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음마를 시작한 애기가 문지방 앞에서 울고 있다. 몇 번 넘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모양이다. 자신의 능력 앞에 가로 놓인 시험대가 녹록치 않았던 모양이다. 애기 엄마가 멀리서 손뼉을 치며 도전을 부추기고 있다. 도전만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가르치려나 보다.
계곡에 세찬 물살이 포말을 일으키며 가파르게 흘러간다. 바닥이 훤하게 보이는 물속에 크고 작은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헤엄을 친다. 신기한 일이다. 계곡 위로는 깊고 높은 산이 있어 물고기의 시원이 될 만한 곳이 없다. 필경 이 물고기들은 계곡 아래 하천에서 거슬러 왔을 것이다. 사람의 걸음으로도 숨이 차고 두 다리가 아픈 힘든 여정인데 가냘픈 지느러미의 물장구만으로 험난한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물론 저 물고기들도 선조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릴레이 하는 것이지 싶다. 그들이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와 에너지는 무엇인가. 오르고 또 오르면 그들의 유토피아에 당도할 수는 있는 것인가.
문지방은 방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방안이 안전하고 평화롭다면, 방 밖은 불편과 위험이 공존한다. 한편 문지방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자유와 꿈을 찾아 떠나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삶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문지방을 넘는 일이다. 자궁이라는 문지방을 힘들게 넘어야 실체로 인정받고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죽음의 마지막 문턱을 넘을 때까지 높고 낮은 수많은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 죽음은 최후의 문지방이다. 삶은 죽음의 문지방을 넘어야 완성된다. 장애물을 넘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쉽게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있는가 하면 죽을 고비를 요구하는 까마득한 장애물도 있다. 백 번 잘 넘다가도 한 번이라도 걸려 넘어지면 낭패를 당한다. 급기야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어릴 때 문지방에 올라서면 어른들은 호되게 야단을 쳤다. 왜 문지방에 올라서면 안 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지방이란 삶을 구분 하는 신성한 장소이자 극복의 대상이다.
삶은 장애물 넘기 경주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도 수없이 걸려 넘어지고 부딪치고 미끄러지길 반복하며 장애물을 넘어온 결과이다. 세상과 하직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의 장애물을 넘어야 할지 모른다. 무심코 흘러가는 시간도, 매일 닥쳐오는 일상도, 끝없이 부딪치는 인간 간의 갈등도 장애물이다. 경주에서는 단순히 장애물을 넘어서도 안 된다. 경주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경주에서는 아량은 사치다. 필사적인 혼신의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천지가 문지방이다. 물이 흐르는 한 물고기에게 상류로 향한 끝없는 물장구가 있듯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소위 일진이라는 무리 들과 싸운 일이 있었다. 그 경력 때문에 문제아라는 불도장이 3년 내내 따라다녔다. 편견의 문턱을 넘어 보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은 더 깊어갔다. 마침내 높고 긴 문턱 앞에 좌절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황금 같은 청춘의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야 했다.
군 제대 후 주변의 염려와 냉소가 초겨울 찬바람 인양 목덜미를 시리게 했지만 대학 입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까마득하게 높기만 했던 장애물이었다. 이름하여 입시학원 예비고사 반, 더 나은 학교로 가고자 하는 호사스런 도전이 아니라, 천장에 달린 선풍기 힘겹게 돌아가는 입시학원의 막장인 숨 막히는 지하 교실의 늦깎이 재수생이었다. 배움에 나이가 어찌 있으랴만 그간의 인생 실패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과정이 그 나이에는 참기 어려운 치욕이고 고통이었다. 가망 없는 헛꿈을 꾼다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 문지방은 넓고 큰 세상으로 나가는 길목이고 경계다. 나에게는 벅찬 장애물이지만 넘어 보자.’ 오기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은 전쟁터였고 나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낙원을 꿈꾸며 물줄기를 거슬러 물장구를 치며 오르는 한 마리 물고기였던가. 꽃 피고 새가 우짖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곳을 찾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친 물살을 거슬러 지느러미를 흔들며 올랐다. 하지만 그곳에 기다리고 있어야 할 파라다이스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넘었던 여느 것보다 높고 험난한 문턱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었다. 안간힘을 다하여 넘었지만 내가 찾는 낙원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나와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팽팽한 긴장을 견디지 못한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대동맥 박리증이라는 통증만큼이나 절박한 병명이었다. 10시간의 대수술 끝에 주사 줄이 여기저기 꽂힌 채 중환자실에 갇혀 긴 고통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내가 왜 여기에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넘었던 문지방은 무엇이었고, 누가 세운 문지방이었나. 내가 애타게 찾아온 파라다이스는 신기루였나.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돌아보니 모두 내가 쌓은 문턱이었다. 자승자박, 자업자득이었다. 내가 세웠고, 내가 힘들게 넘어야 했던 장애물의 연속이었다. 나의 욕망이 덕지덕지 쌓아 올린 욕망의 언덕이었다. 그렇게 물살에 떠밀리고 미끄러지며 넘었지만 내가 찾던 유토피아는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도전의 결기를 재충전하며 언뜻 보았던,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던, 푸른 하늘이 보이던 그곳이 낙원이었다.
깊은 계곡의 상류를 향해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고기들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간 그곳에 그들의 유토피아가 기다리고 있기나 할까. 지금 헤엄치고 있는 그곳이 그들의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지금도 물고기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문턱이 죽음인 것을 알기 나 하는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물고기 위로 한 점 흰 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다. 나는 지금 문학이라는 또 다른 문지방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끝없는 물장구를 치고 있다.
* 2023 제10회 이가탄 한국약사문학상
* 주최 : 대한약사회 약사공론. 후원 : 명인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