 큰 봉변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객관적인 뜻이 있고 주관적인 뜻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뜻은 성경이고, 주관적인 뜻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우리 사명과 일상사의 여러 말씀들입니다. 이건 각인이 다 달라요. 좋은 계획을 세웠지만 마음에 영 허락함이 없으면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넘쳐흐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받은 성령을 우리를 위해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성령은 강물과 같이 흘러가 온갖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의 기초를 떠나지 말고,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 항상 강수와 같은 성령의 흐름 속에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