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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지난 4일 44명이 인천공항을 떠나 이스라엘 성지 테마 연구 18박 19일을 무사히 지내고 돌아 왔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모두가 느끼며 매끄럽게, 행복하게 무사히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한 성지 탐구였습니다.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다 탐구하였습니다. 웨스트 뱅트 지역인 헤브론, 사마리아만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들이 이런 팀은 처음 보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즐겁게
깊게
깨끗하게
하나님께서 이 세가지 기도를 다 들어 주셨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깊었습니다. 깨끗하였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최상의 공부였다고 평가하는 데 일치하였습니다. 어느 누구 한 명 분위기를 흐리는 분이 없었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9월 18일 갈릴리에 도착하니 저녁 7시였습니다. 추석날이었습니다. 보름달에 비친 갈릴리는 환상적이었습니다.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였습니다. 44명과 가이드 김 진산 목사님 그리고 운전기사 지단 모두 46명이 바베큐 파티를 하면서 달빛 밑에서 포크 덴스를 하며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즐겼습니다.
그리고 달빛 아래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 수영을 하였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을 보고 느낀 것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의미는 무엇일가요?
1. 형통을 의미합니다.
젖은 목축입니다. 젖은 소나 양이나 염소가 주는 음식입니다. 젖이 흐른다는 말은 목축이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꿀은 농업입니다. 꿀은 꽃에서 나옵니다. 식물이 잘 되어야 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꿀이 흐른다는 말은 농업이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은 목축과 농업이 잘 되는 땅이란 말입니다. 당시 사회는 산업사회가 아닙니다. 도시 사회가 아닙니다. 농경사회입니다. 목축과 농업이 잘 된다는 말은 모든 일이 형통하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이 형통한 땅입니다.
2. 부요를 의미합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흐른다는 말은 부요를 의미합니다. 형통한 데 부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축이 잘 되는 데 적이 침범하여 다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농업이 잘 되었는 데 도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젖과 꿀은 흘러야 합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나 기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를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젖과 꿀이 흐르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형통하고 부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비결이 무엇일가요?
1. 광야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50%가 광야이고 50% 옥토입니다. 이스라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로 나눕니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명목상이로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4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로 비 한 방울 오지 않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입니다. 6개월 비 한 방울 오지 않다가 9월말이 되면 구름이 낮게 깔리게 됩니다. 그리고 10월에 약간의 비가 뿌려집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른 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월경에 늦은 비가 옵니다.
그래서 삭막한 광야가 50%입니다. 사막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풀과 나무가 드문드문 보이는 곳입니다. 이 곳에 물을 끌어 들으기만 하면 그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밑에 물은 충분하고 위로 햇빛이 충분하기에 과일은 기가 막히게 맛있게 익습니다. 헤브론 포도, 라기스 석류, 엔게디 종려열매, 여리고 대추는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과일입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젖과 꿀이 흐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가 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번 여행에서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원이나 수도원을 세운다면 모두 물좋고 경치좋은 곳에 세웁니다. 특히 우리나라 절터는 명산의 명당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기도원, 수도원은 다 광야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된 기도원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가시떨기위에 세워진 성 캐더린 수도원입니다. 캐더린은 294년 애급 알렉산드리아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핍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갖은 고문을 다 견디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왕족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거룩한 시신이라 천사가 어느 높은 산봉우리에 옮겼을 것이라고 전설적으로 내려 왔습니다. 어느 수도승이 수도를 하다가 계시를 받고 캐더린 시신이 있는 곳을 알았습니다. 바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성 캐더린 수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일단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새벽 4시에 모두 일어나 기도를 시작하여 7시 30분까지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또 기도합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그것도 채식만 합니다. 가장 오래된 기도원이기에 성막 그림도 가장 오래 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뜰에는 들어 가 보았지만 도서관에는 들어가지 못 하였습니다. 100억 위성 CD를 만든 리챠드 크리브가 도서관에 들어가서 가장 오래된 성막 그림을 복사해 제게 보내 주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수도원은 광야에 세워졌을 가요? 성경적으로 보면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회복이요
광야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도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에서 죽인 후에 이세벨의 죽으려고 하자 광야로 도망가 숨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왜 엘리야는 이세벨이 죽이려고 할 때 은밀하게 친척집에 숨지 않았을 가요? 왜 외국으로 도망치지 않았을 가요? 왜 광야로 도망하였을 가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4-5)
엘리야는 광야 로뎀나무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는 말씀이요 회복입니다.
비울도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야 광야로 가서 3년을 살았습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7)
세례요한도 말씀을 외치러 나갈 때 광야로 나갔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막1;3)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눅 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말씀을 증거하려고 하실 때 교회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노방전도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로 가셨습니다. 예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예수님은 스스로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광야는 회복이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때 어떻게 하여야 할지 하나님께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하나님과 나와 단 둘이만 있는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그 무엇인가를 회복하고 싶습니까?
하나님과 나와만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밤 12시 교회 이 자리가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안방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복잡한 버스안이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 둘이 있는 그 곳, 그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하신 곳도 광야입니다. 그 곳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유대광야는 지금 수많은 수도사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야가 있기에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가 있어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2. 율법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없으면 삭막한 땅이 되고, 아무리 사막이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신명기는 분명히 이런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
이렇게 되는 조건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9-10)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4)
반대를 들어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 28;15-19)
나쁜 땅에도 율법이 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하나님의 율법이 없으면 삭막한 사막이 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을 보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브엘쉐바는 네게브 사막속에 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니까 우물을 하나님께서 발견하게 하셔서 거부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라신에 가보았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있습니다. 비옥한 땅입니다. 비록 산위에 있지만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전도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주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눅10:13)
지금 고라신은 저주받은 땅이 되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폐허를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단이 살던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단을 가리켜서 <물 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이 많고 풍부하며 비옥한 땅입니다. 산이 울창하여 세계에서 제일 좋은 산림욕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단을 <에덴의 입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멋진 땅입니다. 그러나 단은 그 곳에 우상이 세웠습니다. 우상을 세운 터위에 서서 나는 코끝이 찡함을 느켰습니다. 성막의 제사를 가장 진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분명하게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곳에서만 사진을 200여장 찍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던 단지파는 오늘날 사라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파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 12지파가 구원받을 때 단 지파는 한 명도 구원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옥토에서도 번성하지 못 하고 사라진 것은 율법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들어간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샬롬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대단히 큰 일급 호텔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네 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3대가 안식일 엘리베이터였습니다. 해지면 안식일이 시작되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도 일입니다. 그래서 해지기 전에 엘리베이터는 자동으로 매 층마다 서고 저절로 가게 작동시켜 놓았습니다. 내 방이 15층이었는 데 4분 걸립니다. 가자 지구를 아랍에게 내주면서 그 곳에 살던 주민을 이 호텔로 피신시켰습니다. 피난온 가자 지구 사람들, 안식일 유대인들, 여행객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글바글 댔습니다. 10층만 되어도 걸어갈 생각을 해보겠는 데 15층을 걸어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을 느끼는 속터질 지경이었습니다. 호텔 방마다 메주자라는 말씀 상자가 있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며 말씀을 묵상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4;6-9)
그래서 집은 물론 호텔방까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문설주에 말씀을 써서 넣고 들어가고 나가면서 키스를 하고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율법이 있으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이지 옥토라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켰다>
통곡의 벽은 2000년 동안 일분도 기도가 그치지 않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보면 몸을 흔들면서 기도합니다. 탈렛을 쓰고 기도합니다. 테피린을 이마에 매고 기도합니다. 왜 흔들가요?
졸지 말라고 그럴가요? 집중하라고 그럴가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스10:3)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욥23:15)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하나님 앞에서 떨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왕앞에 가면 떱니다. 우리를 운전한 기사 지단은 경찰만 보면 떨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떠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떠니까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 중심으로, 율법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십니다. 율법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본문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네게 허락하심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이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제일 많은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반공호를 파놓고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항상 긴장속에 살아가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뜻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도시>
평화롭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반공호는 물론, 비상식량은 물론 방독면까지 준비합니다. 한국인이 100여명 정도 되는 데 한국인에게는 이스라엘 정부에서 방독면을 주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국산 방독면을 대사관에서 지급하는 데 15분 정도 사용하면 끝입니다. 이스라엘 방독면은 2시간 용입니다. 2시간이면 독까스가 터진 곳에서 도망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방독면은 15분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사관에 한국인들이 항의하였더니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15분도 어디냐?>
그런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평화스럽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아랍인까지 합하여 6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1만명 가량이 기독교입니다. 2001년도 한 달 살 때 83개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120개로 늘었습니다. 과거 19세기 동안 예수님에게로 돌아 온 유대인보다 과거 19년 동안 예수님에게로 돌아 온 유대인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독교인이 많은 도시가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의 75%가 아랍인들입니다. 그리고 25%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원수같은 두 민족이 공존하는 데 한번도 테러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는 곳이 나사렛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사랑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고 공존하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항상 젖과 꿀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임하여 있는 그 곳 항상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면 더욱 분명하여 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만일 38명이 한 사람을 둘러 싸고 잡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보십시다. 1대 38의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 명이 38명을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최근 이스라엘과 적 아랍과의 전쟁은 6일 전쟁입니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은 7,410km2가 된다. 그래서 6일 전쟁 이후 오늘날 이스라엘의 면적은 28,110 km2입니다.
이스라엘을 둘러 싸고 있는 아랍 적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남쪽으로 이집트가 약 100만km2, 오른 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약 220만km2, 이스라엘 바로 옆 요르단이 약 96,000km2, 오른 편 위 시리아가 약 185,000km2, 바로 위로 레바논이 약 10,400km2입니다. 이스라엘 보다 500배 큽니다.
아랍 국가들의 인구는 약 1억 5천만 명으로 이스라엘의 약 38배입니다. 500배 크고, 38배가 많은 아랍이 이스라엘에 꼼짝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은혜로 함께 하니까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과 기업과 교회에 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약 세 주간동안 보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형통과 부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가요?
1.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2. 율법이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신 6:4)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기나긴 광야 생활을 마치고 바야흐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문턱에 서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율례와 법도의 대략을 다시금 새로운 세대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명령을 청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율례와 법도는 가나안 복지의 성민이 될 이스라엘에게 기본 전제로써 부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본문은 일명 '쉐마'(Shema)라 불려지는데 유대인들의 신앙 교육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는 구절로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말씀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유일한 경배의 대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들 중에 하나로써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며, 다른 신과 공존하는 신도 아닙니다.
참되신 유일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분으로서 애굽에서와,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 위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은 신은 있을 수 없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시다고 할 때 그 말은 수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시며 성질에 있어서 단순하십니다.
오직 하나의 절대 자존 불변 무한하신 영이십니다.
'오직 하나'('에하드'(dja)라는 말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존재적으로 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그분을 부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신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증언해 줍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시다고 하는 것은 수적인 단일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홀로 한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신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왕상 8: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전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이 유일하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 자존 무한하신 점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6:5)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출 8: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유일하신 하나님은 성질에서 혼합적 존재가 아니시고 단순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상 숭배는 죄악입니다
(시 106: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라는 뜻은 하나님만 신앙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의미는 신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오직 홀로 합당하다는 뜻이다'('카일')고 설명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의미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만이 우리가 경배해야 할 참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출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라고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행사하시는 일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유일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인생의 유일하신 주인으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말 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라고 합니다
이는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며 우리 인생들은 본질적으로 '피조자'임을 인식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나 가치관을 이루어 놓았다 해도 겸허하게 이웃을 대하고 내가 무슨 '창조자'나 되듯이 교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구원주이십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신'이시요, 창조주이시니 지으신 인생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 밖에 안 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도 또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 낸 사상이나 제도도 또 '인간의 탐심'으로 만들어 낸 모든 '신화적 우상'들도 인간의 '의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 내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며,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분도 오직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유일하신 심판주이십니다
(약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합니다.
인간들이 자꾸 신화와 우상들을 만들어 내는 이유를 어떤 종교심리학자는 '회피와 은혜와 기만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회피하고,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만하기 위해 여러 신화와 우상들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아전 인수'격으로 자기들에게 좋은 신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시기에 그 뜻과 공의가 나뉘지도 않고 변질되지도 않으십니다. 한번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기필코 심판하실 뿐입니다(시139편). 그리고 그 심판을 막아 주거나 그치게 할 다른 신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의 진실한 회개만이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이러한 유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선언하신 후, 이제는 전 인격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먼저 그의 중심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나아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신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특정한 직분을 받은 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를 사랑하는 자, 즉 부르심을 입은 신자 모두에게 명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전문가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말씀은 곧 가정의 생활을 위한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 계명을 각인의 생활 표준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가정에서 이 교훈을 철저히 가르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헌신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헌신된 개인의 가정생활 역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는 하나님께로부터 가정의 자녀에 대한 교육의 대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신 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잠 4: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닮기 원하는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 격려, 불안정의 해소를 위해 직접적인 사랑의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죄, 위험, 절망적인 결과 등에 대한 경고를 주저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행복의 유일한 길이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임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리에 앉았을 때, 자리를 옮겨 걸을 때, 그리고 서로 만나 얼굴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고 토론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의 삶 속에서 표현되어져서 그 사람의 미간과 손목의 표지가 되는 동시에 가정생활에도 중심이 되어짐으로 집의 현관과 바깥문에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오늘날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되고 있습니다. 사실상 교육에 대한 책임은 학교나 교회, 사회보다도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 이외의 교육 기관들이 아무리 많은 교육적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가정'만큼 중요한 교육 기관을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부모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위에서 그의 자녀들을 교육할 의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철저히 헌신하지 않는다면,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 살 때에 분명코 하나님을 배반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생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났는가를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우상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그들의 신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배도를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하여, 즉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후손에게 힘써 가르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상에 모여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을 합니다.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여기서 '어느 때까지...'라는 이 말은 늘 그래왔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딱 중간에 끼여 가지고,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또 어떤 때에는 바알 신을 섬기고, 그래서 싹 눈치를 보다가 어느 곳에 조금 유리하면 하나님께 붙었다가, 때로는 바알에게 붙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 하겠느냐! 하나님을 택하던지 아니면 바알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단하라고 합니다
속된말로 '하나님도 좋고 바알도 좋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다리 걸쳐서 그렇게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으로 섬기고, 그리고 바알은 농사를 지었을 때에 풍요를 기원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 신을 섬기고, 그래서 항상 둘 사이에 끼여서 이쪽 저쪽 눈치를 봤던 것이,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서는 모세의 유언적인 설교입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가나안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후대들인 2세들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길이 뭐냐고 하면 유일하신 하나님만 믿는 길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어느 정도 이 유일 신앙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 어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질수록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하나님 중심 예수 중심이 제대로 되지 못한 만큼 자꾸만 갈등은 일어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자리로 불러모으고 '너희들이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택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했을때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고백하게 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복이 회복되어졌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시니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변화산 상에서 예수님, 모세, 엘리야! 이 세분을 봤으나 후에 엎드려졌전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 17:8)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되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달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