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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세 십자가 요19:17-30, 고전1:18-24 오래 전에 스칸디나 반도에 위치한 핀란드란 나라에서 정치를 잘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한 왕이 있었는데, 자녀가 무남독녀인 공주 하나만 있어 공주의 배필을 잘 선택하여 왕위를 잇게 하려고 전국에 사윗감을 구한다는 공고를 내었습니다. 그 공고를 보고 정해진 날에 전국에서 수천 명의 건장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런 시험은 언제나 말 타기, 활쏘기 시합이 있고, 그 시합에서 우수한 성적이 나온 자들을 데리고 두 번째 지혜의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문제는 하늘과 땅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청년은 가지가 많고 보기에 좋은 나무를, 다른 청년은 긴 나무를, 어떤 청년은 굵은 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고아로 자란 존 페로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성전 앞에 장식 된 십자가를 보면서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가지고 왕 앞에 가서 내놓았습니다. 왕은 “그것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물었을 때,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나무입니다. 세로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이고, 가로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왕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자네야말로 내 사윗감이네. 왕이 될 자격이 있네.” 그래서 그 청년을 공주와 결혼시켜서 사위를 삼고 왕의 자리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 시키는 십자가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서로 사랑하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 되는 종려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골고다의 세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가운데에 달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복음서 본문 요19:17-18에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쌔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고 그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몇 가지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십자가라는 점입니다. 범죄 하여 타락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예수님만의 몫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사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했습니다. 주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에는 감당하기 너무 힘든 무겁고 벅찬 십자가였기에 십자가를 앞두고 피땀 흘리는 기도를 드리셨고, 십자가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가시다가 쓰러지고 넘어져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가야 했고,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다음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심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을 위한 대속의 십자가라는 점입니다. 죄에는 수치가 따르고, 형벌이 따르고,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죄로 인해 인간에게 병이나 기근과 전쟁과 여러 가지 재난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 하셔서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온갖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부터 배신도 당하셨고, 베드로로부터 부인도 당하셨고,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흉계로 인한 고통, 빌라도의 사형 판결, 무지한 군중들의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소리를 들으셔야 했고, 로마병정들의 잔인한 채찍과 조롱으로 인한 수치,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6 시간 매달려 있는 동안에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참담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진노와 저주와 심판과 형벌을 온 몸으로 당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사53:3 이하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인류가 속죄 받을 길과 구원의 길을 다 이루셨습니다. 본문 30절에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속죄의 길을 이루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구약 시대의 속죄를 위한 제물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구속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이 외침은 예언 성취와 사명 완성의 선포입니다. 이 외침은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보장하는 선포요, 죄와 사망을 깨뜨린 구원 성취의 선포요, 성도에게 영생을 보장하는 주님의 선포입니다. 우리 모두 나의 죄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나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속죄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2.왼편 강도가 달린 멸망을 자초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형은 흉악한 죄인이 받는 사형 제도였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게 하는 죄인은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반란자나, 노예들을 처형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로마시민들이라고 하면 아무리 무거운 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이 십자가형은 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형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끔직한 형틀로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나, 포악무도한 살인마와 같은 사람을 죽일 때나 사용하는 것이 십자가 형틀입니다. 왼편 강도는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이라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왼편에 있는 강도는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을 믿지 않고 구경하는 무리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난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 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조롱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7:40에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마 27:42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마 27:43에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 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했으며, 눅 23:35에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 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막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처음에는 좌, 우편에 못 박힌 강도들은 무리들이 퍼부어 대는 이러한 욕설들을 들으면서 예수님께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들도 함께 조롱에 가담했습니다. 마 27:44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했고, 막 15:32에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했습니다. 왼편 강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죄를 범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죽은 후에 영원한 지옥의 세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자들의 완악함과 무지함을 보여준 십자가입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멸망하는 자들"이란 헬라어 원어로 "아폴뤼메 노이스"라고 하는데 그 뜻으로는 ‘멸망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십자가 없이도 인류를 구원 하실 수 있는데, 굳이 수치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사람의 생각만 하기 때문에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십자가를 보기 때문에 어리석어 보입니다. 21절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했습니다. 왼편 강도처럼 자기 지혜로 판단하게 되어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갑니다. 왼편 강도와 같은 완악한 자들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3.오른편 강도가 달린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구경하는 무리들과 좌, 우편 강도가 함께 비난 하다가 갑자기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나타난 하나의 이적입니다. 함께 예수님을 욕하며 조롱하였던 우편 강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임하신 것입니다. 저주하고 조롱하던 그 강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니 그는 예수님의 진실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죄인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함께 저주하고 조롱하였던 그가 좌편 강도를 향하여 꾸짖었습니다. 눅 23:40에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했고, 눅 23:41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그의 마음속에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눅 23:42에 보면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우편 강도에게 대답하신 내용은 눅 23:43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른편 강도는 같은 흉악한 죄를 범했을 지라도, 마지막 죽기 직전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고 회개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회개한 자의 십자가입니다. 오른편 강도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이 선물이 너무나 값이 비싸 도무지 값을 매길 수 없는 은혜란 것입니다. 값이 너무 비싸면 가격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1500년경에 그린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그림 밑에는 ‘Priceless’라고, 즉 ‘값을 매길 수 없음’이라고 써 놓았다고 합니다. 유명한 그림 하나도 값을 매길 수 없다면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 영생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 바로 오른편 강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에 달린 오른편 강도를 볼 때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것도 죽는 순간에 믿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11장을 보면 "그 흉악한 한 강도는 제 죄를 깨달아, 죄 없으신 주 예수를 구주로 믿었네, 내 지은 죄 흉악하나 주 예수 믿으면 용서받은 강도같이 곧 용서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은 얼마 후 그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영향력 있는 믿음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가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 있는 것을 믿고 회개하여 오른편 강도처럼 구원 받는 자가 되고, 나아가 십자가를 자랑하며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가원 합니다. 정리합니다. 고난주간이 .시작 되는 종려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골고다의 세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가운데에 달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것이고, 죄 값을 치르므로 죄를 대속하신 것이요, 속죄와 구원의 길을 다 이루신 십자가입니다. ●.왼편 강도가 달린 멸망을 자초한 십자가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달린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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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세 개의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