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어사에서 열린 ‘자성과 쇄신을 위한 의식개혁 토론회’에서 대중의 존경을 받는 한 어른 스님이 중도의 실천방안으로 재가와 맞절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한번이라도 뵙고 삼배라도 드릴 수 있으면 더없는 인연이고 영광이라 여겼던 스님의 말씀이라서 놀라움과 함께 권위적인 스님들의 의식을 바꾸어 보고자 하시는 그 말씀에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도수로는 한국최대 사찰이라는 부산 삼광사 주지스님이 새로 취임하면서 “이제는 부처가 중생을 찾아야 하는 세상”이라 말씀하셨더군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 바로 중생을 찾으신 것이고, 또 45년간 끊임없이 중생을 찾아 설법하셨는데, 새삼스럽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권위주위에 빠져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승가를 질타하신 것이겠지요.
언제인가 우연히 영외에 위치한 군 법당이 있어 참배 차 들렸지요. 마침 계급이 소령이신 초면의 군법사님이 계셔 절을 올리고 나니, 나이든 사람이 절을 해서 기특해 하신 말씀인지, ‘모 대대장은 불자임에도 삼배하는 것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지관스님 총무원장 당시의 군승임관식 장면. 사진은 기사의 특정한 내용과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미디어붓다 자료사진>
불교에 입문하면서 제일 먼저 삼배예절을 배우지만, 그 예절은 상대에 따라 정법도 되고 때로는 비법도 될 것입니다. 사문을 공경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불자라도 무조건 스님에게 삼배를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불교에 친숙하지 못한 이들에게 당연히 삼배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맞절이 아니고 대부분의 스님처럼 꼿꼿이 앉아서 받거나 딴 짓하며 받는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삼배가 부처님이 정했거나 사문을 공경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 재가가 정한 게 아니고 승가의 권위를 세우고자 스님들이 정한 예법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삼배가 하심(下心) 수행이라는 설명도 매우 자의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군에서 중령이 소령에게 절을 해야 하나?”(대대장은 보통 중령임) “군승은 군인이야, 스님이야?”
물론 스님들의 입장에선 출가한 다음 군종장교가 되었으니 스님이 먼저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군승에게 스님은 군승이 되기 위한 자격이지 신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승에게는 계급이 있고, 또 그에 따른 보수를 받는 직업인이자 군법이 적용되는 군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자유를 갈구하는 출가자의 속성상 군대는 스님이 상주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재가에게 삼배받기를 바라는 스님이 계실 곳은 더욱 못됩니다. 계급과 서열이 절대시되는 상명하복의 문화, 잦은 회의와 회식 문화가 일상인 군대에서 만약 군승이 복무를 잘한다면 스님의 본분은 분명히 흐트러졌을 것이고, 반대로 출가 본분을 잘하고 있다면 군승의 소임에 충실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군대라는 환경에서 스님 본분 잘하는 군승은 군승으로는 부적격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군승은 그에 합당한 복무규정을 두어 신분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유지되던 군승의 혼인제와 같은 별도의 규정을 없애버리고, 조계종의 정통성을 확립한다고 스님의 의무만 지우니까 군승들이 영내에서조차 군복 입기를 싫어하고, 상명하복을 거스르는가 하면, 찻상이나 붙들고 운수납자처럼 행동하기 일쑤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초기 군법사들과 같은 역동적인 불사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얘기지만 군내에서 발생한 군종사고의 대부분이 군승이 저질렀다는 얼마 전의 언론 보도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승에 합당한 청규 마련이 시급합니다. 속히 군종사관후보생 지원자가 넘치게 할 규정을 마련하여야 불교학과가, 군불교가, 그리고 한국불교가 살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