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
그녀가 좋아할까?
한껏 멋을 내긴 했지만
수줍어 등 뒤에 숨은 프리지아 꽃다발도
덩달아 두근두근
아직 서툴지만 즐거운 디카시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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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카시와 아주 친하다. 몇 년 전부터 도서관 등에서 디카시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이 쓴 디카시로 디카시 문집도 몇 권 만들었으며, 디카시 전시회도 몇 번 열었다. 나는 시 창작 수업보다 디카시 수업이 훨씬 재미있고, 보람도 크다. 디카시는 시와 편하고 쉽게 사귈 수 있는 계기와 접근성을 제공한다. 수강생 대부분이 오랫동안 사진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 자신이 찍은 사진에 자신의 생각(감상)을 붙이면 한 편의 시가 된다는 데 무지 신기해하고, 뿌듯해한다. 디카시 공모전에 입선한 사람도 더러 있다. 나는 그 수준을 좀 더 촉촉, 좀 더 끌어 올려주기 위해 수업 시간 틈틈이 좋은 시와 책, 좋은 그림책과 사진, 회화 등을 소개해준다. 굳어진 상상력과 어휘력, 잃어버린 동심과 정서를 깊은 무의식 속에서 조금씩 풀어내어 잊고 있었던 ‘자신’을 기쁘게 만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서이다. 수강생 대부분이 디카시 때문에 평소엔 그냥 무심히 지나치던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며, 매일매일이 일상의 재발견이라며, 무척 즐거워하고 대견해한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시만큼 디카시를 열심히 쓰지는 못한다. 디카시를 쓰다가도 디카시가 아닌 시로 변한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아직 디카시가 서툴다. 가르치는 건 즐겁지만 디카시 쓰기엔 그리 열정적이지 못하다. 아마 내가 시인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대신 가끔씩 디카일기를 쓴다.
이곳에 실린 「첫 데이트」도 디카 일기 중 한 편이다. 엄청 추웠던 어느 겨울날,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레몽 루셀의 『아프리카의 인상』을 빌리려 ‘이진아기념도서관’에 갔을 때 쓴 것이다. 홍제동에서 독립문까지 걸어서 간 탓에 온몸이 얼음장 같았다. 손을 호호 불며 도서관 2층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끝에 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린이 그림책의 한 페이지일 텐데… 내 눈이 환해졌다. 참 예쁜 염소 소년! 옷차림도 마음에 들고, 운동화 끈을 끝까지 맨 모습도 착해 보였다. 재미있는 건 등 뒤로 숨긴 두 손이었다. 무얼 감추고 있을까? 궁금했다. 꽃다발? 아님, 책? 아님, 초콜릿 상자일까?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사진을 찍었다. 첫 데이트 날 모습처럼 수줍은 듯 단정한 포스가 참 귀엽고 풋풋했다. 그 설레는 마음을 디카시에 담았다. 등 뒤에 감춘 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프리지아 꽃다발로 정했다. 프리지아 꽃은 향기도 참 예쁘고, 꽃말도 ‘오래가는 우정’이니 이 그림에 딱 어울릴 듯해서다. 제목은 첫 느낌 그대로 ‘첫 데이트’로.
이처럼 내가 쓰는 디카시는 아주 단순하고 유아적이다. 어린이 눈높이와 비슷한. 아무리 늙어도 그 눈높이는 변하지 않을 듯해 계속 이렇게 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만나는 나만의 자잘한 에피소드들. 그 속에 담긴 기쁨과 슬픔, 유머와 화해, 크고 작은 모험들과 정다운 얼굴들….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찰칵! 한 편의 디카시로!
김상미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외.
박인환 문학상 외 수상.
[출처] 제33호 디카시, 나는 이렇게 쓴다/김상미 고영민|작성자 dpoem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