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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3월 25일 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중미산 휴양림 내의 통나무 방갈로 두 채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두 채의 방갈로에서는 거의 형체가 남아있지 않은 사체의 두개골과 대퇴부로 추정되는 뼈 등 몇 조각이 발견됐다. 전날 밤 문제의 방갈로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에 양평경찰서 용문파출소 최영우 소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지난 2002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양평 통나무 산장 일가족 살인사건''이다. 자칫하면 ''일가족의 동반자살'' 사건으로 묻혀질 뻔했던 이 사건은 경찰이 피해자들의 주변인물을 파헤치던 중 드러난 한 미스터리한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당시 불에 탄 두 채의 방갈로는 서울 삼성동에 사는 소진혁 씨(가명·당시 42)가 예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며칠 후 알려온 국과수 유전자 감식결과는 수사팀의 예상대로였다. 뼈조각은 소 씨와 그의 아내,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16)과 중학교 1학년 딸(14) 등 일가족 4명의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최 소장의 설명.
“나는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인사건으로 확신했다. 현장에 남아있던 독한 휘발유 냄새도 그랬고 오랜 수사경험으로 터득한 현장 분위기로 봐서도 타살이 분명했다. 형사 특유의 직감이랄까. 현장 전체가 전소된 상태였지만 ''그날 밤'' 현장에 이들 가족말고도 다른 누군가 있었던 냄새가 확 풍겼다. 실제로 소 씨네는 여느 강남 중산층과 다를 바 없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 씨는 착실한 가장으로 부부 사이도 원만했으며 사업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살이라는 언론기사에 딴죽을 걸지 않았던 이유는 범인이 매스컴 보도를 통해 수사상황을 살피고 있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으로 가닥을 잡은 이상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수사팀의 의무였다. 우발적인 범행이나 단순 강도살인으로 보기에는 현장이 너무도 깨끗했다. 범인은 분명 완전범죄를 노린 지능범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국과수 감식결과 사체에서는 생활반응이 없었다. 이는 사망한 후에 불이 났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수사에 아무 진척도 없는 답답한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기를 수일째. 용의자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4월 초였다. 소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진행하던 수사팀은 소 씨 부부가 수년 전부터 함께 테니스를 열심히 쳐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다음은 최 소장의 얘기.
테니스라…. 부부가 테니스에 빠져 있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소 씨의 집 서랍에서 발견된 수첩을 토대로 테니스 동호회원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던 중 우리는 의심스런 인물을 포착하게 된다. 바로 ''정 교수''라는 인물이었다. 소 씨 부부를 잘 아는 지인들 및 테니스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소 씨 부부는 정 교수와 무척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이들은 정 교수를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엘리트''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틈날 때마다 운동복 차림에 ''쌕''을 메고 테니스장을 찾을 만큼 테니스 마니아였는데 실력도 선수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이후 정 교수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특히 평소 소 씨 부부와 각별한 친분을 맺으며 집에도 수시로 오가며 가깝게 지냈다는 사람이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지인들의 진술을 종합해본 결과 정 교수에 대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소 씨는 생전에 정 교수와 자주 접촉했으며 그에게 거액을 투자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측근은 소 씨가 “테니스장에서 알게 된 사람이 대박 아이템을 소개해줬다”며 들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다 수사팀은 사건 당일 소 씨와 통화한 친구로부터 소 씨가 “오늘 드디어 내가 떼부자가 되는 날이다. 지금 나를 떼부자로 만들어줄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수사팀은 소 씨 일가족의 죽음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확신했다.
수사팀은 즉시 정 교수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정 교수의 행방은 묘연했다. 다음은 최 소장의 얘기.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 교수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정 교수의 나이나 자세한 신상,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정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도대체 정 교수는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얼굴도 남기지 않았다. 동호회원들끼리 찍은 수많은 사진들 속에도 정 교수를 찾기는 힘들었고 어쩌다 찾았다 싶으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정 교수는 얼굴이 찍히는 걸 꺼린 것이 분명했다. 그는 완벽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수사팀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서울대 강단에 섰던 인물 2200여 명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지만 ''정 교수''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되돌아온 것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명예교수''가 될 리 있겠느냐는 학교 측의 ''핀잔''뿐이었다.
정확한 이름과 나이는 고사하고 사진 한 장 없는 상황에서 그를 찾아내는 일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수사팀은 정 교수가 자주 출몰했다는 강남과 성남 일대의 테니스장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탐문수사를 계속했다. 성과조차 기대할 수 없는 지루한 발품팔기가 20여 일간 이어졌다.
그러던 4월 말 최 소장은 탐문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한 인물로부터 “정 교수가 심영숙(가명)이라는 여인과 잘 알고 지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심 여인은 정 교수와 종종 연락을 하던 사이라는 것이었다. 심 여인과 정 교수 간의 미심쩍은 정황들을 파악한 최 소장은 심 여인에게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심, 이날부터 심 여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었다. 다음은 최 소장의 얘기.
매일 심 여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서 밥을 먹었다. 인사 외에는 별다른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하지만 일절 모른 체했다. 그러기를 며칠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지 심 여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정 교수를 알고 있다'고 털어놓더라. 심 여인은 정 교수에게 아이 두뇌개발 문제 등을 상담하던 중 가까워졌고 금전적인 피해까지 입었다고 털어놨다. 그녀 역시 정 교수의 실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 교수가 심 여인에게는 반드시 연락을 할 거라 믿었다. 당시 상부에서는 심 여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불안해했지만 나는 심 여인을 설득해 결국 수사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5월 3일 내 예상대로 정 교수는 심 여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공중전화였다.”
디데이는 5월 6일. 정 교수가 심 여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인 사당역에는 내로라하는 강력반 형사 10여 명이 포진해 있었다. 작전명은 '돌고래 작전'. 사당역은 출입구만 해도 10여 개인 데다 당시는 공사 중이어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장애인, 환자, 신세대 커플로, 심지어 노숙자로 제각기 변장한 형사들은 심 여인 주변에서 정 교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인 오전 11시가 지나 형사들이 초조해질 무렵 심 여인 옆으로 한 중년남자가 지나갔다. 아무말없이 손가락만 까딱하며 스쳐지나가는 남자, 바로 수사팀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정 교수'가 틀림없었다. 잠복 중이던 형사들이 일제히 그 남자에게 달려들었고 곧 제압했다. 그의 주머니에서는 신분증 하나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한 수사팀은 즉시 경찰청에 신분확인을 의뢰했다. 다음은 최 소장의 얘기.
검거된 정성식(가명·45)은 혼인빙자 간음 및 사기전과가 있었던 인물로 부인과 아이까지 있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그는 학력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수료한 것이 전부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정 교수'와의 대면은 사건 발생 42일째 되는 날 그렇게 이뤄졌다.”
하지만 정 씨는 검거된 후에도 범행일체에 대해 묵비권으로 일관, 수사팀의 애를 먹였다. 사흘동안이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 씨가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제3의 인물 두 명을 조사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 씨를 체포한 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수사팀은 개포동에 소재한 그의 집을 찾아갔고 강원도 양양의 한 약국에서 조제한 자상 치료약을 발견하게 된다. 확인결과 조제일자는 3월 26일 오전으로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이었다. 수사팀은 정 씨가 병원을 찾던 날 정 씨와 동행한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현인수 씨(가명·40)와 김정미 씨(가명·여·25)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사건 당일 정 씨의 부탁에 따라 범행에 사용된 휘발유와 전자충격기를 구입해준 사실에 대해 시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 씨의 살인행각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역시 정 씨에게 속아넘어간 피해자들이었다. 공무원인 현 씨는 국가 프로젝트 참여와 승진 등에 현혹돼 거액을 뜯겼고 대학원 입학 예정자였던 김 씨는 유부남임을 숨긴 정 씨에게 속아 연인사이가 됐던 것.
총 10회에 걸친 조사 끝에 드러난 정 씨의 범행은 이렇다. 1999년 테니스장에서 소 씨 부부를 알게 된 정 씨는 자신을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그럴싸한 신분으로 포장, 소 씨 부부에게 접근했다. 아이들 두뇌개발 문제로 상담을 하면서 부부와 가까워진 정 씨는 소 씨에게 '정선 카지노를 인수하면 총지배인을 시켜주겠다'고 속여 카지노 투자금 명목으로 2회에 걸쳐 1억 8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소 씨에게 약속했던 카지노 인수시기가 다가오자 자신의 사기행각이 들통날 것을 염려한 정 씨는 결국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던 소 씨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무서운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정 씨는 3월 25일 오후 7시경 '카지노 사업에 들어가기 앞서 교육을 받을 것이 있다'며 소 씨를 중미산 산장으로 유인,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 씨를 전자충격기로 실신시킨 뒤 흉기로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소 씨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과 휴양림에 놀러왔는데 애들하고 이쪽으로 오라'고 유인, 같은 방법으로 소 씨의 부인과 두 자녀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일가족의 사체는 방갈로 두 곳에 나눠서 숨겨뒀다가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범행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