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여,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국민이 되어다오. -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을 아끼고 사랑한 외국인을 든다면 누구나 스코필드(石虎弼) 박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임종하기 며칠 전 병상에서 한국인에게 이 말을 보냈다. 이 말은 한국인에게 보내는 그의 간절한 기도요, 마지막 유언이요, 엄준한 채찍질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 때 큰 뜻을 품고 캐나다로 건너가서 토론토 대학의 수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16년 한국에 와서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소아마비로 불편한 몸이었지만 3.1 운동이 발발하자, 일본의 야만적 탄압상의 사진을 수없이 찍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유관순 양을 서대문 형무소로 찾아가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고, 총독을 방문하여 일본의 만행에 항의했다. 그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 스코필드 박사를 3.1 독립선언의 34인이라고 일컫는 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81세로 영면(永眠)했다.
"내가 죽거든 한국 땅 햇볕 따사로운 터에 묻어 달라."
그의 소원대로 그는 제 2의 조국인 한국 땅에 묻혔다.
부정부패는 한국의 공적이요, 우리 사회의 병이다.
그는 풍요사회(豊饒社會)에 앞서서 정의사회(正義社會)의 건설을 역설했다.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국민이 되라. 스코필드 박사의 이 말을 우리는 간(肝)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