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三國志)제109편 ※ 천자의 혈서
사냥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 낙중(洛中)으로 돌아오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불러 말한다.
"둘째는 오늘 낮에 어찌하여 조조를 그렇게나 분노에 넘치는 눈으로 쏘아보며 칼을 빼어 들려고 하였나 ?
마침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오늘은 평소 둘째답지않게 너무 흥분을 하였네."
관우는 머리를 수그려 잠시 생각하다가, "형님은 조조의 기군망상(欺君罔上) 한 태도에 아무것도 못 느끼셨다는 말씀입니까 ?" 하고, 묻는다.
"나도 조조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긴 하였네만..."
"저는 오히려 형님께서 저의 행동을 억제하신 심정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이곳 허창에 머무는 동안에,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모든 것에 조조의 횡포가 심한데 놀랐습니다.
조조는 분명히 왕도(王道)를 무시하고, 패도(覇道) 를 꿈꾸는 간웅(奸雄) 입니다.
사냥에 따라간 수 많은 문무백관들과 병사들 앞에서 천자께 올린 만세를 자기가 대신 받는다는 것은 신하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분개한 것은 바로 그 점 이었습니다."
"음... 사정을 이해하네. 그러나 그때, 천자께서는 바로 조조의 옆에 계셨고, 또 좌우를 에워싼 무리들이 모두 조조의 심복 부하였는데, 둘째가 일시적인 분노로 행동을 했다가는 조조는 죽일 수가 있었겠지만, 조조의 맹장들로 부터, 혹시라도 천자께 누(累)가 미친다면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겠나 ? 내가 둘째의 거동을 말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네."
유비의 조목한 설명에 관우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조조 같은 놈은 진작 죽여 없애지 않으면 후일에 반드시 화가 될겁니다."
"그런 말은 함부로 입밖에 내지 말게." 유비는 관우의 손을 붙잡으며 당부 하였다.
그리하여 관우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장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형님 ! 조조란 놈을 죽이지도 못하고, 참을 수도 없는데, 차라리 허창을 떠나서 우리끼리 편하게 삽시다.
계속 이 우리같은 곳에서 갇혀 살거요 ?"
그러자 유비가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 허창 곳곳은 경비가 삼엄하니, 우리가 떠나고 싶어도 쉽지않을거야.
지금은 남의 밑에 있으니 일단은 참아야 할 것이야."
그러자 장비는 볼멘 소리를 한다. "형님 ! 만날 참아라, 참아라... 도대체 언제까지 참으라는 거요 ?"
그러자 밖의 인기척을 느낀 유비가, "쉿 !~..."
하고 장비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타박한다. "끄응 ! ~..."
장비가 목을 움츠리고 말문을 닫는 순간, 모사 미방이 들어와, "주공, 황궁에서 시종이 와서 천자의 명을 전한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유비를 비롯해 관우, 장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시종을 맞아 꿇어 앉았다.
그리고 천자의 명을 전하러 온 시종에게, 유비가 두 손을 읍하며, "신 유비, 명을 받듭니다." 하고 예를 갖추었다.
시종이 황제의 명을 전한다. "유황숙. 폐하께서 허전으로 사냥을 나가셨다가 풍한(風寒)이 들어 와병중이시니, 황친들께서는 모두 문안을 오시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유비가 즉각, "신이 곧 찾아 뵙겠다고 폐하께전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다음날 늦은 저녁, 유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등(燈)을 든 시종을 앞세우고 천자의 궁으로 향했다.
궁문앞에 이르니 수문장이 앞을 막아서며, "승상의 명으로 대신들은 야간에 신궁 내부를 출입할 수 없다 !"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를 따라온 시종이 먼저, "황제께서 와병중이시라고 황후께서 친히 유황숙을 청하셨으니..." 하고 말문을 열자, 수문장은 즉각, "늦었으니 내일 오시오 !" 하고 잘라 말한다.
그러자 유비가 목소리를 높여, "나는 유황숙이다. 천자께서 자유롭게 출입하라 하셨거늘, 너희가 감히 막는 것이냐 ? 비켜라 !" 하고 말하자, 수문장은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그러자 유비가 수문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비키지 않으면 승상께 고해, 네 죄를 묻겠다 !" 하고 일갈하였다. 그러자 수문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수하 병사들에게 명한다. "열어드려라."
이렇게 궁문 앞을 통과한 유비가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내실로 들어가니, 동귀비(董貴妃)가 나와 유비를 맞으며 말한다.
"황숙, 오셨습니까 ?" 유비가 두 손을 읍하고 절을 하면서, "신 유비, 동귀비를 뵈옵니다." 하고 말하고 보니, 내실에는 동귀비 외에는 사람도 없고 썰렁하기만 한 것이 아닌가 ?
"그런데 다른 황친들은 어디 계시온지요 ?" 유비가 궁금해 묻자, 동귀비는, "폐하께서는 황숙만 부르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주위를 살피면서, "폐하께서는 어디계십니까 ?" 하고 물었다. 내실에는 황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동귀비는, "지금 측간(厠間)에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는, "그럼 신은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동귀비는, "아니오. 황숙께서는 측간으로 가보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가 의아해 하면서, "폐하를 그곳에서 뵈라는 말씀입니까 ?" 하고 물으니, 동귀비는, "따라오시죠." 하고 먼저 앞장서 유비를 측간으로 인도한다.
측간으로 들어선 유비가 이리저리 살펴보니, 황제는 측간 좌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황송해 하며 머리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엎드려 절을 하며 울먹였다. "폐하 !..." 그러자 천자 유협이 서글픈 음성으로, "황숙, 일어나시오.
도성 곳곳에 조조의 감시가 없는 곳은 오로지 이 측간 뿐이오. 이곳이 짐의 진정한 자리요. 여기서만이 짐이 속 마음을 말 할 수가 있소.
그래서 황숙을 이곳으로 오시라 한 것이오" 하고 말하니, 유비가 울먹이며 대답한다. "폐하, 신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천자가 엎드려 있는 유비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너무 슬퍼마시오.
이런 짐의 처지는 몇 년전 보다 나아진거요. 그거 아시오 ? 짐은 즉위하는 그날부터 동탁의 노리개가 되었소. 그때 동탁이 궁정에 난입하여 비빈들을 간음하고 상부를 칭하며 악행을 휘둘렀소.
동탁이 죽은 뒤, 짐은 이각과 곽사의 손에 들어갔는데, 그들은 독사보다도 독하고 이리보다도 악했소.
어렵사리 국구인 동승의 계책으로 장안을 탈출했으나, 이젠 조조에게 납치되어 허창으로 오게 된 거요." 하고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유비가, "폐하, 밖에서 듣기론 조 승상이 폐하께 예를 다 한다고 하는데 아닙니까 ?" 하고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러자 천자는, "그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오. 조조가 짐을 학대하진 않았소.
오히려 철마다 다 먹고 쓰지도 못 할 음식과 비단을 짐에게 바쳐왔으니, 세간에서는 그렇게 보일 것이오. 허나, 조정을 장악해 짐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짐을 이런 새장 같은 곳에 가둬놓고 제후들을 호령하고 있소.
더구나 언제든지 때가 오면 황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 할 것이오. 황숙 ! 조조가 명분은 승상이나 역적이나 다름없소 !"
천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동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놓고 역적질을 하지 않을 뿐, 사람들은 은혜와 위엄을 떨치는 한실의 기둥인 줄 알고 있소.
조조의 수법이 동탁보다 천 배는 더 뛰어나오.
어제 사냥터에서 보시지 않았소 ?" 그러자 유비가 무릎으로 천자 앞으로 기어가며 말한다.
"폐하. 폐하 !... 걱정마십시오. 신이 조만간 기필코 역적을 없애, 한실을 부흥시키고 황은에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그러자 천자는, "황숙을 청한 것은 할 말이 있어서요.
짐은 행동의 제약이 있으니, 황숙이 한실을 위해 반드시 대업을 일으켜서 부족한 짐과 백성들을 구하고 선조들의 영령을 위로해 주시오.
짐이 곧 황숙께 밀지를 내릴 것이오." "신, 명심하겠습니다."
유비가 이렇게 대답하자, 천자가 친히 유비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런 연후에, "황숙 ! 짐의 절을 받으시오." 하고 말하며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황급히 천자의 행동을 막으며 고개를 흔든다.
"폐하,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자 천자는, "짐이 절을 하는 것은 천자가 신하에게 ... |