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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예배 / 조한우 목사
지혜의 왕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우리 인간 역사 가운데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
우리는 솔로몬 왕을 바라보면서 ‘어쩜 저렇게 지혜로운 왕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감탄과 함께 부러움을 갖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아이들이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그렇게 지혜롭게 만들 수가 있을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유전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측면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하나님 앞에 드려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무슨 조건부식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무 조건이 없는 겁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 사랑이 너무 너무 감격스러워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아니 그냥 자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기복주의 신앙을 들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고 나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는지 몰라요.
가난하고 무지했던 우리 대한민국의 백성들이 지금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던 우리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교회로 마구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에 나가면 복을 받는다더라, 교회에 나가면 자식들이 잘 된다더라, 교회에 나가면 병이 낫는다더라.’
또 사실이 그랬거든요.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예수 믿고 팔자 고친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었나요?
그러니까 너도 나도 교회로, 교회로 밀려들어왔던 거예요.
게다가 교회에서는 계속 축복에 대한 설교만 했습니다.
부흥회 때마다 목사님들이 ‘복 받아라! 복 받아라!’ 그러면 성도들은 목이 터져라하고 ‘아멘! 아멘!’을 부르짖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인물들이 되어서 모두 다 사회의 큰 기둥들이 되었고, 대 기업가들이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에서 많이 나왔고, 그래도 예수 믿은 덕분에 미국 유학도 가고 공부도 잘 해서 석박사도 되고 그랬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예요?
우리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교단인 소망교회의 이명박 장로님께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셨단 말예요.
이 정도가 되면 정말 예수 믿을 만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놀부도 그랬고, 혹부리 영감 얘기 아시죠?
맘속에는 욕심이 가득해 가지고 그저 복이나 받겠다고 달려들었다가 그만 망신만 당하고 마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서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정신 똑 바로 차리지 않으면 한 평생 예수 믿는다고 교회는 다녔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는 한 번도 드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버둥대다가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정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본 받을만한 모범적인 예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나오는 솔로몬 왕의 일천 번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면서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랑,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예배랑 잘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면 일평생동안 솔로몬처럼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시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 예배에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성을 다 하는 예배였다는 거예요.
따라해 봅시다. - “정성을 다하는 예배”
예배 치고 정성을 다 하지 않는 예배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보면 정말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가 있고, 그냥 대충 대충 드리는 예배가 있더라고요.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소 한 마리, 양 한 마리 잡기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무슨 번제를 일천 번제를 드렸겠느냐? 그냥 그건 어떤 상징적인 표현이겠지.’
여러분, 성경 말씀이 어디 허투루 말씀을 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던가요?
하나님을 말씀은 정확무오한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 속에는 상징적인 표현도 있고, 묵시적인 표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실 때에는 아주 정확하고 확실하게 기록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열왕기상 4절 말씀을 보면,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성전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 지역에 많은 산당들이 있었지만 다윗도 그랬고 솔로몬도 그랬고, 그 중에 가장 그리도 규모가 컸었던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많이 드렸던 모양입니다.
기브온 산당의 규모가 꽤 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일천 번제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역대상 29장 21절 말씀에 보면 다윗은 죽기 전에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를 다 끝내 놓고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이날 다윗이 하나님 앞에 드린 번제가 모두 3천 번제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역대하 7장 5절에 보니까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 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소가 2만 2천 마리에다가 양이 12만 마리면 모두 몇 마리예요?
14만 2천 마리잖아요?
그런데 일천 번제가 그냥 많이 드렸다는 상징적인 숫자이겠습니까?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앙ㅍ에 드린 일천 번제는 정성을 다한 예배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였어요.
이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정말 지극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고 나면 뭔가 욕심이 생길 법도 한데 솔로몬은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셨던지 친히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는데도 솔로몬은 전혀 욕심이 없었어요.
아름다운 예배가 어떤 예배일까요?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요, 욕심이 없는 예배가 정말 아름다운 예배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응답이 있는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과 기도와 헌금이 있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있는데, 말씀과 축복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말씀과 축복 기도’도 잘 받아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잘 못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도 잘 못해요.
예배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응답이 대부분 말씀을 통해서 오거든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잘 받아서 그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서 또 나가서 일주일을 사는 거예요.
그런데 가끔 보면 말씀을 잘 못 듣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생각 같아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못해요.
괜히 이것저것 쓸데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혀가지고 무슨 말씀을 주시고 있는지 아무 것도 들리는 게 없어요.
아니, 생전 생각나지도 않던 것들이 왜 설교시간만 되면 이것저것 별 생각들이 다 나냐고요?
하나님 앞에서 응답 받는 예배를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는 겁니다.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응답받는 예배에서 또 중요한 것이 축도예요.
모든 예배가 다 마쳐지고 나면 목사님이 축도를 하고 마치잖아요?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안 계시지만 어떤 교회에 가 보면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우루루 몰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으면,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한없는 축복이 쏟아지는데, 그 시간이 바로 목사님의 축도 시간인 줄 믿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와 교통하심이 바로 목사님의 축도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거예요.
고개 숙여서 목사님의 축도를 받고나서 반주자의 후주가 흐르는 동안 묵상하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그 예배의 감동과 감격을 혹시라도 흘리게 될까봐서 조심조심 교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겨놓는 성도들이 정말 아름다운 예배의 주인공들인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어떤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일까요?
말씀을 듣는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을 때에 솔로몬이 ‘옳다구나 이때로구나!’하고서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그랬으면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축복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구한 것이 뭐였어요?
6절부터 9절까지 말씀을 쭉 읽어보세요!
마지막에 9절에 가서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했습니까?
“듣는 마음”을 구했어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생전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이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싸움이 왜 일어나요?
남의 말은 안 듣고 내 말만 하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을 해 좋았습니다마는 전에 우리가 썼던 개력성경에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되어있었거든요.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레브 쇼메아(לב שׁמע)라고 되어 있는데요,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솔로몬이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뭐가 부족한 것이 있겠어요?
정말 솔로몬이 어리석어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겠어요?
하나님 앞에 겸손하니까 ‘듣는 마음’을 구한 줄 믿습니다.
‘내가 백성들의 뜻이 무엇인지 잘 들을 수 있게 듣는 마음을 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들을 수 있게 듣는 마음을 주세요!’
10절 말씀을 보니까,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구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우셔서 솔로몬에게 정말 잘 듣는 마음을 주시니까 솔로몬이 지혜가 충만하게 된 줄 믿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그저 뭐든지 잘 듣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라고 볼수 없어요.
카리스마요? 리더십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고집불통으로 일관하는 것 보다는 그저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남자들이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더래요.
그런데 버스가 수십 대가 지나가도 이 사람들이 버스를 탈 생각을 안 하더랍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이 사람들이 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30대 남자에게 물어봤대요.
‘당신은 왜 쫓겨났습니까?’그랬더니, ‘나는 마누라한테 밥 달란 소리 했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러더래요.
그 옆에 앉아 있는 40대 남자에게 또 물어봤대요.
‘당신은 왜 쫓겨났습니까?’ 그랬더니, ‘나는 마누라한테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가 쫓겨났습니다.’그러더래요.
또 그 옆에 앉아 있는 50대 남자에게 물어봤대요.
‘당신은 왜 쫓겨났습니까?’ 그랬더니, ‘나는 마누라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러더래요.
그 옆에 앉아 있던 60대 남자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러더래요.
‘나는 집안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어쩌다가 마누라랑 살이 닿았는데, 재수 없다고 쫓아내던 걸요.’
제일 마지막에 70대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는데 너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더래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께 여쭤봤답니다.
‘할아버지는 왜 쫓겨나셨어요?’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에고, 말도 마시오! 나는 죽지도 않고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쫓겨났다우. ㅠㅠ’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평소에 마누라 말을 그렇게도 안 들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다만 그 분의 이름을 찬송하고 애배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정성을 다하는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벤치마킹해서 일천번제 헌금을 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던데,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런 일천 번이 아닙니다.
일천 마리의 소와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드린 거예요.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예배를 드린 거예요?
온 힘을 다해서, 왕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아름다운 예배가 된 줄 믿습니다.
솔로몬이나 다윗 왕은 형편이 되는 대로 최선을 다 한 거예요.
때로는 천 마리도 좋고, 3천,마리도 좋고, 14만 2천 마리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배를 드렸다는 겁니다.
그런 아름다운 예배에 당연히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거예요.
말씀으로 응답하시고 목사님의 축복기도를 통해서 응답하시고 아니면, 솔로몬처럼 직접 꿈에 나타나셔서 응답을 주실 수도 있고요.(할렐루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우리들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고 하시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무슨 마음을 달라고요? - ‘듣는 마음’을 주세요!
다 같이 따라합시다. “듣는 마음을 주세요!”(×2)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다 따라오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예배는 솔로몬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모아서 우리들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예배, 최고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지리산 자락에 있는 우리 자그마한 칠정교회에 모여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그 분만 바라보면서 그 분에게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세미하신 음성이 들려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